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이지만, 이 양반이 대륙에서 연설을 할 때 자신들이 잃어버린 영토이며 또한 되찾아야 할 영토를 거론하면서 한반도를 거명했다. OME. 물론 이것은 그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시각에 가까울 것이다. 근데 이것도 기분 나쁜데 어찌되었든 당대의 그 역시 중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원조한 바 있고, 이 공으로 1962년과 1968년 대한민국 건국 훈장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점은 쑨원도 '아시아주의자'로 한국의 김옥균, 안중근, 여운형이나 베트남의 호치민, 미얀마의 아웅산등 주창한 '대아시아주의'와 일맥상통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이들은 처음에 일본을 지지하다가 나중에 일본의 속셈을 알아채 반일로 돌아서기도 한다. 쑨원은 일본에 자주 망명을 지낸 경력도 있고, 망명시절 나카야마 쇼우(中山樵)라는 창씨개명까지 하기도 했다. ㄷㄷㄷ 그래서 손중산이란 이름 자체가 나카야마로 읽는 것이라는 말이..
첫 아내는 19세에 결혼한 루무전(盧慕貞)으로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 쑨커와 딸 쑨얀과 쑨완을 두었다. 둘은 1915년 9월에 이혼했다.(당시에 첩을 두는 제도는 있었지만, 결혼하기로 한 쑨원과 쑹칭링 모두 기독교 신자라서 이혼하기로 한 것임) 아들은 중화민국의 고위직에 오르게 된다. 두번째 아내인 쑹칭링(송경령)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사상적 동지였던 쑹야오주의 딸이었으며 쑨원의 비서였다.(※쑨원과 쑹칭링의 아버지는 친구사이. 고로 그와 그녀의 사이는 무려 26살 차이.....ㄷㄷㄷㄷㄷ 이 때문에 현재 대만에서는 쑨원이 진성 '로리콘'이 아니었는가 하는 평가도 있고, 그의 패러디 동인지도 있다. http://www.weicomic.com/100roc/100roc.htm)
딸 하나를 두었으나 어릴 때 사망했고, 이후군벌들로부터 도피 생활을 하면서 건강을 해쳐 더 이상 자식을 얻진 못했다. 평생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며 중국의 국부인 쑨원의 아내다운 모습을 보여서 현재도 중국과 대만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여인이다.
공식적으로는 광동성 태생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은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태생이라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