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우공양을 상(床)공양으로 바꾸고 있는 절이 늘어나고 있어 안타깝다.
전통 공양의식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발우공양은 대중 식사의식의 전범(典範)으로 전통사찰에서는 예부터 엄숙히 시행돼 왔다. 큰 방 선반 위에 발우가 정연하게 얹혀 있는 정경은 숙연한 분위기와 함께 수행가풍을 느끼게 한다.
발우공양 때 선반의 발우를 내리고 좌차(座次)대로 앉아 발우를 펴고 죽비에 맞춰 공양을 행하는 의식은 단순한 식사를 위한 것만이 아닌 수행의 한 법도이다.
발우를 펴기 전에 부처님의 일생을 읊은 게송으로 부처님을 되새기고 천수(天水)물을 발우에 받아 밥그릇 국그릇 찬그릇을 헹구고 수저를 천수그릇에 담고 밥을 퍼담고 끽반을 하고 찬을 덜어내고 밥을 먹기 전에 또 게송을 외고….
응량기(應量器)라 일컫는 발우에 담기는 음식을 보며 삼륜(三輪, 주는 사람-받는 사람-그 주고받는 물건)이 청정하기를 축원하고 밥이 내게 오기까지의 공덕을 기린다.
이른바 오관게(五觀偈)다.
이 밥이 내게 오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분의 공을 새겨보고(계공다소량피래처·計功多少量彼來處),
나의 덕행을 새삼 돌아본다(촌기덕행·村己德行).
그리고 그 덕행에 따라 음식량을 가늠한다(전결응공·全結應供).
탐내는 마음을 제어하고(방심이과 탐등위종·防心離過 貪等爲宗),
몸이 야위는 걸 막는 약으로 생각하고(정사양약 위료형고·正思良藥 爲療形故),
도업을 이루기 위해 이 밥을 먹는다(위성도업 응수차식·爲成道業 應受此食).
밥 한그릇을 먹는데도 이처럼 깊은 생각을 하는 발우공양이다. 음식찌꺼기 하나도 남지 않게 숭늉으로 그릇을 훑어 그걸 마시고, 그러고는 천수로 그릇을 깨끗이 헹구고 수건으로 발우를 말끔히 닦는다. 격식에 따라 발우를 묶어 다시 선반의 제자리에 얹어 놓는다.
시절이 변하여 편의주의를 택해 뷔페식으로 식판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지만, 전통의식은 지켜졌으면 좋겠다. 형식이 바뀌면 내용과 정신도 바뀌기 십상이니까.
[불교신문3021호/2014년6월28일자]
첫댓글 남회근 법사님의 글을 보면, 평복을 입고 당신 강의를 들으러 온 수녀님에게 성당을 나와서도 수녀복을 입을 것을 권고합니다. 그 이유는 '옷이 계율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 삼보사에 살적에 원주스님이 상공양을 준비하였다가,
청화선사로 부터 꾸중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진두 위원님 글과 같이, 형식이 바뀌면 내용과 정신이 바뀌기 쉬운점을 우려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참 수행자는 성상일여(性相一如), 안의 성품과 바깥으로 드러난 모습이 한결 같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어려운 일이기에 방한암 선사는 먹물옷 입고 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평소에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나무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