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근처 학교를 통한 지역사회 선교
- 작음 줌을 통하여 얻는 큰 만족 공감대 형성 -
받을 수록 더 받고 싶어지는 상
예수를 믿어 성도가 된 사람의 마지막 바램은 천국에서 하나님과 연원히 사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거져 주는 상급이다. 세상에서 받는 상은 부단한 자기 노력이나 선행을 통해서 얻어진다. 각종 경연 대회에서 성적이 좋은 사람에게 상을 준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 사람에게도 수여된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한 사람에게도 훌융한 시민상이 주어진다. 나라를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 용감히 싸운 사람에게도 훈장이 수여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은 공짜나 다름없다. 믿음을 고백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살 동안 맏는 하나님의 축복도 말할 수 없는 큰 상금이다. 너무나 크고 많기 때문에 인간이 헤아릴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받는 영생의 상급은 판단력과 상상의 제한 속에 사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에 가까운 것이다. 도대체 인간이 어떤 일에 어떤 승리를 했길래 그토록 엄청난 상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예수께서 모든 일을 그가 극복하셨기에 그를 믿는 우리 성도는 정복자 이상의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싸우는 전투가 이미 영원히 승리한 것임을 아는 성도는 많지 않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실 때 사탄이 완전히 패배했음과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가 부활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아는 성도도 많지 않다. 예수께서는 그래서 아무도 정복할 수 없는 몸의 머리가 되신 것이다.
죄의식은 신자에게 가장 큰 적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에 대한 아무 근거가 없다. 만약 죄가 중생할 때 없어졌음을 안다면 자신이 대면하지 못할 과거는 다시 없는 것이다. 삶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고후 5:17-27) 신자는 과거의 자신과 자신이 했던 모든 것이 다 바뀌었다. 죄는 다 사해졌다. 죄로 이끌던 본성도 바뀌었다. 새로운 성품이 주어졌다. 보혈이 깨끗케 했다. 이제 신자는 그리스도와 하나이다. 그의 안에 완전한 존재로 새롭게 창조되었다.
이 창조의 실제적인 역사가 고린도후서 5:17에 묘사되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케 하시고." 새피조물은 새로운 인종으로 아버지 앞에 완전한 자세로 설 수 있다. 이 새피조물은 동산에서의 첫 번 피조물처럼 완전하다. 차이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상속자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라는 점이다. 무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계급에 우리를 올려 놓는다는 말이다. 정복자로서 말이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아버지께서 옆에 계셔서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가 삶의 승리를 얻게 되는 거룩과 모든 능력을 거저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대항해 보라고 도전하신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새로 지으시고 의롭게 하셨다. 현재의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셨다.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승리의 의식을 더 확실하게 세울 수 있는 몇 귀절을 살펴보자. 골로새 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중생과 함께 우리는 사탄의 지배로부터 옮겨졌다. 그 일이 일어날 때 옛 삶에 속한 모든 것이 중지되었다. 사탄의 지배는 거기서 그쳤다. 아담의 범죄를 통해 사탄이 세상에 가져온 모든 것이 다 무효화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피조물의 능력이 지배하게 되었다.
여기 완전한 구원이 있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느끼듯 우리 마음이 그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사탄의 지배는 그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다음의 말을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전 것이 무엇인가? 실패요 연약함이요 두려움이요 무가치의 느낌이다. 그들이 이제 그쳤다.
우리가 누구인가? 그리스도의 가지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의 한 부분인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부분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요 15:5) 예수께서 지상 삶을 사실 때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인격이 우리 속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담대하게 이 사실을 고백하는 것뿐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그의 승리의 비밀은 그의 계속적인 고백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백을 확고히 잡고 계셨다. 디모데전서 6:13에 "하나님 앞에서와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말한다. 12절에는 우리가 싸울 전투가 그려져 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믿음의 선한 싸움은 이미 오래 전에 승리한 것이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원수가 패배하고 자신이 승리했음을 인정하면 된다. 믿음의 싸움은 우리가 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쟁취하신 승리를 우리 것으로 고백하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그 일과 동일시된다. 우리는 그의 안에서 죽었다. 그와 함께 매장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와 함께 살아났다. 그와 함께 원수를 정복했다.
사랑 나눔의 장터 마련은 우리의 몫
이런 승리의 정복자가 된 우리는 교회라고 불리는 새 몸의 한 지체가 되고 새피조물이 되게 하시고 그의 자녀로 교제하게 하셨다. 교제란 한 자리에서 함께 먹고 같은 잔으로 함께 마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서 예수와 함께 마시고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잃은 영혼을 구원하고 말씀으로 주의 몸을 일으키도록 하셨다. 이것은 승리의 자축연와도 같은 것이다.
아직 예수를 영접치 못한 사람은 이 승리의 기쁨을 모른다. 받을 상급이 얼마나 큰지도 모른다. 고기를 먹어본 사람이 고기를 잘먹는다고 한다. 우리 교회가 어설픈 계획이긴 하지만 영원한 상을 받을 수 있는 작은시작의 손내밂의 일을 시작해 졸 수 있다. 큰 영혼에게 보다는 작은 영혼을 가진 어린이를 상대로 벌이는 상 나누기 운동이다.
⊙ 새로운 시도
* 교회에서는 우선 당회(기회위원회)를 통하여 교회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필요한 시상품을 선교작인 차원에서 마련해주는 운동에 동참하자는 결집된 의견을 하나로 묶는 실행계획서를 만든다.
* 우선 교회를 중심으로 어떤 학교를 얼마나 선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전 조사를 실시한다. 조사를 할 때는 학교의 종류(초등,중학교, 고등학교, 기타 학원)와 학급수는 물론이지마, 일년에 몇 번 정도 어떤 종류의 시상식이 있는지를 파악한다. 취지를 학교에 알리고 직접 책임자를 만나 확인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미리 계획이 알려진 후 시상품을 주지 못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비공개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을 권한다.
* 교회에서 지출할 수 있는 선교비의 예산 책정이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에 학교 선택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준비된 인원을 투입하여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정 조사를 하도록 한다.
* 농어촌에 있는 교회의 경우에는 교회 옆에 학교가 하나가 있는 경우가 있을 때는 직접 찾아가서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방법이 좋다.
* 정확한 조사가 끝나고 교회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내부적인 지침이 마련되었을 때는 정확하게 선교적인 차원에서 행하는 것임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
* 작은 것을 통하여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생색내기의 어떤 일이 아님을 잘 숙기시키는 기술이 동원되어야 한다.
* 만일 교회의 예산이 너무나 적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경우에는 교회가 일정한 액수를 헌금할 수 있는 특별한 모급을 통하여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 교회에서 지출하는 예산이 한정되었을 경우에는 남,여선교회(전도회)가 학교를 하나씩 맡아서 지속적인 선교적인 차원에서 보조하는 방법이 좋다.
*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남,여 선교회(전도회)가 주관하는 바자회를 하거나 특별 헌금을 위한 집회를 마련하여 일정한 기금을 마련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잇다.
* 요즘 학교에서 시상식을 할 때에 사용하는 것이 어떤 것이 좋은가는 학교의 담당자와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하도록 한다.
* 공개로 할 것인가 비공개로 할 것인가는 교회가 결정하는 것보다는 학교가 결정하도록 위임하는 것이 좋다.
* 교회에서는 시상품을 주는 외적인 성행으로 격하시키지 말고 이 병법(兵法)을 통하여 영혼 구령에 대한 열정을 고취시키는 행사가 되기 위해서 기도를 병행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한다.
* 상품의 내용이나 포장지에 교회가 제공한다는 것을 굳이 밝히려는 욕심을 금물이다.
* 시상품을 전달할 때 많은 사람이 찾아가 사진을 촬영한다거나 시위적인 성격을 띈 전달식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곡 필요하다면 어떤 물건을 몇 개 인수 인계했다는 확인서 한 장을 담당자에게 받는 것을 족하다.
* 교회가 주보에 이런 내용을 거창하게 홍보하는 것 보다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고나면 저절로 알려지는 방법을 택하도록 한다.
* 누가 아는가? 학교에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초청받은 귀한 손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때를 기다리는 여유를 갖는 것이 좋다.
* 시상품을 전달할 때는 가게에서 사온 포장지에 들어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 보다는 다른 아름다운 포장지를 사용하여 보기에 좋게하는 것은 상식이다.
* 물론 이럴 때는 미리 학교의 담당자를 만나 어떤 목적으로 어떤 것을 몇 개를 한다는 것을 사전에 충분하게 협의를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것을 담당하는 실무 책인자는 어떤 학교에 언제 어떤 목적으로 어떤 상품을 주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유지해서 매년 반복되거나 받은 물건이 그 다음에 다시 전달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노력을 하도록 한다.
* 학교별로 차등의 선물을 주어서 주고도 욕을 먹는 일이 없도록 평준화를 이루는 것은 기본이다.
⊙ 기대되는 결과
* 이 방법을 쓰면 목회자자나 교회의 관심을 교회밖으로 향하게하는 선교의 방향 전환을 위한 기폭제가 될 수 있다.
* 지역 사회를 위한 작은 일이 어린 영혼의 구령활동을 우한 작은 시작으로 활용되는 감격을 나중에 맛볼 수 있다.
* 처음부터 알려지지 않지만 기도의 손을 떠난 선물이 어린 영혼의 손에 쥐어질 때부터 기도의 힘이 그들의 영혼과 함게한다는 감격을 가질 수 있다.
* 무엇보다도 지역사회를 위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작은 선행 동참은 더 큰 일의 동참으로 승화될 수 있는 길을 터 놓았다는 것은 계산될 수 없는 득이 될 수 있다.
* 목회자와 지역 사회의 유지와의 관계 개선은 지역 사회 선교희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가는 지름길로 작용될 수 있다.
* 교인들의 사회 선교의 관심을 고조는 물론이지만 자연적인 앎을 통하여 가정에서 부모와 해당되는 학교에 다니는 자녀와의 대화의 고아장을 마련할 수 있는 기쁨도 있다.
* 교인들 스스로 지역 사회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이것은 더 큰 자신감으로 발전되는 촉진제가 될 수 잇다.
* 교회 스스로 대사회 선교를 위해서 동참할 수 있느 다른 기회 찾기 운동을 확산되는 계기가 될 수 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