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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분들; 제가 작년 35주년동기회를 전후하여 느꼈던일들을 쓴 것입니다. 약간 지루 하시더라도 읽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겨울 나그네
이 건일(2003)
서곡
춥고 지루한 겨울을 미국중서부 Ohio주에서 사는 나는 겨울이 오면 언제나 따듯한 남쪽이나 California를 동경하는 버릇이 생겼다. 올해 2월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달이 되었는데 그것은 우리 서울의대 68년 졸업생들의 35주년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 행사는 Los Angeles에 사는 동기들의 수고로 City of Industry (얼마나 멋없는 도시 이름인가 !) 에 있는 golf resort에서 가지기로 되었다.
LA 갈 기회가 몇 년에 한번 있을까말까 하는 나로서는 이 기회를 잘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LA에는 우리 집사람의 큰조카, 즉 제일 큰오빠의 아들이 살고있고 그는 기회 있을 때 마다 우리에게 자기 집을 방문 해주기를 원하였었다.
넷째 아이도 낳았는데 (에구 참 아이도 많이 낳는군) 한번 보러 가야 한다는 마누라의 주장을 들은 지 몇 해 인가?
이번 기회에 그 것을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또 하나는 LA에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생인 박 군이 살고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를 만나 지 못한지가 41년이 되었다. 고등 학교 졸업 후 한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 하다보니 수 십 년이 지났고 H일보를 구독하다 그의 영화 평을 읽으면서 "박 아무개... 아마도 고등학교 친구 아닌가? 한번 연락해야지" 하고는 곧 잊어버리곤 하였다. 그는 H일보 미주 판의 편집위원이며 영화평론가 이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의 글을 읽었으며 항상 감격하곤 하였다. 그는 언제나 우리의 젊었던 날들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는데 나는 항상 그가 쓴 글에 아주 많이 공감하였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이 둘을 다 맞나 보기로 작정을 하였다. 일 석 삼 조인 셈이다. 그래서 일정을 35주년 동기 회 앞에 하루를 더하고 끝나고 나서 하루를 더 LA에 있게 잡고,
또 이번 기회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 코스인 California 일 번 도로 ---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해안 도로중의 하나인 도로---를, 북상하여 San Francisco에 사는 마누라의 사촌오빠의 새 부인과 처음으로 만날 계획을 세웠다.
Seal Beach
춥고 음울한 날씨, 지긋지긋한 당직을 떠나 마음놓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
이 일정 짜놓고 얼마나 붕붕 뜨는 감정으로 손꼽아 기다렸는가?
환자들한테 시달리던 일상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동기 회 하루전날인 2월 5일에 LA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하여 차를 빌려 Seal Beach로 향하였는데 거의 다 가서 길을 잃고 한시간 이상을 같은 장소를 맴돌았다.
길눈이 밝은 것을 항상 자랑하곤 하였는데 이젠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이곳에 숙소를 정한이유는 여기서 가까운데 사는 (New Port Beach) 조카 내외를 만나기 위해서 이었다. 숙소로 정한 Seal Beach Inn은 B&B Book 에서 보고 결정하였는데, 영국,시골, 망해 가는 부자 집 인상의 여인숙이었다.
짐을 방에 두고 음식점을 물어보고, 조그만 시골도시 크기인 Seal Beach downtown을 걸어서 소개받은 Walt"s Wharf 라는 sea food 전문 음식점으로 들어가니, 제법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항상 모르는 새 도시에 가면 현지 인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가면 실수는 없다.
몇 년 전 Hungary group 여행에서 관광 후 각자 자유 점심시간을 주어, 생소한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하고 고민 하다가 잘 살펴보니 허름한 음식점에 현지 인들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보여, 따라 들어갔다. 식탁도 몇 개 없고, 파리들이 붕붕 날고있는데 우리를 현지인들 앉아 있는 식탁에 합석을 시킨다. 메뉴는 전부 내가 알 수 없는 헝가리어로만 쓰여 있고, 간신히 wine list에 있는 bull"s blood 라는 이곳 특산 빨간 포도주를 시키고, 나머지는 옆에 있는 현지 인들이 시키는 음식 중에서 그럴 듯 하여 보이는 것을 시켰더니, cauliflower soup 이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그리고 주 메뉴로 나온 goulash도 맛이 제법이었었다. 나중에 마누라가 속이 안 좋기는 하였지만.......
그래서 이곳 Seal Beach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는 음식점이라 상당히 안심이 되었다. 음식 맛이 나쁘지는 않겠다 생각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메뉴를 읽어보니 이 집주인이 Santa Barbara County에 있는 Babcock Winery 주인이란다. 이 무슨 좋은 소식! House wine인 sauvignon blanc을 시켰더니 맛이 상당히 괜 챦 았다.
이 집 포도주는 나도 집 지하실에 몇 병쯤 보관하고 있다. 잘 아는 화끈한 여걸 타잎의 포도주 중개상인 인 Susan이 "맛이 dynamite!" 라고 하길래 값도 만만하고 해서 사두었던 것이다. 전부 다 pinot noir 이다. 맛 이 좀 더 잘 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주인이 이곳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다.
매큼한 조갯국은 일품이었다. 우리 집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조갯국, 그것도 California식 조갯국, Cincinnati같은 내륙에서는 맛보기 힘든 조갯국, 조갯국 만세!
L.A.
도착한 이튿날 아침 조카 내외와 같이 이태리 음식점에서 brunch를 했다. 주문한 pasta는 동양식이 가미된 가벼운 fusion food, 유럽인들도 여기 와서 요리공부를 한다더니... 역시 California 음식은 세련되었고, 가볍게 기분 좋게 음식을 즐겼다.
동기 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는 City of Industry(What a name!) 에 자리한 Pacific Palm Resort로 가니,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과 얼굴들.
1968년 졸업 후 벌써 35주년이라 !
청운의 뜻을 품고 청량리와 연건동을 주름잡던 때가 언제인가?
한국에서 일곱 쌍의 부부가 왔다. 눈가의 주름이 늘고 머리숱은 엷어지고 반백 혹은 온 백이 되었으나, "이거 누구야 !" 어깨를 얼싸안고 나니, 다시 청량리, 연건동 학창 시절의 그 청운의 뜻을 품은 청년으로 되돌아간다.
"야 ! 네 입심은 여전하구나 !"
"입이 심심하여 어찌 견디었냐?" .......
다음날 골프코스에서 출석부가 가나다순 이었므로, 의대 6년간을 같이 붙어 다니던 Dr. 윤 말이 "이 코스는 Tom Watson도 와서 80을 넘어 쳤으니, 더블 보기만 해도 잘 치는 것이라 마음 푹 놓고, 걱정 말고 치게"
농담으로 사람을 잘 웃기는 유능한 사회자이며 유능한 외과의사인 Dr. 윤 이다. 계속 웃기는 바람에 웃다가 보니, 나의 골프 스코어는 영 말씀 아니게 되었다.
그래도 재미가 있었다.
디너 파티에서는 너도나도 노래를 잘 들 뽑아내고, 특히 서울서 오신 부부들은 최신 곡 삼사 곡은 꿰뚫고 있다는 소문 그대로 누에가 명주실 뽑듯 잘 들 불러대고 있다.
Dr.전은 예 전에 골프도 아주 잘 쳤었는데, 시간이 너무 들어 그만 두고, 그 동안 갈고 연마한 시조를 부인의 대금 반주에 맞추어 장구를 곁들어 불러 제쳤다. 가락이 무척 아름답다.
다음날은 스모그가 유명한 그 L.A.인데도, 회장 Dr.신의 영험한 기도 덕분(?) 인지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 될 줄이야.
Paul Getty Center의 산뜻한 건물들은 산 위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앞을 보니 맑고 투명한 공기를 뚫고 Santa Monica해변과 뒤로 멀리 산들이 뚜렷이 보인다. 자연적인 돌의 표면을 그대로 살려서 지은 contemporary 건축들은 주위의 환경과 잘 조화가 되었다.
선인장 정원도 좋았고, 조그만 샘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긴 통로로 연결되어 내려가다가 속으로 파진 항아리 같은 조각을 지나고 다시 급경사의 돌을 지나, 잔잔한 시냇물로 변하여 꽃이 만발한 연못으로 흘러 들어가는 설계도 참 좋았다.
동기 부인 Mrs.리의 재치 있는 안내와 자원 봉사자인 Mrs.김의 특별 안내로 박물관 안 소장품을 감상하였다,
인공의 조명 없이 자연적인 빛만으로 명품의 그림과 조각품들을 보다 더 잘 감상 할 수 있었다. 대가들이 그리는 당시의 시대상과 그들의 생활을 연결하면서 그림을 본다면 더 좋은 감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
박물관 안에서의 한 시간은 금새 녹초가 되기에 다음 기회로 밀면서.... 아내에게 약속을 한다. 또 오자고....
그날 저녁은 합동 환갑 잔치로 모두들 한자리에 모여 사모관대를 하였다.
60살이 다 무엇이냐? 막 결혼을 한 신랑 각시 같은 기분이 되었다. 내 각시의 얼굴 주름은 다 어디 갔냐? 내 눈에는 30십 여 년 전 새 각시로 보이는데.
다음날 아침 서울에서 온 동기들은 공항으로 향하는 준비로 서둘러 식사를 하였고, 이곳 동기들은 아쉬운 정을 되 삭이었다. 다시 5년 뒤 40주년에 서울에서 만나기를 약속하면서 이곳저곳 모여 앉아, 중병을 앓고 있는 동기들의 빠른 회복을 멀리서 한마음으로 모아 기원하였다 . 건강을 잘 관리하여 만날 수 있는 날까지 많이 만나자고 다짐들을 하였다.
박 군 이야기
다시 짐을 싸고 Santa Monica에 있는 Hotel "Shutters-on-the Beach" 에 숙소를 옮겼다. 이는 박 군을 만나기 위해서 이었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영화 평론가, 주옥같은 글을 쓰는 사람. 지면을 통하여 읽으면서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가? 고등학교 졸업 후 사십 일 년째, 서로 다른 인생 길에서 우리 젊은 날의 공감은 신문을 통해 읽었었다.
전화하던 날,
"나 이 건일 이야."
"우아 ! 너 매일 두꺼운 안경 쓰고 문학전집 만 끼고 다녔잖아."
"너는 영화만 보러 다녀 정학 맞았었지."
"그래 일주 내내 영화를 볼 수 있어 좋았지. 너 하고도 한번 같이 같지 왜---."
전화를 끊은 후, 주말이면 두 편 혹은 세 편의, 오스카 영화제를 향해 쏟아지는 최근 영화들을 끼니를 거르면서 보았다. 일년 치 그의 글을 인터넷으로 읽었다. 그와 맞나 이야기할 준비였다.
이렇게 되어 오늘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다.
박 군 내외는 약속대로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의 상상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고 아주 멋있는 중년 남자이었다.
옆에서 마누라가 한마디; "제임스 딘이나 알랭 들롱 보다 더 멋있네요!"
내가 식사 전에 마시던 샴페인과 pinot grigio와 박 군이 마시던 위스키는 우리 사춘기 시절의 공감을 서로 맞추어 보는데 흥을 더 하였으며, 우리는 이 시간을 만끽하였다.
아마도 1950, 60년대 서울의 이류, 삼류, 사 류, 안가본 영화관이 없었을 것이다. 여드름이 가득한 얼굴에 까까중 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큰 옷을 입고 어른인척 하며, 혹시 단속반 선생님이 있지 않나 하며 게눈을 뜨고....
"나는 Michelangelo Antonioni 감독을 너무 좋아해서 그의 난해한 작품들인 "일식 (l"eclipse)" "정사 (l"aveentura)"등에 미쳤었고, 여배우 Monica Vitti 를 제일 좋아했어"
박 군은 박장 대소 하며 "나도 제일 좋아하는 여배우야."
심지어 그녀가 나왔던 이류 영화 "Modesty Blaise" 까지도 나는 좋아했었다고 그에게 말하였다.
그 외 두 사람 다 Kim Novak이 좋았었으며, 약간의 백치미와 약간의 지적미가 뒤 섞여 있는 여배우들을 우리는 좋아했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박 군은 그녀가 나왔던 "Picnic"의 그 유명한 장면- William Holden의 우람한 근육이 찢어진 웃옷 사이로 나오던 animal attraction이 충만한, 그 장면에 관하여 열을 올리며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Vertigo"에서 보이던 약간의 백치미가 있는 모습 등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윽고 취기가 도니 이야기는 더 윤택해졌다.
Marilyn Monroe의 어린아이 같은 순수성과 육체미는 좋으나 개인적으로는 안 좋아하였다는 것. 그녀가 금발의 백치미만이 아니고 Arthur Miller와 결혼 할 만큼의 머리를 가진 지적인 영화배우였을 것이라는데 동의하였다.
나는 그에게 MM의 묘지가 어디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혹시 기회가 오면 찾아볼까 하고.
취기가 도도 하니, 화제는 자연히 인생살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으로 옮겨가면서 싫고 좋고 가 똑같아서 서로 놀라곤 하였지만은 곧 이해 할 수가 있었다. 비슷한 것들에 흥미가 있었고, 많은 시간을 들여서, 가서 보고, 읽고, 또 들으려고 노력하였으니 당연히 같을 수밖에 없다고 공감을 하였다.
"혼자이면 어떤가? 좋은 곳에 몰입 할 때는 혼자이고. 이를 나눌 때는 친구와 같이 술과 함께 하는 법이지" 하며 떠들고 있으니,
양고기저녁에 Australia산 shiraz를 곁들여 먹었으나, 청춘의 뒤안길에서 흘러간 청춘의 이야기에 열중한 우리는 무슨 맛인지 전혀 몰랐다.
다음날 아침 Santa Monica의 해변을 산책하면서 보는 파도의 밀려오는 바닷물은 같은 물 같았으나 어제 저녁 박 군과 만나던 때의 밀물 썰물은 아니었고, 나도 아내도 어제의 나도 아내도 아니었다.
우리는 항상 변화하는 것이다. 사십 일년만에 만난 옛친구와의 재회가 조금이라도 나와 아내를 변화 시켰을 것이다.
이 겨울나그네는 지도를 드려다 보면서 다음 여정인 Big Sur로 가는 도로를 연구하고있었다. 그곳에는 또 다른 파도의 모습이 있으리라 ! 또 다른 사람들이 있으리라 고 믿으면서......
Cambria
칼리포니아 1번도로를 타고, 북상을 하여 Cambria에 도착.
조그만 B&B라 inn keeper내외가 반갑게 맞이한다. 육, 칠십대의 커플들과 사십대의 부부를 만났다. 여인숙 inn keeper부부와 칠십대 부부, 또 다른 육십대 커플들 모두 두 번째 결혼이나 만남으로, 이들은 생일이나 결혼기념을 하러 이곳에 왔단다.
Brahams의 "Ein Deutsches Requiem (독일진혼곡)" 을 합창단에서 부른다는 Meredith. 그녀가 내민 이름 카드에는 massage technician 이라고 적혀 있었다.
독일 진혼곡을 알아보는 나에게 친밀감을 느꼈었던지, 새 boy friend를 부추겨 그의 아들이 일하고있는 극단의 연극 표 한 장을 얻어 주겠다고 하며, 우리가 묵을 San Francisco호텔 전화에 메쎄지를 남기겠다는 말을 하였다.
또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였다.
여관에서 추천한 음식점으로 갔는데 손님이 별로 없이 한가하였고, 포도주 고르는 것은 나에게 일임하여, Australia산 petite shiraz를 골랐는데, 그 두 사람으로부터 감사의 말을 들었다.
이곳에는 이혼후 자기의 아이들과 전남편이 새로 결혼하여 생긴 의붓 아이들이 너무 친하게 지내서, 양쪽 딸들을 데리고 휴가를 왔었다고 하였다.
나의 아이와 새 남자 친구의 아이와 그의 먼저 처가 새로 결혼하여 생긴 아이들과 먼저 남편과 그의 처의 아이......
나로서는 너무 복잡하여 헤아릴 수가 없었으나, 오직 모두 사이가 원만하구나, 아이들이 상처는 안 받았구나, 하는 것 밖에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하여튼 이혼이 불가피 하여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서로 노력 한 것은 인정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해변을 산책하였다. 나무로 걷는 길(board walk)을 마련해 놓아서 편리하다. 숙소 앞의 해안은 모래사장이 아니고 바위로 된 경치와 운치가 있는 곳이다. 군데군데 바위 위에는 sea lion들이 게으른 낮잠을 자고있었고 이름 모를 바다새들과 해안에서 사는 다람쥐들의 왕국이었다.
아내는 원래부터 바위를 좋아했었으나 특히 조각을 시작한 후부터는 바위만 보면 그렇게 행복 할 수가 없다.
바위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Paso Robles
여관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나와서 Paso Robles로 향하였다. Napa, Sonoma, Santa Ynez, Santa Barbara, Monterey 등 이미 이름을 얻은 포도주 생산 지역을 제외하면 이 곳 이 새로이 각광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그중 에서도 EOS (그리스 신화의 황혼의 여신) winery 에 가보기로 하였다.
집 근처 wine shop에서 구한 그 포도 원의 petite sirah가 값에 비해서 상당히 괜찮아서 기회가 되면 한번 가 보려고 하던 차였다.
Cambria를 떠나 해안 도로를 잠시 타다가 90도 각도로 좌회전하여 내륙으로 향하였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좀 올라 가다보니 갑자기 시야가 확 넓어지면서 저 멀리 검게 빛나는 태평양이 보이고 Morro Bay Rock이 보였다.
산모퉁이를 돌아 큰 바위 옆에 차를 세우고 낮게 드리운 검은 구름 밑에 펼쳐지는 광대한 풍광에 잠시 숨이 멎는 듯 하였다.
소리가 더 잘 들리게 차 문들을 전부 열고
Mozart의 Idomeneo 중에서 Act 3 에 나오는 "Zeffiretti lusinghieri" 를
큰 바위 옆 언덕에서, 짙은 초록색의 구릉과 그 너머로 멀리 보이는 바위산이 우뚝한 만(bay)과 검게 빛나는 바다를 보면서 들었다.
이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수 없었다.
누가 겨울여행이 나쁘다고 할 것인가.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지나는 차들도 별로 없었다.
아아! 나는 참으로 먼 곳으로부터 왔구나,
여기 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여보, 마누라 -----
산길을 구불구불 돌고, 교통 복잡한 Paso Robles시내를 비켜 돌아 EOS Winery에 도착하였다.
오는 도중에 head light region이 있어서 불을 키고 달렸는데 포도주 시음장으로 들어가려다 보니 입구에 "Did you turn off your lights?"라고 붙여 있어 아차 하고 깜박 잊었던 것이 생각나 되돌아가 소등을 하고 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양이다.
Wine Tasting Room에 들어가 보니 파파 할아버지가 지켜 서 있다가 한 마디 한다. 네가 오는 것도 보고 또 head lights 끄러 다시 돌아가는 것도 다 보았노라고. 하긴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으니 더 잘 보였겠지.
Wine tasting을 하는데 공짜로 한 세 가지를 시음하고 났더니 종이에 쓴 것을 내어 민다. $5 내면 특별한 포도주 4가지를 맛보게 해주고 거기다 wine glass를 한 개 끼워 주겠단다.
그래 마누라는 사양하고 나만 시음해 보기로 하였다. 아침 열 한시였지만 귀한 것을 어찌 입 속에서 굴려 맛만 보고 도로 뱉는단 말인가. 이것은 wine maker에 대한 모독행위이다. 그 할아버지도 네가 원하면 준비된 병에 도로 뱉으라고는 하였지만, 어찌 그럴 수 가 있단 말인가. 주는 대로 맛을 보니 빈속에 이내 소식이 온다.
이 집 포도주 맛이 괜찮아서 "The French Connection" 과 "EOS Reserve Petite Sirah" 각각 한 케이스씩을 샀다 .
이것들을 여행 내내 끌고 다니느라고 힘들고 마누라 눈총도 많이 받았지만 집에 와서 다시 생각 해보아도 역시 잘한 일에 틀림이 없다.
Big Sur
비오고 안개가 앞을 가리는, Big Sur의 Ventana Inn에서, redwood로 지은 집 지붕 위로,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Mozart의 opera aria를 듣는다.
갈고 닦아 진 이 아름다운 목소리. Mozart의 아름다운 곡을 갈고 닦아 훈련된 목소리로 부르는 것을, 이 빗소리와 같이 들으니 이곳이 천당이었다.
안개가 짙은 Big Sur의 산등성이. 그 너머로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에 있을 바다 -------
미국 온지가 22년째인데 아이들은 다 커서 제 갈 길을 바삐 걷고 있고, 32년 동안 같이 살지만 가끔 나에게 투정하는 마누라는 옆에 있다.
의대 졸업 후 35년이라.
참 시간이 많이 지나가기는 하였구나.
못사는 조그만 나라에서 전쟁을 겪으며 못 입고 못 먹고 자라면서 고생들도 많이 하였었지. 추운 겨울날 아침에 깨어 보면 구들 장 위에 온기라고는 없고 얼음장 같이 식어 있었지. 머리맡의 냉수사발은 꽁꽁 얼어 있고 심지어 잉크 병 조차도 얼음덩이가 되어 있기가 보통 이었었다.
그런 춥고 배고팠던 시절에 나는 중 고등 학교를 다녔던 것이다.
운동에 별로 소질도 없고 흥미도 없었던 나는 읽는 것, 특히 당시 막 출판하기 시작한 세계문학 전집을, 구 할 수 있는 대로 구하여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마 사흘에 한 권 꼴로 읽어 제 끼었을 것이다. 촛불 밑에서도 읽었고, 나의 안경은 날로 달로 두꺼워졌던 시절이다.
그런 연유로 아마도 영화에 빠져들 지 않았나 싶다.
책에서 읽은 것을 영상에서 확인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LA에서 고등학교 동창생인 박 군을 사십 일 년만에 만나 영화이야기로 한 저녁을 보낸 것이다.
저녁이 되니 비가 그치고 하늘에 반달이 떠있고 드문드문 별이 보인다.
숲에서 나는 향기, 비 온 후라 더욱 진한 향기가 좋았다.
비가 온 후, 밤의 깊은 숲 속에서 나는 나무들의 향기가 나는 미칠 듯이 좋다.
여기는 숲이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깊고 그윽한 맛이 있어 더욱 좋다.
나는 깊은 나무숲을 좋아한다.
검고 짙은 숲을 좋아한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방해받지 않고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아한다.
다음날도 계속 비가 내린다. 안개가 자욱하다.
비는 계속 내리고 바닷가에서 까먹으려던 점심을 방으로 시키고, fire place에 불을 피우니, 불이 활활 탄다.
Barbara Hendricks가 부르는 Mozart의 Idomeneo, Act 3: "Ilia"의 aria, "Zeffiretti lusinghieri"가 CD player에서 흘러나온다.
"Zeffiretti lusinghieri, Gently caressing zephyrs,
Deh volate al mio tesoro: O fly to my beloved
E gli dite, ch"io l"adoro and tell him I adore him
Che mi serbi il cor fedel. and to keep his heart true to me.
Evoi piante, e fior sinceri And you plants and tender flowers
Che ora innaffia il pianto amaro, which my bitter tears water,
Dite e lui, che amor piu" raro tell him that you never saw
Mai vedeste sotto al ciel. a love more rare beneath the sky.
Zeffiretti lusinghieri, ecc. Gently caressing zephyrs, etc.
나는 이 곡을 너무 좋아하여 이번 여행 내내 이 노래만 들으면서 운전하였고 wine도 마시곤 하였다.
불을 지핀 나무가 다 타니 불은 점점 줄어들고, 또 하나의 장작을 올려놓으면 다른 한 곡이 또 흘러나온다.
이곳이 나의 천당이다.
흙을 밟고 선 나의 천당이다.
마누라도 옆에 있다.
나는 자주 가고 싶어서 열심히 일 하였고 당직실의 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는 밤 당직을 거의하지 않는다.
나는 나이를 먹고 있다.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 오는 길에는 눈앞이 잘 안 보인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점심 먹고 낮잠 자고 하였더니 밖에 나가고 싶어 졌다.
마누라를 부추겨 오는 비를 무릅쓰고 Pfeiffer Beach로 가기로 하였다.
이곳을 찾는 것은 바다 한가운데 서있는 큰 바위에 밀물이 밀리면서 가운데 자연적으로 생긴 arch 모양의 큰 구멍으로 밀어 닥쳐서 부서지고 물보라를 뿌리는 소리와 경관을 볼 수 있어서이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기막힌 자연의 조화.
2월의 비오는 날의 오후, California State Park Pfeiffer Beach에는 우리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낮게 드리운 우중충한 하늘과 성난 파도가 휘 뿌리는 물보라와 몇 마리의 물새들만이 긴 해변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주립공원을 우리 둘이 독차지하다니-----
백사장 옆의 붉은 빛나던 바위 절벽은 색깔이 좀 더 검고 붉으칙칙 하게 보였다.
San Francisco
다시 하이웨이 일 번을 타고 북상을 하여 San Francisco로 향하였다.
우리가 이민 첫발을 디딘 곳이다. 외사촌 형님 집에 마누라와 아이들을 맞기고 인터뷰를 다녔고, 형님의 보살핌과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기가 좀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30 여 년을 같이 살은 먼저 부인과 이혼을 하여 우리는 새 부인을 만나러 가는 셈이다.
새 부인은 전처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아주 가정 적 이서 꽃을 많이 기르고, 집안에는 그녀 가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아침 식사부터 따듯한 밥상을 차려주었고, 이것을 즐기는 형님의 아주 행복한 표정을 보면서 우리도 행복해졌다.
Coda
Cincinnati 공항이 가까워지면서 조종사가 눈과 비가 내리고 있음을 방송으로 알린다.
다시 추운 곳으로 왔구나.
주차장에서 꽁꽁 얼어붙은 차 유리창의 얼음을 뗀다.
올해는 유난히 춥고 눈도 많다.
꽁꽁 얼은 얼음은 좀체 쉽게 떨어지지를 않는다. 차의 문도 열리지 않는다.
얼음을 떼느라고 넉넉히 삼십 분은 좋이 걸린 것 같다.
겨우 차를 타고 안도의 숨을 쉰다.
하이웨이에 진입하니 모든 차가 천천히 움직인다.
얼마 못 가서 사차선의 하이웨이는 차로 꽉 밀리고 모든 차가 황소걸음을 한다.
평소에는 삼 십 분이 채 안 걸리던 거리를 두 시간 반만에 집에 도착하였다.
반가운 나의 집은 겨울 나그네를 따듯이 맞이한다.
첫댓글 wine맛과 글맛이 동시에 느껴지는 수필 한편이었읍니다. 우리 사는 것이 나그네의 삶인 것은 이국땅이나 국내에서나 한가지인 것은 우리가 이미 산 연륜만큼이나 확실한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