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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춘문예 당선작/시조] 양두고(兩頭鼓) - 유현주 | ||||||||||||||||
어우르던 장구가 더운 숨을 토한다 생사의 경계선을 이랑인 듯 넘어와 울음을 되새김하여 소리로 환생한 소 옹차던 속 들어 낸 여섯 치 오동나무에 조임줄로 다시 묶여 코 뚫림을 당할 땐 북면을 힘껏 조이며 공명통을 안는다 사포를 쇠 빗 삼아 쓸어주는 조롱목 완강하던 고집이 세마치로 조율되고 긴장한 소릿결들이 평온하게 풀릴 즈음 옻 밥을 먹은 소가 밭갈이를 나선다 열채로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자 덩더꿍, 변죽을 울리며 타령을 끌고 간다
*[당선소감] 혼자 아닌 가족들의 힘으로 영광얻어 시조를 시작하고 나서 한 삼년 두문불출하고 살았습니다. 처음엔 다독을 하다가 나중엔 무진 쓰기에만 매달렸는데 그 몰두가 독학을 가능케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가끔은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시 같지도 않은 글들을 시라고 우기며 긁적거리던 것과는 다르게 시조는 그 매력에 비례하는 힘겨움을 주었고 길이 아닌가 싶게 뒷걸음질치게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쉼 없이 정형의 틀에 자신을 꿰맞추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이왕이면 목표를 정하자고 생각한 것이 신춘문예였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많은 이들이 줄 서 있음에도 저에게 이 단단한 문을 열어 주신 매일신문사 측에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는 혼자서 꿈을 이룬 것이 대견하였는데 다시 생각하니 이것은 모두 가족의 힘이었다는 걸 알겠습니다. 먼저 오늘이 있기까지 말없이 지켜봐 준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또한 평생을 시조창으로 살아오신 친정 아버지와 그 뒤를 그림자처럼 보필하신 어머니께 큰 절을 올립니다. 아버지의 학 같던 춤사위가, 지나던 달빛을 잡아두던 시조 가락이, 손수 파신 오동나무로 장구를 만들던 어린 날의 기억이 지금의 제게 너무도 큰 재산이 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들, 아버지의 감성을 오롯이 물려받지 않았던들 이 영광은 절대 없었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어 앞으로의 저를 지켜봐 주십시오. 지인께서 어떤 글을 써 보고 싶으냐고 질문하셨을 때 겁도 없이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써 보는 것이라고 한 것을 기억합니다. 드디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직은 많이 섭니다. 열어주신 이 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가면 지금까지 부딪치지 않았던 어려움과도 만나게 되겠지요. 그럴 때마다 힘들었던 어제를 생각하겠습니다. 겸손하고 바르게 한발 한발 내딛으며 열매를 익힐 것입니다. 부족한 글을 선하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진하여 보답하겠습니다.
※[심사평] 활유의 기운 넘치고 정서 조율 솜씨도 자별 투고한 작품들은 저마다 한 송이씩의 꽃이라는 생각이다. 피봉을 뜯는 순간 서둘러 벙근 꽃들이 선자의 손에 이르자 일제히 만개한다. 그 향기와 빛깔의 다툼이 현저할수록 고선의 고통은 커진다. 안타까운 것은 그 많은 꽃 중에서 오직 한 송이만이 독자한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익명의 꽃이 실명의 꽃으로 바뀔 때, 또 한 사람의 시인이 우리 곁에 온다. 올해도 경향 각지에서 고른 투고가 이어졌다. 섣부른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치열한 각축 양상이다. 지르잡아 읽고 다잡아 읽는 몇 번의 숙고 끝에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강은미씨의 「민들레의 잠」, 배경희씨의 「나무의자의 기억」, 백점례씨의 「고요한 강」, 그리고 유현주씨의 「양두고(兩頭鼓)」 등 네 편이다. 「민들레의 잠」은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어쩌다 화분에 날아온 민들레를 입양아에 빗댄 감각 또한 신선하다. 「나무의자의 기억」은 존재의 사유를 밀고 가는 안정된 호흡이 강점이다. 나무의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톱날과 대팻날의 신산으로 풀어내고 있다. 「고요한 강」은 낚시터의 상념이다. 차분한 어조로 세상 속에 낚싯대를 드리운 생존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들 작품은 당선권에 바짝 다가섰으나, 정서의 깊이나 얼개의 치밀함에서 아쉽게 깍지가 풀리는 느낌이다. 올해의 선택은 「양두고(兩頭鼓)」를 들고나온 유현주씨다. 작품의 전편에 활유의 기운이 넘친다. 감각과 상상력의 결속이 뛰어나고, 긴장의 밀도를 다져가는 적절한 비유가 돋보인다. 사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정서를 조율하는 솜씨 또한 자별하다. 장구는 북편과 채편의 양두를 가진 악기다. "더운 숨을 토하"던 소는 가죽으로 남아 생전의 "울음을 되새김"한다. 소의 "완강하던 고집이 세마치"장단으로 환생하면서 "공명통을" 울리는 감동에 닿는다. "옻 밥을 먹은 소가 밭갈이를 나선다"는 표현은 마지막 칠을 마치고 연주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열채로" 두드리는 "엉덩이"는 장구의 채편일 터. 그럴 때 궁글채는 북편의 "변죽을 울"릴 것이다. 그렇게 장구는 세속의 신명 속으로 "타령을 끌고 간다.'' 당선의 영예에 매몰되지 않는 각고와 성찰로 정형미학의 완결성을 높여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박기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