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의학 이야기]
앵그리스트 맨 머릿속 시한폭탄 ‘뇌동맥류’… 골든타임 사수해야
언제 죽을지알게 된다면 삶의 모습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유작 - 뇌혈관 파열 전까지는 아무런 자각증상 없어
극심한 두통오면 응급실로, 24시간 내 재출혈…치명적
뇌동맥류는 머릿속의 시한폭탄이라고 불리는 위험한 병이다. 만약 머리가 망치로 맞은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발생했다면 뇌동맥류라는 시한폭탄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능한 한 빨리 응급실로 가야 한다. 사진은 영화 ‘앵그리스트 맨’의 장면. 브릿지웍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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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은 삶의 기간을 알게 되는 경우는 말기 암 같은 큰 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때입니다. 남아있는 시간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그런 병에 걸린 상태가 아닌, 그저 끝나는 시점을 알게 된다면 남아있는 시간이 더 알차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경우는 바쁘게 살아오던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가 꿈꾸어 왔던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버킷 리스트를 실행에 옮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겠지요. 역설적으로 마지막을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원하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아있는 시간을 알게 되었을 때 변화된 우리의 모습을 그린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앵그리스트 맨’입니다.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의 유작으로 더 뜻깊은 영화입니다. 영화적인 완성도보다는 삶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영화 ‘앵그리스트 맨’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헨리(로빈 윌리엄스)는 사고로 큰아들을 잃고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매사에 냉소적이고 화만 내는 사람이 된 헨리는 두통으로 병원을 찾게 되는데 마침 주치의가 자리를 비우고 신참의사 섀런(밀라 쿠니스)이 대신 진료를 들어옵니다.
뜻밖에 헨리의 병은 뇌동맥류 파열입니다. 계속된 힘든 업무로 지쳐 있던 섀런은 병의 위험성을 알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통사고, 지루한 대기시간 등 오늘 하루 충분히 화가 난 상태의 헨리도 불쾌지수 100% 상태입니다. 의사의 말을 채 다 듣기도 전에 신참의사 섀런을 몰아붙입니다. “도대체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는 말이오?”
섀런은 엉겁결에 옆에 있던 광고 전단에서 90분이라는 글귀를 보고 “90분요”라고 말해버립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 상황이지만 헨리는 충격을 받고 병원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그러고는 이내 남은 90분을 가족을 위해 아낌없이 쓰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하지만 90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고 가족과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려 하는 헨리의 시도는 자꾸 꼬여만 갑니다. 헨리를 빨리 찾아 치료받게 하려는 섀런의 노력과 엇갈리는 헨리,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영화의 러닝타임과 비슷한 90분의 시한부 시간은 다소 무리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헨리를 따라가는 관객의 시선도 숨이 찰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남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떠나서 이 ‘앵그리스트 맨’이 미국에서 개봉되고 나서 수개월 내에 삶을 마감한 로빈 윌리엄스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영화 ‘앵그리스트 맨’의 헨리가 앓고 있는 뇌동맥류라는 병은 정말 위험한 병입니다. 만약 파열될 경우 90분이 아니라 9분 만에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병 중의 하나입니다.
동맥의 일부분이 지속적인 압력으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뇌동맥류라고 합니다. 원인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혈관의 가지가 갈라지는 곳에 압력이 집중되면서 약해진 혈관 벽이 부풀어 올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 동맥류가 터지기 전까지는 아무런 자각증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후교통 동맥류의 크기가 커져서 제3 뇌신경이 눌리면, 눈꺼풀이 처지는 안검하수 증상이 생길 수도 있지만 드문 경우입니다.
동맥류가 터지면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이미 15% 정도가 사망하고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28% 정도는 사망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다행히 일차 파열 후에 응고된 피가 터진 구멍을 막아 더 이상의 출혈을 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가 치료에서 절호의 기회인데 영화 ‘앵그리스트 맨’의 헨리가 이런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출혈을 일으키는 재출혈은 첫 출혈 후 24시간 이내에 잘 발생하며 이때 사망률은 70%입니다. 즉 3명 중 2명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치명적인 뇌동맥류가 잘 치료된다고 해도 위험한 후유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밖으로 흘러나온 피가 뇌혈관을 자극해 혈관이 오그라드는 연축 현상이 발생하는데 출혈 후 2주 안에 3분의 2에서 발생하고 증상이 생기는 경우도 3분의 1에 이릅니다. 오히려 피가 뇌로 가지 않는 경색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흘러나온 피가 뇌척수액의 흐름을 막아 뇌 수두증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뇌동맥류는 파열된 후 극심한 두통이나 의식저하 등으로 응급실에 내원해 진단받게 됩니다. 치료는 뇌수술로 터진 동맥류의 기시부를 금속 클립으로 물어서 막는 경우가 많고, 최근에는 혈관 조영술을 하면서 코일을 동맥류에 밀어넣어 막아버리는 시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맥류, 머릿속의 시한폭탄이라고 불리는 위험한 병입니다. 만약에 머리가 망치로 맞은 듯한, 번개가 번쩍할 정도의 극심한 두통이 발생했다면 뇌동맥류라는 시한폭탄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가능한 한 빨리 응급실로 가야 합니다. 두통이 시작되고 24시간 내에 재출혈이 일어나면 시한폭탄이 터지는 것이고 사망률은 70%가 넘는다는 것,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모르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점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전자에 속합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으나 남아있는 시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입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삶의 기한은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길어야 100년 남짓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기한을 인식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아니 인식하려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끝을 알고 있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 끝을 알게 된다면 남아있는 삶의 모습은 얼마나 바뀔까요?
척추전문나누리서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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