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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민족의 이색 풍속도 |
□ 서론 1992년 8월 24일 대한 민국과 중화 인민 공화국이 역사적인 양국간 수교 공동 성명에 정식 서명함에 따라 반세기 이상 ‘죽의 장막’에 가려 져 있던 중국이 우리 앞에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며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중국 민족은 중원(中原)에서 일어난 한족과 수많은 소수 민족이 수천년 동안 전쟁과 이주, 화친을 거치면서 민족의 대혼합을 통해 형성되었다. 중국대륙의 총면적은 960만㎢로 한반도 전체 면적의 약 44배나 된다. 이 광활한 땅의 3분의 2지역에 중국 전체 인구의 6%인 55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한족(漢族, 전 인구의 94%)에 비해 인구가 소수이기 때문에 ‘소수 민족’이라 불리고 있다. 복잡한 민족, 많은 인구로 말 미암아 풍속.종교.혈통.문자와 언어 등이 지역마다 다르지만 이들 소수 민족은 고유의 혈동과 풍속, 언어 등을 그대로 보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중국 대륙에 흩어져 있는 55개 소수 민족의 분포를 보면, 동북 내몽골 지역에 7개 민족(조선족, 몽골족, 허쩌족, 만주족, 다워르족, 원크족,어 룬춘족)과 서북 지역에 14개 민족(후이족, 투족, 빠오안족, 위그르족, 키 르기즈족, 뚱쌍족, 싸라족, 위꾸족, 하사크족, 백러시아족, 타타르족, 씨 버족, 우즈베크족)이 있다. 또 서남 지역에 가장 많은 25개 민족(티베트 족, 러빠족, 이족, 하니족, 리수족, 라후족, 칭뽀족, 아창족, 누족, 두룽 족, 미아오족, 뚱족, 겔라오족, 먼빠족, 치앙족, 빠이족, 다이족, 와족, 나씨족, 푸랑족, 떠양족, 지노족, 푸이족, 수이족)과 중남동 지역에 9개 민족(장족, 무라오족, 징족, 리족, 야오족, 마오난족, 투쟈족, 써족, 까 오산족)이 있다. 이러한 중국 대륙내 많은 소수 민족들의 독특하고 재미있는 풍속들을 살펴보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중국과 중국의 소수 민족을 이해하는 데 조그마한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 제1부 결혼과 장례 1. 티베트족의 ‘형제 일처제’ 중국 대륙 서남 지역이 러빠족은 혼세 교차제의 혼인을 유달리 장려하고 있는 민족이다. 이 민족은 인척간의 통혼이야말로 ‘금화하고도 바꿀 수 없는 혼인’이라고 여기고 있다. 가령 남편이 사망하면 그 부인은 남편의 형제와 재혼해야 한다. 반대로 부인이 먼저 사망하면 남편은 결혼하지 않 은 부인의 자매와 재혼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풍습을 가진 민족이 서북 지역의 하사크족과 원크족인데, 이들은 근친 결혼을 ‘챠윤팡(車云房)’이라 부르고 법으로 “남편이 먼저 사망했을 경우 죽은 남편의 형제와 재혼해야 하며, 그 권리와 의무를 지켜 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 친인척끼리만 결혼해야 되므로 이들 이 집단으로 살고 있는 곳을 가보면 모두가 가까운 친척들이다. 대륙의 청해성 몽골족, 하사크족 자치구의 하사크족 거주 지역중 어떤 곳은 70가구 모두가 가까운 친척들인 곳도 있다한다. 어느 한 집은 친사 촌과 결혼하여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위의 두 딸 중 하나는 이모 네집으로, 또 하나는 고모네집으로 시집을 보냈고 아들은 삼촌집 막내 딸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룽족의 경우는 부인과 사별했을 때 부인의 자매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나이가 어리면 적령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때 남자는 미리 칼, 삼베, 소, 돼지 등을 사전에 혼약의 표시로 여자 집에 갖다 주어야 한다. 미아오족과 위그르족 역시 부인이 사망하면 부인의 자매와 재혼하는 오 랜 풍습이 있다. 티베트족 가운데 청해성에 거주하는 황남(黃南) 티베트족 자치구에서는 ‘형제 일처혼(兄弟一妻婚)’이란 세계에서 기이한 풍습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이것은 옛날부터 장원가(莊園家)에서 해온 결혼 풍습으로 써, 즉 장남이 결혼하면 그 집 형제 모두가 동시에 결혼하는 것이며, 한 명의 여자를 공동의 아내로 공유하는 풍습이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연 장자인 맏형만이 아버지가 되며, 동생들은 전부 ‘리로이(삼촌)’로만 부르게 하고 있다. 운남성의 리지앙(麗江)유역에 살고 있는 나씨족은 ‘아주혼(阿洲婚)’이 란 결혼 풍습을 지니고 있다. 이 풍습은 남자가 밤에 처갓집에 가서 아내 와 동침한 후 새벽에 자기 혼자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한 뒤 다시 처갓집 에 가서 노동에 종사하는 생활 풍습이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이 끝난 뒤인 밤 시간 이외에는 처갓집에 함부로 찾아갈 수가 없다. 운남성 린창(臨滄)지역의 와족 자치 지역인 푸롱(福榮)지구, 쓰마오( 思茅)지구의 와족과 리후족은 모계 가족제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재산 은 여자에게만 상속되며, 결혼한 남자는 자기의 생활 용구와 옷가지 등 을 몽땅 처가에 두고 살아야 하는 풍습이다. 만약 이혼을 하게 되면 남 자는 자신의 생활 용구와 옷가지만을 가지고 나가야 하고, 자녀들이 있 을 경우 모두 여자측에서 맡도록 되어 있다. 아이들의 성(姓)은 어머니 의 성을 따른다. 대륙의 남방 지역에 사는 뚱족, 푸이족, 야오족, 칭뽀족 등도 다소 차 이는 있지만 결혼 후 여자는 아이가 둘이 될 때까지 시댁에 가지 않고 친 전에서 생활한다. 이 가운데 뚱족은 제삿날에만 자기 아내를 잠시 시댁 에 데리고 올 뿐 대부분 처갓집에서 생활한다. 푸이족은 결혼 당일 신부가 신랑집에 가서 인사만 하고 돌아온 뒤 계속 친정에서 생활한다. 또한 신랑집에 특별한 일이 생겨 들르게 되어도 절대 같은 방은 쓰지 않는다. 미아오족, 칭뽀족, 나씨족 거주 지역에서는 약탈혼이란 것이 아직도 남 아있다. 중국의 옛 기록에 보면 1,000여 년 전 “북방의 말갈족은 신부 감을 약탈하는 혼인 풍습이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약탈 혼 풍속이 남방 지역 민족에게도 남아 있다.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부모 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친구들과 함께 처녀가 있는 집에 몰 래 가서 여자를 납치해 와 결혼해 사는 풍습이다. 딸을 가진 부모는 자 기의 딸이 납치된 것을 알고 신랑감으로서 마음에 들면 중개인을 통해 결 혼 승낙을 뜻하는 오색끈을 보내는데, 이때 딸과 사위가 될 남자는 여자 집 부모에게 술 두 잔을 따라드리면 된다. 만약 부모가 이들의 결혼에 동 의할 수 없으면 창을 들고 끝까지 추적하고, 그래도 딸을 찾을 수 없으면 중간에 사람을 넣어 담판을 한다. 남자측에서 적극적인 구혼 요청을 하면 대개 원만하게 타결된다. 그러나 도저히 타협이 불가능하게 되면 남자측은 처녀를 돌려보내고 돼지 두 마리를 잡아 바치고 용서를 빌면 된다. 2. 몽골족, 위꾸족의 ‘맹수에 사체 먹이기’ 천장(天葬)은 일명 조장(鳥葬), 야장(野葬)이라고도 부르는데,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이 죽으면 사체를 깊은 산속으로 옮겨 맹수들 의 먹이로 삼는 것이 공통적인 풍속이라 하겠다. 중국 대륙의 서남 지역에 사는 위꾸족과 일부 먼빠족 그리고 서북 지역 에 사는 몽골족은 천장을 고집하고 있는 민족이다. 먼빠족은 사람이 죽으면 아무런 장례 의식 절차도 없이 사체를 산속으로 메고 가서 사체를 어른들 주먹만한 크기로 하나하나 토막내서 버린다. 오직 버리지 않는 것은 남자일 경우 남근을, 여자일 경우에는 유두를 잘라 항아리에 담아 집으로 가지고 와서 집 부근에 묻는다. 이러한 이유 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아마도 이것 또한 남근 숭배 사상에서 기 인되는 것으로 보인다. 서북 지역 내몽골 자치구의 몽골족은 사람이 죽으면 사체를 양젖으로 씻은 다음 고인의 목에 흰 수건으로 두 겹씩 묶고 다시 목에다 질긴 끈을 달아 잘 달리는 말의 안장 뒷부분에 묶는다. 그런 다음 고인의 친구 가 운데 말타는 솜씨가 비교적 뛰어난 사람이 말에 올라타고 고인의 가족들 이 나뭇가지로 말의 엉덩이를 때리면 말은 기수와 함께 사체를 달고 질주 한다. 이렇게 한참 달려 어느 지점에선가 사체가 떨어지면 장례 의식은 끝난다. 또 어떤 부락에서는 알몸의 사체를 수레에 매달고 두 마리의 말이 경마 하듯 질주하여 사체가 떨어진 곳에 버리면 장례 의식이 끝나기도 한다. 사체는 늑대와 독수리, 그리고 여우의 먹이가 되게 한다. 사체를 내다 버린 지15일이 지나면 맹수들이 먹어치웠는지를 확인하는데 고인의 가족 들이 말을 타고 가서 이를 직접 확인한다. 사체를 맹수들이 남김없이 먹어치웠으면 집안의 길조로 여기고, 그렇지 않았을 경우는 이들의 이동식 가옥인 ‘겔’을 뜯어 먼 곳으로 옮겨간다. 위꾸족은 사람이 죽으면 바로 들판으로 메고 가서 사체를 아주 잘게 토막 내 야생 동물들의 먹이로 던져 주는 야장(野葬)을 하고 있다. 이들 민족은 들판에 사체를 옮겨다 놓고 크고 작은 칼 두 자루와 조그마 한 나무판자를 들고 가서 생선 토막 내듯 사체를 잘게 토막내 야생 조류의 먹이로 던져 준다. 청해성(靑海省)과 감숙성(甘肅省)접경 지역의 산악 지대에 사는 위꾸족 은 사람이 죽으면 사체의 장기를 끄집어내 돼지의 먹이로 주고 남은 사체 는 몇 개로 나누어 숲속에 내다 버린다. 사람의 두개골을 어린아이들이 장남깜처럼 가지고 놀기도 하고, 어떤 집에서는 사람의 정강이뼈로 만든 등긁이도 볼 수 있다. 이 민족은 말을 타고 짐승을 잡는 경마 대회를 자주 하는데 말에 붙어 있는 작은 장신구들은 모두 인골로 만든 것이고 최근에는 말을 타고 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칠기 공장이 생겨 칠기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인골을 수집하여 공장에 갖다 주면 수입이 톡톡하다고 자랑들이다. 하루 종일 인골을 주워 모으면 한 자루에 대개 우리 돈으로 150원쯤 되는데 사냥하는 시간 외에는 모두가 자루를 메고 나가 인골을 수집한다고 한다. □ 의식주 1. 이족의 ‘수염이 없는 남성미’ 운남성에 거주하는 이족의 장신구들을 보면 아주 특이하다. 남자들은 재킷 같은 붉은 상의를 입고 상의의 뒷부분에 오색실로 짜서 만든 주걱 모양의 장식 꼬리를 달고 다니는데, 꼬리의 끝부분은 깃털처 럼 만들어 알록달록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족 남자들은 다른 소수 민족에 비해 절대 수염을 기르지 않는다. 수 염이 없는 것이 남자들 최고의 남성미를 상징한다고 한다. 또 남자들이 귀밑에 작은 술병 모양의 구슬을 달고 다니기도 하고, 아 예 귓볼에 구멍을 뚫어 대나무로 만든 커다란 귀고리를 달고 다니기도 한 다. 이들은 외출시에는 항상 칼을 휴대하고, 먼길을 떠날 때는 ‘누꿍’이 라는 밧줄을 돌에 메달아 적을 죽이는 장비와 ‘젠통’이라는 등에 메는 화살을 가지고 간다. 또 한쪽 어깨에는 언제 어디서든 사냥이 가능한 모 든 장비를 휴대하고 다닌다. 여성들은 대부분 넓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데, 외출시에는 치마 끝이 땅에 끌리는 긴 치마를 입고 집안에 있을 때는 무릎이 보이는 짧은 치마를 입는다. 웃옷은 대부분 가슴에 착 달라붙는 옷으로서 모두 정교하게 수를 놓아 만든 것이다. 수놓은 옷은 자기 스스로 직접 만든 것이라 수놓은 옷을 보고 그 사람의 손재주를 짐작하기도 한다. 치마의 색깔은 여러 가지이나 대부분 원색이 많다. 그런데 이족 여성들은 외출할 때 특이한 모자를 쓰고 다녀 이방인들의 주목을 끈다. 그것은 거미줄처럼 육각형으로 만들어 각진 부분에 노란 실로 정교하게 짠 장식 꼬리를 달고 그 중간에는 붉은 실고 세 가닥씩 꼬 아 만든 특이한 형태이다. 운남성 남부 지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소수 민족 여성들은 통치말를 많이 입는데, 통치마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치마의 일부분을 직선으로 접어서 허리를 묶은 것도 있고, 1.5미터 정도의 널찍한 옷감을 허리에 휘감아 만든 것도 있다. 또 직사각형 옷감의 중간 부분에 머리가 들어 갈 수 있게 구멍을 내어 마치 군대에서 판초 우의 입듯 앞뒤를 접어 끈 으로 매어 입는 통치마도 있다. 같은 운남성에 사는 푸랑족 여성들은 기다란 천으로 젖가슴이 보일락 말락하게 동여매는 이들의 전통 복장인 통치마를 주로 입는다. 시집을 간 여자는 재킷처럼 상의를 입고, 혼기에 있는 여자는 가슴을 동여맨 치마만 입고 윗부분을 모두 내어 놓고 외출하기 때문에 미혼인지 기혼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또 푸랑족 여성들은 이빨에 새까만 칠을 하고 다니는 것을 여성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여겨 누구나 외출시에는 이빨을 새까맣게 칠한다. 떠홍(德雄)지역에 사는 칭뽀족 여성들은 바지와 치마를 입고 지내는데, 미혼 여성은 긴 바지를 입고 기혼 여성은 치마를 입는다.같은 지역에 사는 하니족 여성들은 머리를 세 가닥으로 땋았는지 두 가 닥으로 땋았는지를 보고 미혼인지 기혼인지를 식별한다. 대부분 미혼 여성은 세 가닥으로 머리를 길게 땋고, 시집을 가면 짧게 두 가닥으로 땋는다고 한다. 미홍 여성들은 머리 부분에 큰 구슬 같은 스팽글을 달고 은으로 만든 장식품을 꽂고 다닌다. 이들이 즐겨 입는 휘감는 통치마는 주로 붉은색과 푸른색이며 치마끝을 정갱이 부분까지 내리감아 걸음을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감싸고 다 니는 것이 특이하다. 수이족 역시 여성들의 머리 모양을 보면, 머리카락을 세 가닥으로 땋 아 두 줄로 묶고 그 위에 조개 껍질이나 구슬로 만든 조리 같은 모자를 쓰고 다닌다. 빠리족과 나씨족, 치안족 여성은 오른쪽 가슴 부분이 보일락말락하게 구멍이 난 두루나기 비슷한 긴 치파오를 입고 속에는 팬티를 입지 않은 채 가랑이 부분이 터진 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여러 겹으로 만든 터번 을 쓰고 다니길 좋아한다. 특히 빠이족 부녀자들은 깨끗한 블라우스에 알록달록한 조끼와 앞치마 를 입고, 머리에는 자수한 리본을 꽂아 정결하고 말쑥한 모습이다. 양어깨에 해와 달을 수놓은 망토 같은 옷에 울긋불긋한 어깨띠를 두르 고 사는 나씨족의 여성들의 복장도 특이하고 아름답다. 특히 결혼하지 않은 미혼 여성들은 은구슬로 만든 모자를 쓰고, 모자 옆부분에 조개를 깎아 만든 기다란 장식품을 달고 다닌다. 2. 다이족의 ‘이색 정력제’ 운남성의 시멍(西盟), 멍렌(孟蓮), 란창(瀾滄)등지에 사는 와주족의 주식은 옥수수와 ‘홍미(紅米)’라고 불리는 빨간 쌀이다. 이들의 밥짓는 모습을 보면 솥에 빨간색의 쌀과 온갖 향료를 넣어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수분이 많은 상태로 만들어 향이 물씬 풍기도록 한다. 이들은 마당에 쇠로 만든 삼발대를 놓고 진한 향이 나는 밥을 지은 뒤, 다시 그 솥에 돼지피를 붓고 고추와 부추 등을 썰어 넣은 ‘홍생(紅生)’ 이란 국을 끓여서 먹는다. 또 이들 민족이 식사할 때 반드시 따라 나오는 것은 야생 뱀구이다. 35만 명이 살고 있는 시멍, 창위안(滄源), 멍렌, 겅마, 쌍쟝(雙江), 란창 지역의 와족은 모두가 전문 땅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은 뱀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뱀을 무서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곳에서는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산에서 뱀을 잡아 꿈틀 거리는 뱀 대가리를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이 지역은 날씨 또한 일년내내 따뜻하기 때문에 뱀이 동면을 하지않아 곳곳에서 뱀을 많이 볼 수 있다. 와족 마을을 가보면 집집마다 땅꾼처럼 상자 속에 뱀을 수두룩하게 잡 아서 가두어 놓는다. 그들은 상자 속의 뱀을 끼니 때마다 한두 마리씩 끄집어내어 독과 피를 분리해 병에 담은 뒤 껍질째로 모닥불에 구워 먹는다. 뱀에도 여러종류 가 있는데 와족이 최고로 꼽는 뱀은 청죽사(靑竹蛇)이다. 이 뱀은 독사(毒蛇)중에서 가장 독이 강한 놈으로 뱀껍질의 색깔이 푸 른 대나무의 마디처럼 보호색을 띠고 있는 길이 20㎝정도의 특이한 뱀이다. 대나무에 달라붙어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있으면 영락없이 대나무 가지 처럼 보인다. 그래서 청죽사라 부른다. 대나무 숲에 날아든 아무리 큰 새라도 청죽사에 물리면 30초도 안 되어 죽는다고 한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대나무에 달라붙어 청죽사가 잡은 야생조류를 대나무 숲 아래서 줍는 일도 이들의 큰 일과이다. 나이 많은 와족 노인들을 만나보면 손가락이나 손목이 없는 사람이 많 다. 이는 이들이 젊었을 때 청죽사에 물려 스스로 손가락을 자른 것 이다. 청죽사의 독은 너무나 독해 이 뱀에 물리면 어떠한 동물도 죽게 되지만 그 독을 먹으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뱀은 이들 민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부식이며 영양 공급원인 것처럼 보 인다. 또 이들 지역에서 파는 상품은 대부분 뱀가죽 제품이나 뱀의 독과 피를 병에 담은 것들이 많다. 대략 우리의 소주병만한 병에 담은 청죽사 독 한 병이 우리 돈으로 약 5000원 정도에 거래된다. 같은 운남성의 린창, 쓰마오, 추슝 지역에 살고 있는 다이족의 주식은 찹쌀이다. 이모작의 물벼 농사를 짓는 다이족의 주요 생산품은 찹쌀인데 그 품질이 우수하여 명성이 높다. 이들의 하루 세 끼 식사는 모두 찹쌀밥이다. 그런데 이들이 먹는 찹쌀 밥은 좀 특이한 방법으로 짓는다.먼저 푸른 대나무를 마디를 중심으로 잘라 한쪽 부분은 구멍이 막히게 하고 다른 한쪽은 막히지 않도록 만든다. 그런 다음 대나무통에 찹쌀과 물을 적당히 채우고 동그란 나무 마개로 윗부분을 막은 뒤 불에 굽는다. 밥이 타지 않도록 대나무통을 적당하게 빙빙 돌려 밥이 되었다고 생각 될 때 대나무통을 쪼개면 팔뚝만한 긴 찹쌉밥이 나온다. 그들은 이 찹쌀밥을 손으로 뜯어서 ‘난미’라고 부르는 간장에 찍어 먹는데, 그 맛이 독특한 별미이다. ‘난미’라는 간장은 게살과 땅콩을 갈아 만든 것으로 다이족만이 아는 노하우 식품이라 하겠다. 이 밖에 찹쌀을 원료로 한 다양한 떡이 있다. 찹쌀을 솥에 쪄서 햇빛에 말린 뒤 약초잎과 함께 가루로 버무려 만든 떡은 이들 민족의 중요한 간 식이 되고 있다. 또 찹쌀가루에 참깨와 땅콩 등을 볶아 넣고 파초잎을 싸서 만두처럼 쪄 서 먹는 ‘하로쏘’란 떡도 별미이다. 이 하로쏘는 다이족의 최대 명절인 발수절 때 구경나온 모든 사람들과 서로 나누어 먹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이외에 다이족이 정력 강장제로 즐겨 먹는 것으로 쥐고기 요리가 있다. 들쥐처럼 생긴 ‘하우즈’란 쥐를 집에서 키워 그 쥐가 새끼를 낳으면 40일 동안 꿀과 물을 먹이고 40일이 지나면 청죽사 독과 물을 20일간 먹인다. 그러면 하오즈는 꿀독과 청죽사독에 털이 하나도 없고 뱃속의 창 자들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가 된다. 이렇게 두 달이 지나면 하오즈를 잡아 오징어 말리듯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말린다. 햇볕에 바짝 말린 하 오즈는 쪄서 먹기도 하고 가루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이들은 이 하오즈 가루를 몸이 쇠약한 사람이나 정력이 약한 사람만이 먹는 귀한 약으로 취 급했다. 하오즈를 먹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역사가 있다고 한다. 수백년 전 한발이 몇 년간 계속되어 다이족은 매일같이 굶어 죽어 갔다. 원래 사천성 진사강(金沙江)부근에 살았던 다이족은 먹을 것을 찾아 남 으로 내려와 오늘의 운남성 린창, 쓰마오, 추슝 지역에 정착하게 되면서 부터 꿀먹인 하오즈를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쥐고기 외에도 이들은 개미알을 푸른콩과 양념을 해서 반찬으로 먹는다. 이들 다이족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봉용(蜂踊)’이라고 부르는 벌집 속의 애벌레를 기름에 튀겨 만든 ‘봉용채’와 거리를 잡아 식초에 담갔 다가 기름에 튀긴 ‘화지주채(花蜘蛛菜)’다. 다이족 식당에 들어가 보면 어디서 잡아 왔는지 유리 상자 속에 손톱크기만한 거미와 애벌레, 개미알이 가득 들어 있다. 정말 ‘몬도가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눈 딱감고 먹을 수만 있으 면 몬도가네란 생각이 든다. 3. 먼빠족의 ‘장방형 가옥과 일처다부제’ 티베트 자치구와 청해성에 거주하고 있는 티베트족은 유목 생활에 편리 한 ‘투장판’이란 가옥에서 생활한다. 이들의 투장팡 가옥을 보면 둥근 모양의 토담집이다. 이들은 집을 지을 때 진흙에다 가는 풀잎을 썰어 넣은 뒤 발로 계속 밟 아 적당하게 흙반죽이 되면 베개만한 진흙덩이를 만들어 둥근 형태로 짓 는다. 가옥의 골격이 완성되면 삿갓 모양으로 서까래를 만들어 올리고 중간에 중심이 되는 길쭉한 기둥을 세운다. 대문 겸 방문을 만들면 뒤편에 조그마한 창문을 내어 통풍이 잘 되도록 한다. 이러한 가옥은 이들의 자연 환경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은 겨울철에는 춥고, 특히 황사 바람이 많기 때문에 창문이 작은 가옥을 견고하게 짓는다. 지붕은 삿갓 모양으로 뾰족하고 경사지게 만들어 눈과 비가 쉽게 땅에 떨어지도록 되어 있다. 여름철에는 문을 열면 시원하고, 생각보다 통풍이 잘 된다. 화장실은 바로 집옆에 있는데, 대부분 용변 후 보드라운 나뭇잎을 사용하고 있다. 실내에 들어가 보면 큼직한 화로가 있고, 벽면의 창고 비슷한 벽장에 말린 양고기를 저장해 두고 있다. 방바닥은 양털로 짠 둥근 카페트를 깔아 두었고, 누울 때는 다시 바닥 위에다 양털요와 양털이불을 편다. 책상이나 침대 같은 것은 아예 없고, 한쪽 구석에 야생소나 양을 잡는 크고 작은 칼과 각종 도구들이 있었다. 또 그 옆에는 이들의 재산 목록 제1호라고 할 수 있는 손으로 흔들어 우유나 양젖을 분리시키는 ‘수요분 리기’가 놓여있다. 이들은 7-8평쯤 되어 보이는 좁은 공간에서 모든 주거 생활을 하는데, 중간의 기둥을 중심으로 왼쪽은 거실로 오른쪽은 주방 겸 식당으로 사용 한다. 이들은 새싹이 돋는 봄이 되면 가축과 양떼를 몰고 긴 유목 생활을 시작 한다. 봄, 여름 , 가을 3계절은 초지에서 울긋불긋한 텐트형 임시 가옥을 지어 생활하고, 날씨가 추워지면 가축을 이끌고 다시 겨울을 나기 위해 투장팡 가옥으로 돌아온다. 가축들은 돌담으로 쌓아 만든 미궁 같은 우리 속에 가두고 한 개뿐인 우 리 입구에 서서 가축들이 도망가거나 또는 이리떼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교대로 보초를 선다. 같은 티베트 자치구에 사는 먼빠족은 티베트족의 영향을 받아 가옥 구조 가 티베트족과 비슷하다. 그러나 일처 다부제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장방형 가옥에 들어가 보면 한쪽 모서리는 주방 겸 도살장이고, 그 아래에 다섯명의 남자가 잠을 잘 수 있는 침실이 있으며, 여자 주인이 자는 침실은 야생 표범 가죽을 깔아 놓은 방이 있다. 5명의 남편을 데리고 사는 먼빠족 부인은 집에서 손톱과 발톱에 새까만 물감을 드리고 있고, 남편들은 밖에 나가 각종 야생 동물을 잡으러 나간 다. 러뿌지역에 사는 이들 먼빠족은 돌과 나무 기둥을 이용해 튼튼하게 지은 3층집에서 살고 있다. 위층은 과일을 말리는 곳으로 사용하고, 아래층의 반은 사냥으로 잡아 온 야생 동물을 가두어 두는 우리로, 또 반은 거실로 만들어 남편들이 함 께 자는 방으로 쓰고 있다. 중간층은 부인의 주거용 거실로만 이용한다. 주거용으로 이용하는 중간층의 한 모서리에는 대나무로 가리개를 한 작 은 방이 하나 있는데, 이 방은 시집간 딸이 친정에 돌아와 ‘아기 낳는 방’이라 한다. 이 방은 항상 깨끗하게 비워 두는데, 이 방은 친정 어머니 이외의 어떠 한 사람도 방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고 한다. 모계 혈통 사회의 일처 다부제로 생활하고 있는 이들 민족은 아이를 낳 으면 모두 어머니 성(姓)을 따른다고 한다. 남편의 지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남편은 오직 열심히 사냥해서 부인 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고기를 맛있게 장만하는 뿐이다. 그것도 열심히 일하고 부인의 분부 사항을 잘 지켜야 아래층 애생 동물 들을 가두어 두는 우리 옆방에서 자다가 위층 부인의 잠자리에 불려 갈 수가 있다고 한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한 사람의 부인이 5명의 남편을 데리고 살지만 한번도 남편들끼리 다툼이나 부인의 말을 거역하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꾸준한 일부 일처제 결혼 정책을 지금껏 펼쳐 왔지만 아 직도 이들 민족의 반이상이 일처 다부제를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개방화 이후 최근에는 부탄, 인도 국경 부근에서 국경 무역이 성행하 자 이들 민족의 토산품인 나무 그릇, 막달나무 젖가락 등 목공예품을 팔 러간 먼빠족 남편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부인의 애간장을 태우는 경우 가 더러 있다고도 한다. □ 교통과 운송수단 1. 어룬춘족,윈크족,허쩌족의 ‘여름-배, 겨울-스키’ 동북 지방에 사는 대부분의 소수 민족들은 여름과 겨울로 나누어 비슷 한 운송 수단을 가지고 있다. 겨울철에 수렵으로 생활하는 어룬춘족, 윈크족, 허쩌족은 스키가 교통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물론 한족도 구부러진 나무를 길게 만들어 붙여 두 마리의 말이 끌도록 하는 ‘파츠’라는 것이 있다. 이 모두가 민족을 떠나 자연 환경에 적응해 살려고 하는 인간들의 지혜 에서 나온 생활 도구라 하겠다. 스키판은 자작나무에 열을 가해 말리면 가볍고 견고해 대부분 자작나무 가 그 주종을 이룬다. 스키판의 길이는 이들의 계산법으로 보면 약9쨔, 쨔는 엄지손가락과 중 지를 편 거리, 쉽게 말하면 한 뼘이다. 그러니까 길이가 약 2미터쯤 되 고 폭은 40센티미터쯤 된다. 앞부분을 깍아서 뾰족하게 뒤로 젖히고 뒷부분도 끝이 위로 들리게 만들고 그 위에 사슴 가죽이나 커다란 낙타 가죽을 깔고 사람이 앉았을 경 우 안전을 위해 다리 부분을 묶을 수 있는 가죽끈을 달았다. 이렇게 스키판을 만들어 타면 100킬로미터의 거리를 걸어서 가는 것보다 세 배 이상 빨리 갈 수 있다. 잘 타는 사람은 질주하는 말에 뒤지지 않는 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수상 교통 수단 역시 다양하다. 송화강과 흑룡강 유역에는 작은 지류의 강이 많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들은 거의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배를 운송 수단으로 이용한다. 배의 소재도 특이하지만 모양도 각 민족에 따라 달라 모양만 보아도 어 느 민족의 배인지 쉽게 구별을 할 수 있다. 제일 큰 배는 윈크족의 것으로 길이가 6미터나 되고 6-7명이 탈 수 있다. ‘쟈니아오’라 부르는 이 배는 몸통 부분을 두꺼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 고, 밑부분은 껍질을 벗긴 자작나무를 뗏목처럼 삼나무 끈이나 소나무 뿌 리로 엮어 만든 것이다. 배는 강물의 흐름에 따라 떠내려 가고 물이 역류하는 곳은 긴 장대를 사 용해 10킬로미터 이상을 올라가기도 한다. 허쩌족이 여름철에 이용하는 배는 혼자서 타고 다닐 수 있게 작게 만들 어져 있다. 물고기를 잡아 모든 주식 생활과 의복을 만들어 사는 이들 민족은 물고기 잡는 데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민족이다. 이들의 조그마한 배는 역시 자작나무를 사용해 만든 것으로, 이음새를 송진이나 나무의 껍질로 방수가 잘 되게 처리한 것이다. 여름철 이러한 배는 수렵 생활 외에도 이들의 모든 교통 수단이 되고 있다. 서북 지역에 살고 있는 후이족은 양가죽으로 만든 배로 여름철의 교통 수단으로 이용한다. 양가죽 배는 열 마리 정도의 양을 잡은 분량으로 그 속에 공기를 불어넣어 나무와 함께 조립해 고정시킨 것이다. 같은 지역의 티베트족은 양가죽이 아니라 소가죽으로 만든 배를 이용한 다. 소가죽 배 사이사이를 용골을 녹여 붙이고 다시 가죽으로 기워 만든 것이다. 이런 가죽 배는 사람과 짐을 싣고 홍수가 난 강도 쉽게 건넌다. 남부 지역에 사는 미아오족과 다이족은 단오절 때 수상 경기에 이용하는 용주로 화물이나 짐을 운송하는 데 쓴다. 용주는 선두를 울긋불긋하게 용머리 모양으로 만들어 보기에도 산뜻하고 경쾌해 보인다. 대만 지역에 사는 산지족의 배를 보면 조형미가 뛰어나고 선두와 선미를 타원형으로 뾰족하게 만들고, 갖가지 문양을 넣어 보기에도 아름답다. 2-3명이 탈 수 있는 이러한 배는 이들에게 있어서 주요한 교통 수단이다. 광서성 해안 지역과 해남도에 살고 있는 이족 역시 배를 애용하는 민족 이다. 이들의 배는 윗부분에 노가 두 개가 있고 배의 좌우에 또 작은 노가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10명 정도 탈 수 있는 이 배는 노젓는 사람이 4명이나 돼 속도가 무척 빨 라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곳에서 고기잡이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풍랑 이 치면 쾌속으로 노를 저어 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운남성 남부 지역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들은 배를 커다랗게 만들고, 배 배 위에 좋은 목재를 이용해 2층집처럼 만들어 교통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 다. 멀리서 보면 배가 아니라 강 위를 떠돌아다니는 한 채의 집같이 보인 다. 이 모두가 소수 민족들의 교통과 운송에 동원되는 중요한 도구들이다. 2. 티베트족, 리수족, 누족의 ‘밧줄이용 운송’ 티베트족, 리수족, 누족이 사는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류쏘’란 것이 있다. ‘류쏘’는 이들 말로 “미끄러지는 밧줄”이란 뜻인데, 이들 세 민족에 게 주요한 교통 수단에 이용되고 있다. 류쏘는 이들 민족이 사는 지역이 험하고 깊은 협곡이라 다리는 놓을 수 없어서 고안된 운송 방법으로, 계곡 양편에 대나무를 여러 겹으로 꼬아서 만든 튼튼한 밧줄을 두 가닥으로 고정시키고, 두 가닥의 밧줄 아래에 직사 각형의 광주리같이 생긴 ‘류판’이란 것을 달아 미끄러지면서 계곡을 건너 는 것을 말한다. 류판은 가로 12센티미터, 세로 50세티미터쯤 되는 뚜껑이 없는 길쭉한 상 자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큼직한 광주리 같기도 한다. 이들은 협곡을 건널 때 류판에 다리를 쭉 뻗고 삼베 껍질로 만든 ‘마 승’이란 끈을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몸을 약간 뒤로 젖힌 뒤 류판과 함께 미끄러져 간다. 밧줄이 체중에 의해 수평이 되면 손과 발을 이용해 중심을 조정하면서 건너야 한다. 부녀자들이나 어린이 그리고 화물이나 가축을 운송할 때 류판을 하나하나 씩 연결하고 처음부터 중심이 잡혀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하여 미끄러지면 맞은편에서 한 사람이 안전하게 내리도록 유도한다. 류판이 기울거나 삼베 껍질로 매단 밧줄이 중량을 못 이겨 끊어지면 계곡 아래 격류에 텀벙 빠지게 된다. 근년에 와서는 류판을 밧줄에 매달 때 도르래를 이용해 더욱 빨리 건너기 도 한다. 산악 지대에 살고 있는 이들 세 민족은 계곡을 건널 때 언제나 아슬아슬 한 류판을 타고 건넌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방법으로 수천년을 살아온 이들은 단련이 되어 있어서 쉽게 미끄러져 간다. 그러한 운송 방법이 얼마나 고달펐던지 이들이 즐겨 부르는 민요를 보면 협곡을 건너는 애환을 노래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인생 날 때부터 고생투성이 이들의 노래를 들어 보면 노랫가락 속에 ‘류쏘’타는 것이 얼마나 어렵 고 아찔한 것인지 이들의 고난과 애환이 절절히 담겨 있다. 대부분의 소수 민족 거주 지역에서의 교통 수단은 인간의 두 다리로 걷 고, 또 짐이 있으면 노새나 말을 이용한다. 산길을 다닐 때는 두 발로 걸어다니고 무거운 짐을 등에 지기도 하고 멜 빵을 좌우 어깨 또는 가슴쪽에 메고 중량을 분산시킨다. 이족과 라후족 여성들은 멜빵을 이마에 매달고 머리 부분을 움직여 무게 중심이 분산되도록 한다. 또 멜빵 끈만 두손으로 조정하면서 등에 짊어진 무게를 조종하기도 한다. 이족 여성들은 상반신을 평형으로 유지하고 무거운 짐을 메는 데는 어릴 때부터 단련된 기량이라 하겠다. 이런 짐을 메고 물살을 빨리 해치며 강 건너는 것을 보면 감탄이 나올 정 도이다. 신강 지역 타이클 강변에 사는 위구르족은 이동하는 데 항상 낙타를 이용 한다. 생필품을 물물 교환하기 위해 200킬로미터쯤 떨어진 카슈카르까지 가려면 뒤뚱거리는 낙타를 타고 보름을 가야 한다. 한번 장을 보고 오는 데 한 달이 걸리는 셈이다. 험준한 산맥을 넘고 오르막 내리막길을 몇 개나 넘었는지 보름 동안 하염 없이 길따라 가다 보면 카슈카르 지역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들은 이젠 다 왔다는 안도감에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갖다 팔 여러 가 지 물건을 다시 챙긴다. 험준한 수백 미터의 낭떠리지가 발 아래 있고 뒤에는 기암 괴석이 덮칠 것 같은데 가는 나무가지를 잡고 그곳에 서서 태연히 소변을 보는 위국르 족, 인간은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 수 있다는 생 각이 들었다. 카슈카르에 다 왔다고 흥얼거리는 이들의 노랫가락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뜻이다. 1월 2월은 눈 때문에 옴쭉달싹 못하고 이들의 고난을 얼마나 절절이 노래한 것인지 가사 내용을 들어 보면 눈 물이 날 정도다. □ 기타 이색풍속 1. 싸라족의 ‘사랑의 달’ 중국 역사에 나타난 대륙의 각 이민족 이름은 180여 족에 달했으나 수 천년 동안 전쟁, 이주, 화친을 거치면서 중원을 중심으로 대혼합을 이루 어 각 민족이 융합되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민족은 55개 민족 에 이르는데 그들은 한족(漢族)에 동화되지 않고, 그들의 풍속 종교 혈 통 문자와 언어를 가지고 살고 있다. 특히 그들만이 통하는 역법은 수천 년을 자연에 순응하면서 맥을 이어 주고 있다. 이들의 역법을 보면 각 소수 민족의 생활상이 투영되어 있고, 또 오랜 세월 동안 중원의 한족과 교류했던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티베트족은 티베트력(曆)과 태양력을 겸해 사용하고 있고 수이족, 빠이 족, 이족 등은 독자적인 역법을 쓰고 있다. 와족, 싸라족, 두룽족, 지노족, 어룬춘족은 아직도 원시적인 자연력을 사용하고 있다. 자연력을 사용하는 청해성의 싸라족은 1년을 10개월로 정해 1) 꽃피는 달에는 남녀 노소 모두가 들판에 나가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맨다. 싸라족은 거의 대부분이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지만, 청해성에 거주하 는 싸라족은 원예업을 주로 하고 겨울철이 되면 사냥을 즐긴다. 2) 우리의 4월에 해당되는 새우는 달이 되면 쟁기, 낫, 호미 등 모든 농기 구를 정비하고 들판에 나가 거름을 준다. 3) 구워 먹는 달이 되면 들판에서 돼지 감자 비슷한 산토과를 구워 먹는다. 이때에 산토과를 굽기 위해 부녀자들은 들판으로 마른 말똥이나 낙타의 똥을 주우러 다니고 남자들은 낙타똥과 말똥을 구별하여 불을 피운다. 빨리 구울 때는 말똥불에 굽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구울 때는 낙타똥으로 피운 불에다 굽는다. 4) 굶는 달이 되면 옛날에는 대부분이 초근 목피로 어렵게 지냈지만 최근에는 쌀과 옥수수로 굶지는 않고 지낸다. 5) 이 가운데 채집하는 달과 6) 수확하는 달은 비교적 긴 편이고 굶는 달은 이 들의 전년도 농사가 풍작인지 아니면 흉작인지에 따라 날짜가 다시 조정 된다. 7) 술에 취하는 달이 되면 채집하는 달과 수확하는 달 동안 창고에 넣어둔 것을 꺼내어 술을 만드는데, 남녀 노소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꽃잎으로 만든 ‘썰리’란 술을 마신다. 아가씨들은 썰리술에 약간 취한 드 불그 레한 얼굴에 착 달라붙은 ‘한티알(전통적인 민족 의상)’을 입고 있는데 그 모습이 아주 매력적이다. 9) 우리의 1월에 해당되는 사랑해 주는 달은 남녀 누구나 문 밖을 나오지 않고 집안에서 사랑을 나눈다. 이 달 때문에 싸라족이 조혼하는 풍속이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 보통 남자는 13세, 여자는 9세가 되면 누구나 결혼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남자는 나이가 11-14세, 여자는 9-12세에 결혼을 한다. 9살 먹은 여자애가 이웃에 사는 11살 먹은 남자아이와 사랑 해주는 달 동안 둘이서 사랑만 나눌 수도 있다. 어쨌든 싸라족의 ‘추유’란 조혼 풍습 때문에 근친 결혼이 많은 무턱 대고 아이만 많이 낳아 골치아픈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 정부에서는 혼인법에 따라 결혼을 자유롭게 하고 소수 민족에 한 해서 한 가정에 둘씩 낳을 수 있도록 허가하지만 정부의 규정은 거의 지 켜지지 않고 있다. 싸라족은 원시적인 이 역법을 수천년 동안 사용해 왔고, 날짜 가는 것은 나무 열매로 주판알처럼 하나하나 넘겨 보내면서 계산한다. 재미있는 일화로 싸라족의 어느 젊은이가 개방 지역인 심천에 돈벌러 갔다가 주는 봉급을 계산하지 못해 허리에 구슬을 염주처럼 차고 한장 한 장 돈을 줄 때마다 구슬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하나하나 넘기면서 자기 의 봉급을 계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이들 민족은 지식 수준이 낮고 문맹자가 많으며, 어릴 때 조혼 을 하여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은 산적(山積)한 문제를 안고 있다. 2. 이족의 ‘미녀 골라 하룻밤’ 전통적으로 씨름을 즐기는 민족은 동북 지방의 우리 동포인 조선족을 비롯하여 몽골족, 타타르족, 카자흐족, 키르기즈족, 이족, 씨버족, 라후 족, 위구르족 등 9개 민족이다. 몽골족은 음력 7,8월 초목이 푸르러지면 양떼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 나타모’란 성대한 민속 경기를 벌이곤 한다. ‘나탐’ 혹은 ‘나타모’ 란 몽골어로 ‘오락’이란 뜻인데 이날이 되면 씨름, 경마, 활쏘기, 양젖 짜기 등의 경기를 요란하게 치른다. 몽골 씨름은 체급을 가리지 않고 성인부와 유년부로 나누어 경기를 갖 는데 상체만 붙잡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레슬링의 그레코로만형과 흡사 하다. 그래서인지 몽골인은 레슬링을 잘해 세계 대회에서 금메달을 자주 따는 것 같다. ‘나타모’경기가 시작되면 씨름 선수는 가죽으로 만든 긴 신발에, 양 어깨 부분과 허리 부분에 붙은 앞이 파인 옷을 입고 색체가 화려한 ‘쏘 독’이란 호신용 부적을 어깨에 매달고 출전을 하는데, 보기에도 아주 용감한 몸차림이다. 유년부 선수들은 바지에 각 ‘겔’을 대표하는 깃발을 붙여 어른들과 함께 입장하는데 시합에 나가기 전 상대방을 향해 “빨리하자, 나는 최 고로 힘있는 사람과 상대한다”고 큰소리로 외치며 전통 춤을 한번 춘 뒤 승부를 결정짓는다. ‘나타모’대회에서 최고의 승자가 되면 몰려든 구경꾼들은 준비해 간 말젖을 승자에게 뿌려 준다. 키르기즈족과 위구르족의 씨름은 말을 타고 상대 선수의 상체를 붙잡고 말에서 떨어지도록 하는 경기이다. 이렇게 해서 이긴 선수는 구경나온 젊은 아기씨를 부인으로 선택할 수 있다. 위구르족은 일부 다처제이기 때 문에 돈이 많거나 씨름에서 최고 승자가 되면 여러 명의 부인을 둘 수 있 다고 한다. 운남성에 사는 이족도 일년에 한번씩 횃불 축제 때 씨름을 한다. 운남 성의 로난(路南) 자치 지역은 씨름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선수는 각 부락에서 뽑힌 사람들로서 머리에 푸른 터번을 두르고 허리 에는 붉은 천을 감고 경기를 하는데, 상대 선수를 어떻게 하든 넘어뜨리 면 절반승, 넘어뜨린 뒤 상대 선수의 어깨를 땅에 닿도록 하면 한판승이 된다. 승자가 되면 예쁜 아가씨들을 마음대로 골라 가질 수 있는 권한이 주어 지고, 아가씨들은 이날을 위해 예쁘게 몸치장을 한 뒤 씨름 경기를 구경한다. 마을의 유지들은 승자에게 차례차례로 술을 권하고 붉은 비단을 주면서 이미 선택한 예쁜 아가씨와 함께 준비해 놓은 방으로 가라고 권한다. 승자의 영광은 더없이 높아 보인다. 운남성의 라후족과 씨버족의 씨름은 우리 나라의 씨름과 너무나 흡사하 다. 나무 껍질로 만든 샅바를 허리에 맨 뒤 상대 선수가 선채로 허리의 끈을 양손으로 잡고 있으면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유지가 나와서 양 선수의 몸에 소금을 뿌린다. 그러면 어떤 방법이든 상대 선수를 넘어뜨리 기만 하면 이기게 된다. 운남성의 라후족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하겠지만 생활 풍습이나 언어가 우리와 너무나 흡사한 면이 많다. 씨름 경기가 시작되면 구경꾼은 라후족말로 ‘부또라 부또(不多라 不多 )’라고 응원을 하는데,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힘을 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붙어라 붙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렀다. 이렇게하 여 이긴 선수는 돼지 한 마리를 상으로 타간다. 이때 씨름에서 진 선수는 양쪽 발에다 마대를 씌우고 허리 부분을 끈으 로 묶어 팔만을 이용하여 패자전(敗者戰)을 하게 되는데 마대 속의 두 다 리는 몸의 평형을 유지시키는 역할만 한다. 진 선수 가운데 승자를 가려 내는 이 같은 패자들의 씨름은 유머가 넘치고 구경꾼들의 웃음을 자아 내게 한다. 패자전에서 이긴 선수는 마음 촌로들로부터 융숭한 술 대접 을 받는다. 3. 뚱쌍족의 ‘손님에겐 아내시켜 잠자리 시중’ 중국 대륙의 55개 소수 민족의 신앙 생활을 보면 원시 종교 이외에도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 도교 등을 믿는 민족이 상당수에 이른다. 이 가운데 특히 이슬람교를 믿는 민족이 비교적 많다. 중국에서는 이슬람교를 회교, 혹은 청진교라고 부른다. 그 교리는 유일 절대신인 ‘알라’를 신봉하고, ‘마호메트’와 알라의 사도 ‘코란’경 에 있는 말씀을 알라의 계시록이라 믿고 있다. 또 이 세상의 모든 사물 은 알라가 정해 놓은 것으로 믿고 ‘부활’과 ‘최후의 심판’은 반드시 있는 것이라 여긴다. 이슬람교가 중국으로 전래된 것은 당나라 영휘 2년(651년)에 당시 대 식국인 아랍의 상인에 의해서였다. 원나라 때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아랍에서 대량의 이민이 중국으로 유입되고부터 그들이 믿는 이슬람교가 중국 각지로 전파된 것이다. 특히 실크로드 부근 지역에 살고 있었던 후이족, 우구르족, 하사크족, 키르기즈족, 타지크족, 우즈베크족, 타타르족, 뚱쌍족, 싸라족, 빠오난 족 등 10개 민족이 비교적 일찍부터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했다. 물론 후이족처럼 민족을 형성할 때부터 이슬람교를 믿어 온 경우도 있고, 위구르족처럼 15세기 전까지 샤망교,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불 교 등 다양한 신앙 생활을 해오다가 훗날 모든 종족이 이슬람교로 통일 하여 믿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중국에 전래된 이슬람교는 그들의 종파에 따라 ‘수니파’이슬 람교와 ‘시아파’이슬람교로 나뉘어지고, 이를 받아들이는 각 민족의 상황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분파가 되어 만약 지금 아랍국에서 믿는 정통 이슬람 교도가 이슬람교를 믿는 중국의 소수 민족 지역을 방문한다면 아 마 모두를 이단자로 취급할 것같아 보였다. 신강성의 남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소수 민족은 이슬람교와 원시샤망교 를 합친 듯한 ‘흑산파’라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특히 뚱쌍족은 이슬람 교도가 준수해야 하는 오해인 신앙 고백, 예배, 단식, 희사(喜捨: 남을 위하여 기꺼이 재물을 내놓음), 순례 등을 지키지 않는다. 단식은 이슬람 역법에 따라 9월 한달간 일출에서 일목 때까지 음식을 먹지않고 행위도 삼가는 것인데, 이들은 오랜 전통 풍습에 따라 단식 기간이라도 외지에서 남자 손님이 오면 집에 여자들만 남겨 놓고 남자들 은 어디론가 가버린다. 이곳을 여행할 때 안내자와 둘이서 조그마한 ‘커짠(客棧)’이라는 우리 의 여인숙 같은 방에서 잠을 자려고 하는데 이 모습을 보고 주인 남자는 “멀리서 온 남자들을 위해 오늘 저녁 내가 집을 비워 줄 테니 여러명의 나의 아내들과 재미있게 보내길 바랍니다“라고 한마디 하고서는 밖으로 나갔다. 물론 우리는 피곤하여 독한 빠이주(白酒) 한 잔씩을 하고 정신없이 곯아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주인은 우리는 보고, “나는 밤새도록 사원에서 여러분과 나의 처들을 위해 기도하고 왔다“며 성의를 무시한 것에 대한 섭섭해 했다. 이처럼 그들은 전통 이슬람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자기들 풍습에 따라 대강 대강 신앙 생활을 하는 이슬람 교도들이 많았다. 그러나 서북 지역의 ‘백산파(白山派)’라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는 민족 은 비교적 율법에 따라 엄숙하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후이족, 위그르족, 하사크족, 타지크족, 타타르족, 키르기즈족, 우즈베크 족 등은 비교적 정통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오행’가운데 ‘신앙 고백’기간에는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마호메트는 신의 사도다“라고 소리쳐 기도한다. 예배는 하루에 다섯차례 보는데, ‘주무아’라는 금요 예배와 제일(祭日)예배는 의무적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단식 기간인 9월 한달간은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철저히 규율을 지 키고 일체의 성행위도 하지 않는다. 회사(會捨)때가 되면 매년 본인의 수입 자산 가운데 일정 비율을 반드시 납 부하며, 여유 있는 교도들은 순례 때에 메카의 ‘카바(이슬람교의 가장 신 성한 사원)‘를 순례한다. 그러나 비교적 정통적이라는 이들 민족 가운데에도 ‘오행’이 똑같지 만은 않다. 후이족은 회사를, 수시로 납부하는 종교적인 기부금으로 규정하며, 타지 족은 단식이나 순례를 하지 않고 예배도 일부 노인이 집에서 한두 번 하는 것뿐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에 가면 반드시 청진사(淸眞寺)란 사원이 있다. 중국 대륙에서 대표적인 이슬람 사원은 꽝쩌우에 있는 광탑사, 씨안의 청정사, 북경에 있는 청진사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이 이들이 말하는 ‘카 바‘라 하겠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10개 민족은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하면서 그들 본 래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슬람교를 믿으면서 일어난 변화는 정치, 경제, 문화, 정신 면에서 엄청 난 영향을 주어 대부분 이들 민족의 전통적인 풍습과 습관이 점점 종교 습 관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원래 이들 민족은 어떤 동물이든 못 먹는 동물이 없었는데 이슬람교를 믿 고부터는 돼지고기나 피 그리고 죽은 동물은 일절 먹지 않는 종교적 습관을 따르고 있다. 또 금요일은 예배 보는 날로 정하여 예배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습관이라든지, 죽으면 깨끗한 물로 시신을 씻고 흰 천으로 싸서 ‘아홍’이 란 성직자에게 독경을 부탁해 재빨리 매장하는 풍습 등 모두 이슬람교를 신 봉하고부터 생겨난 것들이다. 그러나 뚱쌍족, 싸라족,빠오난족이 믿고 있는 흑산파의 이슬람교는 그들 본래의 원시 종교와 뒤섞여 있는 것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이슬람교의 3대 제일인 단식일, 회사일, 마호메트 탄생일 등의 날을 휴일로 삼고 있는 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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