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독서의 창>
내면을 깨우는 시원한 바람
*선방일기*, 지허
"오후에 바람이 일더니 해질녘부터는 눈발이 날렸다. 첫눈이어서
정감이 다사롭다. 오늘도 선객禪客이 여러 분 당도했다.(...) 어둠이
깃드니 무척이나 허전하다. 세속적인 기분이 아직도 소멸되지 않고
잠재되어 있다가 불쑥 고개를 치민다. 이럴 때마다 유일한 방법은
화두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객은 모름지기 고독해야 한
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벅찬 일이
기 때문이다.(...)누구보다 비정하기에 다정다감할 수도 있다. 누구
보다도 진실로 이타적이기 위해서는 진실로 이기적이어야 할 뿐이
다. 모순의 극한에는 조화가 있기 때문일까."
김장 울력(스님들이 함께하는 공동작업), 결제, 선방의 생태, 선객
의운명, 본능과 선객, 용맹정진, 별식의 막간, 열반에 이르는 길 등
23개의 주제로 수행자의 일과를 적은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는 내
가 강원 춘천에 갔을 때 장익 주교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인데 언제
읽어도 감칠맛이 있다.
1973년 <신동아>논픽션 당선작이기도 했던 것을 내용이 하도 좋
아 단행본으로 엮었다고 한다.
"그믐이다, 삭박하고 목욕하는 날이다.(...)날카롭게 번쩍이는 삭
도가 두개골을 종힝으로 누비는 것을 볼 때는 섬뜩하기도 하지만 머
리카락이 쓱쓱 밀려 내릴 때는 시원하고 상쾌하다. 바라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 때문이다."
"오후 1시가 되자 시간표에 의해 동안거冬安居의 첫 입선入禪을
알리는 죽비소리가 큰 방을 울렸다. 각기 벽을 향해 결가부좌를 취
했다. 고요했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이 삼동에 견성하겠다
는 소이에서일까. 그 외양은 문자 그대로 면벽불面壁佛처럼 미동도
없다. 그러나 그 내양은 어떠할까. 인간의 복수심과 승리욕은 밖에
서보다 자기 안에서 더욱 가증스럽고 잔혹하다."
매우 솔직담백하면서도 구도자의 깊은 사색과 예리한 성찰이 돋
보이는 수행일기를 읽고 나니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내면을 흔들어
깨우는 느낌이다. 꼭 불자가 아니라도 이 책을 새겨 읽고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의 도량에서 청정한 눈빛을 잃지 않도록 매일의 '선방일
기'를 써보면 어떨까.
<153쪽 ~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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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해인글방*
작업실이란 이름이 딱딱하다며
친구 수녀들이 붙여준 이름. '해인글방'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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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자고 일어난
늘 깨어나는
어둠이 나를 반겨주는
나만의 소중하고 귀한 시간
깊어가는
가을
조요하던
우리네 삶에
어제 오후 부터
평화가 깨지는
우울한 소식에
대한민국
모든 이들이
잠못 이룬 밤이었으리라
그래도
난
잘 자고 일어났다
참
삶이란
한치앞도
모르는 것이다
부디
더 이상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바란다
2010년 11월 24일
철없는 농부의 아내
윤
주
첫댓글 동감입니다. 오랜동안 조국에 몸바쳐온저도 너무나 실망이 크고 안타깝습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조용한 몸과 마음이... 자연을 닮아 사는 스님들의 삶의 모습이 고요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