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승가의 희망인가
현실은 만족스럽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고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으레 그런 것이라고 체념한다면 역사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부처님의 출가도 없고 육년고행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중생교화도 없게 된다. 불만족스런 현실을 개선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 불교요 인류문명의 발자취 일 것이다.
요즘 스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종단에 대한 불만이 포화상태인 것을 알 수가 있다. 각종 범계행위가 징계되지 않고 부익부빈익빈의 구조가 더 기세를 부리는 것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절망을 토로한다. 아예 체념하고 종단 일에는 선을 긋고 지내는 스님들은 종단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조차 시간이 아깝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너도나도 패배의식에 젖어 있을 뿐, 개선의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내가 희망의 주체가 되겠다는 뜻은 꿈에도 갖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멸시를 받아도 천대를 받아도 밥은 먹을 수 있으니, 조금만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 안락한 생활도 보장되니...”라고 생각하여 너도나도 복지부동이다.
이렇게 간다면 우리 승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은 공심(公心)이 없고 사찰은 공공성(公共性)이 없으며 승가는 공동체성(共同體性)을 잃어버렸다. 출가하여 승가의 일원이 되고서도 바른 견해를 확립하지 못하고 노후 걱정등의 이유로 소유의 노예가 되어 공심(公心)을 잃어 버렸고, 그런 스님들이 사찰을 개인화하고 특정 문중화하여 오랫 세월동안 수행자들이 함께 모여 살았던 공찰의 공공성(公共性)이 무너졌다. 사찰은 불자와 비불자들에게 정신적인 안식처와 휴식공간이 되지 못하고, 다만 더 높은 곳으로 발돋음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개인토굴을 마련하기 위한 재원조달처가 되고 말았다.
‘승가’에 귀의하지 않고 ‘스님들께’ 귀의하게 함으로서 승가의 운영원리인 공동체성(共同體性)의 가치가 외면 당하고, 기득권끼리 이익을 나눠 갖는 계파정치와 간선제의 폐단으로 승가의 구성원들은 패배의식에 휩싸여 있다. 공찰이 개인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니, 사찰은 주지가 홀로 운영하는 사업장이 되었고, 더불어 사는 스님들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으며 신도들에게도 주지가 아닌 스님들은 노동자로 취급 받고 있다.
승가공동체가 변화하려면 출가자 개개인이 공심(公心)을 갖고 각자가 희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현재 승가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평가라는 미명하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비관적인 자세를 취할 뿐,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망각하는 태도는 불교를 잘못 이해한 까닭이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희망을 말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부처님 제자는 과거와 현재의 상황과 조건을 판단하고 비관하기 보다는 그 모든 조건중에서 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과 의도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원리가 괴로움을 소멸하는 연기법칙이고 사성제팔정도라는 해탈의 원리이고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심하게 이해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현재의 조건들은 불가능함을 말하고 희망 없음을 말하는 이유로서 존재할 뿐이다. 이익이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이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이유를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변명하고 제도가 아닌 정신의 문제임을 역설한다. 자신들이 이해한 불교가 제대로 된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기득권의 주장을 경험자들의 조언이라고 젊잖게 충고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중성을 눈 가리고 아웅하며 덮어버리고,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이같이 인자하게 미소 짓는다.
개인이 변해야 사찰이 변하고 승가가 변하지만 개인의 변화는 제도의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가능하면 4인 이상이 모여 사는 승가가 되도록 제도화하고, 엄격한 주지평가제 실시로 주지가 사찰운영을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사방승가의 전통을 객스님들이 언제나 편안히 머물고 갈수 있도록 청결한 객실을 마련하고, 대중들에게 수행 보조금과 공양금이 평등하게 지급 되어야한다. 의료제도와 노후복지 제도를 시급히 마련하여 각자도생하는 불필요한 노력과 경쟁을 막아야한다.
이러한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중의 지도자를 공의를 모아 선출해야 한다. 지리적인 여건과 시간적인 여건을 감안하면 본사단위로 공의(公義)를 모으는 것이 적절하다. 다만 후보자가 2인 이상일 경우에는 대중은 침묵으로 자신의 견해를 표현 할 수 없으므로 투표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한다. 이렇게 25교구 본사가 동시에 투표를 하여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사람이 선출된다면 승가에도 양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시비분별도 일시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계파의 밀약 없이 대중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지도자는 대중이 원하는 사찰의 공공성과 승가의 공동체성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할 것이다.
승가공동체 회복을 위해서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상적으로는 삼귀의를 공동체성을 살려 정리이고, 제도적으로는 총무원장 직선제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내가 희망이 되겠습니다” “내가 먼저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개인이 여기저기서 나타남으로서 시작된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해주겠지”라며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들은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두리번거리는 시선을 멈추자. 폐배주의적인 불교관을 버리자. 출가를 위해 첫 발을 뛸 때처럼 내가 먼저 나서자. 부처님의 제자는 언제든 어디서든 희망을 말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