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15_벽돌에서 흘러나오는 웃음
금세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내일 또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아무 일 없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한 일입니다.
아쉬움뿐인 삶일지라도 가만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의미 없는 것이 없습니다. 슬프고 아팠던 이별조차 슬픔과 아픔의 생채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실의 이별을 통해 새롭게 얻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대학졸업 후 10년 넘게 공부만 한 적이 있습니다. 언제나 인생 낭비였다고 회한하였던 그것이 이즈음 되돌아보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지겹도록 가난하게 살았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습관처럼 기도를 합니다. 가난이 기도를 낳고, 기도가 감사를 낳습니다. 어둡고 슬펐던 나의 과거들이 다 쓸모없는 것들이 아니라, 지금 이 ‘아무 일 없는 삶’을 꾸리는데 보탬이 되었을 것이며, 앞으로 더 찬란한 삶을 사는 데 힘이 될 것이니 감사한 일입니다. 생각하기 싫은 과거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삶의 오점들조차 감사로 다독이면 어둠을 사르는 빛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삶은 순간순간이 의미요, 감사입니다. 잠깐 눈을 감고 이 순간을 묵상해 보면 감사하고 기뻐할 일이 쌔고 쌨습니다.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 인생을 즐긴다는 뜻입니다. 매 순간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사와 기쁨이 진실로 우러나와야 즐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즐긴다’는 표현과 관련하여 크게 감동한 시 한 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신앙시이긴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감사가 최고로 표현되어 있는 시였습니다.
벽돌 하나하나에서 웃음이 흘러나왔어요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
당신께서 말씀하신 단 두 마디가
내 삶을 바꾸었어요.
“나를 즐겨라”
당신이 짊어지셨던 십자가,
난 내가 져야만 하는 짐덩이인 줄 알았는데
사랑이 내게 한번 말을 건넸어요.
“난 노래를 부른단다.
넌 그걸 듣고 싶어 하니?”
그리고선 길가의 모든 벽돌에서
또 하늘의 모든 기공(氣孔)에서
웃음이 흘러나왔어요.
기도의 밤이 흐른 뒤,
그분이 노래하실 적에
그분은 내 삶을 바꾸셨어요.
“나를 즐기렴”
우연찮게 이 시를 읽다가 ‘나를 즐기라’는 시구에서 저는 그만 큰 감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였습니다. 언제나 흠숭의 대상이었던 하느님을 즐긴다? 예수님을 즐긴다? 십자가를 지고 노래를 부른다? 이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멋집니까. 이런 표현은 영성이 사뭇 깊지 못하면 아마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2천년이 넘도록 이 세상 최고의 지성들이, 이 세상 최고의 감성들이, 이 세상 최고의 영성들이 믿고 따랐던 그분은 우리의 불행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행복을 위해 오셨습니다. 기쁨과 평화를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즐길 수 있도록 허락하셨으니 ‘신앙’은 감사하며 즐기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짊어지셨던 십자가를 생각하며 그 중압감에 시달릴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길가의 벽돌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다.’
표현이 참 대단하지요? 벽돌 하나하나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려면, 나의 내면이 얼마나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차야 할까요. 벽돌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는 아니더라도, 요즘 저는 내 영혼에서 이명처럼 들리는 웃음소리는 듣습니다.
감사와 기쁨, 인생의 금쪽같은 것들입니다. 이 감사와 기쁨을 신앙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바로 당신의 일상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