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은 동자 에게 다시 말했다.
"극락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극
락이 있단다.
욕심 없는 그 마음이 바로 극락이고 행복이란다.
총명한 동자승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 날 부터 동자승에게는 '욕심 없는 마음'이 화두가 되었다.
추운 겨울날, 동자승은 노스님 몰래 탁발을 나갔다.
그러나 염불을 아직 할 줄 모르는 동자승에게 쌀을 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 바랑을 채울 때까지 더욱 더 멀리 길을 걸었다.
동자승의 얼굴은 찬바람에 파랗게 변해가고, 날이 저물 무렵에
야
바랑에 곡식이 반 쯤 찼다. 암자까지는 까마득히 먼 거리인데,
바람이 매섭게 불고 눈이 내리는 하늘은 희끗희끗했다.
동자승은 돌아오는 길에 큰 다리쯤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다리 밑에서는 거지 아이들이 깡통을 돌에 걸어놓고 허어 멀건
맹물 같은 죽을 끓이고 있었는데, 얇고 찢어진 옷을 걸친 거지
아이들은 배가 고프고 추운 듯 발을 동동 굴렀다.
동자승은 탁발한 쌀을 거지들에게 줄까 말까 망설였다. 고생해서
얻은 쌀이니 암자로 가져가 노스님과 자기가 먹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노승이 들려주었던 '욕심 없는 마음' 얘기도 떠
올랐다.
결국 동자승은 다리 아래로 내려가 바랑의 쌀을 다 주고는 올라
왔다.
망설임이 사라지니까 마음이 후련했다.
동자승은 다시 다리 밑으로 내려가 입고 있던 속내복과 양말을 다
벗어주었다. 헐렁한 홑옷만 입고 땅거미가 지고 흰눈이 펑펑
쏟아지는 산길을 쉬지 않고 걸었다.
동자승은 배도 고프고,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파 자기 키
만한
바위에 기대어 주저앉아 버렸다. 그렇게 밤 동안 찬바람과 눈발을 피했는데
끝내 동자승은 다음날 일어나지 못하고 추위가 동자승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노승이 다음날 아침 바위에 도착했을 때 동자승은 꿈속에서
엄마를 만난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