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그들의 혈액형이 무엇인지 물어본 경험이 있는가?있는가? 누구나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유독 한국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혈액형에 관심이관심이 많다. 왜 관심을 갖을까? 그것은 많게든 적게든 혈액형이 그 사람사람 성격을 결정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한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 및및 서적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많은 혈액형별 성격의 정의는 마치마치 과학적 근거를 둔 듯 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까지 그그 어떤 시도도 과학적으로 이 들의 직접적 연관관계를 입증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 근거없는 혈액형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그그 유래를 알아보자.
20세기 초초 유럽의 인종 우월주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있는 ABO식 혈액 분류는 1900년 오스트리아의 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에 의해 발견되었다.발견되었다. 당시 인종별 혈액형 분포를 조사한 결과 유럽 백인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A형이A형이 많았고 동양인들에게는 B형이 비교적 많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한편, 20세기 초초 유럽에서는 우생학이 유행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주로 백인종인 다른 인종보다 우월함을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1910년 독일의 룽게른(Emile von Dungern)은 이러한 우생학에 ABO식 분류를 도입하여 A형이 많은 게르만족이 우월하고 상대적으로 B형이B형이 많은 동양인이 열등하다는 (아주 nonsense한) 인종 우월론을 주장하였다. 오늘날의 이른바이른바 "B형 죽이기"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일제시대
1916년 독일에서 유학을 한한 일본인 키마타 하라는 인종간의 우열관계보다는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에 중점을 둔 논문을논문을 발표한다. 그 영향을 받은 후루카와 다케지는 1927년 "혁액형에혁액형에 의한 기질연구"라는 논문을 발표, 혈액형의 영향에 따른 성격의 차이를 주장하였으나주장하였으나 그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후루카와는 철학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본군부에서는 이 주장을주장을 바탕으로 한 장병양성에 대한 연구가 있었으며, 1930년대에는 처음으로 이력서에 지원자의 혈액형을혈액형을 기입하는 란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의 재유행
시간이 지나면서 이 설은설은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사라졌으나, 1971년 일본인 작가 노오미 마사히코의마사히코의 저서 "혈액형 인간학"이 인기를 얻으면서 다시금 대중의 관심거리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오미 역시 의학적, 생물학적 background가 전무한 변호사 출신 방송작가였으며, 그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길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주변인들을 관찰대상으로 한 조사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미신을 믿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습성 탓인지 이 주장은 여성지 등을 중심으로 일본 전역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대인관계를 비롯한 많은 영역에 접목시키기에 이르렀다.
한국으로의 전염... 그리고 결론
한국에서는 일본의 혈액형 관련 서적 및 여성지 기사들이기사들이 번역 되면서 이 설이 대중들에게 쉽게 받아 들여지게 되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이러한 혈액형별 성격분류의 유행은 누구나 믿을 수 밖에 없는 애매한 말을말을 자신에 대한 설명으로 오인하게 되는 "바넘효과" (Barnum Effect 혹은 ForerForer Effect)의 결과라고 말한다. 혹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믿지는 않지만 혈액형이혈액형이 성격 형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은 일리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그 "어느 정도"가 아주 미비하여 무시할 정도를 일컬는 때만이 옳다고 할 수수 있을 것이다. 혈액형은 결국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성격에 형성에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 중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상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이 혈액형... 헌혈할때 수혈할때 말고는 신경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