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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다송(東茶頌)」 다시 읽기
중국에 육우의 『다경』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초의의 「동다송」이 있다. 초의는 무슨 일을 계기로 「동다송」을 지었을까? 「동다송」을 오늘날 흔히 읽는 것처럼 분장(分章) 방식으로 읽는 것은 타당한가? 실제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우리차에 대한 기록은 얼마나 상세한가?
「동다송」의 창작동기
「동다송」의 창작 동기는 1837년에 정조의 외동 사위인 홍현주(洪顯周)에게 보낸 편지의 말미에 잘 나타나 있다.
천 그루 소나무 아래서 밝은 달을 마주 하고 수벽탕(秀碧湯)을 달입니다. 탕이 백수(百壽)가 되면, 언제나 이것을 가져가 도인께 바쳤으면 하고 생각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문득 밝은 달과 더불어 자리 곁에서 모시는 것이 낫겠지요. 이는 서로 멀리 떨어져 막혀있지 않은 까닭일뿐, 무슨 특별히 신통한 묘술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근자에 북산 도인의 말씀을 들으니, 다도(茶道)에 대해 물으셨다더군요. 마침내 옛 사람에게서 전해오는 뜻에 따라 삼가 「동다행(東茶行)」 한편을 지어 올립니다. 말이 분명하지 않은 곳에는 해당 본문을 베껴 보여 하문하시는 뜻에 대답합니다. 홀로 진부한 말로 어지럽고 번거롭게 하여 균청(鈞聽)을 모독하고 보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혹여 남겨둘만한 구절이라도 있겠거든 한 차례 가르침을 주시는 노고를 아끼지 마십시오.
千株松下對明月, 而煎秀碧湯. 湯成百壽, 則未嘗不思持獻道人. 思則便與明月爲侍座側而爲勝. 此其所以不相隔碍之道理也. 非別有個神通妙術而然也. 近有北山道人承敎, 垂問茶道. 遂依古人所傳之意, 謹述東茶行一篇以進獻. 語之未暢處, 抄列本文而現之, 以對下問之意. 自伱陳辭亂煩, 冒瀆鈞聽, 極切主臣. 如或有句可存者, 無惜一下金篦之勞.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첫째, 「동다송」은 홍현주가 다도에 대해 초의에게 물어 그 대답으로 지은 것이다. 둘째, 「동다송」의 처음 제목은 「동다행(東茶行)」이었다. 셋째, 시만으로 설명이 부족한 부분은 해당 원전의 본문을 베껴 써서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첫째, 홍현주는 왜 초의에게 다도에 대해 물었을까? 그는 이전부터 중국차를 즐겨 마셨는데, 초의의 차를 맛본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 차의 역사와 효능 등에 대해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초의는 1831년, 스승 완호의 삼여탑(三如塔)을 건립하면서 비문의 명문(銘文)을 홍현주에게 부탁했고, 이때 예물로 자신이 만든 수제차를 올린 바 있었다. 「동다송」은 홍현주의 요청에 따라 초의가 차의 역사와 우리나라 차의 역사를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 즉 이 한편으로 차 전반에 대한 이해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려는 의욕에서 지은 작품이다.
둘째, 「동다송」은 처음엔 제목이 「동다행(東茶行)」이었다. 초의는 왜 ‘행(行)’을 ‘송(頌)’으로 바꿨을까? 『시인옥설(詩人玉屑)』에서는 “체재가 행서 같은 것을 ‘행(行)’이라 하고, 정을 멋대로 놓아 부르는 것을 ‘가(歌)’라 한다. 體如行書曰行, 放情曰歌”고 했다. 「동다행(東茶行)」이란 제목은 우리나라 차에 대해 행서를 줄달아 내려 쓰듯이 단숨에 붓을 내달려 읊었다는 뜻이다. 가(歌)가 ‘방정(放情)’이라 하여 주관적 정회의 표출에 주안이 놓인다면, 행(行)은 서사(敍事) 쪽이 위주가 되는 양식이다.
그렇다면 ‘송(頌)’의 의미는 무엇일까? 송의 의미는 초의 자신이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서문에서 정확하게 규정한 바 있다.
송이란 것은 그 뜻을 찬송하고 펼치며, 핵심을 가려 뽑아 원류에 소통케 하는 것이다.
頌者頌宣其義, 選其要妙, 疏通源流.
얼마나 명쾌한 정의인가? 이렇게 보면 「동다송」은 차의 뜻을 기려 펼치고, 차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가려 뽑아, 차의 원류에 대해 환히 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쓴 시가 된다. 「동다행」이 단순하게 우리 차에 대해 늘어놓았다는 의미만 갖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인 의미가 되는 것이다.
셋째, 해당 원전의 본문을 중간 중간에 협주(夾註) 형식으로 끼워 넣음으로써, 시의 행간에 압축된 의미를 소상히 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 협주는 차의 원류와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원전을 한 자리에 모아, 맥락을 갖춰 읽으라는 친절한 배려인 셈이다.
「동다송」 새풀이
이제 지면 관계상 「동다송」의 시 원문만을 새로 풀이하여 제시한다. 원래 달려 있는 협주는 다른 참고 자료와 함께 압축하여 각주로 녹였다. 제목은 「동다송, 해도인의 명을 받아 짓다[東茶頌 承海道人命作]」이다.
1 后皇嘉樹配橘德 하늘이 좋은 나무 귤의 덕과 짝 지우니
2 受命不遷生南國 천명 받아 옮김 없이 남국에서 난다네.
3 密葉鬪霰貫冬靑 촘촘한 잎 눈과 싸워 겨우내 푸르고
4 素花濯霜發秋榮 흰 꽃은 서리 씻겨 가을 떨기 피우누나.
5 姑射仙子粉肌潔 고야산(姑射山)의 신선인가 분바른 듯 고운 살결
6 閻浮檀金芳心結 염부(閻浮)의 단금(檀金)인양 꽃다운 맘 맺혀있네.
7 沆瀣漱淸碧玉條 벽옥의 가지는 이슬 맑게 씻기우고
8 朝霞含潤翠禽舌 물총새 혀 같은 싹엔 아침 안개 함초롬해.
9 天仙人鬼俱愛重 하늘 신선 사람 귀신 모두 중히 아끼나니
10 知爾爲物誠奇絶 네 물건 됨 참으로 기특함을 알겠구나.
11 炎帝曾嘗載食經 염제(炎帝)께서 진작 맛봐 『식경(食經)』에 실으시매
12 醍醐甘露舊傳名 제호(醍醐)․감로(甘露) 그 이름이 예로부터 전해온다.
13 解酲少眠證周聖 술 깨우고 잠을 줄임 주공(周公)께서 증명했고
14 脫粟伴菜聞齊嬰 차나물 곁들인 밥 안영(顔嬰)에게 들었다네.
15 虞洪薦餼乞丹邱 우홍(虞洪)은 제물 올려 단구(丹邱)에게 빌었고
16 毛仙示藂引秦精 모선(毛仙)은 진정(秦精) 끌어 차 숲 보여 주었다지.
17 潛壤不惜謝萬錢 땅 속 귀신 만전 돈을 사례함 안 아꼈고
18 鼎食獨稱冠六淸 임금 밥상 육청(六淸) 중에 으뜸됨을 일컬었네.
19 開皇醫腦傳異事 수(隋) 문제(文帝) 두통 나은 기이한 일 전해져서
20 雷莢茸香取次生 뇌협(雷莢)이니 용향(茸香)이니 차례로 나왔구나.
21 巨唐尙食羞百珍 당나라 때 상식(尙食)에 갖은 진미 있었어도
22 沁園唯獨記紫英 심원(沁園)에선 다만 홀로 자영(紫英)만을 기록했지.
23 法製頭綱從此盛 두강(頭綱)으로 법제함이 이때부터 성해져서
24 淸賢名士誇雋永 어진 이와 명사들이 깊은 맛을 뽐냈었네.
25 綵莊龍鳳轉巧麗 용봉단(龍鳳團) 비단 장식 도리어 사치로와
26 費盡萬金成百餠 떡차 백 개 만드는데 만금을 허비했지.
27 誰知自饒眞色香 참다운 빛깔과 향 저절로 넉넉해서
28 一經點染失眞性 조금만 오염되면 성품 잃음 뉘라 알리.
29 道人雅欲全其嘉 도인께서 그 어여쁨 온전히 보전하려
30 曾向蒙頂手栽那 몽산(蒙山)의 꼭대기에 손수 심어 길렀다네.
31 養得五斤獻君王 다섯 근을 길러 얻어 임금께 바쳤나니
32 吉祥蕊與聖楊花 길상예(吉祥蕊)와 성양화(聖楊花)가 다름 아닌 이것일세.
33 雪花雲腴爭芳烈 설화차(雪花茶)와 운유차(雲腴茶)가 매운 향기 앞 다투고
34 雙井日注喧江浙 쌍정차(雙井茶)와 일주차(日注茶)는 강절(江浙) 땅에 떠들썩해.
35 建陽丹山碧水鄕 건양(建陽)과 단산(丹山)은 푸른 물의 고장이라
36 品題特尊雲澗月 제품으로 특별히 운간월(雲澗月)을 꼽는다네.
37 東國所産元相同 우리나라 나는 것도 원래는 서로 같아
38 色香氣味論一功 빛깔과 향 기운과 맛, 효과가 한 가질세.
39 陸安之味蒙山藥 육안차(陸安茶)의 맛에다 몽산차(蒙山茶)의 약효 지녀
40 古人高判兼兩宗 옛 사람은 둘을 겸함 아주 높게 평가했지.
41 還童振枯神驗速 늙음 떨쳐 젊어지는 신통한 효험 빨라
42 八耋顔如夭桃紅 80 먹은 노인 얼굴 복사꽃인 듯 붉네.
43 我有乳泉揖成秀碧百壽湯 유천(乳泉) 샘물 내게 있어 수벽백수탕(秀碧百壽湯) 만들어
44 何以持歸木覓山前獻海翁 어이 지녀 목멱산의 해옹(海翁)께 바칠건가.
45 又有九難四香玄妙用 구난사향(九難四香) 현묘한 작용이 또 있나니
46 何以敎汝玉浮臺上坐禪衆 무엇으로 옥부대(玉浮臺) 위 좌선(坐禪) 무리 가르칠꼬.
47 九難不犯四香全 구난(九難)을 범치 않고 사향(四香) 또한 보전하니
48 至味可獻九重供 지극한 맛 구중궁궐 이바지로 바칠만해.
49 翠濤綠香纔入朝 푸른 물결 초록 향기 조정에 들자마자
50 聰明四達無滯壅 총명함 사방 달해 막혀 체함 전혀 없네.
51 矧爾靈根托神山 신령스런 네 뿌리를 신산(神山)에 의탁하니
52 仙風玉骨自另種 신선 풍모 옥같은 뼈 저절로 별종일세.
53 綠芽紫筍穿雲根 초록 싹과 자줏빛 순 구름 뿌리 뚫고 나니
54 胡靴犎臆皺水紋 뙤놈 신발 물소 가슴 주름진 물결 무늬.
55 吸盡瀼瀼淸夜露 송송 맑은 밤 이슬을 죄다 빨아들인 잎에
56 三昧手中上奇芬 삼매(三昧) 솜씨 거치니 기이한 향 올라온다.
57 中有玄微妙難顯 그 가운데 현미(玄微)함은 드러내기 어려워서
58 眞精莫敎體神分 참된 정기 체(體)와 신(神)을 나누든 못하리라.
59 體神雖全猶恐過中正 체와 신이 온전해도 중정(中正) 잃음 염려되니
60 中正不過健靈倂 중정이란 건(健)과 령(靈)이 나란함에 불과하네.
61 一傾玉花風生腋 한번 옥화(玉花) 기울이자 겨드랑이 바람 일고
62 身輕已涉上淸境 어느새 몸 가벼워 상청경(上淸境)을 노니누나.
63 明月爲燭兼爲友 밝은 달 등촉 삼고 아울러 벗을 삼아
64 白雲鋪席因作屛 흰 구름 자리 깔고 인하여 병풍 되네.
65 竹籟松濤俱蕭凉 대바람 솔바람이 온통 모두 서늘하여
66 淸寒瑩骨心肝惺 청한(淸寒)함 뼈 저미고 심간(心肝)마저 오싹해라.
67 惟許白雲明月爲二客 흰 구름과 밝은 달을 두 벗으로 허락하여
68 道人座上此爲勝 도인의 좌석 위에 이것으로 ‘승(勝)’ 삼으리.
「동다송」의 내용 구성과 의미
「동다송」은 본문만 모두 68구 434자에 달하는 장시다. ‘동다송’이란 동다(東茶), 즉 우리나라 차를 찬송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차 역사를 시로 정리하겠다는 야심찬 의도였다.
전체 내용은 크게 5부분으로 나뉜다. 첫번째는 1구에서 10구까지의 서설이다. 차의 덕성과 효능을 노래했다. 차의 연원, 흰 꽃과 황금빛 꽃술, 푸른 가지와 새 혀 같은 싹 등 차꽃과 차잎의 생김새를 노래했다.
두 번째 단락은 11구에서 36구까지다. 상고의 염제(炎帝)로부터 한(漢)․수(隋)․당(唐)․송(宋)까지의 차에 얽힌 고사를 통시적 맥락으로 소개했다. 처음 연원에서부터 점차 차의 비중이 높아지는 당송에 이르기까지 효과적이고 적절한 고사 배치로 중국차의 연원과 역사를 간추렸다.
세 번째 단락은 37구에서 40구까지다. 동다(東茶) 즉 우리차의 색향기미(色香氣味)가 중국에 조금도 못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 초의는 그 논거를 『동다기(東茶記)』에서 찾았다. 하지만 막상 「동다송」 전체 68구에서 우리 차에 관한 내용이 단지 4구에 지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네 번째 단락은 41구에서 56구까지이다. 환동진고(還童振枯)하는 차의 효능과 구난사향(九難四香)의 단계, 차의 성질과 『다경』에 보이는 떡차의 모양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다섯째 단락은 57구에서 68구 끝까지이다. 체(體)와 신(神)의 조화를 이뤄 중정(中正)을 얻어 건(健)과 령(靈)의 상태를 유지하는 차 끓이는 요체를 설명하고, 마무리 덕담으로 맺었다. 이 부분은 「다신전(茶神傳)」의 내용을 압축했다.
이제 「동다송」의 자료적 의미와 한계, 독법 상의 문제점을 살피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동다송」은 우리 차 문화사에서 대단히 희귀한 보배로운 저술이다. 차에 대한 전문 저술이 거의 없는 우리 현실에서 단연 이채를 발한다. 차에 관한 초의의 해박한 지식과 정심한 이해가 잘 녹아들었다. 처음 차의 외양에서 시작하여, 간추린 차사(茶史)를 정리하고, 끝에 가서 우리 차의 우수성을 말한 뒤, 차의 효능과 성질, 차를 끓이는 방법까지 총정리한 압축적이고 완결적인 서술이다.
다만 그 내용 은 제목과 달리 ‘동다(東茶)’에 대한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우리차의 맛과 약효가 중국차만 못지 않다고 한 것이 고작이다. 이 4구만 빼면 이 시는 그냥 『다송(茶頌)』이라 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협주에 지리산 화개동 차에 대한 설명이 있으나 당시 우리의 차에 대한 몰이해를 탄식한 내용에 가깝다. 중국과 다른 우리의 채다 시기에 대한 설명도 있다. 하지만 「동다송」이란 제목에 걸맞는 내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처음 홍현주가 초의에게 주문한 것은 다도(茶道) 일반에 관한 설명이었고, 초의의 「동다송」 또한 이 취지에 충실하게 답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컨대 「동다송」은 다도 일반에 대한 요약적 소개에 더 주안이 놓인 글이다. 또한 「동다송」에 인용된 문헌 고사는 대부분 육우의 『다경』과 육정찬의 『속다경』, 그리고 『군방보(群芳譜)』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지나친 확대 해석과 과도한 의미 부여는 곤란하다.
또 한 가지, 단락별로 끊어 읽는 기존의 독법에 큰 문제가 있다. 「동다송」의 일반적인 풀이를 보면 17송이니 31송이니 하여 마치 초의가 「동다송」을 단락구분을 두어 지은 것처럼 설명하는 것을 자주 본다. 흔히 알려진 다예관본(茶藝館本) 「동다송」은 필사하면서 중간중간 빈칸을 채우지 않고 마치 단락을 바꾼 것처럼 베껴 적었다. 이를 연구자들이 끊어 읽는 호흡단위로 착각하면서 분장설이 하나의 정설처럼 굳어진 것이다. 협주를 배제한 채 시의 본문만 줄달아 읽어보면 하나의 서사가 장강대하로 흘러가는 가운데 차 일반론과 우리차의 역사를 펼친 것이어서, 이것을 무려 31개의 토막으로 나눠 읽거나 17개의 단락으로 끊어 읽는 것은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도 적절치 않고, 초의 자신의 원래 의도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특히나 협주가 달린 대목을 단락 개념으로 끊어 읽는 것은 민망스럽기 짝이 없는 독법이다. 이렇게 읽어서는 전체 글의 구조가 드러날 수 없다. 최근 대흥사에 세운 엄청난 크기의 동다송비는 아예 한 편의 시를 토막토막 행갈이 해서 돌에 새기기까지 했다. 작품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실로 망신스런 사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