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기 좋은 西三陵과 種馬公園(2008년 8월 10일)
경마교육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기수양성 교육기관으로
경마에서 활동할 기수 인력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1971년에 농림부 인가를 받아 한국 마사회가 설립 하였다
1988년까지는 뚝섬에
2006년까지는 과천의 서울 경마공원에 위치하다가
2007년 9월 이곳원당 종마목장으로 이전했다.
주요 시설로는 총 36만m2이며 교육용 관상용및 씨수말등
80여두의 말을 보유하고 있다한다.
흔히 기수는 경마의 꽃이라고 하는 교육과정에는
매년 일정 인원의 훈련생을 선발하여 4년간의 전문적인 기수를 양성하고있다.
말은 어떤 동물인가?
귀는 소리를 잘 모으기 위해 깔대기 모양으로 되어 있고 자유자재로 방향전환을 할수있고
풀을 뜯을때도 풀잎을 가리지않고 항상 주변을 살필수 있도록 머리위 양옆에 붙어있다.
말의 얼굴이 긴것은 풀을 뜯을때 입끝의 대상물을 눈으로 볼수 없기에 풀의 냄새를 맡아서
먹을수 있는것을 구분하기 위해 코가 길게 발달한 것이다,
긴 목은 나뭇잎을 따먹기에 편리할 뿐 아니라 말이 달릴때의 속도에 따라 높낮이를 조절하기쉽고
주행시 균형을 착지 불균형을 보정해 주며 주행방향을 신속하게 전환할때 균형추의 역활도 해 준다,
긴 다리는 빠른 속도로 달릴수 있도록 발달되어 있고
꼬리의 긴털은 겨울에는 보온 여름에는 해충을 쫒는데 용이하고
다리와 발굽은 달릴때 지면과의 충격으로 발생되는 진동을 귓속으로 전달하여
지면의 상태를 감지할수 있도록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발굽은 커다란 몸체에 비해 작지만 아주 단단한 구조로 이루어져 다양한 지표면에서도 얼마던지 견딜수 있다.
경주마는 전문적인 관리와 훈련을 필요로 한다, 마필전문가 양성은 경주마의 사육 훈련등의 전문적인 일을 직업으로 담당할 인력을 양성하는 일종의 직업 훈련과정이다,
관리인이 물차로 물을 채워주자 말이 뛰어와 물을 마시고 있다,
한국 마사회에서는 경주에 필요한 경주마를 전문적으로 생산 육성 훈련하기위해
제주와 장수에 대규모 경주마육성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마사회에서는 우수 종마를 도입하여 경주마 생산농가에 무상으로 교배를 실시하며
연중 무료로 시민들에게 목장을 개방하고 있다,
효창원(孝昌園)
조선 正祖으 아들 文孝世子의 묘소이다,
문효세자는 宜嬪 성씨의 소생으로 1782년(정조6년)에 태어나
5세의 어린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처음엔 용산구 청파동 효창공원에 있었으나 1944년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懿寧園
조선 英祖의 아들장조(莊祖,思悼世子)의 제1자 의소세손의 묘소이다,
의소세손은 이름은 정이며 3세의 어린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서대문구 북아현동 중앙여고내 있었으나 1949년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비문의 글씨는 영조의 御筆이다.
예릉(睿陵)
아래 무덤인데 조선 제25대 哲宗과 그의妃 哲仁王后 김씨의 능이다.
고종 15년(1878)나란히 자리한 쌍릉으로 조성되었다,
희릉(禧陵)
조선 제11대 中宗의 繼妃 章敬王后 윤씨의 능이다,
중종 32년(1537)경기도 광주에서 이곳으로 옮겨졌고 원래는 중종의 정릉을
희릉곁에 썻으나 명종 17년(1562)에 정릉을 서울 강남 선릉곁으로 옮기면서 희릉만 남게되었다,
희릉의 모두,
원당 허브랜드
농협대학 정문에서 바라본 본관
태종대왕 왕자근영군묘와 허씨부인 합분묘
최영장군 묘소길
숲속에 외롭게 방치되어 있는 느낌이다,
고려말기의 명장으로 고려를 끝까지 받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죽임을 당한 崔瑩장군의 묘이다,
철원에서 태어났으며 고려 공민왕 1년 조일신의 난을 평정한 이후
100여회의 전투에서 매번 승리한 명장으로 공민왕의 반원정책을 도와
원나라에 속했던 압록강 서쪽 지역을 공격하여 되찾았다.
그러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막지못하여 이성계에 의해 체포되어
유배되었다가 73세의 일기로 1389년 개경에서 처형되었다,
고려의 마지막왕인 공양왕(1389~1392재위)과 왕비 順妃의 능이다.
공양왕은 재위 4년만에 고려가 망하면서 폐위되어 원주에서 추방되어 공양군으로 봉하여졌고
삼척에 옮겨져 그곳에서 태조 3년 (1394)춘추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뒤 태종 16년(1416)공양왕으로 추봉되어 봉릉이라 하였다.
능은 왕과 왕비의 쌍능형식으로 되었고 능앞의 석물로는 비석 1좌 씩과 석상이 놓였고
장명등이 1좌, 양쪽 석인이 2쌍 석호 1필이 있다.
고려 공양왕과 삽살개의 전설이 담긴 연못
공양왕이 태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도성인 개성에서 도망쳐 이곳 견달산 아래 도착했을때 날이 저물어
이곳에 있는 작은 절을 찾아가 하루저녁 묵기를 청하자 불교의 나라 고려는 멸망 하였고
유교의 나라 조선이 창건되었으니
절에서 묵기는 어렵고 인근의 대궐고개 다락골 누각에 피신하게 되었으니 몰래 스님이 밥을 갖다 드렸는데
이러한 연유로 이곳이 食寺洞이라 불리어지고 어느날 왕과 왕비가 보이질 않아 찾을수 없었는데
평소 공양왕이 귀여워 하던 삽살개가 연못을 향해 자꾸만 짖고 있기에 수상히 여겨 물을 퍼내니 두분이 편안하게
죽어있어 양지바른곳에 장례를 치루고 능을 지키기위해 능앞엔 삽살개모양의 석물이 지금도 있다.
영화 “산책”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길을 우리 가족과 함께 찾아본다,
경기도 고양시 원당 종마목장은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촬영에 많이 나왔던 곳이지만 처음 와 보는 나로서는 모두가 생소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그만큼 모든 풍경이 이국적인데다 바로 옆 서삼릉과 함께 나들이 코스도 좋고 지나간 역사를 되짚어 보는 좋은 계기도 되는 것이다.
이 목장은 쉴 수 있는 공간(그늘)이 적어 조금은 불편 하지만 그런대로 자유롭게 휴일 하루를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좋은 곳이기도 하였다.
삼송리 검문소 앞에서 농협대학(종마목장, 서삼릉)으로 가다보면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 초행길이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종마목장은 약 36만m2(12만평)의 부지에 조성된 목장이다.
경마교육원도 같이 있는 이곳은 馬舍, 교육용 馬場, 放牧地 등 말 진료소도 있다.
멋진 언덕이 보이는 목장 중앙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서니 비로소 말의 모습이 여기저기4~5마리씩 보인다.
소를 키우는 방목지처럼 많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20마리 내외인 것 같다.
장소가 워낙 넓다보니 말도 작아 보이고 그 숫자도 더 적은 것 같다.
세상 숲속의 어지러운 물결 앞에서 가난한 마음을 달래려고 내 고향 같기도 한 이곳을 찾으니 어느 듯 내 마음은 소풍 나온듯한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 하늘을 그려 보기도 한다,
서삼릉은
고양시 덕양구 원당에 있으며 공개되는 곳과 공개가 되지 않는 곳이 있는데
공개지역에는 희릉과 예릉 의령원과 효창원이 있는데 모두 매표소 부근에 위치해 있다, 반면 비 공개지역은 관리자인 문화재청의 허락을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고 이곳저곳 흩어져 있다.
우선 인종의 효릉이 유명하고 이 외에도 소현세자의 소경원을 비롯하여 역대 조선조의 왕과 왕비의 태를 모신 태실도 이곳 비공개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태실구역 가장 안쪽에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의 회묘도 자리해 있다.
어머니인 의빈 성씨의 묘소에서 약 2km지점 인 서삼릉 매표소 바로 뒤에는 그의 아들인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다.
어제저녁 유도의 금메달에 이어 오늘은 박태환의 금메달 장면을 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가슴이 뭉클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감격의 눈물이 나기도 했다.
이 순간만은 여야도 없을 것이고 사장과 종업원의 마음도 똑 같으리라 본다,
이런 승전보가 계속 울려와 불경기에 흔들리는 민심을 바로잡아주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하는바 크다, 서오릉에 비하면 아주 적은 면적의 능이지만 이곳저곳 작은 역사지식에 안내판의 내용을 접목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나오는 길에는 허브랜드에서 차도 한잔 마시고 로즈마리 화분 한 개를 사오기도 했다.
다시 나오는 길엔 농협대학도 둘러보고 太宗大王王子 菫寧君 墓도 찾아보았지만 삼릉의 어린왕자(3~5세)의 무덤에 비해 최영장군의 무덤과 고려공양왕 능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물론 나라 잃은 장군과 임금의 무덤이 같을 수만은 없겠지만 隔世之感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특히 최영장군의 무덤은 제대로 안내판 하나 없어 산을 오르니 일반인의 무덤을 찾게 되었고(安東林氏) 돌아다니다 결국 찾긴 해도 고양시의 느슨한 행정이 상당히 얄미웠다.
다시 내려오다 농장 길로 들어가니 버려진 포도밭 언덕 옆에 안내판이 있었고 돌계단을 6~70m 따르니 초라한 무덤이 외롭게 있었다.
그래도 찾은 것으로 만족하고 고려 공양왕릉으로 왔다,
비록 亡國의 왕이었지만 어린왕자 무덤보다 국민의 눈길을 받지 못 하는 것이 가슴이 답답할 정도이다,
약 8시간의 사적지를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여자양궁의 금메달이 또 우리를 기쁘게 한다. 그동안 고생한 선수들에게 좋은 결과 있기를 기대하며 혹시 메달과는 거리가 멀어진 선수가 있더라도 격려해 주고 성원해 주는 마음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