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14 아무 일 없는 하루
두어 해 전이었지요. 30대 가장이 아내와 어린 딸 앞에서 달려오는 전철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일가족 다섯 명이 승용차 안에서 자살로 참극을 빚은 사건도 있었고요. 또 엊그제는 30대 여인이 일곱 살 딸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모두 빚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운 이에게는 단 돈 백만 원이 생명 같을 때가 있습니다. 2억의 빚단련을 받는 이에게 힘내라는 말처럼 공허한 말도 없습니다. 더더구나, 세상은 감사로 가득하니 기뻐하며 살라고 말하면 그를 조롱하는 거나 마찬가지겠지요.
감사와 기쁨이 솟는 일상이 되려면, 자꾸 그리 살려는 의식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있을 때, 시련도 거뜬히 이겨내는 내공이 될 것입니다. 늘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이 되었다면,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극단적 선택은 피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는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부모일까요. 아니면 처자식일까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을 품어야 합니다. 힘들어 하는 자신을 짠한 마음으로 어루만지고, 감싸고, 토닥거리고, 힘내라며 격려하여야 합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손 내밀 데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을 때, 가장 힘이 되는 곳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가슴을, 심장을 가엾이 여기며 눈물 흘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끄덕끄덕 견뎌가는 자신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기도할 때 언제나 제 자신을 위해 먼저 기도합니다. 내 가족도, 내 이웃도 내가 힘들거나 불행하게 되었을 때는 아무 힘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불행이나 시련도 우리가 감사할 여지가 있는 것은 그 시련은 겨울과 같기 때문입니다. 겨울은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고, 그 겨울이 끝나면 반드시 봄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섭리가 우리 삶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구름이 끼면 기분이 우울해지는 까닭은 우리네 삶도 자연의 순리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시련은 이처럼 반드시 끝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시련을 겪는 동안에도 우리는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제 주변을 보아도, 그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시련을 감내한 이들은 모두 되살아났음을 봅니다.
모 출판사에서 일할 때 원로 시인 김윤성 선생님의 시집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제가 만들었는데, 저는 평생 이 시집 이름을 기억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아무 일 없는 하루’가 바로 생명처럼 귀한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평화롭고 감사한 일인지 체험하였으니까요. 세상에는 지금도 악몽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 ‘아무 일 없는 하루’, 그것은 가슴 떨리도록 행복한 일상입니다.
아무 일 없는 하루에서 감사하고 기뻐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 주변에서 감사를 인식하기 시작하면 됩니다. 그래서 내 삶을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가는 일만으로도 기적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평소 상처가 되던 일도 감사로 승화되고, 그 감사와 기쁨이 쌓이면 더욱 행복질 것이고, 혹여 큰 시련을 만난다 하더라도 좀 더 의연하게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해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