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드라마 '서울1945' 29회의 토막동영상인 이 동영상은
1945년 10월 23일 독립촉성중앙협의회 결성을 위한 첫모임 장면을 보여준다.
이승만 박사는 미군정 지원을 받지도 않았지만 10월 20일 환국인사를 하고 사흘 만에 미군정 지원을 받을 시간이 있을 수 없음에도
KBS드라마 작가가 좀 무리한 해설을 한 듯하다.
드라마 전체 흐름대로라면 친일파 한민당이 이승만 박사와 손잡아 이승만 정권을 탄생시켰다는 것인데,
한국인의 이런 거짓말 솜씨는 놀랍기만 하다.
10월 16일 환국하신 이승만 박사는 한민당과 공산당 양편의 제의를 모두 거부하셨다.
1948년 8월 건국 후 한민당 출신 중 한명만 장관으로 임명하셨을 정도로
한민당과는 거리를 두셨다.
위 동영상에서 보이는 대로 이승만 박사는 좌익과 우익을 무론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결성하셨다.
오죽하면 한민당이 야당이 되어 훗날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꾼 후에
4.19 쿠데타를 일으켰겠는가?
KBS드라마 '서울1945'가 4.19까지 갈 수 없는 것이,
4.19 쿠데타의 주역이 한민당이었기에 이인평이 4.19 쿠데타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4.19 쿠데타는 자유민주주의에 뿌리가 있었다기보다 무정부주의에 뿌리가 있었다.
드라마는 이승만 박사를 우익으로 그리지만 실제로 이승만 박사는 우익이 아니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구분은 국내파와 상해임정에서 쓰던 말이었다.
우익은 반공인사의 총칭이었다.
대개 독립운동을 위해 자기 재산을 헌납하였던 이들은
그래도 자기 재산이라는게 좀 있었던 분들이었다.
그런데 공산주의 세상이 되면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족까지 죽임을 당한다는데
누가 제 정신 가지고 공산주의를 지지하겠는가?
그런데,
총독부도 싫고 공산당도 싫고 민주주의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하였던 이들 중에
많은 이들이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가 되었다.
민족주의자로서 아나키스트이면 우익의 범주에 들었으나.
사실 자유민주주의와 무정부주의는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이승만 박사 없이 대한민국 건국이 있을 수 없었던 이유들 중 하나가
독립운동가들 중 상당수가 무정부주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정부주의란 조선에는 정부가 없어야 한다는 사상이었으니,
건국 자체를 부정하는 사상이었다.
그런데 건국을 하지 않고 독립국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였기에
무정부주의들을 독립운동가들이라 부르는 것은 모순이었다.
이승만 박사가 환국한 조선은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척박한 땅이었다.
해방이 되었는데도 조국의 국가 모델을 모른채
사람들의 머리 속에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만 꽉 차있었다.
그래서 미군정이 정당 등록을 받은지 한달도 채못되어
200개가 넘는 정당들이 등록되어
구한말의 사색당파 싸움을 재연하고 있었다.
그러나, 때는 뭉쳐야 할 때였으며,
뭉쳐야만 건국할 수 있었다.
미소 양국이 50년 혹은 그 이상의 신탁통치를 고려하고 있었던 때에
신탁통치를 막고 조국이 건국되게 하려면
모두 뭉쳐야 했다.
그래서 이승만 박사가 독립촉성중앙협의회 결성을 제안하셨던 것이다.
이승만 박사는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져 있던 조국을 치유하신 지도자였는데,
드라마가 이승만 박사를 우익 인사로만 그려낼 때 생기는 모순은
드라마에서 자유민주주의 사상가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랑스도 미국도 자유민주주의 철학과 더불어 민주주의 국가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드라마는 우리나라에는 아무도 자유민주주의 사상가가 없었다는 논리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 듯하는데, 그것이 모순이요, 시청자들이 느끼는 아쉬움이다.
69. 프랜세스카 영부인 비망록 / 우리 국군 전투용 식품 없어 민간이 운반한 언밥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