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와 같은 뜻이다.
번뇌 때문에 업이 쌓이고 | 업 때문에 고(苦)가 흘러 다니네. | |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을 취하고 | 취해야 할 것은 도리어 버리며 | 어둠 속을 달려 도(道) 아닌 것을 쫓으니 | 나무뿌리에 채이고 땅에 넘어진다네. | | 눈이 있으나 지혜가 없으니 | 그 깨우침도 이와 같으며, | 이런 인연이 사라지기 때문에 | 지혜의 밝음이 해가 뜬 것 같네. | | 이와 같이 간략하게 무명을 설명하였으니, 늙음과 죽음도 이와 같다. | [문] 불법(佛法) 가운데 인연은 매우 깊으니, 어떻게 어리석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연을 관찰할 수 있는가? | [답] 두 가지 부류의 어리석은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소나 양과 같은 사람이며, 둘째는 갖가지 사견(邪見)과 어리석음과 미혹으로 가리고 숨겨진 사견을 지닌 어리석은 사람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위해 마땅히 인연을 관찰하여 삼매를 익히라고 말씀하셨다. | | | 4. 정신작용[思覺]을 다스리는 법문 | | 만일 정신작용이 치우치게 많다면, 마땅히 아나반나(阿那般那)1)14) 삼매의 법문을 익혀야 한다. | 세 가지 배우는 사람이 있으니, 초습행ㆍ이습행ㆍ구습행이다. | | | | | 14) Anapana의 음사. 안반(安般)이라고도 하며, 호흡(息)이란 의미이다. ‘아나’는 들숨, ‘파나’는 날숨을 말하며, 이 두 의미가 합성된 말이다. | | | [22 / 95] 쪽 | 만일 초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한마음으로 생각하여 들숨과 날숨을 헤아린다. 길든 짧든 하나에서 열까지 헤아린다”라고 해야 한다. | 만일 이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하나로부터 열까지 헤아려서 호흡의 들어가고 나옴에 따라 생각과 호흡을 함께 마음의 한 곳에 멈춘다”라고 해야 한다. | 만일 구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수(數:헤아림)ㆍ수(隨:따라감)ㆍ지(止:멈추게 함)ㆍ관(觀:비추어 봄)ㆍ전관(轉觀:굴려 봄)ㆍ청정(淸淨:깨끗함)의 아나반나삼매의 여섯 가지 문을 열여섯으로 나누라”라고 해야 한다. | 무엇을 수(數)라고 하는가? | 한마음으로 들숨을 생각하고, 들숨이 끝나게 되면 하나를 헤아린다. 날숨이 끝남에 이르면 둘을 헤아린다. 만일 끝나지 않았는데 헤아린다면, 헤아리는 것이 아니다. 만일 둘로부터 아홉에 이르기까지 헤아렸으나 틀렸으면 다시 하나로부터 헤아려 시작하니, 비유컨대 계산하는 사람이 하나와 하나를 둘로 삼고, 둘과 둘을 넷으로 삼으며, 셋과 셋을 아홉으로 삼는 것과 같다. | [문] 무슨 까닭에 헤아리는가? | [답] 무상관(無常觀)을 쉽게 얻기 때문이며, 또한 온갖 정신작용을 끊어버리고 한마음을 얻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생멸하여 무상함은 서로 비슷하여 서로 이어지는 것을 보기 어려우나, 들숨과 날숨이 생멸하여 무상함은 쉽게 알고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이 수를 세는데 묶여 있어 여러 가지 정신작용을 차단한다. 정신작용이란, 탐욕의 정신작용ㆍ성냄의 정신작용ㆍ번뇌의 정신작용ㆍ친척관계의 정신작용ㆍ국토의 정신작용ㆍ불사(不死)의 정신작용이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 올바른 길[正道]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마땅히 세 가지 거친 정신작용을 제거해야 하고, 그 다음에 세 가지 세밀한 정신작용을 제거해야 한다. 이 여섯 가지 정신작용을 제거하고 나면 마땅히 일체의 청정한 법을 얻을 수 있으니, 비유컨대 금을 캐는 사람이 먼저 거친 돌과 자갈을 제거한 뒤에 가는 돌과 모래를 제거하면 점차적으로 가는 금과 모래를 얻는 것과 같다. | [문] 무엇을 거친 병[麤病]이라 하고, 무엇을 미세한 병[細病]이라고 하는 | | | [23 / 95] 쪽 | 가? | [답] 욕망과 성냄과 번뇌의 정신작용, 이 세 가지를 거친 병이라고 하고, 친척관계와 국토와 불사(不死)의 정신작용, 이 세 가지를 미세한 병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신작용을 제거하고 나면 일체의 청정한 법을 얻는다. | [문]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사람은 미처 결사(結使)를 끊지 못했으므로 여섯 가지 정신작용이 강하여 마음으로부터 혼란이 발생하니,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 | [답] 마음으로 세간을 싫어하고 바르게 관하여 막을 수는 있으나 아직 뽑아버릴 수 없으니, 뒤에 무루(無漏)의 도를 얻어야 번뇌의 근본을 뽑을 수 있다. | 무엇을 바르게 관한다[正觀]고 하는가? | | 탐욕이 많은 사람을 보건대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괴로움이요 | 이것을 얻어 지키는 것도 괴로움이며 | 이것을 잃어버릴까 근심하는 것도 커다란 괴로움이니 | 마음이 욕망을 얻고자 할 때 만족하지 못하면 괴롭다. | | 욕망은 항상 변하며 실체가 없고 근심의 씨앗이며 | 중생들 모두 이것이 있으니, 마땅히 깨달아 버려야 하네. | 예컨대 독사가 사람의 방으로 들어왔는데 | 서둘러 그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해로움이 반드시 이르는 것과 같네. | | 안정되지도 않고 참되지도 않으며 귀중하지도 않은 | 갖가지의 욕구와 뒤바뀐 즐거움을 | 여섯 가지 신통을 성취한 아라한처럼 | 제자들을 가르쳐서 깨우치고자 말하니 | | 그대들이 계율을 깨뜨리지 않으면 계율이 청정하여 | 여인과 함께 같은 방에서 자지 않겠지만 | | | [24 / 95] 쪽 | 욕망의 번뇌[欲結]라는 독사가 마음의 방안에 가득하면 | 얽히고 설킨 애착과 기쁨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 | 이미 몸의 계율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 그대의 마음은 항상 욕망의 불꽃과 함께 머물고 있으니 | 그대는 집을 나와 도를 찾는 사람인데 | 무슨 까닭에 마음대로 방종함이 이와 같은가? | | 부모가 너를 낳아 키워 주었으며 | 일가친척의 은혜와 사랑을 함께 성취하였고 | 모두 울면서 그대를 그리워하건만 | 그대는 버리고 되돌아 생각하지 않는구나. | | 마음은 항상 깨치고자 하는 가운데 있지만 | 함께 희희낙락하고자 해서 싫증내는 마음이 없고 | 항상 욕망의 불꽃을 즐기며 함께 한 곳에 있으니 | 환희와 애욕의 즐거움을 잠시도 떠나지 않는구나. | | 이와 같이 갖가지로 욕망의 정신작용을 꾸짖고,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올바른 관으로 욕망의 정신작용을 제거한다. | [문] 어떻게 성냄의 정신작용을 없애는가? | [답] 다음과 같다. | | 태(胎) 속에서 태어나 언제나 괴로우니 | 이 가운데 중생은 성내거나 고뇌하지 말라. | 만일 성냄과 고뇌를 생각하면 자비가 없어지니 | 자비는 성냄과 고뇌와 서로 비교할 수 없네. | | 그대가 자비를 생각하면 성냄과 번뇌가 없어지리니 | | | [25 / 95] 쪽 | 예컨대 밝음과 어두움이 한 곳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네. | 만일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성냄을 생각한다면 | 이 사람은 스스로 법의 이로움을 파괴하는 것이네. | | 예컨대 여러 마리 코끼리가 물에 들어가 목욕하고 나서 | 다시 진흙을 나누어 몸에 바르는 것과 같네. | 일체는 항상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나니 | 갖가지 채찍으로 백천 가지 고뇌를 매질해야 하네. | | 어떻게 착한 사람이 중생을 생각하면서 | 다시 성냄과 번뇌를 더하겠는가? | 만일 화를 내어 그를 해롭게 하고자 한다면 | 아직 남에게 미치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를 태운다네. | | 그러므로 항상 자비를 생각하고 행하며 | 성냄과 번뇌라는 나쁜 생각을 안에서 일으키지 않아서 | 사람이 항상 착한 법을 생각하고 행한다면 | 이 마음은 항상 부처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익히네. | | 그러므로 마땅히 착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 항상 착한 법을 생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면 | 금세에도 즐거움을 얻고 내세에도 그러할 것이니 | 도(道)를 얻어 언제나 즐거운 것이 열반이라네. | | 만일 마음에 착하지 않은 정신작용이 쌓이게 되면 | 자기의 이로움도 잃어버리고 아울러 남도 해롭게 하니 | 이것을 착하지 않음으로 저와 내가 손해를 본다고 하는 것이네. | 그에게 청정한 마음이 있더라도 또 다시 없어지니 | 예컨대 아란야의 도인(道人)이 | | | [26 / 95] 쪽 | 손을 들고 울면서 도적이 나를 겁탈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네. | | [문] 누가 너를 겁탈했느냐? | [답] 재물을 훔쳐가는 도적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재물을 축적하여 세상의 명리를 구하지 않으니, 누가 재물을 훔쳐가는 도적이 있어서 나를 침범할 수 있겠느냐? | 나는 선근(善根)과 여러 가지 법보(法寶)를 모아 깨우치고 관하였는데, 도적이 와서 나의 이로움을 파괴하였으니, 재물을 훔쳐가는 도적은 피할 수도 있고 숨길 곳도 많지만, 착함을 빼앗아 가는 도적이 오면 피할 곳이 없다. | 이와 같이 갖가지로 성냄을 꾸짖고, 이와 같이 갖가지로 바르게 관하여 성냄의 정신작용을 제거한다. | [문] 어떻게 번뇌의 정신작용을 제거하는가? | [답] 다음과 같다. | | 중생은 백천 가지의 | 모든 병이 번갈아 항상 찾아와서 괴롭히고 | 죽음의 도적은 사(伺)15)를 붙잡아 언제나 죽이려 하니 |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고뇌들이 저절로 침몰한다네. | | 어찌 착한 사람이 다시 고뇌를 더할 것인가? | 헐뜯고 비방하고 모략하고 위해하여 인자함이 없으면 | 그를 상해하기 전에 자신에게 재앙이 덮치니 | 세속 사람이 번뇌를 일으키는 것은 용서할 만하네. | | 이 일은 세간의 법이요, 악업의 원인이 되며 | 또 스스로 내가 선업을 닦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도 | | | | | 15) 관찰하는 마음의 미세한 작용, 또는 세밀하게 마음을 고찰하게 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 | | [27 / 95] 쪽 | 청정한 도를 찾아서 출가한 사람이 | 성을 내어 질투심을 품는다면 | 맑고 찬 구름 속에서 독의 불을 뿜는 것 같으니 | 이 사악한 죄가 지극히 깊다는 것을 마땅히 알라. | | 아란야의 수행자가 질투심을 일으키면 | 타심지(他心智)를 지닌 아라한이 | 가르쳐 훈계하고 괴롭게 책망하니, 그대는 어찌 어리석은가? | 질투는 스스로 공덕의 근본을 파괴하는 것이니 | 만일 공양을 구하거든 마땅히 스스로 | 모든 공덕의 근본을 모아 몸을 장엄해야 하네. | | 만일 계율과 선정과 다문(多聞)을 지키지 않으면 | 헛되이 물들인 옷[染衣]을 빌려 법신을 파괴하는 것이요 | 진실로 이 사람은 거지요, 남에게 해악을 입히는 사람이니 | 어찌 공양을 구하여 몸을 이롭게 할 것인가? | | 배고프고 목마르며 춥고 더움의 백천 가지 괴로움에 | 중생들은 항상 이 모든 번뇌에 곤고하여 | 몸과 마음의 고뇌와 재앙이 다함이 없으니 | 어찌 착한 사람이 모든 번뇌를 더할 것인가? | | 예컨대 병과 종기를 침으로 찌르는 것과 같고 | 또한 지옥의 죄인이 살펴보아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과 같다. | 고뇌와 재앙이 몸을 묶고 뭇 고뇌가 모였으니 | 어떻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다시 심하게 하리오? | |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번뇌의 정신작용을 질책하였으며,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바르게 관조하여 번뇌의 정신작용을 제거한다. | | | [28 / 95] 쪽 | [문] 어떻게 친척관계의 정신작용을 제거하는가? | [답]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 세계의 삶과 죽음 속에서 자신의 업이 일체의 조건을 이끌어 가니, 어느 것이 가까운 것이고, 어느 것이 가깝지 않은 것인가? 다만 어리석기 때문에 함부로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나와 친하다고 헤아리니, 과거 세상에서 친하지 않았던 것이 현세에서는 친한 것이 되었고, 미래 세상에서도 친하지 않았던 것으로 친함을 삼을 것이며, 지금 세상에서 친한 것이 과거 세상에서는 친하지 않았던 것이다. | 비유컨대 새가 저녁에는 한 나무에 모여 있다가 새벽이면 각각 인연 따라 날아가는 것과 같이, 가족과 친척도 이와 같아서 세계 속에 살면서도 각각 스스로 마음을 달리하니, 연(緣)으로 모였기 때문에 가깝고 연이 흩어졌기 때문에 멀어지는 것이다. | 결정된 진실은 있을 수 없으며, 인연의 과보 때문에 서로 가까운 것이니, 비유컨대 마른 모래를 손으로 뭉쳐 잡은 것과 같이, 조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합해진 것이며,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흩어진다. | 부모는 자식을 양육하고 늙어서 마땅히 보답을 받아야 하며, 자식은 품어서 길러주심을 입었기 때문에 마땅히 보답해야 하니, 만일 그 뜻을 따르면 가까운 것이고, 만일 그 뜻을 거스르면 이것은 도적이다. | 가까우면서 이롭게 할 수 없으면 도리어 해롭게 하는 것이요, 친하지 않으면서 손해가 없으면 크게 이로운 것이다. | 사람은 인연 때문에 애착심을 내며 애착의 인연 때문에 다시 끊으니, 비유컨대 화가가 아낙네의 모습을 그려 놓고 도리어 스스로 애착하는 것과 같이, 이것도 마찬가지여서 스스로 물들고 집착하는[染着] 마음을 내어 바깥에 염착한다. | 과거의 세상 속에서 그대는 친척관계였으니, 지금 세상에서 그대는 다시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가? 그대도 과거의 친척을 이롭게 할 수 없으며, 과거의 친척도 그대를 이롭게 할 수 없으니, 둘 다 서로 이롭게 할 수 없다. | 공허한 생각으로 친함과 친하지 않음을 만드는 것이지, 세계 속에서는 정해진 것도 없고 끝도 없다. | | | [29 / 95] 쪽 | 아라한이 막 출가하여 친척을 그리워하는 제자에게 가르쳐 말하는 것과 같으니, “악한 사람이 음식을 뱉었다가 다시 도로 삼키고자 하는 것과 같이 그대도 마찬가지이니, 그대는 이미 출가하였거늘 무슨 까닭에 다시 애착하려고 하는가?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는 것은 해탈의 모습인데, 그대가 친척에게 집착한다면 해탈할 수 없으며, 도리어 애착 때문에 묶이게 된다. 삼계는 늘 변하기 때문에 흐르고 굴러서 고정되지 않으니, 만일 친하다 하더라도 친한 것이 아니다. 비록 지금은 친척이라도 오래되면 곧 사라지니, 이와 같이 시방의 중생은 돌고 돈다. 친척이 정해진 것이 없으니 이것은 나의 친척이 아니다.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무심(無心)하고 분별력도 없으며, 곧바로 보아서 굴리지 않으며, 기(氣)를 닫고 목숨이 끊어져 마치 어두운 구덩이에 떨어진 것과 같은데, 이때 친척과 가족들은 편안하게 있다. 처음 태어날 때는 이전 세상에서 친척이 아니었는데도 지금 억지로 화합하여 친척이 되었으며, 죽음에 당했을 때는 다시 친척이 아니니, 이와 같이 사유하여 마땅히 친척에 집착하지 말라. 마치 사람의 어린애가 죽으면 일시에 세 곳에서 부모가 동시에 우는 것과 같으니, 하늘 위의 부모와 처자를 속이고, 사람 가운데서도 또한 속이며, 용(龍) 가운데 부모도 속이게 된다.” |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바르게 관하여 친척의 정신작용을 제거한다. | [문] 어떻게 국토의 정신작용을 없애는가? | [답] 수행자가 만일 이 국토는 풍요롭고 즐겁고 안온하며 갖가지 좋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항상 국토라는 정신작용의 새끼줄에 끌려 다니게 된다. 장차 잘못된 점을 버리면 마음을 깨닫는 것이 이와 같으니, 만일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생각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 왜냐하면 국토는 갖가지 허물과 죄악으로 타버리고 시절은 변하기 때문이며, 또한 배고픔과 몸의 피로가 지극하기 때문이니, 일체의 국토는 언제나 편안하지 않은 것이며, 또한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이 있지 않은 나라는 없다. | 이 사이의 육체적 괴로움으로부터 가서 저곳의 육체적 괴로움을 얻으니, 일체의 국토로 가서 괴로움 아닌 것이 없다. | 이를테면 어떤 국토가 안락하고 풍족하고 즐겁더라도 번뇌[結惱]가 있어 | | | [30 / 95] 쪽 | 서 마음에 괴로움과 우환이 생기니, 이것은 좋은 국토가 아니다. | 능히 잡스럽고 나쁜 국토를 제거할 수 있고, 능히 번뇌를 엷게 할 수 있으며, 마음을 괴롭히지 않으면, 이를 좋은 국토라 한다. | 일체의 중생들은 두 가지 괴로움이 있으니, 육체적 괴로움과 정신적 괴로움인데, 언제나 고뇌를 지니고 있으며, 이 두 가지 고뇌가 없는 국토는 없다. | 또한 어떤 국토는 매우 춥고 어떤 국토는 매우 더우며, 어떤 국토는 배고픔에 허덕이고, 어떤 국토는 질병이 많으며, 어떤 국토는 도적이 많고, 어떤 국토는 왕법(王法)으로 다스리지 않으니,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국토의 악(惡)을 마음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 이와 같이 바르게 관하여 국토의 정신작용을 제거한다. | [문] 어떻게 죽지 않는다는 정신작용을 제거하는가? | [답] 마땅히 수행자에게 가르쳐야 하니, 만일 좋은 집에서 태어나거나, 종족의 자식이나 재주와 기술이 있거나 세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태어나는 등의 일체를 생각하지 마라. 왜냐하면 일체가 죽을 때는 늙음ㆍ젊음ㆍ귀함ㆍ천함ㆍ재주ㆍ기술ㆍ힘ㆍ세력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 이 몸은 일체의 근심과 번뇌의 갖가지 인연의 근본인데, 스스로 일찍 죽거나 오래 사는 것을 보고서 만일 안온함을 얻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근심과 번뇌의 원인이 이 4대(大)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 4대가 물질을 만드나 마치 네 마리의 독사와 같아서 함께 상응하지 않으니, 누가 안온함을 얻을 수 있는가? 나간 숨이 들어올 것을 기대하지만 이것을 믿을 수 없으며, 또한 사람이 잠잘 때 반드시 깨어나기를 기대하지만 이 일은 믿을 수 없다. | 태(胎)에 들어 늙음에 이르러 죽는 일은 항상 오는데, 죽을 때를 찾으면서도 항상 죽지 않는다고 말하니,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 비유컨대 살인하는 도적이 칼을 뽑고 활시위에 화살을 끼워 항상 사람을 죽이면서도 연민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인간 세상에서 죽음의 힘이 가장 크며, 어느 것도 죽음의 힘보다 강한 것은 없다. | 만일 과거의 세상에서 제일 미묘했던 사람도 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 |
다면, 현재도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위대한 지혜를 지닌 사람은 없다. 또한 부드러운 말로도 구할 수 없으며, 교묘한 말로 속이더라도 피하거나 벗어날 수 없으며, 또한 지계와 정진도 이 죽음을 벗어나게 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사람의 목숨은 항상 위태로워서 믿고 의지할 수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 항상 나의 목숨은 오래 살 것이라고 믿고 헤아리지 마라. 이 모든 죽음의 도적들은 항상 사람을 이끌어 가니, 다 늙기를 기다린 연후에야 마땅히 죽이지는 않는다. | 마치 아라한이 고뇌하는 제자들에게 모든 깨달음을 가르쳐서 말하기를, “그대는 왜 세간을 싫어하여 도(道)에 들어올 줄 모르는가? 어떻게 이 깨달음을 지을 것인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 어떤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문득 죽고, 태어났을 때 죽는 사람이 있으며, 젖먹이때나 젖을 끊었을 때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어려서, 어떤 사람은 장년 시절에, 어떤 사람은 늙어서 죽으니, 일체의 시간 속에서 죽음의 법계에 들어간다. | 비유컨대 나무의 꽃이 피자마자 곧 떨어지거나, 열매가 있을 때 떨어지기도 하고, 아직 익지 않았을 때 떨어지기도 하는 것과 같다. | 그러므로 마땅히 삼가 정진에 힘써서 안온한 도를 찾아야 함을 알아야만 한다. | 커다란 힘을 지닌 도적은 함께 살아도 믿을 수 없으니, 이 도적은 호랑이처럼 교묘하게 가리어 몸을 숨긴다. 이와 같이 죽음의 도적은 항상 사람 죽이기를 구한다. |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공하여 물거품과 같으니, 어찌 마땅히 때를 기다려서 도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는가? 어느 누가 그대는 늙어서 반드시 도를 행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가? | 비유컨대 험한 언덕의 커다란 나무 위에는 큰 바람이 있고, 아래에는 많은 물이 있어서 그 뿌리의 흙이 무너지는 것과 같으니, 누가 마땅히 이 나무가 오래 살 것이라고 믿을 것인가? | 사람의 목숨도 이와 같아 어려서는 믿지 않는다. | | | [32 / 95] 쪽 | 아버지는 곡식의 씨앗과 같고, 어머니는 좋은 밭과 같으며, 전생의 인연과 죄와 복은 비나 이슬과 같으며, 중생은 곡식과 같고, 생사는 수확과 같다. | 갖가지 여러 천자와 인왕(人王)의 지혜와 덕은 천왕이 하늘을 도와 모든 아수륜(阿須倫)16)의 군대와 싸워 격파하는 것과 같아서 가지가지의 즐거움을 받아들이며 지극히 높고 크고 밝지만 도리어 칠흙 같은 어둠 속에 빠지니, 그러므로 목숨이 살아있다고 믿고 ‘내 오늘은 마땅히 이것을 하고, 내일은 마땅히 이것을 하리라’고 말하지 마라. | 이와 같이 바르게 관하여 죽지 않는다는 정신작용을 여러 가지로 제거하며, 이와 같이 먼저 거친 정신작용을 제거하고 뒤에 미세한 정신작용을 제거하면, 마음이 청정해져서 살아서 올바른 도를 얻으리니, 일체의 번뇌가 없어지고 이로부터 안온한 곳을 얻는다. 이것을 바로 출가의 열매[果]라고 하니, 마음에 자재함을 얻고, 3업(業)이 가장 청정해져 다시는 태에 들지 않는다. | 갖가지 경전을 읽고 많이 들으면 이때 과보를 얻으리니, 이와 같이 과보를 얻으면 헛되지 않아 마왕의 군대를 격파하여 문득 가장 용맹하다는 이름을 얻는다. | 세계 안에서 번뇌의 장군이 사라져도 이것을 굳세다고 이름하지 않으니, 능히 번뇌의 도적을 격파하여 3독의 불을 없애 시원하게 청정함을 즐기고, 열반의 숲 속에서 안온하게 베개를 높이 베며, 가지가지의 선정ㆍ근(根)ㆍ역(力)ㆍ7각지(覺支)의 청량한 바람이 네 번 일어나고, 중생들이 3독의 바다에 빠진 것을 돌아보며, 공덕의 미묘한 힘이 이와 같은 것을 이름하여 굳세다고 한다. | 이와 같이 마음이 흩어지면 마땅히 아나반나를 생각하고 여섯 가지 법을 배워 여러 가지 정신작용을 끊어야 하니, 이 때문에 수식(數息)을 생각하는 것이다. | [문] 만일 나머지 부정(不淨)과 염불(念佛) 등의 네 가지 관법 중에서도 역시 정신작용을 끊을 수 있다면 무슨 까닭에 유독 수식만을 말하는가? | [답] 나머지 관법은 느슨해서 잃어버리기 어렵기 때문이요, 수식법은 급하 | | | | | 16) 아수라와 같은 말이다. | | | [33 / 95] 쪽 | 여 쉽게 변하기 때문이니, 비유컨대 풀어놓은 소와 같아서 소는 잃어버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는 일은 적으며, 풀어놓은 원숭이는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는 일이 많은 것과 같다. | 이것 또한 그러해서 수식(數息)의 심수(心數)17)는 어렸을 때는 그 생각을 얻을 수 없으니, 어렸을 때 그것을 생각하면 곧 수(數)를 잃어버린다. | 그러므로 처음에는 정신작용을 차단하고 마땅히 호흡을 헤아린다. 이미 헤아리는 법을 얻었으면, 마땅히 따르는 법[隨法]을 행하여 여러 가지 정신작용을 끊어버린다. | 들숨을 마칠 때까지 마땅히 따르되 하나를 헤아리지 마라. 날숨을 마칠 때까지 마땅히 따르되 둘을 헤아리지 마라. 비유컨대 채무를 진 사람을 채권주가 따라가서 끝까지 버리지 않는 것과 같다. | 이와 같이 사유하라. 이 들숨은 돌아오는 것이며, 나오면 다시 다름이 있다. 날숨은 돌아오는 것이며, 들어오면 다시 다름이 있다. 이때 들숨의 다름과 날숨의 다름을 아니, 왜냐하면 날숨은 따스하고 들숨은 차다. | [문] 들고 나는 숨은 하나의 호흡이니, 왜냐하면 날숨이 되돌아 다시 들어오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물을 머금으면 물은 따뜻해지고 물을 토하면 물이 차가워지는 것과 같이, 찬 것은 따뜻한 것으로 되돌아오고, 따뜻한 것은 찬 것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 [답] 그렇지 않다. 안에서 심장이 움직이기 때문에 숨이 나오는 것인데, 나와서는 곧 없어진다. 코와 입이 바깥을 당기면 곧 숨이 들어오며 들어왔기 때문에 숨은 없어지니, 또한 데리고 나오지도 않고 데리고 들어가지도 않는다. | 또한 소년ㆍ장년ㆍ노년의 사람들은, 소년은 들숨이 길고 장년은 들고 나는 숨이 같으며, 노인은 날숨이 길다. 그러므로 호흡이 한결같지 않다. | 또한 배꼽 가에서 바람이 일어나고, 서로 비슷해지고, 서로 이어져서 숨이 나와 입과 코의 변두리에 이르며, 나오면 곧 없어지니, 비유컨대 풀무 주머 | | | | | 17) 심소(心所)의 구역(舊譯). 일반적으로 마음이 대상을 인식하는 경우에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다. | | | [34 / 95] 쪽 | 니 속의 바람이 열리자마자 없어지는 것과 같다. | 만일 입과 코의 인연으로 그것을 당기면 곧 바람이 들어오니, 이것은 새로운 인연의 끝에서 생기는 것이다. 비유컨대 부채는 뭇 인연이 합해졌기 때문에 바람이 있는 것과 같다. | 이때 들어오고 나오는 호흡의 인연은 허망하고 진실하지 않아서 생겼다 없어지며 늘 변하는 것임을 알고, 이와 같이 사유한다. | 날숨은 입과 코의 인연에 따라 당기며, 들숨의 인연이 있기에 심장이 움직여 살게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내가 숨 쉰다고 한다. | 숨은 바람이니, 바깥의 바람과 다름이 없으며, 땅ㆍ물ㆍ불ㆍ공(空)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다섯 가지 커다란 인연이 화합하였기 때문에 식(識)이 생기며, 식도 마찬가지여서 역시 나의 소유가 아니다. 5음(陰)ㆍ12입(入)ㆍ18계(界)도 마찬가지이다. | 이와 같이 앎이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것을 따르니, 이것 때문에 ‘수(隨)’라고 이름한다. | 이미 따르는 법을 얻었으면 마땅히 멈추는 법[止法]을 행해야 하니, 멈추는 법이란 헤아림[數]과 따름[隨]의 마음이 지극해서 마음을 풍문(風門)에 머물게 하고 들어가고 나오는 숨을 생각하는 것이다. | [문] 무슨 까닭에 멈추는가? | [답] 여러 가지 정신작용을 끊기 때문이고, 마음이 흩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숨을 헤아리고 따를 때는 마음이 많은 근심에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며, 멈추면 마음이 한가롭고 일이 적어지기 때문이며, 마음이 한 곳에 머물기 때문이다. | 숨이 나고 드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비유컨대 문을 지키는 사람이 문가에 살면서 사람의 출입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마음을 멈추는 것도 그렇다. | 숨이 나올 때는 배꼽ㆍ심장ㆍ가슴ㆍ목구멍으로부터 입과 코에 이르고, 숨이 들어올 때는 입ㆍ코ㆍ목구멍ㆍ가슴ㆍ심장으로부터 배꼽에 이르는 것을 아니, 이와 같이 마음을 한 곳에 묶어 두는 것을 이름하여 멈춘다[止]고 한다. 또한 마음을 지법(止法) 가운데 머물면서 관한다. | 들숨 때 5음(陰)의 생성과 소멸이 다르고, 날숨 때 5음의 생성과 소멸이 | | | [35 / 95] 쪽 | 달라서, 이와 같이 마음이 흩어지면 바로 제거하여 버리고, 한마음으로 사유하여 관을 증장시키는 것을 이름하여 관법(觀法)이라고 한다. | 풍문(風門)에 머무는 것을 버리고 거친 관법을 여의니, 거친 관법을 여의어서 호흡의 무상(無常)을 알면, 이것을 전관(轉觀)이라고 한다. | 5음의 무상함을 관하고, 또한 들숨과 날숨의 생기고 소멸함과 무상함을 생각한다. 첫머리의 숨을 보건대 온 곳이 없고, 다음으로 뒤의 숨을 관하여도 역시 자취가 없다. 인연이 화합했기 때문에 있고, 인연이 흩어지기 때문에 없으니, 이것을 전관법(轉觀法)이라고 한다. | 5개(蓋)와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비록 먼저 번뇌와 부정(不淨)을 지관(止觀)하더라도 마음이 복잡하면, 지금의 이 청정한 법에서 마음은 홀로 청정함을 얻을 수 있다. | 또한 앞에서 다른 훈련[異學]과 서로 비슷함을 관하여 도를 행하고 호흡의 출입을 생각하였으니, 지금의 무루도(無漏道)와 서로 비슷하며, 선(善)을 행하는 유루도(有漏道)를 청정하다고 말한다. | 또한 처음에는 신념지(身念止)의 부분을 관하고, 점차로 일체의 신념지를 관하며, 다음에 통념지(痛念止)와 심념지(心念止)를 행한다. | 이 가운데 청정하지 아니하여 무루도가 멀어졌기 때문에 지금은 법념지(法念止) 중에서 16행(行)을 관하여 들고 나는 숨을 생각하며, 난법(暖法)ㆍ정법(頂法)ㆍ인법(忍法)ㆍ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ㆍ고법인(苦法忍) 나아가 무학진지(無學盡智)를 얻으니, 이것을 청정이라고 한다. | 이 열여섯 가지 나뉨 중에서 처음의 들숨 부분이 여섯 가지 안나반나행(安那般那行)이며, 날숨 부분도 역시 그렇다. | 한마음으로 호흡의 출입과 길고 짧음을 생각하니, 비유컨대 사람이 산을 달려서 올라갈 때 무거운 것을 지거나 기(氣)가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와 같은 것으로 이 호흡의 짧음에 비유하고, 만일 사람이 극도에 달했을 때라면 숨을 편안하게 하여 기쁨을 얻으며, 또한 이로움을 얻어 지옥 속에서 나오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은 것은 호흡이 긴 것이다. | 일체의 호흡은 길던지 짧던지 두 곳을 따르니, 그러므로 숨이 길다거나 숨이 짧다고 말한다. | | | [36 / 95] 쪽 | 이 가운데서도 역시 안나반나의 여섯 가지 일을 행하여 여러 가지 호흡이 몸에 두루 있음을 생각하며, 또한 호흡의 출입을 생각하여 몸속의 모든 날숨과 들숨을 다 관한다. | 들숨에서는 몸속, 나아가 발가락까지 두루 미치고 모든 털구멍까지 두루 미치는 것이 마치 물이 모래에 스며드는 것과 같음을 깨우쳐 알고, 호흡이 나올 때는 발로부터 머리칼에 이르기까지 모든 털구멍에 두루하는 것이 마치 물이 모래에 스며드는 것과 같음을 깨달아 안다. | 비유컨대 가죽 주머니에 바람이 들어가고 나와서 모두 가득 채우는 것과 같이, 입과 코에 바람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도 또한 그렇다. | 몸을 두루 관하여 바람이 가는 곳을 보니, 마치 연뿌리의 구멍과 같고, 또한 고기 잡는 그물과 같다. 다시 마음으로 오직 입과 코뿐만이 아니라 호흡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관하니, 일체의 털구멍과 아홉 구멍 속에서도 역시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숨은 모든 몸에 두루하며, 모든 몸의 행을 다스림을 알고, 또한 들어오고 나오는 숨을 생각한다. | 처음 숨을 배울 때 만일 몸이 나른해지고 잠이 오며 몸이 무거우면 모두 없애버리고, 몸이 가볍고 부드러우면 선정을 따라 마음으로 기쁨을 받는다. | 또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여 게으름과 잠과 마음의 무거움을 제거하며, 마음의 가벼움과 유연함을 얻어 선정을 따라 마음으로 기쁨을 받는다. | 또한 신념지(身念止)에 들어가 마치며, 다음으로 통념지(痛念止)를 행한다. 이미 신념지를 얻었으므로 진실로 지금 다시 통념지를 얻어 진실로 기쁨을 받는다. | 또한 이미 몸의 실상을 알았으므로 이제 마음과 심수법(心數法)18)의 실상을 알고자 하니, 그러므로 기쁨을 받는다. | 또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여 즐거움을 받으며, 또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기쁨을 늘어나게 하니, 이것을 즐거움 | | | | | 18) 마음과 심수(心數)란 심왕과 심소유법, 즉 마음의 당체와 마음으로 인식하는 인식의 객관적 대상을 말하는 것이다. | | | [37 / 95] 쪽 | [樂]이라 한다. | 또한 처음의 마음속에서 기쁨이 생기는 것을 기쁘다[喜]고 하고, 뒤에 몸에 기쁨이 두루한 것을 즐거움[樂]이라고 한다. | 또한 초선(初禪)과 2선(禪) 가운데 즐거움과 고통을 기쁨[喜]이라고 하고, 3선(禪) 가운데 즐거움과 고통을 즐거움을 받는다[受樂]고 한다. | 모든 심행(心行)을 받아 또한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생각하니, 모든 마음이 생기고 소멸하는 법[心生滅法], 마음이 물드는 법[心染法], 마음이 물들지 않는 법[心不染法], 마음이 흩어지는 법[心散法], 마음을 거두는 법[心攝法], 마음이 바른 법[心正法], 마음이 삿된 법[心邪法] 등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마음의 모습[心相]을 이름하여 마음의 움직임[心行]이라고 한다. | 마음이 기쁠 때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먼저 기쁨을 느끼는 것은 저절로 생겨서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이니, 마음을 관찰하기 때문에 기쁨을 만든다. | [문] 무슨 까닭에 기쁨을 만드는가? | [답] 두 가지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기 때문이니, 산심(散心)과 섭심(攝心)이다. 이와 같이 마음을 먹으면 번뇌를 벗어날 수 있으니, 그러므로 법을 생각하면 마음은 기쁨을 만든다. 만일 마음이 기쁘지 않으면 격려하여 기쁘게 한다. | 마음을 거두어들일 때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여, 설령 마음이 안정되지 않더라도 강제로 항복시켜 안정되게 하니,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마음이 안정된 것이 바로 도(道)이며, 마음의 흐트러짐은 도가 아니다. | 마음이 해탈했을 때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오는 것을 생각한다. 만일 뜻[意]이 이해하지 못했으면 강제로 항복시켜 이해하게 한다. | 비유컨대 양(羊)이 도꼬마리[蒼耳]덤불 속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도꼬마리가 몸에 붙으면 사람들은 점차 그것을 떨어버리니, 마음으로 여러 가지 번뇌의 결박을 벗어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심념지(心念止)로 해탈을 이룬다고 한다. | 무상(無常)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일 | | | [38 / 95] 쪽 | 체의 존재는 늘 변하는 것이며, 태어나고 없어지며, 공이요 무아라고 관한다. 태어날 때의 일체의 존재는 태어남이 없으며, 없어질 때의 일체의 존재는 없어짐도 없다. 이 가운데는 남자도 여자도 없으며, 사람도 없고,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다. 이것을 무상관(無常觀)을 따른다고 한다. | 유위법(有爲法)이 나와 흩어짐[出散]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 무상(無常)함을 생각한다. 이것을 ‘나와서 흩어짐’이라고 이름하니, 모든 유위법은 현세 속에서 나온다. 과거의 인연을 좇아 화합하기 때문에 모이고, 인연이 허물어지기 때문에 흩어진다. 이와 같이 따라서 관하는 것을 출산관(出散觀)이라고 한다. | 욕망과 번뇌를 여읨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마음이 모든 번뇌를 여의는 데는 이 법이 제일이다. 이것을 이욕관(離欲觀)을 따른다고 한다. | 다함[盡]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모든 번뇌의 괴로움은 있는 곳에서 다하므로 이곳은 안온하다. 이것을 진관(盡觀)을 따른다고 한다. | 버리는 것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모든 오염된 애착[染愛]ㆍ번뇌ㆍ신심(身心)ㆍ5음(陰) 등 모든 유위법을 버리면 이것이 가장 안온한 것이다.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을 법의지관(法意止觀)을 따른다고 한다. | 이것을 열여섯 가지 나뉨이라고 한다. | | | 5. 등분(等分)을 다스리는 법문 | 5. 등분(等分)19)을 다스리는 법문 | | 다섯 번째 법문은 등분을 다스리는 행이다. | | | | | 19) 등분이란 성실견(性實見)ㆍ착아견(着我見)ㆍ단(斷)ㆍ상(常)의 네 가지 견해가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성실견이란 본질적인 궁극적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이며, 착아견은 나에게 집착하는 견해이고, 단견은 일종의 염세주의로서 이 세상은 단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상견은 이 세상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견해이다. | | | [39 / 95] 쪽 |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은 부처님을 찾으니,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마땅히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는 삼매를 가르쳐야 한다. | 염불삼매에는 세 가지 사람이 있으니, 초습행(初習行)ㆍ이습행(已習行)ㆍ구습행(久習行)이다. | 만일 초습행의 사람이라면 불상이 있는 곳에 데리고 가거나, 혹은 스스로 가게 하여 불상의 상호를 잘 보게 한다. 모습 모습이 명료해지면 한마음으로 지니고 조용한 곳으로 돌아가 마음의 눈[心眼]으로 불상을 관조하여 마음이 돌아다니지 않게 하고, 생각을 묶어 불상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다른 생각을 거두어서 항상 불상에 머물게 한다. | 만일 마음이 머물지 않는다면 스승은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그대는 마땅히 마음을 꾸짖어야 한다. 그대로 말미암아 받는 죄가 헤아릴 수 없으니, 끝없는 생사와 갖가지 고뇌를 다시 받지 않는 것이 없다. 만일 지옥에 있으면 큰 바다 같은 구리를 삼키거나 마시며, 타오르는 쇠구슬을 먹고, 만일 축생에 있으면 똥과 풀을 먹으며, 만일 아귀에 있으면 배고픔의 고통을 받고, 만일 사람 속에 있으면 가난하고 고단하며, 만일 하늘 위에 있으면 욕망을 잃어버리고 근심한다. 항상 그대를 따르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이 갖가지 육체적 고뇌[身惱], 정신적 고뇌[心惱] 등 헤아릴 수 없는 고뇌를 받게 하니, 이제 마땅히 그대를 통제하리라. 그대는 마땅히 나를 따르라. 내 이제 그대를 한 곳에 묶어서 내가 마침내 다시는 그대 때문에 곤란해지거나 괴로움의 해독을 받지 않으리라. 그대가 항상 나를 곤란하게 했으니, 내 이제 마땅히 일[事]로써 그대를 곤란하게 하리라. 이와 같이 하여 그만두지 않으면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리라. 이때 문득 마음의 눈을 얻어 불상의 모습과 광명을 보리니, 눈에 보인 그대로여서 다름이 없다”라고 해야 한다. | 이와 같이 마음이 머물면, 이것을 ‘처음으로 익혀서 행하는 이의 사유(思惟)’라고 한다. | 이때 마땅히 다시 생각해서 ‘이것은 누구의 모습인가? 바로 과거 석가모니부처님의 모습이다. 내가 이제 부처님의 형상을 보았듯이 형상이 온 것도 아니고, 나 역시 가지 않았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와 같은 심상(心想)으로 과거의 부처님을 본다. | | | [40 / 95] 쪽 | 처음 신(神)이 내려올 때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고, 32상(相)의 대인(大人)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첫째 발바닥이 평평하다. 둘째 발바닥에 천 개의 바퀴살이 있는 바퀴가 있다. 셋째, 손가락이 길고 아름답다. 넷째, 발뒤꿈치가 넓다. 다섯째, 손가락과 발가락에 모두 명주그물이 있다. 여섯째, 다리를 포개면 높고 평평하며 아름답다. 일곱째, 이니연(伊尼延)20)의 무릎과 같다. 여덟째, 평소에는 손이 무릎을 지난다. 아홉째, 음마장(陰馬藏)의 모습이다. 열째, 니구로다(尼俱盧陁)의 몸이다. 열한째, 하나하나의 구멍에 하나하나의 털이 나 있다. 열두째, 털이 위쪽을 향해 나서 오른쪽으로 선회한다. 열셋째, 몸의 빛깔이 상품의 금보다 더 뛰어나다. 열넷째, 신광(身光)이 네 면의 한 길[丈]을 비춘다. 열다섯째, 피부가 아름답다. 열여섯째, 일곱 곳이 가득 차 있다. 열일곱째, 양쪽 겨드랑이 아래가 평평하고 아름답다. 열여덟째, 윗몸이 사자와 같다. 열아홉째, 몸이 크고 아름다우며 단정하고 반듯하다. 스무째, 어깨가 둥글고 아름답다. 스물한째, 40개의 치아가 있다. 스물두째, 치아가 희고 고르며 빽빽하고 뿌리가 깊다. 스물셋째, 네 개의 어금니가 희고 크다. 스물넷째, 뺨이 사자와 같다. 스물다섯째, 맛 중에서 최상의 맛을 얻는다. 스물여섯째, 혀가 크고 넓고 길면서 얇다. 스물일곱째, 범음(梵音)이 깊고 멀리까지 들린다. 스물여덟째, 가릉빈가의 음성이다. 스물아홉째, 눈이 감청색이다. 서른째, 속눈썹이 우왕(牛王)과 같다. 서른한째, 정수리의 터럭이 육골(肉骨)을 이룬다. 서른두째, 미간에 흰 터럭이 길고 아름다우며 오른쪽으로 감겨 있다. | 다시 80가지 작은 특징이 있다. 첫째, 정수리를 볼 수 없다. 둘째, 코가 곧고 높으며 아름답고 구멍이 드러나지 않는다. 셋째, 눈썹이 초승달과 같고 감색 유리 빛이다. 넷째, 귀가 아름답다. 다섯째, 몸이 나라연과 같다. 여섯째, 뼈 사이는 쇠사슬과 같다. 일곱째, 몸이 한꺼번에 도는 것이 코끼리 왕과 같다. 여덟째, 움직일 때는 발이 땅에 네 마디마다 발자국을 찍어서 나타낸다. 아홉째, 손톱은 붉은 구리 빛깔과 같고 얇으면서도 윤이 난다. 열째, 무 | | | | | 20) 녹왕(鹿王)으로 번역한다. 부처님의 무릎이 이 사슴처럼 길고 짧은 정도가 적당함을 말한다.
릎이 둥글고 아름답다. 열한째, 몸이 청결하다. 열두째, 몸이 유연하다. 열셋째, 몸이 굽지 않았다. 열넷째, 손가락이 길고 둥글며 가늘다. 열다섯째, 지문(指紋)이 그림과 같으며, 여러 가지 색으로 장엄하였다. 열여섯째, 혈맥이 깊어 보이지 않는다. 열일곱째, 복사뼈가 깊어서 보이지 않는다. 열여덟째, 몸이 윤기 나고 광택이 있다. 열아홉째, 몸을 스스로 지키고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스무째, 몸이 달을 다 채워서 태어난다.[3월에 수태하여 2월에 태어났다.] 스물한째, 용모와 위의가 충족되어 있다. 스물두째, 머무는 곳이 편안하다.[우왕이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스물셋째, 위엄을 일체에게 떨친다. 스물넷째, 일체를 즐겁게 본다. 스물다섯째, 얼굴이 길지 않다. 스물여섯째, 반듯한 용모에 요란스럽지 않은 빛깔이다. 스물일곱째, 입술이 빈바(頻婆)21) 열매의 빛깔과 같다. 스물여덟째, 얼굴이 원만하다. 스물아홉째, 울리는 소리가 깊다. 서른째, 배꼽이 둥글고 깊어 나오지 않았다. 서른한째, 터럭이 곳곳에서 오른쪽으로 감겨 있다. 서른두째, 손과 발이 원만하다. 서른셋째, 손과 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옛날에 ‘안팎을 잡는다’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서른넷째, 손과 발의 문양이 분명하고 곧다. 서른다섯째, 손의 문양이 길다. 서른여섯째, 손의 문양이 끊어지지 않았다. 서른일곱째, 일체의 악한 마음을 머금고 있는 중생들이 보게 되면 모두 온화하고 기쁜 낯빛을 얻는다. 서른여덟째, 얼굴이 넓고 아름답다. 서른아홉째, 얼굴이 달과 같다. 마흔째, 중생들이 보면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흔한째, 털구멍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나온다. 마흔두째, 입에서 향기가 나오고 중생들이 만나면 7일간 법을 즐긴다. 마흔셋째, 풍채가 사자와 같다. 마흔넷째, 나가고 머무는 것이 코끼리 왕과 같다. 마흔다섯째, 법을 행하는 것이 독수리왕과 같다. 마흔여섯째, 머리는 마타라(磨陁羅) 열매와 같다.[이 열매는 둥글지도 길지도 않다.] 마흔일곱째, 소리의 나뉨이 만족스럽다.[소리는 60가지 구분이 있는데 부처님은 이들을 모두 구족한다.] 마흔여덟째, 어금니가 예리하다. 마흔아홉째, [중국어에 해당하는 이름이 없어서 쓰지 못했다.] 쉰째, 혀가 크고도 붉다. 쉰한째, 혀가 얇다. 쉰두째, 털이 순수한 홍색(紅色)이며 색깔이 청결하다. 쉰셋째, 넓고 긴 | | | | | 21) 적색으로서 형태가 고르고 반듯한 열매이다. | | | [42 / 95] 쪽 | 눈이다. 쉰넷째, 구멍의 문이 차 있다.[아홉 구멍의 문이 서로 구족하여 차 있다.] 쉰다섯째, 손과 발이 붉고 흰 것이 연꽃 색깔과 같다. 쉰여섯째, 배가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았다. 쉰일곱째, 볼록한 모양의 배가 아니다. 쉰여덟째,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쉰아홉째, 몸이 무겁다. 예순째, 몸이 크다. 예순한째, 몸이 길다. 예순두째, 손과 발이 원만하고 청결하다. 예순셋째, 사방에 커다란 빛이 두루하고 광명이 스스로 비춘다. 예순넷째, 중생을 평등하게 본다. 예순다섯째, 교화에 집착하지 않고 제자를 탐내지 않는다. 예순여섯째, 뭇 소리가 가득함을 따라서 줄어들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는다. 예순일곱째, 뭇 음성에 따라서 법을 설한다. 예순여덟째, 말씀을 하시되 걸림이 없다. 예순아홉째, 차례로 서로 이어서 설법한다. 일흔째, 일체 중생들 눈으로는 그 모습을 자세하게 보아서 다 알 수가 없다. 일흔한째, 보아도 싫증나거나 만족함이 없다. 일흔두째, 머리카락이 길고 아름답다. 일흔셋째, 머리카락이 아름답다. 일흔넷째, 머리카락이 헝클어지지 않는다. 일흔다섯째, 머리카락이 부서지지 않는다. 일흔여섯째, 머리카락이 유연하다. 일흔일곱째, 머리카락이 푸르고 비유리(毘琉璃) 색깔이다. 일흔여덟째, 머리카락을 위에서 묶었다. 일흔아홉째, 머리카락이 드물지 않다. 여든째, 가슴에 덕(德)이란 글자가 있고, 손과 발엔 길(吉)이란 글자가 있다. | 광명이 무량한 세계를 꿰뚫어 비추고, 처음 태어나자 일곱 걸음을 걷고 입을 열어 핵심적인 말씀을 연설하셨다. 출가하여 고행에 힘쓰시고, 보리수 아래에서 마군을 항복시키며, 후야(後夜)의 새벽에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셨고, 빛나는 모양이 분명해서 멀리 시방을 비추되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며, 여러 하늘들이 허공에서 현악에 맞추어 노래 부르고 공양하며 꽃을 뿌리고 향을 비처럼 내리니 일체 중생들이 모두 공경하여 헤아릴 수가 없으며, 홀로 삼계를 걸으시되 되돌아보고 몸을 굴리심이 마치 코끼리 왕이 도는 것과 같으며, 도(道)의 나무를 보시고 처음 법의 바퀴를 굴리시니 천인(天人)이 깨달음을 얻어 도로써 스스로 깨달아 열반에 이르게 된다. | 부처님의 몸은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움직이는 것이 헤아릴 수 없으니, 마음을 기울여 염불하여 생각이 벗어나지 않게 하며, 바깥으로 여러 연(緣)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 | | | [43 / 95] 쪽 | 이와 같이 어지럽지 않으면, 이때 문득 한 분의 부처님, 두 분의 부처님 나아가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색신(色身)을 볼 수 있으니, 심상(心想) 때문에 모두 그것을 볼 수 있다. | 이미 부처님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설법의 말씀을 들었으나, 혹 스스로 묻기를 청한다면, 부처님께서 설법하시어 여러 가지 의심의 그물을 풀어 주시리라. | 이미 부처님의 생각을 얻었다면 마땅히 다시 부처님의 공덕과 법신을 생각하되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한 지혜이시고, 절벽이나 밑바닥이 없는 지혜이시며, 헤아릴 수 없는 덕이시고,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다타’는 진(秦)나라 말로는 여(如)이고 ‘아가도’는 해(解)라고 한다. 또 실어(實語)라고도 하며, 또 모든 성인께서 편안한 길로 오신다는 말이며,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오시다는 뜻이다. 또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뒤에는 중(中)의 의미가 있게 되었다.]이시며, 아리하(阿犁呵)[‘아리’는 진나라 말로는 적(賊)이며, ‘하’는 살(殺)이라는 뜻이다. 즉 부처님께서는 인욕으로 갑옷을 삼고, 정진으로 굳고 단단함을 삼으며, 선정으로 활을 삼고, 지혜로 화살을 삼아 교만 등의 적을 죽이시기 때문에 살적(殺賊)이라고 한 것이다.]이시고,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삼먁’은 진나라 말로 진실(眞實)이라는 말이고 ‘삼불타’는 일체를 다 깨달았다는 뜻이니, 괴로움의 원인을 깨달아 열반의 원인을 익혀 바른 견해를 말하고 네 가지 진실을 알아 전전하지 않는다. 다 깨달아 남음이 없기 때문에 진실하게 일체를 깨달았다고 말한다.]이시며, 비가차라나(鞞伽遮羅那)[‘비가’는 진나라 말로는 명(明)이고 ‘차라나’는 선행(善行)이라는 뜻이다. 3명(明)을 밝히고 청정한 행을 실천하여 그로 인해 홀로 스승 없이 대각(大覺)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명선행(明善行)이라고 말한다.]이시고, 삼반나(三般那)[진나라 말로는 만성(滿成)이다.]이시고, 숙가타(宿伽陀)[진나라 말로는 잘 이해한다(善解)는 뜻이며, 또한 잘 스스로 얻음(善自得)이라고도 한다. 또는 잘 말하여 근심이 없음(善說無患)이라고도 한다.]이시며, 노가비(路伽憊)[‘노가’는 진나라 말로 지(智)라 하니, 지라는 것은 세상의 인(因)을 알고 진도(盡道)를 다 알기 때문에 세지(世智)라고 말하는 것이며, 세지는 또한 세상을 안다는 뜻이다.]이시고, 아누다라(阿耨多羅)[진나라 말로는 무상선법(無上善法)이라고 한다. 성인의 지혜로 일체을 다 나타내어 인도하고 큰 덕이 한량없어서 범마중성(梵魔衆聖)도 미칠 수 없거든 더구나 일반 중생으로서야 어떻게 부처님의 높은 덕에 미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 | | | [44 / 95] 쪽 | 상(無上)이라고 말한 것이다.]이시며, 부루사담먁(富樓沙曇藐)[‘부루사’는 진나라 말로 대장부(大丈夫)라 하고, ‘담먁’은 가(可)라고 하니, 가화장부(可化丈夫) 또는 조어사(調御史)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시고 큰 지혜를 지니셨기 때문에 어떤 때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말씀을 하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고절(苦切)한 말씀이 있으시기도 하며, 혹은 친히 가르치기도 하시니, 이렇게 길들이고 가르쳐서 중생들로 하여금 도를 잃지 않게 하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가화장부조어사법(可化丈夫調御師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이시고, 사다디파마누사남(舍多提婆魔舍喃)[진나라 말로는 천인사(天人師)라고 한다. 모든 사람의 번뇌를 다 해탈시켜 주어서 항상 최상의 법에서 물러남이 없게 하신다는 뜻이다.]이시며, 불바가바(佛婆伽婆)[과거ㆍ미래ㆍ현재의 행(行)과 불행(不行)을 아시고 진(盡)과 부진(不盡)을 실천하시어 일체 법을 보리수 아래에서 분명히 깨달으셨으므로 ‘불’이라고 한다. ‘바가바’는 큰 명성이 있다는 말이요, 또한 ‘바’는 여근(女根) 또는 토(吐)라고도 하니, 여근을 영원히 버렸기 때문에 여근토(女根吐)라고 한다.]이시라고 생각해야 한다. | 그때 다시 두 부처님의 신령한 덕과 셋, 넷, 다섯 분의 부처님 나아가 헤아려 다할 수 없는 허공계가 모두 이와 같음을 생각한다. | 다시 돌이켜 한 분의 부처님을 보되, 능히 한 분의 부처님을 보고서 시방의 부처님을 만들며, 시방의 부처님을 보고서 한 분의 부처님을 만들 수 있으니, 능히 하나의 색깔로 금ㆍ은ㆍ수정ㆍ비유리(毘琉璃) 색깔을 만들게 하여 사람들 마음의 즐거움에 따라 모두 그것을 보게 할 수 있다. | 그때는 오직 두 가지 일을 관하니, 허공의 부처님 몸과 부처님의 공덕이다. 더구나 다른 생각이 없어서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 뜻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이때 염불삼매를 이룰 수 있다. 만일 마음이 흐트러지면 생각에 다섯 가지 티끌22)이 있는 것이다. | 만일 여섯 가지 정신작용에 있으면 마땅히 스스로 힘써서 그 마음을 극복하고 격려하여 강제로 굴복시켜야 하니, 이와 같은 사유로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고 부처님의 법을 얻기 어렵다. | 그러므로 말하길 여러 가지 밝은 것 중에 해가 으뜸이며, 여러 가지 지혜 | | | | | 22)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의 다섯 경계이다. | | | [45 / 95] 쪽 | 중에서는 부처님이 최고라고 하니, 왜 그런가 하면 부처님께서는 대비를 일으켜 항상 일체 중생을 위하시기 때문에 머리와 눈과 골수와 뇌로써 중생을 구제하신다. | 그런데 어찌 방심하여 염불에 전념하지 않고 무거운 은혜를 저버리려 하는가? 만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지 않으셨다면 사람의 길[人道]과 하늘의 길[天道]과 열반의 길[涅槃道]이 없었을 것이다. | 만일 사람이 향과 꽃으로 공양하거나 골육(骨肉)과 혈수(血髓)로 탑을 세워 공양한다 하더라도 아직 수행인이 법으로 공양하여 열반에 이르지 못했다면, 오히려 부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 되리라. | 설령 부처님과 공(空)과 무소유(無所有)를 생각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응당 마음을 삼가고 전념하여 잊지 않는 것으로써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인데, 어찌 하물며 전념하지 않으면서 염불하여 여러 삼매와 지혜를 얻고 성불할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수행자는 항상 전심전력하여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하며, 이미 부처님을 뵈었으면 청하여 의심되는 것을 해결해야 하니, 이 염불삼매는 등분(等分)과 나머지 무거운 죄를 없애버린다. [자료: 동국역경원]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kyoung/index_kyoung.asp?kyoungName=%B4%EB%B9%E6%B5%EE%B9%AB%BB%F3%B0%E6&kyoungList=6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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