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란 자제; 극기, 삼감, 중용 등의 의미와 함께하며, 자신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절제는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무수히 많은 인내와 과정을 거쳐 이룩되는 것으로서 최종적인 단계에 이르게 되면 만족과 평안이 함께합니다. 절제는 단순히 인위적으로 되어지기 보다는 자연적으로 행해질 때 가치가 있습니다. 진실된 절제란 항상 겸허하게 자신을 반추하는데서 얻어집니다.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절제하게 됩니다. 절제의 심오한 이치를 통찰하기 위해서는 가장 근원적인 의식으로 침잠해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그 근원적 의식이라는 것은 바로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계율을 지키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원의식에 다가서려면 삶이 가져다주는 세속적인 기쁨과 즐거움의 달콤함을 미련 없이 버리고 애욕을 초월하여 부처님의 맑고 밝은 정신을 증득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근원의식이란 바로 부처님의 법신(法身)이자 다르마(Dharma)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현대식 용어를 사용해서 표현했을 뿐 그 뜻을 왜곡시키지 않는다면 그 명칭의 차이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차원이 좀 다르지만 그래도 근원의식의 단면을 설파한 노자께서도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라고 하였습니다. “도(道:Tao)를 도(道)라고 말하지 말고 이름을 이름으로 생각하지 말라.” 즉, 말에 얽매이지 말고 그 말의 이면의 뜻을 심오하고 탐구할 것이며 도(道)를 이름 붙여서 말하면 그 도(道)의 심오함을 손상시킬 수 있음을 경고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의 도(道)는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견성(見性)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Tao와 견성은 상호 회통한다고 봅니다.
즉 우리는 욕망의 절제, 성욕의 절제, 금전에 대한 욕구로부터의 절제, 앎으로부터의 자유 등등 수많은 절제와 자유를 삶을 향해서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삶은 우리의 호소를 잘 들어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잘 캐치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무지(무명:無明), 즉 어리석움 때문입니다. 절제는 숭고한 미덕입니다. 잘 정제된 절제는 믿음과 신뢰를 가져다주며 자신의 신성을 회복시켜 줍니다. 절제는 탐욕과 이기심을 끊고 항상 평화로운 마음과 평온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줍니다. 절제를 위해서는 점진적 절제(Incremental Temperance)를 추천합니다. 한꺼번에 절제를 이루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꾸준히 정진하다보면 절제의 극치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절제의 극치란 평화와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우리의 옛 조상님들이 평화롭게 누리며 살았던 대동(大同)의 세계가 다시 열린다는 것입니다. 절제는 만인들이 추구해야할 미덕이며 고상하고 고결한 가치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이상적 꿈이 아닙니다. 절제는 현실 속에서 얻어져야 합니다. 절제와 인내는 쌍둥이 격입니다. 인내하지 않고서는 절제할 수 없으며, 절제를 하게 되면 인내력을 함양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인내가 매우 중요한 수행의 덕목임을 강조하셨으며, 6 바라밀에 해당하는 보시(남에게 배품), 지계(계율을 지킴), 인욕(욕심을 참음), 정진(부지런히 수행함), 선정(고요함을 닦음), 지혜(밝은 맑고 자유로운 상태에 이름)들 중의 하나로서 인욕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이 설파하신 인욕을 보다 광범위한 의미로 해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욕심만을 참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사의 일들에 대해서 인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로부터 참을 인(忍)자 3개만 가슴에 지니고 있으며 살인도 면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불제자에게는 참고 견디는 인내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물론 무조건 인내하라는 것이 아니라 바른 말, 바른 생각, 바른 행위 등 팔정도(八正道)를 펼치면서 삶을 살아가되 원수를 만나거나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인내하고 자비를 배풀고 침묵할 줄 알라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다보면 정말 부처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히게 주옥같은 구절이 많아 감탄과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전이 오래되어서 처음에는 일반 불제자님들은 깊이 가슴에 안와 닿을 수 있으나, 깊이 사색하고 자신을 반성하면서 경전을 읽어보면 느낌이 올 것입니다. 저 역시 원각경, 아함경, 금강경, 법화경, 열반경 등을 통해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지금 느끼는 것은 불제자의 길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그 길을 걷는 것만큼 위대하고 거룩한 길은 없다고 봅니다. 부처님의 길은 이 지구상에서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공자님, 예수님 등 다른 분들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제가 공부한 바로는 그리고 제 수준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가르침이 가장 저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도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공자님의 가르침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도교의 시조인 노자께서 설한 도덕경의 가르침도 저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러한 모든 가르침들 가운데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각설하고 여하튼 우리에게는 인내와 절제가 중요합니다. 어떤 직업군에 종사하든지 인내와 절제는 자신을 한 층 더 높이 업그레이드하는데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절제는 내면에서 이루어지며 인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교적 잘 이루어집니다. 절제는 순전히 내면의 과정입니다. 인내는 내면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외면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면과의 싸움이라고 해서 무조건 타인과 싸워서는 안 되고 내적인 투쟁(Inner Struggling)을 통해서 내적 평온을 얻어야 합니다. 어느 책에서 인디안 추장이 한 말처럼 악한 마음에 먹이를 주지 말고 선한 마음에 먹이를 주어야 합니다. 즉 법우님들이 악한 생각을 가급적 삼가고 선한 생각을 하다보면 바른 마음을 갖게 되고 바른 마음을 갖게 되면 결국은 평온 마음을 얻게 되며 평온한 마음을 얻게 되면 무위자유한 마음, 무심즉심(無心卽心)의 상태에 이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했거나 절제와 인내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삶을 보다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절제와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삶은 피폐해지고 가난해 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면의 에너지를 잃어버리는 것이며 삶의 엑기스를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쓸데없는 일에 생각의 에너지를 쏟지 말고 별로 필요 없는 일에 관심의 에너지를 쏟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생각과 잡념에 먹이를 주는 겪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지 정말로 알고 있다면 그 것을 향해 나아가야합니다. 절제와 인내는 바로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방향을 정확하게 예의주시하는데 있어 강인한 힘을 제공해 줍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법우님들의 성불을 기원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신영호 합장
첫댓글 절제는 무엇보다 마음의 평온에 초점을 두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Temperance란 단어의 뜻에는 그러한 마음의 안정성이 함유되어 있다고 봅니다. 절제하면 마음의 평온이 오고 마음의 평온을 찾으면 절제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picnic 합장
"절제는 단순히 인위적으로 되어지기 보다는 자연적으로 행해질 때 가치가 있습니다." 라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절제를 한다는 것 자체는 인위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닌가요?
기성님 안녕하세요! 처음에는 절제를 인위적으로 해야 하나 나중에는 점차로 자연스러워지는 것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자율통제가 된다는 거죠. 즉,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처음에는 화두를 들고 노력을 하지만 어느정도 수행이 되면 자동으로 되고 또한 염불선도 처음에는 인위적으로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무의식적이고 자연스럽게 되는 경지에 이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키보드를 익힐때에도 처음에는 한글자 한글자 인위적으로 되지만 어느정도 수준에 이르면 안보고서도 키보드를 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거든요. 절제가 100% 자연스럽게 되려면 불과를 증위해야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일반 불제자들도 노력하면
어느정도의 자연스러움을 얻어 나갈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성님의 공부 일취월장하시길 바라면서 저도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icnic 합장
매번 마음을 되돌아보게하는 글들...감사히 가슴에 새깁니다. 체험의 종교가 불교이기에 매일 일체처일체시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묻고 생활한다면, 절제뿐 아니라 마음의 거짓된 삼독심은 자연히 잦아들듯하네요...합장으로 인사드립니다.
우주에서 최고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에 금강 합장드립니다 _()_
좋은글 감사합니다...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좋은글 감사합니다, 세현 합장 ()
신영호님 글 잘 읽엇습니다. 제가 금강경에서 느낀것은 부처님 법은 말로 글로도 표현이 어렵다는것입니다 경을 봐도 각자의 수준에 따라 그만큼만 보인다는겁니다.금강경에 부처님께서 나는 설한 바가 없느니라 하셧습니다 그렇게도 많은법을 설해놓으시고도 한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하시는 대목에서 법을 땟목의 비유에서도 집착은 도움이 안되는것을 오늘 또 님의 글을 보면서 반성하고 다시한번 깨우처 다짐을 합니다 감사합니다_()_
자기를 피폐화 시키는 모든 일들이 절제를 하지 못해서 그런것 아니던가요. 마음에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
절제와 인내는 순간순간 필요로 합니다 아차하면 수만리를 달릴수도 있으니까요...님의 솔직하고 거짓없은 논리는 만인의 사표가 됩니다.자신의 몸이나 마음을 돌보는데 순간순간 절제와 인내를 저는 애를 써서 하는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혼자 있거나 여럿이 있거나 항상...
산다님 너무 반갑습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좋은 말씀도 조언도 해주시고요. 감사합니다. picnic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