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명수존자 (明首尊者)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로서 석가세존을 따라 불법을 학습한 적이 있었으며 성심으로 연마하여 보살과위를 받았다.
그의 생각이 신비하고 특이하여 석가모니와 비슷한 지혜가 있었다.
대승학설을 밤새껏 읽어 불법계율에 익숙했으며 깊고 넓은 불교이론은 마치 넓고 끝이 없는 천공처럼 넓었다.
어느 때 어느 곳 에서나 대중들에게 불교교의를 전하고 제도할 때 서로 다른 풍속습관에 따라 지도하여 세상 사람을 감동시키고 깊은 어둠 속에서 이끌어 중생들을 피안에 이르게 하였다.
명수는 언변이 심오하여 변화를 짐작할 수 없었으며 민간의 원망을 제거 하고 세상 마귀들의 장애를 굴복 제압시키고 외도를 굴복시켜 불법에 귀의시켰다. 시방(十方) 각지를 도보로써 다녔으며 각종 사교외도는 모두 그를 가로막지 못하였다.
『불설유수보살무상청정분위경(佛說儒首菩薩无上淸淨分衛經)』상권의 기재에 의하면 명수보살은 일찍 사위국 지수급고독원에서 석가모니의 설법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또 석가모니의 제자 대비구 5백명, 보살 천명이 함께 불학의 진리를 탐구하였다. 또 『불설보살본업경(佛說菩薩本業經)』1권의 기재에 의하면 “서남무국에 보림찰이 있었는데 불명은 상정진(上精進)이고 보살의 이름은 명수이다.”라고 하였는데 명수는 서남지역의 보살이다.
112. 금수존자 (金首尊者)
즉 금두선인(金頭仙人)이다. 범명은 가비라선(迦毘羅仙)이다.
본래는 외도였다. 소위 외도는 즉 불교 외에 세운 도라는 것인데 『삼론현의(三論玄義)』상권에서 말하기를 “기묘한 허통(虛通)에 이르러 이를 보는 것이 도인데, 마음이 도 밖에 있을 때 이를 외도라 한다.”고 하였다.
금두선인의 주장은 『마가지관(摩訶止觀)』10권에서 “인(茵) 가운데 과(果)가 있음을 헤아린다.”라고 말하였으며 『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1권에서 말하기를 집유(執有)라고 하였는데 사람들은 그가 창립한 파벌을 ‘수론부(數論部)’라고 칭하였다.
그후 금두선인은 불교이론의 생론중에서 점차 자기 이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법에 귀의하여 정과를 이루었다.
113. 경수존자 (敬首尊者)
이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얻었으며 시방(十方) 모든 대보살 중의 한분이었다.
불교경전『불설보살본업경(佛說菩薩本業經)』의 기재에 의하면 “동방무극에 향림사가 있는데 불명은 입정진(入精進)이며 보살의 이름은 경수이다.”라고 하였다. 경수는 동방의 보살위치에 있었는데 그는 신통묘달하여 세상 어느 곳에서나 그의 복과 덕을 그리워하지 않은 이가 없다.
그는 불교의 대승과 소승의 교의를 깊이 이해하고 늘 불법을 포교하였으며 홍익 인간사를 탈피하여 해탈하였다. 그는 천생의 지혜는 석가모니와 같은 자비를 가지고 여러 방법으로 중생을 감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서원에 대해 처음부터 동요한 적이 없었으며 세상 중생으로 하여금 3도(三途)의 고생을 면하게 하였는데 불(火)에 들어가는 것을 면하고, 지옥 덤불 속에서 고통 받지 않게 하고, 혈도(血途)에 들어가는 것을 면하고, 짐승들은 상호 잔식(殘食)의 고통을 받지 않게 하고, 칼길(刀途)에 들어서는 것을 면하고, 아귀(餓鬼)들에게 칼에 찍히는 핍박의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
경수존자는 중생들에게 무한한 이익을 주었으며 그로 하여 무상극과(无尙極果)를 얻고 전불(前佛)이 멸도한 후에 곧 부처님이 되어 불위를 차지하였다.
114. 중수존자 (衆首尊者)
즉 중수불(衆首佛)이다.
『자비도장참법(慈悲道場懺法)』에 의하면 돈권중생(敦權衆生)은 늘 남무중수불(南无衆首佛)의 이름을 외우곤 하였는데 그 때문에 복록을 받았다.
중수불은 세상의 대자비부친(大慈悲父親)을 지켰으며 그는 지혜가 무량하고 신통광대하여 각종 마귀들을 굴복 제압시킬 수 있었고 무량중생을 정도에 들어서게 하였다. 중생들은 성심으로 중수불에게 지심정례하여 참회하였으며 무량한 죄과를 모두 없애고 무량한 복의 뿌리가 모두 싹이 트게 하여 정토(淨土)에 이르고 보리심을 얻었다
115. 변덕존자 (辯德尊者)
존자의 이름은 낙건달파(樂乾闥婆)인데 4건달파 중의 한명이었으며 가요소리가 아름답고 연주를 잘하여 가창의 천신이었다.
이 천신은 세상의 보산(寶山)에 거주하였는데 그가 거주하는 곳의 산림, 사자, 범, 승냥이, 표범, 소, 양, 닭, 새는 모두 화목하게 지냈다. 낙건달파는 각종 새와 짐승을 사랑하였다. 그는 외출할 때면 청색 누에 실로 짠 의복을 입었고 공작새의 날개털로 기를 달았는데 모든 짐승들은 몰려들었고 새들은 빙빙 날아돌았다.
천신은 그의 연주가 필요할 때는 사자의 통보가 없이도 스스로 알아차리고 능히 제때에 악대를 거느리고 4건달파와 같이 하늘에 올라가 연주하였다. 낙건달파도 아름다운 가요를 연주하였는데 여러 부처님들을 낙원회락하여 즐겁게 하였고 백성들을 화기교화하였다.
116. 찬제존자 (찬堤尊者)
즉 찬제보살이다
『불명경』17권에 예를 든 응당 예배해야 될 시방(十方) 대보살 중에서 찬제보살을 첫 자리에 놓았다.
『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2권에는 석가모니께서 아난에게 소승(小乘)과 보살을 구별할 때 찬제를 예로 든 적이 있었는데 높이 찬양하면서 “소승의 자애로움은 마치 근육과 피부와 같으며 대사의 자애로움은 골격과 같다. 무엇으로 밝히랴? 만약 사람이 보살 손발을 잘라내면 유자(乳者)로 변하는데 즉 자증(慈証)이다. 찬제비구가 바로 그 일을 당한 것이다. 비유하여 말한다면 여인이 자식을 낳으면 곧 젖이 난다는 것이다. 이 자비의 감화에 자연히 변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찬제존자는 대자비의 마음을 구비하고 일체 고난을 참아내어 중생을 감화시켜 중생이 구제된다면 손발이 잘려 혈관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고통마저도 즐겁고 기꺼이 임하였다고 한다.
117. 오달존자 (悟達尊者)
당말 고승이며 성은 진(陳)이고 미주홍아(眉州洪雅) 사천사홍인이었다.
다섯 살에 시를 읊을 줄 알았고 소년시절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처음에는 팽주(城都西) 단경산(丹景山)에 거주하였다.
14세 때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열반경(涅槃經)』을 강의하였는데 당시 진보살(陳菩薩)이라고 하였으며 이상은(李尙隱)은 그를 위해 시를 썼는데 “14세의 사미가 경을 강론하였으며 곧 스승이 강의함과 같도다. 사미가 설법하고 스님들이 들으니 바른 불법이란 나이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심성이 영리함에 있다.”고 하였다.
후에 장안 안국사(安國寺)에 거주하였다.
당선종 원화원년(元和元年 806) 오달국사(悟達國師)의 칭호를 받았는데 전국의 불교영수가 되어 자주 황궁에 초빙되어 황제에게 강경하였다.
함통(咸通) 10년(869)에 당의종이 친히 안국사에 와서 지현오달국사에게 강경보좌를 베풀어 주었는데 좌석높이는 두 장(丈)이며 침향을 재료로 하고 금실로 용봉황의 꽃무늬를 박고 옆에 올라앉는 길도 설치하여 국사가 보좌에 올라 강경하게 하였다.
당의종 중화(中和) 원년(881)에 황건봉기 의군들이 장안을 점령하여 희종이 성도로 이사가고 황제가 촉나라에 있던 지현을 초자하여 궁중에서 희종에게 불경을 설법하고 해석하게 하였다.
다음해 지현은 의종을 떠나 섬서(陝西)에 돌아왔다.
기원 883년에 지현이 입적하였다. 오달국사는 삼학동관(三學洞貫)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졌는데 불학저작은 모두 20여만언(二十余万言)이었다.
제자는 승철(僧徹)이며 승철의 제자는 각휘(覺暉)인데 모두 승통(僧統)으로 임명받고 모두 한때 이름이 높은 고승이었다.
118. 법정존자 (法定尊者)
즉 법정보살이다.
『화수경(華手經)』 4권의 기재에 의하면 세계 한곳의 이름을 덕처(德處)라고 불렀다고 한다.
덕처세계는 과거 부처님 계신 곳에서 살고 계셨는데 이름이 사가주라고 하였다.
법정보살은 즉 사가주불의 현세화신이었다. 불교는 인식하건데 불법이 넓어 광명이 어디나 다 비추고 능히 만물을 비출 수 있어 횃불과 같다는 것이다.
법정보살의 이름과 호칭은 바로 그의 깊고 정묘한 법력도행(法力道行)이 마치 큰 지혜의 등불과 같다는 것을 나타내었으며 중생을 위해 극락정토로 통하는 길을 비추었다.
119. 리구존자 (리구尊者)
존자는 천신으로 그가 첫 번째로 중생에게 예시하여 실달태자가 불타가 되었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제 11권의 기재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정반왕의 집에서 출생하였는데 그를 실달태자라고 하였다. 그 후 수년간 바람과 비가 알맞게 와서 우박이 내리는 일도 없고 폭우 폭풍 가뭄 등이 발생하지 않았다.
각종 곡식은 적게 심고 많이 거두었으며 밭의 과일나무는 계절따라 꽃 피고 제때에 열매가 달렸으며 산의 약초들은 무성하여 수시로 사람들이 캘 수 있었다.
전국백성들은 동심동덕(同心同德)하여 화목하게 지내고 4변의 이웃나라들과 친한 왕래로 전쟁이라곤 없었다. 모든 성시의 주민들은 임신한 자는 편안히 몸풀고 어린 나이에 죽는 자가 없고 사계절 모두 유행병이 없었다.
온 백성들은 모두 이것이 실달태자의 복덕이라고 생각하여 국민의 청으로 정반왕과 실달태자가 아름다운 화원에 와서 국민에게 사례를 하게 하였는데 이 시간에 무수한 영락, 금은, 음식, 의복과 옷을 바쳤는데 누구나 손뼉치고 춤을 추었다.
이때 리구천신은 허공에 떠서 중생들에게 말하기를 “대지와 성이 모두 황금으로 변한다 해도 실달태자의 한가닥 털과 비할 수 없으며 아무리 진기한 영락도 실달태자 앞에서는 광택을 잃으며 곧 불타가 되기 때문에 그의 공덕은 무엇으로도 비할 수 없다.”고 하였다.
리구는 말을 마친 후 자기가 사는 하늘위의 궁전으로 돌아갔다.
120. 경계존자 (境界尊者)
즉 구경계보살(具境界菩薩)이다.
『분신왕문경(奮迅王問經)』 하권의 기재에 의하면 과거에 한 부처님이 계셨는데 이름이 보무구정광명왕(普无垢淨光明王)이며 구경계보살이 이 부처님께 분신법문을 가르침 받았는데 보무구정광명왕불은 그에게 상세히 진술하였는데 분신법문의 중생들은 삽시간에 모두 아누다라(阿耨多羅) 삼막(三藐) 삼보리(三菩提)를 기원하는 마음이 생겼으며 석가모니께서도 그때 분신법문을 얻었다.
소위 분신은 사자가 삼매에 신속히 달려갔다는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비유로서 몸에 털이 곤두서고 노호하는 무서운 모양을 드러낸 것을 분신이라고 하고, 부처님께서 대비의 문을 열어 대비법계의 몸을 흥분시켜 무서운 모양이 나타나는 것을 사자분신이라 하여 사자분신삼매라고도 하였다.
구경계존자는 이미 무상정등정각을 구비하고 대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의 번뇌와 노파심을 없애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