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 논문발표회(양용의 교수)- 한국성경신학회
멜기세덱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 예수 - 히브리서 7장에 나타난 기독론 이해
양용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히브리서 7장은 신약 성경의 기독론에 있어서 매우 독특한 주제인 예수의 대제사장직을 매우 인상적인 방식으로 제시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본 장에서 예수를 레위 반차와 대조를 이루는 멜기세덱 반차를 좇은 제사장으로 소개하는데(11, 17절; 참조. 5:6, 10; 6:20),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그는 창세기 14:18-20과 시편 110:4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본 장에서 그의 구약 사용 방식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그 해석적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따라서 우리가 히브리서 7장의 이 흥미로우면서도 복잡한 기독론적 논점 전개를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질문들에 직면하게 된다.
1)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의 제사장직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왜 멜기세덱을 활용하고 있는가? 이와 관련된 질문으로서,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의 멜기세덱에 관한 이해는 어떠하였는가?
2) 히브리서 저자의 구약 사용 방식은 당대 유대인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었는가? 이와 관련된 질문으로서, 히브리서 저자의 구약 사용에 활용된 해석 원리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3) 히브리서 7장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논점의 핵심은 과연 무엇인가?
아래의 논의에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을 다루어나가고자 한다.
1. 히브리서 저자가 사용한 구약 본문들
앞에서도 간략히 언급했듯이,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를 레위 반차와 대조를 이루는 멜기세덱 반차를 좇은 제사장으로 제시하는데 있어서, 두 곳의 구약 본문들을 활용하고 있다: 즉, 창세기 14:18-20; 시편 110:4.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두 구절들은 구약 성경 전체에서 멜기세덱이 언급되고 있는 모든 경우들이다. 우리는 먼저 이 본문들에 대한 간략한 석의적 이해를 시도하고자 한다.
1.1. 창세기 14:18-20
본 구절은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패망시키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인 창세기 14:17-24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14:18-20은 다음과 같다:
18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한글개역)
본 구절에서 멜기세덱은 '살렘 왕'(!lv ^lm)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wyl[ lal @hk)으로 소개되고 있다(18절). 그는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19절),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일조를 바쳤다(lkm rc[m wlA@tyw, 20절). 시편 76:2에 반영된 전통에 의하면, '살렘'은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이었다(참조. Josephus, Ant. 1.180; 탈굼들). 그렇다면 멜기세덱은 역사적으로 족장 시절의(즉, 이스라엘 시대 이전의) 예루살렘의 왕으로서 제사장의 기능을 하는 자로 드러난다. 그의 제사장적 기능은 아브라함에 대한 축복과 하나님께 대한 찬송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 한편 MT 본문 자체(lkm rc[m wlA@tyw)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는지, 아니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바쳤는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전통은 십일조를 바친 자가 아브라함이라는 점을 확고히 입증해 준다(Philo, De Cong. 99; Josephus, Ant. 1.181; 1QapGen 22.17 등). 히브리서 7:2은 주어로서 !Abraavm을 명시함으로써 이러한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1.2. 시편 110:4
히브리서 저자가 7장에서 멜기세덱과 관련해서 사용하고 있는 두 번째 구약 본문은 시편 110:4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맹세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본 절과 더불어 다른 곳들에서(1:13; 참조. 8:1; 10:12) 시편 110:1도 사용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우리는 여기서 본 절을 시편 110:1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편 110:1, 4은 다음과 같다: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한글개역)
일반적으로 시편 110편은 '제왕시'(Royal Psalm)로 알려져 왔다. 이 시가 사용된 역사적 정황은 아마도 다윗 왕조의 초기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된 왕의 대관식으로 보인다. 이 시가 하스몬 가문의 시몬(142-134 BC)이 왕권과 제사장직을 동시에 차지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저작되었다는 제안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학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한편 초기 기독교인들은 물론이고 일찍이 유대인들도 시편 110편을 메시아적으로 이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참조. 막 12:35-37). 1절과 4절은 공히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을 기술한다. 1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아마도 대적들을 정복한 왕에게 자신의 보좌 우편에 앉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 초대는 진정한 왕이 여호와 자신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이 초대에 의하면, 인간 왕의 승리와 왕권은 진정한 왕 여호와 자신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인간 왕이 그 위에 앉아 있는 동안 여호와 자신께서 그의 대적을 그의 발아래 놓이게 하실 것이다. 한편 시편 저자는 그 왕을 '나의 주'라고 지칭하고 있다. 4절은 그 왕에 대한 여호와 자신의 맹세를 소개해 준다. 여호와께서는 이 맹세를 통해 그 왕에게 영원한 제사장직을 수여하신다. 그는 이제 제사장-왕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를 중재하는 신성한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왕의 이러한 이중적 지위와 역할을 멜기세덱과의 연관성 속에서 확증해 주신다. 이미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창세기 14:18-20에 의하면, 이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으로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의 이중적 기능을 하였다. 만일 시편 저자와 그 독자들에게 멜기세덱에 대한 이러한 전통이 잘 알려져 있었다면, 본 문맥에서 멜기세덱의 도입은 왕의 이중적 지위와 역할을 확증하는데 있어서 매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2. 주후 1세기까지 유대교 문학에서의 멜기세덱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두 번밖에 나타나지 않는 멜기세덱에 대한 언급은 유대교 문학에서는 상당히 다양하고 풍성하게 나타난다. 본 장에서 필자는, 히브리서 저자가 예수의 제사장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멜기세덱을 활용한 이유와 목적을 보다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 히브리서 저자와 동시대 혹은 그 이전 시대 유대교에서의 멜기세덱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시기에 속하는 유대교 문학 가운데서 멜기세덱에 관한 언급을 포함하는 문서들로는 쿰란 문서들(1QapGen 22.13-17; 11QMelch), 필로(De Cong. 99; De Abr. 235; Leg. All. 3.79-82)가 있으며, 요세푸스(War 6.438; Ant. 1.179-81)도 좀더 간접적인 의미에서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랍비 문서들(예. b.Sukkah 526; Song of Songs R. 2.13, 14)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우리의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 논의의 복잡성과 다양성에 비해 히브리서 7장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의 논의에서는 제외하려 한다.
본 장에서의 논의는 제한된 지면 때문에 복잡한 비평적 논점들은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다루면서, 주로 위에 언급된 문서들 중 멜기세덱 관련 내용들을 우리의 목적에 맞춰 재기술하는 형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2.1. 쿰란 문서
현재까지 발표된 쿰란 문서들 가운데서는 멜기세덱에 관한 언급이 두 곳에서 발견된다: The Genesis Apocryphon (1QapGen) 22.13-17; 11QMelchizedek.
2.1.1. The Genesis Apocryphon 22.13-17 이르면 주전 2세기 말 늦으면 주후 1세기 초에 저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1QapGen은 22.13-17에서 멜기세덱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이 부분은 창세기 14:17-20을 아람어로 거의 문자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다음은 Mart nez, The Dead Sea Scrolls Translated: The Qumran Texts in English로부터 인용된 관련 본문의 영어 번역본이다:
13 ... He went to Salem, which is Jerusalem. Abram encamped in the Valley of 14 Shaveh, which is the Valley of the King, the Valley of Bet ha-Kerem. Melchizedek, king of Salem, brought out 15 food and drink for Abram and for all the men there were with him. He was a priest of the Most High God. He blessed 16 Abram and said: Blessed be Abram by the Most High God, Lord of heaven and earth and blessed be the Most High God, 17 who has delivered your hands. And (Abram) gave him a tithe of all the flocks of the king of Elam and his allies.
위의 본문이 보여 주듯이, 1QapGen 22.13-17은 크게 세 곳에서 창세기 14:17-20의 내용에 첨가와 변형을 가하고 있다. 1QapGen 22.13은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 한 가지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그가 살렘으로 갔는데, 그곳은 예루살렘이다.' 즉, 멜기세덱이 왕으로 있었던 살렘은 곧 예루살렘이라고 부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연의 내용은 22.13b-14a에서도 좀더 명백해 진다: '아브람은 샤베 계곡에 진을 쳤는데, 그곳은 왕의 계곡이고, 벳 하-케렘 계곡이다.'
그런데 벳 하-케렘은 구약(렘 6:1; 느 3:14 등)과 미쉬나(m.Middoth 3.4; m.Niddah 2.7)에서 언급되고 있는 지명으로서, 예루살렘 근교의 마을이다. 1QapGen 22.15은 '아브람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를 첨가하고 있고, 포도주를 '음료'로 바꾸고 있다. 1QapGen 22.17은 '엘람 왕과 그의 동맹자들의 모든 재산의'를 첨가함으로써, 십일조를 드린 자가 멜기세덱이 아니라 아브라함인 것을 암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2.1.2. 11QMelchzedek 1965년 Van der Woude가 본 문서를 출판한 이래로, 11QMelchzedek은 히브리서의 멜기세덱 연구에 있어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아마도 주후 1세기 전반 어느 시기에 저작된 것으로 보이는 본 문서는 그 보존 상태가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편집과 번역상의 많은 어려움이 있다.
본 논문에서 이 문제를 비평적으로 깊이 다룰 수는 없기 때문에, 그리고 본문 자체가 모두 인용하기에는 너무 길기 때문에, 여기서는 단지 멜기세덱에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해서 제시하고자 한다. 다음은 Mart nez, The Dead Sea Scrolls Translated: The Qumran Texts in English로부터 인용된 관련 본문의 영어 번역본이다:
2.2 [...] And as for what he said: Lev 25:13 In this year of jubilee {중략} , {중략} And he will make 5 their rebels prisoners [...] and of the inheritance of Melchizedek, for [...] and they are the inheri[tance of Melchi]zedek, who 6 will make them return. He will proclaim liberty for them, to free them from [the debt] of all their iniquities. {중략} And the day [of atonem]ent is the end of the tenth jubilee 8 in which atonement will be made for all the sons of [God] and for the men of the lot of Melchizedek. [And on the heights] he will decla[re in their] favour according to their lots; for 9 it is the time of the year of grace for Melchizedek, to exa[lt in the tri]al the holy ones of God through the rule of judgement, as is written 10 about him in the songs of David, who said: Ps 82:1 Elohim will stand up in the assem[bly of God,] in the midst of the gods he judges . {중략} 13 But, Melchizedek will carry out the vengenance of God's judges [on this day, and they shall be freed from the hands] of Belial and from the hands of all the sp[irits of his lot.] 14 To his aid (shall come) all the gods of [justice ; he] is the one [who will prevail on this day over] all the sons of God, and he will pre[side over] this [assembly.] {중략} as is written about him: Isa 52:7 Saying to Zion: 'your God rules' . [ Zi]on is 24 [the congregation of all the sons of justice, those] who establish the covenant, those who avoid walking [on the pa]th of the people. Your God is 25 [... Melchizedek, who will fr]ee [them] from the hand of Belial. And as for what he said: Lev 25:9 You shall blow the hor[n in every] land .
본 문서가 쿰란 종파의 문서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본 문서가 멜기세덱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른 쿰란 문서들에 비해 매우 독특하다. 본 문서의 저자가 제시하는 멜기세덱의 모습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하늘 궁정에서 다른 모든 신적 존재들 중 뛰어난 왕적 엘로힘으로서, 마지막 종말론적 대 사건에서 악의 무리를 심판하고 빛의 아들들을 벨리알의 손으로부터 구출해 낼 신적 존재이다. 심판자와 구출자로서의 멜기세덱의 이러한 모습은 다른 쿰란 문서들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다른 곳들에서는 멜기세덱의 이러한 기능이 하나님 자신이나 미가엘과 같은 다른 인물들에게 돌려지고 있다. 특히 De Jonge과 Van der Woude는 11QMelch에서의 멜기세덱의 기능이 War Scroll에서의 미가엘의 모습과 유사성을 보여준다는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멜기세덱은 마지막 때 통치적 기능을 수행할 것인데 반해, War Scroll에서의 미가엘은 결코 그런 기능을 하는 것으로 기술되지 않는다. 따라서 11QMelchzedek에서의 멜기세덱은 War Scroll에서의 미가엘의 기능을 능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편 11QMelchzedek에서의 멜기세덱과 창세기 14:18-20과 시편 110:4의 멜기세덱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만일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구약의 멜기세덱 이해가 어떻게 11QMelchzedek 저자의 이러한 이해로까지 발전하였는지를 추론할 만한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2.2. 필로
필로의 작품들 가운데서는 멜기세덱에 관한 언급이 세 곳에서 발견된다: De Congressu 99; De Abrahamo 235; Legum Allegoriae 3.79-82. 본 단원의 영어 번역 인용문들은 Loeb Classical Library로부터 온 것이다.
2.1.1. De Congressu 99
99 ... "Of all that thou givest me, I will give a tenth to thee"; which prompted the oracle that follows the blessing given to the victor by Melchisedek the holder of that priesthood, whose tradition he had learned from none other but himself.
De Congressu 99는 십일조 제도를 지지하기 위해 창세기 14:18-20을 언급하는 가운데 멜기세덱에 관한 언급을 간단히 제시한다. 필로는 흥미롭게도 여기서 멜기세덱을 '스스로 배우고'(aujtomaqh') '스스로 가르치는'(aujtodivdakton) 제사장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2.2.2. De Abrahamo 235
235 When the high priest of the most high God saw him [Abram] approaching with his trophies, ..., he was astonished by the feat, ..., he stretched his hands to heaven and honoured him with prayers on his behalf and offered sacrifices of thanksgiving for the victory and feasted handsomely those who had taken part in the contest, rejoicing and sharing their gladness as though the success were his own; and so indeed it was, for "the belongings of friends are held in common," ...
De Abrahamo 235에서 멜기세덱은 '가장 큰 하나님'의 '큰 제사장'으로 묘사된다. 본 단락은 창세기 14:18-20에는 없는 다음 내용들을 부연하고 있다: 1) 멜기세덱은 '손을 하늘로 들고' 기도하였다; 2) 멜기세덱은 승리를 감사하는 제사들 드렸다; 3)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은 매우 밀접한 친구 관계이다.
2.2.3. Legum Allegoriae 3.79-82
79 Melchizedek, too, has God made both king of peace, for that is the meaning of "Salem," and His own priest. He has not fashioned beforehand any deed of his, but produces him to begin with as such a king, peacable and worthy of His own priesthood. For he is entitled "the righteous king," and a "king" is a thing at enmity with a despot, the one being the author of laws, the other of lawlessness. ... 81 Let the despot's title therefore be ruler of war, the king's prince of peace, of Salem, and let him offer to the souls food full of joy and gladness; for he brings bread and wine, ... 82 But let Melchizedek instead of water offer wine, and give to souls strong drink, that they may be seized by a divine intoxication, more sober than sobriety itself. For he is a priest, even Reason, having as his portion Him that is, and all his thoughts of God are high and vast and sublime: for he is priest of the Most High, not that there is any other not Most High - for God being One "is in heaven above and on earth beneath, and there is none beside Him" ...
Legum Allegoriae 3.79-82는 멜기세덱에 관한 매우 풍성한 필로의 생각들을 제공해 준다. 필로는 하나님 자신께서 멜기세덱을 왕인 동시에 제사장으로 만드셨음을 선언한다.
그는 멜기세덱의 왕직의 특징을 그의 이름과 지명의 어원적 의미로부터 이끌어낸다. 즉, 그는 멜기세덱이기 때문에 의의 왕이고, 살렘의 왕이기 때문에 평화의 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멜기세덱은 전쟁을 일으키고 무법을 일삼는 독재자와 구별된다. 멜기세덱은 물이 아니라 포도주를 줌으로써, 영혼들로 하여금 신적 충만함에 흠뻑 젖어 최고의 질서와 절제를 누리도록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로고스'인 것이다. 필로가 멜기세덱을 로고스와 일치시킨 것은 상당히 괄목할 만하다. 필로에게 있어서 로고스는 '처음 난 자'(prwtovgono")이고, '하나님의 그림자'(skia; qeou')이며, 하나님의 '형상의 모형'(paravdeigma th'" eijkovno")이기 때문이다(참조. De Abr. 51; Leg. All. 3.96 등). 흥미롭게도 필로는 앞의 두 인용구들에서는 멜기세덱을 역사적 인물로 제시하고 있는데 반해, 마지막 인용구에서는 그를 로고스의 현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처음 두 인용구들에서 멜기세덱은 제사장으로서의 기능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반해, 마지막 인용구에서는 왕과 제사장으로서의 이중적 역할이 공히 강조되고 있다.
2.3. 요세푸스
요세푸스는 멜기세덱에 대하여 그의 War 6.438과 Antiquities 1.179-81에서 언급하고 있다. 아래의 영어 번역 인용문들은 Loeb Classical Library로부터 온 것이다.
2.3.1. War 6.438
Its original founder was a Canaanite chief, called in the native tongue 'Righteous King'; for such indeed he was. In virtue thereof he was the first to officiate as priest of God and, being the first to build the temple, gave the city, previously called Solyma, the name of Jerusalem.
War 6. 438은 멜기세덱을 가나안 족장으로서 '의의 왕'이자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규정한다. 위의 인용구는 흥미롭게도 멜기세덱을 예루살렘의 창설자이자 최초의 성전 건설자라고 밝힌다.
2.3.2. Antiquities 1.179-81
180 There he was received by the king of Solyma, Melchisedek; this name means "righteous king" and such was he by common consent, in so much that for this reason he was moreover made priest of God; Solyma was in fact the place afterwards called Hierosolyma. 181 Now this Melchisedek hospitably entertained Abraham's army, providing abundantly for all their needs, and in the cousre of the feast he began to extol Abraham and to bless God for having delivered his enemies into his hand. Abraham then offered him the tithe of the spoil, and he accepted the gift.
Antiquities 1.179-81은 창세기 14:18-20을 재구성하고 있다. 여기서 요세푸스는 멜기세덱을 후일에 예루살렘이라고 불리게 된 솔루마의 왕이라고 기술한다. 요세푸스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뿐 아니라 그와 군대에게도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주었다고 기술한다. 위에서 인용한 요세푸스의 두 구절 모두 멜기세덱이 제사장이 된 것은 그가 의로운 왕이기 때문이라고 진술한다.
지금까지 1, 2장에서 살펴본 멜기세덱에 관한 다양한 내용들을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이 도표는 Horton, Melchizedek, 86의 도표를 재조정한 것이다):
창 14 시 110 1QapGen 11QMelch 필로 요세푸스 1. 살렘 왕 x . x . x x 2. 제사장 x x x . x x 3. 살렘=예루살렘 . . x x? . x 4. 성전의 건축자 . . . . . xx 5. 예루살렘 건축자 . . . . . xx 6. 천상적 인물 . . . xx . . 7. 최초의 제사장 . . . . . xx 8. 배우지 않은 제사장 . . . . xx . 9. 의의 왕 . . . . x x 10. 평화의 왕 . . . . xx . 11. 로고스 . . . . xx . 12. 종말론적 인물 . . . xx . . 13. 아브라함의 친구 . . . . xx . 14. 십일조를 받음 x? . x . x x 15. 군대를 초청함 . . x . x x
구약과 유대교 문학에서 발견되는 멜기세덱에 대한 이와 같은 전통과 이해에 비추어, 이제 히브리서 7장에 나타난 히브리서 저자의 멜기세덱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멜기세덱과 예수 사이의 관계에 기초한 그의 기독론적 논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3. 히브리서 7장에서의 멜기세덱
히브리서 저자가 7장에서 제시하는 멜기세덱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이 질문과 관련해서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히브리서 7장에서 저자의 관심은 멜기세덱 자신이 아니라 예수께 모아져 있으며, 멜기세덱은 레위 반차의 제사장직과 더불어 그 예수께 관한 논점 전개에 있어서 단지 보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히브리서 7장에서 묘사되는 멜기세덱의 존재와 지위 및 역할은 철저하게 예수의 그것과 연관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히브리서 저자가 제시하는 멜기세덱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크게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1) 천상적 존재: Fitzmyer - 엘로힘; De Jonge and Van der Woude - 천사(참조. 11QMelchizedek). 2) 역사적 존재: Horton, Parsons - 토라에 나타나는 최초의 제사장(참조. 창 14:18-20; 필로, 요세푸스). 3) 천상적/역사적 존재: Kobelski - 천사적 존재가 아닌 천상적 존재로서(히 7:3) 동시에 역사적 인물(히 7:1-2) - 예수의 모형으로서(참조. 히 1-2장).
위의 견해들 중 첫 번째 견해는, 11QMelchizedek에서 제시되고 있는 바로 미루어, 히브리서 저작 당시 적어도 쿰란 공동체에 의해서 정착되어 있던 멜기세덱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고 있고, 또한 히브리서 7:3도 이러한 견해의 가능성을 지지해 주지만, 그러나 히브리서 7:1-2, 4-10의 논점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히브리서 저자의 논점에서, 멜기세덱이 레위보다 더 우월한 것은 그가 천상적 존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상에서 아브라함과의 만난 사건이 그 사실을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견해는, 필로와 요세푸스의 글들이 제시해 주는 바로 미루어, 히브리서 저작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던 일반적인 이해를 반영하고 있고, 히브리서 7:1-2, 4-10도 이러한 견해의 가능성을 지지해 주지만, 그러나 히브리서 7:3에서 언급된 멜기세덱의 영원성을 설명하기가 어렵다(또한 참조. 7:15-16). 히브리서 저자의 논점에서,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유사한 것은 그가 역사적 인물일 뿐 아니라, 동시에 천상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필자의 판단에, 마지막 견해는 히브리서 7장 및 히브리서 전체의 논점을 가장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서 7:1-2, 4-10은 멜기세덱을 역사적 인물로 기술하고 있으며, 동시에 히브리서 7:3, 15-16은 그를 천상적 존재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견해는 멜기세덱 반차와 레위/아론 반차를 대조시키고, 멜기세덱과 예수를 비교하는데 있어서도 가장 만족할 만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미 1장에서는 예수를 천사보다 우월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신적 존재로 제시하였다(또한 참조. 3:6; 5:5, 8).
그리고 2장에서는 예수를 우리가 당하는 시험과 고난을 직접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는, 따라서 역시 천사보다 우월한, 완전한 인간으로 제시한 바 있다.
특히 그는 2:17-18과 4:14-5:10에서 이처럼 인간을 공감하는 능력이 대제사장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임을 전제하고, 예수께서 이러한 조건을 갖추신 대제사장임을 밝힌다.
천상적인 존재일 뿐인 천사나, 지상적 존재일 뿐인 레위적 제사장들은 이러한 예수의 이중적 존재의 모형으로서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 진정한 예수의 모형은 신적 존재인 동시에 인간이어야 하는데, 히브리서 저자는 바로 이러한 모형으로서 멜기세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와 관련된 Horton의 주장을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멜기세덱과 예수의 관계를 모형(antitype)과 원형(type)의 관계로 설정한 후, 이를 히브리서 9장에서 언급되는 하늘의 원형인 참 장막과 지상의 모형인 장막 사이의 관계(9:23-24)에 비추어 설명한다. 즉,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천상적인 원형인 예수의 제사장직에 대한 지상적 모형이기 때문에, 멜기세덱은 천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상적인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Kobelski가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7장과 9장 사이의 논점 전개 방식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9장에서는 지상의 장막에 대한 천상의 장막의 우월성이 강조되는 대조 관계가 주된 논점인데 반해, 7장에서는 멜기세덱의 제사장직과 예수의 제사장직이 유사 관계를 이룰 뿐(7:3, 11-17, 24, 26-28; 참조. 5:6, 10) 우월성에 대한 강조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예수의 제사장직의 우월성은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레위 반차의 제사장직에 대해 강조적으로 기술되고 있다. 만일 히브리서 7장에서 저자의 관심이 이처럼 멜기세덱과 예수 사이의 유사성에 모아지고 있다면, 히브리서 저자의 논점은 멜기세덱도 예수와 마찬가지로 지상에 살았던 한 인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ajfwmoiwmevno" de; tw/' uiJw/', 3절) 천상적 존재일 경우에 가장 자연스럽게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결론은, 아래의 석의적 논의에서 살펴 볼 것이지만, 히브리서 본문의 가장 자연스런 의미와 부합한다. 한편 히브리서 7장에서 제시되는 멜기세덱의 지위와 역할은 어떠한가?
히브리서 저자는 이 문제에 있어서 결코 불분명하지 않다. 그는 먼저 멜기세덱을 의의 왕이자 평화의 왕으로 제시한다(7:2b). 히브리서 저자의 이러한 이해는, 필로(Leg. All. 3.79)와 요세푸스(Ant. 1.180)에 의해 예시되고 있는 바와 같이, 아마도 1세기 당시 유대교 내에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논점 전개에서 멜기세덱이 '의와 평화'로 특징지어지는 왕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시편 72:7에 반영되고 있는 바와 같이, 메시아의 시대는 '의와 평화'로 특징지어지기 때문이다(또한 참조. 슥 9:9-10).
그렇다면 히브리서 저자는 여기서 멜기세덱을 메시아의 왕적 기능을 내다보았던 모형적 인물로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히브리서 7장에서 예수의 왕직이 강조되거나 명시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저자의 기본 이해 가운데 예수의 왕적 지위가 전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서 7:14에서 예수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을 잘 알려진 기정 사실로 간주한 점이라든지, 또는 그의 서신서 전체를 통해 왕의 즉위식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시편 110:1을 예수께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1:13; 8:1; 10:12), 등에 의해 확인된다.
아무튼 당시의 일반적인 이해와 기대로 미루어 볼 때,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을 '의와 평화'의 왕으로 소개함으로써, 그가 메시아 시대와 긴밀하게 연관된 인물임을 강력히 시사해 주고자 하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히브리서 저자는 또한 멜기세덱을 왕으로서 뿐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영원한 제사장으로(7:1, 3, 8, 15-16) 제시한다. 왕직과 제사장직을 겸하여 소유한 멜기세덱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이미 창세기 14:18-20과 시편 110:1, 4에 기본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그 왕적 제사장으로서의 멜기세덱을 예수와 연관해서 제시함으로써, 멜기세덱의 그 이중적 역할을 보다 명시적으로 메시아의 모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히브리서 7장의 전반적인 관심은 예수를 제사장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제사장직은 레위의 제사장직과 달리 다윗 왕의 족보인 유다 지파로부터 나온 것이며(7:14), 따라서 그는 왕적 제사장인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일찍이 창세기 14:18-20에서 왕적 제사장인 멜기세덱에 의해 예시되었고, 시편 110:1, 4에서 멜기세덱을 모형으로 해서 약속되었던 바가, 이제 예수의 이러한 이중적 지위에 의해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4. 히브리서 7장의 기독론: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 예수
지금까지의 모든 기본적인 논의에 기초하여, 이제 히브리서 저자가 7장에서 제시하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에 관한 논점을 정리해 보도록 하자. 히브리서에서 대제사장 주제는 이미 2:17-3:1에서 도입된 바 있다. 하지만 대제사장 주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4:14로부터 시작되고 있으며, 5:6에서는 대제사장 주제와 더불어 멜기세덱 주제가 도입된다.
하지만 멜기세덱에 대한 논점 전개를 시작하는 도중에, 5:11-6:20에서는 대제사장 주제가 갑자기 중단되었다가, 7:1에 가서야 다시 재개된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여 상당수의 학자들은 5:11-6:20을 경고와 격려를 위한 목회적 삽입 단락으로 이해해 왔다. 7:1-28에서는 5:10에서 도입되었던 멜기세덱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 주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7:1-10은 구약 성경에서 시편 110:4을 제외하고 멜기세덱에 관한 유일한 본문인 창세기 14:17-20에 대한 해석을 제공해 주며, 7:11-28은 5:6에서 인용된 바 있는 시편 110:4의 의의(意義)를 창세기 14:17-20에 비추어 설명해 나간다. 아래의 논의에서는 7장을 통해 나타나는 히브리서 저자의 기독론적 논점 전개를 선별적인 본문 석의 방식으로 추적해 나가려 한다.
4.1. 멜기세덱의 우월성(히 7:1-10)
본 단락은 1-3절, 4-10절 두 단락으로 나누어지며, 서로 다음과 같은 교차 대칭적 구조를 갖는다:
1-3절 4-10절
1. 만남(1a절) 1'. 만남(10절) 2. 축복(1b절) 2'. 축복(6절) 3. 십일조 (2절) 3'. 십일조(4절)
실제로 이들 두 단락은 상호 보완적이다. 1-3절은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을 소개해 주고, 4-10절은 그가 아브라함을 만난 사건의 의의를 설명해 나간다. 이들 두 단락의 논점은 공통적이다: 즉, 멜기세덱은 레위적 제사장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레위적 제사장직에 대한 멜기세덱의 우월성은 두 가지 사실에 의해 입증된다: 1) 레위적 제사장들은 영원하지 못한데 반해, 멜기세덱은 영원하다(3, 8절); 2)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경의를 표한 것은 멜기세덱이 레위 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보다 우월함을 보여 주며, 따라서 그는 레위적 제사장들보다 우월하다(1-2절, 4-10절).
4.1.1. 히브리서 7:1-3 지금까지 멜기세덱에 대하여 아무런 상세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았던 저자는 이제 멜기세덱과 관련된 몇 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제시하기 시작한다(1-2a절). 하지만 그의 이러한 설명들은 결국 역사적 상황을 초월하여 영적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2b-3절).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이 칭호들은 창세기 14:18로부터 직접 인용된 것들이다. 왕직과 제사장직의 이와 같은 결합은 저자의 논점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참조. 2-3절, 13-15절). '살렘'은 일반적으로 예루살렘과 동일시되어 왔다.
만일 그렇다면 히브리서 저자는 어쩌면 하늘의 예루살렘(12:22)의 왕과 제사장인 예수의 모형으로서 멜기세덱을 살렘 왕과 제사장으로 묘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문의 흐름에 있어서 저자가 멜기세덱을 '살렘 왕'으로 묘사한 것은 지명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를 '평화의 왕'으로 제시하고자 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참조. 2절).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요'. 저자는 멜기세덱을 모형론적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는 '멜기세덱'과 '살렘'이라는 히브리 이름들의 어원적 의미, 즉, '의의 왕'과 '평화의 왕'에 관심을 집중시킨다(참조. Philo, Leg. All. 3.79; Josephus, Ant. 1.180).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의의 왕이자 평화의 왕으로서의 멜기세덱을 그 왕국의 특징이 의와 평화인 왕적-제사장적 메시아의 모형으로 제시하려 한다(참조. 시 72:7; 슥 9:9-10; 또한 참조. 시 97:2; 98:3, 9; 사 9:6-7; 렘 23:5-6; 33:15-16).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ajpavtwr ajmhvtwr ajgenealovghto"). 이 진술은 멜기세덱이 실제로 육체적 부모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문자적 의미로 받아들여질 필요는 없다. 저자의 이러한 진술은 1세기 랍비들의 성경 해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원리들 중 하나였던 quod non in thora non in mundo('토라에 없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의 원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즉, 성경에 멜기세덱의 부모나 족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곧 멜기세덱이 아버지나 어머니나 족보 자체를 갖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mhvte ajrch;n hJmerw'n mhvte zwh'" tevlo" e[cwn). 저자는 quod non in thora non in mundo의 해석 원리에 따른 논증을 좀더 발전시킨다. 토라에 멜기세덱의 출생이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은 곧 멜기세덱이 출생하거나 죽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가 멜기세덱에 대한 이러한 묘사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해석에 근거해서 자신의 독자들에게 멜기세덱의 영원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되며, 그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물론 이러한 성경 해석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는 잘 공감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브리서 저자가 1세기 당시 유대인 독자들을 위해 이 편지를 썼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이러한 구약 사용과 논증 방법은 궁극적으로 예수의 영원한 제사장직을 설명하는데 충분한 효과를 거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성경이 멜기세덱의 부모와 족보와 출생과 죽음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의 중요성은 그것이 멜기세덱을 영원한 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모형으로 특징 지워 준다는데 있다(참조. 5:6, 10; 6:20). 그러나 실제로 영원토록, 즉,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은 멜기세덱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다(16-17절, 21절, 24-25절). 따라서 멜기세덱은 이러한 침묵적인 측면을 통해 제시되는 모형일 뿐이며, 그 실체는 영원한 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시다.
'[그는]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ajfwmoiwmevno")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멜기세덱의 영원성의 기준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원성에 있다. 분사 ajfwmoiwmevno"는 신적 수동형으로서('[하나님에 의해] 닮도록 만들어짐으로써'), 이는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을 하나님의 아들의 제사장직을 위한 모형으로 임명하셨음을 제안해 준다. 사실 모형인 멜기세덱을 영원한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성경이 그의 계승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히브리서 저자가 멜기세덱의 모형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예수의 제사장직의 영원성은 그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참조. 1:8-12; 7:24; 13:8 등). 여기서 우리는 모형론의 중요한 원리를 정리해 볼 수 있다. 모형(멜기세덱)이 원형(예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이 모형을 규정해 준다. 즉,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모형을 따라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모습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4.1.2. 히브리서 7:4-10 본 단락의 논점은 분명하다. 저자는, 창세기 14:18-20에 기술된 역사적 사건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모형인 멜기세덱이 레위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우월하며, 따라서 그는 레위적 제사장들보다 더 우월한 제사장이라는 점을 논증한다.
멜기세덱의 우월성은 다음 세 가지 사실들에 근거하고 있다: 1)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레위로부터서도) 십일조를 받았다(4-6a절, 9-10절; 참조. 창 14:20); 2)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베풀었다(6b-7절; 참조. 창 14:19); 3) 멜기세덱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였던데 반해, 레위적 제사장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다(8절; 참조. 3절).
4.2.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 예수(히 7:11-28)
앞 단락에서 멜기세덱을 예수의 모형으로 제시하였던 저자는 이제 본 단락에서는 레위적 제사장직을 예수의 제사장직의 모형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레위적 제사장직의 경우 멜기세덱의 경우와는 다르게 모형과 원형 사이의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이 강조되고 있다.
모형인 레위적 제사장직이 완전함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완전함을 이룰 수 있는 제사장직이 필요하였는데, 예수께서 자신의 제사장직을 통해 그 완전함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맹세에 의해 약속된 필연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논점을 시편 110:4에 대한 해석을 통해 적절히 논증해 나간다. 본 단락의 논지의 흐름 역시 앞 단락과 마찬가지로 매우 명쾌하고 직설적이다:
1) 시편 110:4은 비-레위적 제사장직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7:11-12). 그런데 그 제사장직에는 예수가 적임자이다(15절, 17절). 왜냐하면 첫째, 그는 비-레위적 인물이기 때문이고(14절), 둘째, 그는 '무궁한 생명'(zwh'" ajkataluvtou)을 소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16절). 2) 레위적 제사장직은 온전케 할 수 없다(11절, 18절). 하지만 예수는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온다(19절). 3) 하나님의 맹세는 예수께서 더 좋은 언약을 세우시리라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20-22절). 4) 레위적 제사장직은 계승적 원칙 하에 임명되었으며, 따라서 그들 중 그 누구도 영속적인 제사장직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의 제사장직은 영원하다(23-25절). 5) 예수는 이상적인 대제장이시다(26-28절).
4.2.1. 히브리서 7:11-17 저자는 지금까지 레위적 제사장들에 대한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증명해 보인 후, 이제는 보다 우월한 반차에 속한 제사장의 필요성을 제시해 나가기 시작한다. '만일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이 조건절은 두 가지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1) 제사장직에 있어서 '온전함'은 기대되어야 할 목표이다; 2) 하지만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은 (그리고 그와 더불어 '율법'은) 그러한 '온전함'을 이룰 수 없다. 멜기세덱의 후계자에 대한 필요는 이처럼 '아론의 반차'가 온전함을 이룰 수 없는 무능력에서 기인되는 것이다.
12절에서는 아론적 제사장직과 '율법'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강조되고 있다. 대체되어야 하는 것은 아론적 제사장만이 아니다. 아론적 제사장직은 모세 율법 하에서 제정된 것이고 그것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제사장직 내의 변화는 그와 더불어 율법 내의 변화도 필연적으로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아론적 제사장직이 일시적인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라면 율법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참조. 갈 3:24-25).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새로운 제사장직을 선포하는 가운데 생겨나게 된 율법 내의 변화가 얼마나 철저한 것인지는, 이 제사장직이 부여된 자가 레위 지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자이며, 그가 속해 있는 지파로부터서는 한 사람의 제사장도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모세도 그 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들을 고려할 때 실감하게 된다(13절).
14절의 provdhlon gavr('왜냐하면 ... 분명하기 때문이다')는 예수께서 어느 지파에 속한 분인지에 관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또한 14절은 13절이 진술한 바에 부합한 자가 바로 예수라는 사실을 규명해 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께서 '유다로부터 나타났다'(ejx !Iouvda ajnatevtalken)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예수의 왕적 메시아 신분을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여기서 사용된 동사 ajnatevtalken(또는 그 명사형 ajnatolhv)이 LXX에서 주로 메시아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온 문맥들 가운데서 별이 떠오르거나(민 24:17) 가지가 돋아나는(사 11:1; 렘 23:5; 슥 3:8; 6:12; 말 4:2)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에 의해 더욱 분명해지게 된다(참조. 4QPBless 3-4).
제사장직에 대한 그리스도의 권리는 레위적 제사장직과는 전혀 다른 기반에 기초하고 있다. 그의 권리는 지파적 자격 조건을 뛰어 넘은 본래적인 권리로서, 족장 시대의 한 신비스러운 인물, 즉, 멜기세덱에게서 그 모형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15절; 참조. 시 110:4). 히브리서 저자는 15절에서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기술하는데 있어서 11절의 tavxin('반차')을 oJmoiovthta('유사성')로 대체하고 있는데, 이것은 멜기세덱의 반차가 아론의 반차처럼 육체적 혈통 관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 본성적 특성의 유사성에 기초한 것임을 보여 준다(참조. 3절 - ajfwmoiwmevno").
16절에서는 레위적 제사장직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사이의 이러한 차이가 삼중적 대조의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다: 1) kata; novmon('법을 좇아') vs. kata; duvnamin('능력을 좇아'); 2) ejntolh'"('계명의') vs. zwh'"('생명의') 2) sarkivnh" gevgonen('육체에 상관된') vs. ajkataluvtou('무궁한'). 처음 두 대조는 외적 제동 장치와 내적 원동력 사이의 대조로서, 이는 새로운 반차의 제사장직을 전혀 다른 기반 위에 올려놓는다. 레위적 제사장직에 대한 율법의 요구 조건들은 인격적인 자질보다는 가계의 유전에 더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의 제사장직은 살아 있는 생명의 능력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대조의 경우, sarkivnh"는 일반적으로 pneumatikov"('영적인')와 대조적인 개념으로 '육체적인'이라는 의미를 갖지만(참조. 고전 3:1), 여기서는 ajkataluvtou('파괴되지 않는', '영원한')와 대조됨으로써 '죽을 수밖에 없는'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아론의 제사장직에 대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우월성을 다른 측면에서 보여 준다. 아론의 제사장직은 죽음에 의해 계속 계승되어야 하는데 반해(23절),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영속적이라는 것이다(24-25절; 참조. 5:6, 10; 6:20; 시 110:4).
4.2.2. 히브리서 7:18-19 18-19절에는 두 대조적인 언급들이 삽입구적인 설명과 더불어 나타나고 있다. mevn('한편으로')으로 도입되는 첫 번째 언급은 제사장직과 관련된 율법의 연약성에 관한 언급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율법(proagouvsh" ejntolh'", '전엣 계명')에 대한 세 가지 언급들은 주목할 만하다:
1) 그것은 연약하다 - 율법이 비록 가치 있는 기능을 수행하기는 하였지만, 그 근본적인 연약함은 그것이 그 자체만으로는 생명과 활력을 제공하지 못하였다는데 있다.
2) 그것은 무익하다 - 하지만 율법의 '무익함'은 전적인 '무가치함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이 무익함은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데 부족하기 때문이다(19a절; 참조. 11절).
3)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것은 폐하였다. 여기서 처음 두 가지 언급들은 마지막 언급의 기반을 제공해 준다. dev('다른 한편으로')로 도입되는 두 번째 언급의 주된 주제는 '소망'(ejlpiv")이다. 이 소망은 '더 좋은'(kreivttono"; 참조. 1:4; 6:9; 7:7, 22)이라는 말로 수식되고 있다. 이 더 좋은 소망은 연약하고 무익한 전엣 계명 하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었던 바를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룰 수 있도록 해 준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4.2.3. 히브리서 7:20-22 예수의 제사장직은 레위적 제사장직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맹세'로 세워졌다(20-21절). 6장의 권면 문맥에서 도입되었던 맹세 주제가 이제 시편 110:4의 인용과 더불어 레위적 제사장직에 대한 멜기세덱 반차의 우월성을 증명해 보이는데 적절히 활용되고 있다. 한편 그 맹세한 약속을 성취하신 '영원한 제사장'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확실한 '보증'(e[gguo")이 되신 것이다(22절).
이렇게 볼 때 예수의 제사장직과 레위적 제사장직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종류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단락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4.2.4. 히브리서 7:23-25 예수의 제사장직의 영속성은 이미 앞에서 강조되어 왔다(5:6; 7:16-17, 21; 참조. 7:3). 이제 여기서는 이 영속성이 아론적 대제사장직과 예수의 제사장직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는데 사용된다. 아론적 제사장직은 계승적 원칙 하에 임명되었다. 왜냐하면 그들 중 그 누구도 제사장직의 권한을 영속적으로 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계열의 최초 제사장이었던 아론은 광야에서 대제사장으로 그의 백성을 섬겼지만, 결국 그의 대제사장직과 의복을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넘겨주어야 하였다(민 20:28). 후일에 엘르아살도 죽어 그의 아들 비느하스에 의해 계승되어야 하였고, 그 이후로도 그러한 계승은 계속되어 제2차 성전이 파괴된 주후 70년까지는 83여명의 대제사장이 그 직책을 계승하였던 것이다(Josephus, Ant. 20.227).
이에 반해 예수는 그의 제사장직을 영원히 소유하고 계신다. 비록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그의 제사장직은 그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은 최종적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그의 부활에 의해 그 모습이 가려졌고(참조. 7:16), 그 결과 그는 다른 제사장들로부터 구별되어 영원한 제사장이 된 것이다.
사실 히브리서 저자가 3절에서 창세기 14:18-20과 시편 110:4에 기초하여 멜기세덱의 영원성에 대한 논증에 심혈을 기울인 그 궁극적인 의도가 11절, 15-17절, 21절의 계단들을 지나 이제 24-25절에서 그 정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25절에서는 예수의 변함없는 제사장직의 결과가 그의 지속적인 구원의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특별히 언급되고 있다.
4.2.5 히브리서 7:26-28 저자는 지금까지 예수의 제사장직을 멜기세덱의 모형을 통해 설명해 왔다. 그러나 멜기세덱이 예수의 대제사장직을 모두 설명해 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따라서 저자는 본 단락에서 시편 110:4에 기초한 멜기세덱과 관련된 논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예수의 제사장직의 독특한 한 측면, 즉, 대제사장 스스로가 단번에 드려짐으로써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된 측면을 설명해 나간다.
레위적 제사장직의 희생 제사는 하나의 모형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 모형의 목표를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성취하신 것이다. 저자는 이 주제를 8:1-10:18에서 매우 자세하게 다루어 가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진정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필요한 제사장은 그 자신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레위적 제사 제도 전체를 마감하신 분, 즉, 예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강한 어조로 설명해 나갈 것이다.
저자는 본 단락을 예수께서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o{sio" a[kako" ajmivanto") 대제사장이시라는 기술로 시작하고(26절), 예수께서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uiJo;n eij" to;n aijw'na teteleiwmevnon)이시라는 기술로 끝맺는다(28절). 그런데 예수께서 이와 같이 되신 것은 그의 생애를 통해 드러내 보이신 영적 도덕적 측면에서의 완전한 순종(26, 28절; 참조. 2:18; 4:14-16)과 십자가상에서의 죽음(27절)의 결과이다. 사실 이러한 요건들은 저자가 4:14-5:10에서 대제사장 주제를 다루기 시작할 때, 대제사장은 인간을 공감할 수 있는 완전한 인간이어야 함을 언급하는 가운데 이미 강조되었던 내용들이다. 이렇게 볼 때, 히브리서 저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진정하고 완전한 대제사장은 7:11-25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영원한 신적 존재일 뿐 아니라, 4:14-5:10(그리고 2장)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조건도 갖춘 자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조건을 갖춘 유일한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완전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을 가지고 있기에, 확신 가운데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참조. 4:16; 7:25; 또한 참조 7:19).
5. 결론: 히브리서 7장에서 묘사된 대제사장 예수의 특성
이제 지금까지 우리의 모든 배경적, 석의적 논의를 종합하여, 히브리서 7장이 제시하는 예수의 제사장직의 특성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자.
5.1.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
히브리서 저자는 7장에서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소개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멜기세덱을 그 모형으로 사용하는데 매우 강한 관심을 보인다. 그는 이미 5:6에서 시편 110:4을 인용함으로써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심을 언급하였고, 5:10; 6:20에서 다시 반복해서 그러한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관심은 7장에서 훨씬 더 돋보인다.
7:1-10은 전체적으로 멜기세덱이 어떤 인물인가를 진술하는데 할애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모형을 성취하신 원형으로서의 제사장이심을 7:11, 15, 17, (21)에서 반복해서 확인해 주고 있다. 그가 7장에서 예수의 제사장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멜기세덱을 모형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 네 가지 기독론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1) 그는 맹세로 세워진 제사장이시다;
2) 그는 왕적 제사장이시다;
3) 그는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4) 그는 온전함을 이루시는 대제사장이시다.
이들 네 가지 사실들은 자연히 우리의 다음 소제목들을 형성한다.
5.2. 맹세로 세워진 제사장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의 제사장직이 레위적 제사장들과 달리 맹세로 세워졌음을 주목한다(7:21-22; 참조. 5:6). 이미 6장의 권면 문맥에서 도입되었던 맹세 주제가 이제 시편 110:4의 인용과 더불어 레위적 제사장직에 대한 멜기세덱 반차의 우월성을 증명해 보이는데 적절히 활용되고 있다. 히브리서 저자에게 있어서 맹세가 중요한 것은 그 맹세한 약속을 성취하신 '영원한 제사장' 예수는 '더 좋은 언약'(8장)의 확실한 보증이 되신다는 사실 때문이다(7:22).
5.3. 유다 지파로부터 나타난 왕적 제사장
히브리서 저자는 7:14에서 예수를 유다 지파로부터 나타난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그가 제사장일 뿐 아니라 왕이시라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암시는 이미 7:1-2에서 멜기세덱을 의와 평화의 왕으로 소개한 후 7:3에서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자라고 기술함으로써, 제사장 예수도 곧 의와 평화의 왕이심을 시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확고해 진다. 이러한 시사점들을 통해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를 의와 평화의 시대를 가져오시는 왕적 제사장 메시아로 제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5.4. 영원한 대제사장
히브리서 저자는 7:3에서 창세기 14:18-20과 시편 110:4에 기초하여 멜기세덱의 영원성에 대한 논증에 심혈을 기울인다(참조. 5:6; 6:20). 그런데 그의 그러한 논증의 의도는 7장이 진행되어 가면서 매우 분명해진다. 그는 이미 7:3 결론부에서 멜기세덱의 영원성의 원형은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심을 밝힌다.
그리고 그는 7:15-17과 7:21에서 그 멜기세덱의 영원성을 매체로 하여 예수 자신의 제사장직의 영원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또한 7:24-25에서는 그 논점의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 아론적 대제사장직은 계승적 원칙 하에 임명되었다. 이에 반해 예수는 그의 제사장직을 영원히 소유하고 계시는 것이다. 비록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그의 제사장직은 그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그의 부활에 의해 그 모습이 가려졌고(7:16),
그 결과 그는 다른 제사장들로부터 구별되어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예수의 대제사장직의 영원성과 관련된 논점은 7:26-28에서 예수의 새로운 역할(즉, 단번에 드려진 완전한 제물)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5.5. 온전함을 이루시는 대제사장
히브리서 저자는 7:11에서 제사장직에 있어서 '온전함'은 기대되어야 할 궁극적 목표임을 명확히 한다. 하지만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서는 이 온전함을 이룰 수 없었으며, 따라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새로운 대제사장의 필요성이 여기에서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대제사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는 연약하고 무익한 율법이 이루지 못하던 온전함을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룰 수 있도록 해 주며,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7:19). 그런데 예수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온전함에 이르도록 하실 수 있는 것은 그분 스스로가 완전한 인간으로서(참조. 4:14-5:10) 완전한 순종과 단번의 죽음을 통해 '영원히 온전케' 되셨기 때문이다(7:26-28). 히브리서 저자는 이 주제를 8:1-10:18에서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그곳에서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진정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필요한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장은 그 자신을 단번에 영원한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실 분(10:12-14; 참조. 7:11, 19, 25), 즉, 예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강한 어조로 설명해 나갈 것이다.
결론적으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의 제사장직의 특성들을 이처럼 다양하게 제시함으로써, 예수의 제사장직이 레위적 제사장직과 단순한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본질적인 종류의 차이를 갖고 있음을 그의 독자들에게 확고하게 확증해 주고 있다. 그는 이러한 논증에 있어서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을 전반적으로는 구약과 유대교의 전통적 이해의 흐름에 따르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상당히 창의적인 방식으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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