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에 계시던 백운스님이 수행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화엄사를 떠난 백운 스님의 일행 세 사람은 며칠 후 광나루에 이르렀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날씨는 화창하고 살랑살랑 봄바람도 불어 왔습니다.
좋은 날씨와 꽃, 경치에 반해버린 다른 스님은 감탄을 연발하였으나, 백운 스님은 줄곧 “부처의 마음이란 대체 어떤 마음일까? 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운 스님과 그 일행은 그 날 밤을 한강변 정자에서 지새우게 되었습니다. 휘영청 밝은 달이 중천에 떠올랐습니다.
백운 스님은 달빛이 아름다운 한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저 강물은 낮이나 밤이나 쉬지 않고 흘러서 나중엔 큰 바다에 이르러 바닷물이 되겠지. 그렇다. 나도 열심히 공부하자 밤낮없이 꾸준히 노력하면 부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겠지.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겠다”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다음 날 인천항에 다다랐을 때, 한 스님이 갑자기 배탈이 났습니다. 남은 두 스님도 당황하여 쉴 곳을 찾던 중 오막살이 한 채를 발견하고 거기서 잠시 쉬기로 하였습니다. 그 집 할머니는 더운 물을 끊이고 약을 가져와 친절하게 보살펴 주었습니다. 이윽고 스님의 배가 다 나아, 일행은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떠났습니다.
백운 스님은 아픈 스님의 걸망을 받아지고, 한 손으로는 병자를 부축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 스님이 이것을 보고 자기 짐도 같이 져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운 스님은 화가 났으나 그 스님을 이해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세 사람 몫의 짐을 혼자 짊어졌습니다. 세 사람은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아산만으로 가는 길입니다.
백운스님은 다른 스님들을 배 위에 태우고 짐을 어깨에서 내렸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피곤했는지 그는 그 자리에 누워서 그만 쿨쿨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백운스님이 문득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직도 배는 항구에 머물러 있는 모양입니다. 백운 스님은 뱃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보시오, 아직도 배가 인천항을 떠나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이오?』이 말을 듣자 뱃사람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몹시 화난 말투였습니다.
『이 잠꾸러기 중놈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니 무슨 말을 하다니요, 여기가 인천항이 아닙니까?』
『이 배를 비롯한 열 척이 함께 출발했었다. 달은 밝고, 바다는 조용해서 예정대로 아산만에 도착하려니 하고 기뻐했었지,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서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함께 가던 배 세척이 침몰되고 나머지 배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행방을 몰라, 다행히 이 배만 간신히 이 항구에 되돌아와 모두 목숨을 건졌는데 이 멍청이 같은 중놈은 여태까지 잠만 자고 있었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배 안에는 많은 승객들이 공포와 피로, 그리고 뱃멀미에 시달려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잠만 푹 빠져서 그만 …… 』
백운 스님은 마음속으로 『세 사람 몫의 짐을 짊어진 덕택으로 피곤해서 그 폭풍우도 모르고 지냈구나, 부처님의 마음이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백운스님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조용히 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경을 다 마치자 배 안에 누워 신음하던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약을 먹이고 간호를 해 주었습니다.
폭풍우에 지쳐 쓰러지고 심한 배멀미로 신음하던 많은 승객들이 백운스님의 따뜻한 간호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배는 다시 아산만을 향해 떠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불일회보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