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6일 금요일 (2일째)
여행지: 나라 - 비조사, 약사사 글쓴이: 김정희
비조사(아스카데라)
<일본의 건축>이란 책을 사놓고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일본에 대해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유선생님이 일본의 시대 구분과 건축양식 등의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나누어 주어서 아주 유용했다. 그 유인물을 보고 흐름을 대충 파악하니 스님의 설명, 가이드의 설명등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책을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불교가 공식적으로 일본에 전해지면서, 일본 조정 내부에서는 불교 수용 여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것이 이른바 '숭불논쟁'이다. 당시 소가씨는 체제 개혁을 위해 불교 수용에 적극적이었지만, 모노노베씨는 부정적이었다. 이에 천황은 공적인 불교 숭배는 허용하지 않으나, 소가씨의 개인적인 불교 신앙은 인정했다. 하지만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후, 반세기가 지난 587년 소가씨가 모노노베씨 세력을 누르고,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다. 그 다음해에 소가씨에 의해 일본 최초의 사원이 지어졌으니, 그 절이 아스카데라(비조사)이다. 그 후 불상을 모시는 호족들이 늘고, 왕이 나서 본격적으로 사원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680년경에는 비조 지역 주변에 24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들 절은 대부분 호족들이 후원하는 절들이었다. 그 후 천무천왕 시기에 이르러,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가적인 불교행사나 승려를 감독하는 기관 사찰이 정해졌다. 당시 대관대사, 약사사, 비조사, 천원사 등 사대사찰이 대표적이다.
비조사는 7세기 전반 대표적인 사원으로, 당시의 불교문화를 잘 보여준다. 비조사는 588년 백제로부터 절 짓는 장인과 기와 굽는 장인을 초청하고, 고구려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아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소아마자(소가 우마고)는 자신의 권세와 재력을 기울여서 이 공사를 추진하여 推古天皇(스이코텐노) 4년(596년)에 탑이 완공되었으며, 609년에 금동석가상이 안치되었으므로, 비조사는 20년 동안 걸려서 완결되었다.
비조사의 가람배치는 탑을 중심으로, 그 뒤와 좌우에 3개의 금당이 서 있었다. 금당 주변으로 회랑이 돌아가고, 남쪽에는 중문이 있어 1탑 3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조사는 1196년 화재로 가람의 건물들이 소실되었고, 본존불만이 현재까지 전해온다. 비조사의 가람배치는 1956~1957년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비조사는 일본 최초의 사찰로, 대부분이 한반도 도래인이 살았던 아스카지방에 있는 절이다. 백제계 소가씨의 발원으로 백제인 기술자들과 고구려에서 금을 보냈다고 한다. 건립 후 고구려승 혜자와 백제승 혜초가 주지를 맡았다. 여기에 있는 본존불은 백제 도래인 안작조(鞍作鳥)가 주조했다.
그림 2) 가람배치도 그림3)가람복원도
아스카 중심을 이루는 절이지만 헤이조궁 천도로 주요 건물을 나라로 옮기면서 폐허가 되었다. 금당에는 ‘아스카다이브쓰’라고 일컬어지는 석가여래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것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금동불로 화재로 인해 많이 손상되었고, 얼굴과 손만 당시의 것이라고 한다.
사원이 아담하고 고즈넉하며 사방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정원이 마음에 들었다. 법당 안에는 반야심경 한글판과 한문판이 표구되어서 걸려있어서 참으로 반가웠다. 그 앞에 서서 반야심경을 다시 읊조려 보았다.
약사사(야쿠시지)
약사사는 삼국을 통일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극 시대를 이루었던 후기 신라시대의 문화가 일본에 전해진 하쿠호문화의 정수로 경주의 사천왕사와 같이 쌍목을 가지고 있다. 하쿠호 문화는 불상, 가람 배치, 탑, 율령과 정치제도에서 신라의 불교와 유교를 모방하였다. 평지가람에서 산지가람으로 바뀌는 쌍탑일금당의 양식이 감은사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본으로 전해진다.
약사사는 680년 천무천왕이 황후의 병환회복을 기원하여 장원경에 창건하였다. 710년 평성경으로 도읍을 옮길 때 절도 함께 옮겨 현재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약사사 동탑은 나라시대 730년에 건립되고 서탑은 1528년에 소실되었다가 1981년에 재건된 목탑이다
동탑의 전경
서탑의 전경
약사사의 목탑은 삼층탑이지만 가 층마다 차양지붕(모코시)이 있어 삼층탑이 아닌육층탑처럼 보이는 탑이다.
공포 부분
서까래와 첫층의 공포모습
약사사 강당 정면 41m, 너비 30m, 높이 17m의 건물이다
약사사 금당
금당도 차양지붕을 덧대었다.
약사사 전경
우리나라는 탑하면 석탑이지만 일본은 목탑이다. 약사사 동탑과 서탑는 6층탑으로 보이는데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각 층마다 차양지붕이 둘러져서 3층탑이 6층탑으로 보인 것이다. 서탑은 최근에 건립해서 동탑과 모양이 약가 다르다. 200년 후, 나무가 줄어들 것을 예상해서 동탑보다 30cm 길게 지었다 한다.
일본의 예상외로 큰 대규모 사찰을 보고 많이 놀랐다. 더 놀란 것은 지속적인 보수와 관리로 거듭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약사사는 덴무덴노가 병에 걸린 왕후의 쾌유를 기원하기위해 건립했단다.
약사여래불을 향해 합장하고 우리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
첫댓글 일본의 절들은 규모나 소장품에 있어서는 대단하지만, 중생들의 땀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점이 허전하고 어딘지 모르게 온기가 없다.
김정희샘, 수고 많았어요. 비조사나 약사사를 둘러보면서 제가 알고 있는 일본사찰에 대한 이미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편안한 산중 작은 암자같은 비조사, 위용을 자랑하는 약사사 오중탑은 보는 것 만으로도 좋았어요, 좋은 해설을 곁들이고 좋은 도반과 함께 보니 고운 비단 위에 꽃을 뿌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