지난 유월 초순이었으니 아직 봄이었지만 낮으론 여름처럼 더웠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점점 절기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무더운 적도의 땅 베트남으로 초청일정을 떠나기 사흘 전이었다. 국내에서 남은 일정이 몇 개 더 있어 과로로 비롯된 기관지 염증을 다스리며 고요히 한 나절을 잘 쉬고 있었다. 마당가에 둘러 핀 야생화와 솔씨를 먹기 위해 날아든 새들을 보니 어린 날 산자락을 바라보며 원두막에 앉아있던 생각이 났다. 바로 그때였다. “택배요~!” “안에 뭐가 들었을까요?” “글쎄요. 박스에 성주참외라고 적혀있네요.” “제가 지금 원두막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바쁘시지 않으면 한 개 깎아드릴 테니 드시고 가시지요.”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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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고태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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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고태환 |
내 노래를 좋아하는 안산의 보건교사께서 매년 이맘 때 쯤 참외를 보내준다. 참외밭으로 직접 연락을 하여 따는 날 바로 보내오기에 싱싱하고 상큼하다. 이분은 주변의 교사들이나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주고는, 좋다고 하면 음반을 사서 선물하는 고마운 분이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기쁘게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느라고 나도 기회만 닿으면 내 노래를 선물한다. 그분께는 삶의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무얼 보내드릴까 생각하다가 어제 새로 녹음한 음반을 보내기로 했다.
국내외에서 매번 갖게 되는 초청행사 후 많은 분들이 내게 선물을 한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간간히 우편이나 인편으로 전해온 사랑 담긴 선물들은 내 삶의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나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내 노래가 담긴 음반들을 보내드린다. 받은 분들 또한 내 노래를 통해 기쁨과 희망을 누리고 있다고 하니 서로에게 참 으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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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고태환 |
사랑은 그런 것이다. 이십 칠 년 전인 1982년 봄에 그것을 알았다. ‘사랑이란 서로 무엇을 주고받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 특별히 물건을 주고받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프라도 사제회’ 관심자로 낯선 곳에서 실습을 겸한 삶을 살고 있던 나에게는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가까운 이웃 교우들은 자주 내게 이것저것 선물하였고, 그 보답으로 나는 내 노래를 녹음하여 선물하였다. 그렇게 카세트 테잎으로 녹음하여 선물한 것이 아마도 수천 개는 될 것이고, 그 수천의 노래 선물들이 수많은 이웃들에게 삶의 위로와 희망을 주었을 뿐 아니라, 내게도 기쁜 노래삶의 한 부분이 되어주었다. 이웃들과 나누는 사랑에서 우러나와 떠오른 노래들을 오선지에 옮기고, 그 노래들을 녹음하여 다시 이웃들에게 나누고, 그런 나눔의
과정 속에서 또 다시 새로운 노래가 떠오르게 되는, 이를테면 사랑의 순환인데 그 순환의 매개체는 대부분 물건이었다는 것이다.
기독 신앙인들은 눈에 보이는 물건보다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통해 사랑을 말한다. 고린토 전서에 있는 사랑이 대표적이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온유하며, 성내거나 시기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라는 이 추상적인 사랑을 삶으로 구현해 내기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렵다. 그러기에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사랑을 하는 것이 정상인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예수께서 당신의 전 생애를 다 바쳐서 이룬 것이 바로 이 사랑이며, 90평생 가까이 살다 얼마 전 타계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신 말씀도 바로 이 사랑이다. 이분들이 정상인인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지만,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가치로서의 사랑을 추구하는 일도 귀히 여겨 기독신앙의 꽃이라 말할 수 있는 영성을 간직하면서, 그 영성을 삶으로 살아내는 일에도 마음을 쓸 일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사랑이란 서로 무엇을 주고받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 특별히 물건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는 각자의 삶의 모습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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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7동성당 구름새 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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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데레사와 함께(사진 이은주) |
이런 사랑의 삶을 잘 보여주신 분 중에 시인이신 이해인 수녀가 계신다. 이분은 물건을 주고받는 사랑 부문의 올림픽이 있다면 단연 금메달 수상후보다. 그분과 오래 교분을 쌓다보니 가까이에서 그분의 삶을 바라볼 기회가 많았다. 평소 무슨 물건을 보면 지혜와 감성이 발동(?)을 하여 누구에게 그 물건이 가장 필요한 것인지를 분별해 낸다. 그러면 잊지 않기 위해 접착메모지에 그 사람의 이름을 써서 붙여두었다가, 언제든 그 사람을 만날 일이 있을 때 가방에 넣어가 선물해준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 여겨지면 지체 없이 바로 우편발송을 하신다. 그래서 출타 시에는 늘 가방이 여러 개이고, 가방마다 이런 저런 자잘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수도자이기에 당신 또한 타인에게 선물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보통 내가 쓰고 남은 물건이거나 내게 소용없는 물건들을 선물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 물건이 ‘누구에게 가장 기쁜 선물이 될까?’를 잘 분별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수녀님은 늘 자기에게도 필요하고 소중한 것을 더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나눈다. 오늘날 그분의 시집이 그토록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라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사랑하는 데는 그럴만한 삶의 모습이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인으로써 시를 잘 쓰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세상에 시를 잘 쓰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시로써 표현된 삶을 실천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훨씬 전달성이 높은 사랑법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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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고태환 |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오12.48-50)’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따라 우리도 하느님의 뜻이라는 사랑을 실천하여 예수의 형제, 누이 혹은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불가능에 가깝다는 추상적인 사랑만을 입으로 외우기보다 실천이 가능한 현실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일이다. 무엇이 실천 가능한 사랑인지를 잘 식별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우선 서로서로 물건을 주고받을 일이다. 내게도 필요하고 소중하지만 더 필요한 사람에게 자주 기쁘게 선물할 일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문승현 사/곡 김정식 노래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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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감사합니다. 성님!!
부족한 글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우님!! 가능하면 www.nahnews.net 로 가셔서 회원가입하시면 새로난 가톨릭언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부탁합니다.
민들레희망지원센터 개원식때 뵈온 해남과 인연있는 이부성바드리시오입니다 늘 신선함 감사를 느끼며 뵙고 있습니다
해남에서의 인연으로 우리가 만난지 벌써 오래지요? 그날 반가웠구요.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평소 무슨 물건을 보면 지혜와 감성이 발동(?)을 하여 누구에게 그 물건이 가장 필요한 것인지를 분별하시는 해인 수녀 님은 평소에 남에게 늘 관심을 기울이시는 습성이 몸에 배여있으셔서 그러시겠지요. 좋은 글, 음악에 늘 감사하는 마음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