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출.가.
몇 해 전에도 생각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마땅치 않다는 핑계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원하는 것과 내게 필요한 것들 안에서 바른 판단을 하는 힘이 부족했던 것 같다. 더욱이, 내게 있어 불교는 종교가 아닌 철학이었기 때문에 그 철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단기출가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있을 뿐이었다.
지난 5월말 월정사의 2박 3일간 초심자를 위한 참선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전에 여름휴가로, 업무로 몇 차례 한 템플 스테이 경험과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가까운 사찰을 찾았던 것이 참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나를 편하게 해 주었다. 그것을 계기로 이번 여름, 몇 달의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아직도 불교에 대한 이해는 턱없이 부족하고 종교로서의 믿음은 없었지만 ‘단기출가학교’에 대한 믿음으로 33기 단기출가학교에 참가했다.
출가학교에 들어오면서 스스로에게 한 다짐은 단 하나, 모든 수행과정 따르기였다. 타고난 체질이 약하다는 이유로 몸 힘든 것은 거의 해 보지 않았고 무리해서 한 후에는 늘 탈이 생겼기 때문에 더욱 몸을 사려 왔다. 정신력이 체력의 한계를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 왔고 매번 그렇게 나 스스로 상황을 극복해 온 것으로 알았다. 전나무 숲길 삼보일배, 적멸보궁 참배, 동대 및 남대 참배, 적멸보궁 삼보일배, 서대참배 그리고 철야정진. 다양한 연령대의 서로 다른 출가 동기로 모인 도반들이 한 배, 한 배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해 참여하는 모습에서 서로에 대한 무언의 지지와 의지를 보면서 힘을 낼 수 있었고 나 또한 힘을 보태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매번 가족, 친구 그리고 내 주위의 분들이 보태준 힘과 내게 보내준 지지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것들이 보였다. 무심히 지나쳤던 것에 대한 고마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부끄러워졌다.
마지막 날 설문지, 출가학교에서 가장 좋았던 것에 대한 질문에 여러 스님들의 강의라고 답했다.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것에 감사했고 지금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가장’에는 강의였다. 예불 및 사찰예절법, 여러 습의, 예불문, 사경, 참선법, 기초교리, 염불, 반야심경, 금강경, 부처님 생애, 발심수행문, 특강, 포살, 불교사와 문화 그리고 불교 수행법 강의를 들었다. 각 과목에 깊이 있는 수행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모든 과정은 초심자를 기준으로 편성되었다는 청중스님의 말씀과 같이 사찰이 편하고 좋다는 것 외에는 불교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던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더욱이, 강의를 해주신 여러 스님들께서 보여주신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과 모든 행자들을 감싸 안는 모습, 그리고 불교에 대한 날선 시선을 통해 강의를 듣는 것이 편했다.
불교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불교에 대해 믿음, 이해, 행동 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이해가 된 후에 믿음이 생기는 나로서는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금은 무교라고 답한다. 아직까지도 불교는 나에게 철학이고 깊이 공부하고 싶은 학문이지만 “세속”에서의 생활이 있기 때문에 조금씩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공부에 게을러지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 느슨해지려 할 때마다 함께 수행했던 도반들과 열과 성을 다해 함께 해 주신 스님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절집과 중” 그리고 “사찰과 스님”. 내가 알고 있던 “사찰과 스님”이라는 말이 스님들께서 늘 사용하신 “절집과 중”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것을 통해, 그리고 출가학교 졸업 후 2박 3일간의 자원봉사 기간을 통해 월정사가 또 다른 나의 집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출가 기간 동안 스님들께서 자원봉사를 하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것에 대한 말씀해 주셨는데, 나의 경우 자원봉사 기간에 얻은 것은 그 말씀 이상이었다. 짧은 2박 3일간 지난 3주간에 내가 어떠했는지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단기출가가 단순한 추억거리로 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스님들이 하신 여러 말씀을 정리해서 늘 다짐하는 나의 한 줄은 “늘 깨어 있음을 통해 나를 바로 보고 알아차림을 놓치지 말라”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