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새해에 처음 만난 분들이 주고받는 인사는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미국에서는 흔히 “Happy new year"라는 의례적인 인사를 한다. “행복한 새해, 즐거운 새 해”가 되기를 빈다는 말이다. 실용주의 나라답게 “하이”하고 손을 흔들고 끝내는 인사인데 한국의 “복 많이…”는 일상화된 용어지만 명상적인 동양인답게 그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도대체 그 복의 내용이 무엇인데 복을 많이 받으라고 하는 것일까? 나는 처음에는 막연히 ‘福’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복주머니를 떠 올리며 인사를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재물 복을 흠뻑 받으라는 뜻이었을까? 복에는 재물 복 뿐 아니라 ‘장수’의 복, ‘귀인’의 복, 심지어는 ‘처복’, ‘자식 복’ 등 수없이 많은 복이 있다. 그럼 나는 인사하면서 어떤 복을 많이 받으라고 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세상에 있는 모든 복을 통틀어 다 받으라고 한 것이었을까?
복이란 내가 받으라고 한다고 받는 것이 아니다? 자고로 복은 인간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신이 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복을 빈다고 한다. 정화수를 떠놓고 빌 수도 있고 큰 나무나 바위에 깃든 신에게 빌 수도 있고, 무당을 통해 신을 불러내어 빌 수도 있고, 부처님이나 천주님이나 예수님께 빌 수도 있다. 결국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복을 빌어 세상에 있는 모든 복을 통틀어 받으라는 인사였을 게다.
기독교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는 새해에 인사하면서 가난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는 않는다. 주변에 가난한 사람이 많아 나는 오히려 빚에 쪼들리지 말고 부자가 되라고 인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에는 “너희 부요한 사람은 화가 있다.(눅6:24)”라고 말하고 있고 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눅 18:25)”라고 부자를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내가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고 하는 복은 무엇을 기원해서 하는 인사일까?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이 복 받는다는 이야기를 주로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따른 제자들 앞에서 하셨다. 그들이 복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의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 가난을 택했기 때문이다(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복에는 이 세상에서 누릴 물질적이 복과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적인 복이 있다. 그러나 오직 영원한 복은 하늘나라에서 주님의 백성으로 사는 일이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어 주님의 백성으로 평화롭게 사는 일이다. 우리가 누릴 온전한 복은 그것뿐이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고 온전한 것이다. 무병장수, 부귀영화… 이 어떤 것 하나가 아니고 온전히 모든 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신년에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인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 다스림을 받고 사는 백성이 되는 무조건적인 복이다. 내가 인사하면서 비는 복은 그런 복이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며 인사를 주고받겠는가? 무슨 복이 되었던 새해에 많이 받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내가 진정 비는 복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누리는 복이다.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