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남 선생>
○ 하모니카의 유래
하모니카를 날숨과 들숨으로 분다는 점에서 보면 원조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중국의 쉥(sheng)이라는 악기라고 할 수가 있지만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것과 가까운 형태의 하모니카가 만들어진 것은, 1825년 독일의 한스 크리스챤 메슈넬이라는 19세의 소녀가 아코디언을 개조하여 만든 것이 하모니카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모니카가 일반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857년 독일의 트로싱겐에서 마티아스 호너가 하모니카를 만들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그의 이름이 상호가 된 호너(M.Honner)회사는 세계 최대의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제조 및 연구업체로 발전하였고, 오늘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하모니카를 생산하고 있다.
하모니카가 동양에 최초로 알려진 것은 1891년 일본인 比留間賢八씨에 의해서이다. 당시의 하모니카는 장난감 정도의 것이었고, 연주용 악기로서 널리 보급된 것은 독일의 호너사로부터 하모니카를 수입하기 시작한 1907년 무렵부터로 알려지고 있다.
○ 한국의 하모니카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1928년 평양고등보통학교 하모니카합주단(단장 이정식)을 조직하여 활동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그 후 1935년 평양 YMCA하모니카 밴드를 시작으로 1936년 평양 쌘니하모니카5중주단, 1952년 고려하모니카 악단(이후 대한하모니카협회 산하단체)이 창단되어 활동중 1957년 대한하모니카협회를 발족하여 초대 회장에 당시의 체신부 차관이었던 조응천 박사가 선출되어 협회를 이끌었다.
< 고려하모니카 악단 기념사진 1958년 10월 >
이후 1959년에는 ‘사단법인 대한하모니카협회'로 개칭, 1965년에는 공보부에 문화활동 단체로 등록하여 명실 공히 공적인 문화활동단체로서 수많은 학교, 직장, 단체에 하모니카음악을 보급하여 왔으나 1980년대 이후 협회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채 명맥만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동안의 협회의 화려했던 공적활동이 맥을 잇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그 필요성을 절감하여 제2대 회장 최영진 선생님(초대회장 조응천 박사의 서거로 1978년 취임, 대한민국 하모니카의 산증인으로 하모니카의 대부로 불리고 있다)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함께 뜻을 모아 휴면상태에 있던 법인등기를 2005년 4월 복원하였고, 이어서 협회 이사회에서 홍정표 교수가 3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현재까지 협회를 이끌고 있다.
또한 협회가 일시적으로 활동이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모니카음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차원에서 협회와 직・간접적으로의 관계를 맺으면서 하모니카 전문 연주자로서 성장 발전해온 몇몇 연주인들이 뜻을 같이 하여 1985년 한국하모니카연맹(회장 이혜봉)이 발족되었다. 처음에는 활동이 중단된 본 협회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취지에서 명칭을 ‘한국하모니카협회’로 하고 최영진 선생님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였으나, 여러 사정으로 공적 단체인 사단법인으로 활동할 수 없게 되어 최영진선생님께서는 공적단체가 아닌 이상 명예회장의 직을 수락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본 협회의 맥을 잇지 못한 채 사적인 단체로서의 ‘한국하모니카연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비록 사단법인화 되지는 못하였지만 ‘한국하모니카연맹’은 본 협회의 활동이 중단된 상태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하모니카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오면서 폭넓은 하모니카의 보급과 지도자 양성, 각종 문화활동을 통한 국내외의 연주인들과 교류는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그 결과 한동안 주춤하였던 한국의 하모니카계의 대외적 위상도 개선되었고, 급기야 협회의 초창기부터 국제교류 및 친선 활동의 창구이시던 최영진 선생님의 후원 하에 ‘한국하모니카연맹’을 중심으로 여러 하모니카 단체들이 소속을 가리지 않고 힘을 합쳐 국제대회인 2000년 아시아태평양페스티벌을 우리나라에서 개최하였다.
하모니카의 지속적인 발전은 새로운 단체를 결성하는 배경이 되어 ‘오케스트라 하모니카교육센터(원장 우미경)’와 ‘한국하모니카아카데미(회장 최광규)’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활동을 개시하였다. 전자의 경우에는 국내의 하모니카공연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고 지속적으로 대만과의 교류를 통해 하모니카 발전에 노력하고 있으며, 후자의 경우에는 세계적으로 명실상부한 전문연주인 양성을 배출하기 위해 꿈나무 하모니 키즈의 인재양성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하모니카 단체의 혁신적인 활동은 우리나라 하모니카계의 장래를 더욱 밝게 하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사단법인대한하모니카협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신 우용순 선생님, 이덕남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원로 분들의 노력과 아울러 국산하모니카 제조사인 미화악기사의 기술개발 및 공연지원 등은 대한민국 하모니카 발전의 초석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 하모니카 주법의 역사
하모니카의 주법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존재한 것이 아니었고, 애호가들에 의해 그 때 그 때 여러 주법들이 창안되어 연주되어 왔다. 그러한 이유로 크게 보면 하모니카 종류별, 지역별, 아울러 연주자별로 다양한 주법이 존재하여 왔다고 불 수 있다.
현재 아시아권에서 주로 애용하고 있는 복음하모니카의 경우를 예로 들면 하모니카가 처음 만들어진 독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주법을 일본의 연주자들이 각각의 주법을 고안해왔다.
즉, 하모니카가 일본에 전래될 당시에는 20구멍 19음의 것으로 저음부에 “파”와 “라”가 없었지만 이들을 추가하여 저음부에서도 멜로디가 연주될 수 있도록 21구멍으로 했으며, 마이너 하모니카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하모니카도 개발하였다.
이와 같은 하모니카의 연구는 주법에 있어서도 연구를 필요로 하여 1925년경 대부분의 주법이 연구되고 있던 중에 마침내 복음하모니카의 주법을 ‘사토 히데로’ 선생님의 저서인 「하모니카의 일본적 주법」을 통해 집대성하여 1943년에 출간된 바 있다.
또한 같은 아시아권인 중국에서도 텅브킹을 이용한 아르페지오 분산화음주법(琶音分析奏法) 및 큰 북의 테와 같은 소리를 혀를 사용하여 내는 花舌奏法(小鼓奏法), 저음부를 더욱 확대한 10도 분산화음주법, 저음과 고음 위 아래로 영향을 끼치는 交流分散和音奏法 등을 창안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비록 하모니카의 역사는 짧지만 아직도 그 연주법에 대한 연구는 지역을 달리하여 꾸준히 연구 개발되어 연주되고 있으므로, 애호가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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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보기좋고 읽기좋게 잘 정리된 하모니카 역사네요.그냥 불기만 했지 이런건 관심 없었는데 읽어보니 아주 좋아요.~캄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