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나도 꽤 괜찮았어요. 동글동글하며 탱글탱글한 몸으로 잘도 굴러 다녔지요. 내 몸의 몇 십 배나 되는 무게도 감당해가며....
그와 함께라면 가지 못 할 곳이 없었어요. 잘 뚫린 고속도로도 겁 없이 질주하였고 구불구불 멀미나도록 어지러운 산길과 온 몸을 아프게 찔러대는 자갈 박힌 시골길도 마다 않고 달려주었지요. 항상 숨가쁘게 달려야만 하는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내가 해야만 할 일이기에,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었기에 난 행복할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내 몸도 닳고닳아 탄력을 잃었을 때 더 이상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다며 그는 나를 미련 없이 버리셨어요. 쓰레기더미 쌓여진 냄새나는 빈 공터의 한 귀퉁이에 나도 쓰레기가 된 것이지요.
내 초라한 몸 위에 세찬 바람 불어닥치고,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눈부시도록 햇살이 따스하던 어느 날.
허리가 산처럼 휘고 머리엔 아직도 눈이 하얗게 쌓여 있는 한 노인이 내 앞에 나타났어요. 나처럼이나 늙고 희망이 없어 보이던 그 노인은 쓰레기만 가득한 공터를 두리번거리더니 내게로 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입가엔 미소까지 살며시 지으며....
노인이 나를 힘겹게 끌고 간 곳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회색 빛 공간이었어요.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나를 왜 이곳까지 끌고 왔는지, 나에게 무엇을 얻으려 함인지를....
노인은 더럽고 냄새나는 내 몸을 깨끗이 씻어주더니 텅 빈 내 쓸쓸한 가슴에 보드라운 흙을 가득 채워 주었어요. 그리곤 씨앗 몇 알을 가슴속에 묻어주셨지요. 노인은 매일같이 정성을 다하여 나를 보살펴 주셨으며 메마른 가슴 흠뻑 젖도록 물을 뿌려 주셨지요.
노인은 외로웠는지 가끔은 다가와 내 몸을 쓰다듬어주시며 알 수 없는 말들을 하곤 하셨어요. 숨막혀오는 회색 빛 공간 속에서 내 가슴속에 담긴 얼마 안 되는 흙을 통하여 숨을 쉬는 듯한 노인에게 나는 희망을 안겨드리고 싶었어요.그래서 나는 가슴 가득 사랑을 담아서 동그랗게 동그랗게 내 몸을 부풀렸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가슴 언저리가 간질간질하더니 작고 여린 새싹들이 돋아났어요. 한낱 쓰레기로 버려졌던 내가 생명을 키워낸 것이지요. 버려진 것들의 그 쓸쓸함을 아는 한 노인의 사랑 안에서....
지금은 새싹들이 다 자라나 예쁜 꽃들을 피워냈답니다. 그리고 그 꽃들의 향기는 아스팔트처럼 굳어만 가는 세상을,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을 설레게 한답니다. 나를 본 사람들은 모두들 한마디씩 하지요.
"어머, 폐타이어가 꽃을 피웠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나는 가슴을 둥글게 내밀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답니다.
누군가의 배려로 만들어진 지금의 또 다른 내 삶이 너무도 소중하여...
첫댓글 폐타이어와 노인 그리고 꽃의 만남... 아름다운 풍경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