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도 박도 못하다(1) /서태수
빼도 박도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불미(不美)스러운 말을! 빼도 박도 못하다니. 말뜻을 곰곰 생각해보면 점잖은 자리가 아니라도 입에 올리기 정말 난감한 말이다. 열이 오른 남녀가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여자의 남편이 들이닥쳤으니. 점잖게, 포괄적으로 말하면 진퇴양난이겠지만 지금의 이 경우는 영락없이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안성마춤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까짓 맷돌의 어처구니가 없는 정도라면 약과겠다.
우리 내외가 조용한 산골집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아침나절이다. 시꺼먼 뻐꾸기가 뒤쪽에서 울다 머리 위로 날아간 다음, 무슨 신음 같은 소리가 긴가민가 느껴지는 순간
“어어! 저놈들 사고 치는가 보다!”
차를 따르고 있던 아내의 놀란 소리에 후다닥!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허나, 아뿔싸!
이미 탐색전도 업음질도 끝나 두 녀석의 엉덩이가 맞붙어 버렸고 머리만 각각 동서로 향해 있다. 이 일을 어쩐다? 큰일 났다. 순간, ‘흘레붙은 개는 안 떨어진다.’, ‘억지로 떼어내면 개 거시기가 빠진다.’던 동네 옛 어른들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옛날에는 흘레붙은 개를 만나면 온 동네 사내아이들은 신이 났다. 모두들 뛰쳐나와 동네방네 개를 몰아 막대로 후리고, 흙덩이를 던지며 왁자지껄 몰려다니던 기억이 얼핏 스친다. 계집아이들은 강둑 아래로 도망치면서도 뒤를 힐끔거리며 까르르깔깔 웃었다. 성적 호기심에 샘도 났을 때였던가? 힘센 놈이 당기는 데로 이끌려 기묘한 모습으로 비틀비틀 도망치는 넓은 들판을 쫓아다니면서 기어이 암수를 떼어 놓고야 말았지만 혼쭐나는 개만큼이나 우리가 지치기도 했다.
새끼를 한 바구니 낳으면 그 일을 어쩐다? 이것이 암캐를 기르는 우리 내외의 한 가지 걱정거리였다. 기어코 이놈들을 떼어놓아야 한다. 현관 앞에 상시 세워둔 뱀 잡이용 막대를 들었다.
“떨어져라! 떨어져라!”
막대로 배를 쿡쿡 친다. 그래도 붙어버린 두 녀석은 동서로 서로 도망가려고 네 발로 버티며 잡아당기기만 할 뿐 엉덩이는 무슨 납땜한 요철(凹凸)고리인 양 떨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수캐는 제 애비다. 검은 털이 아무렇게나 섞여 마치 들개같이 못생긴 옷을 입었다. 덩치도 자그마한 이놈이 이 윗동네를 장악한 지는 이미 몇 년 전부터이다. 저만치에는 항상 헛물만 켜고 뒤따라 다니던 어수룩한 누렁이가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는 자세로 몸을 돌려 겁먹은 눈으로 바라보고 섰다. 황당한 상황도 상황이려니와 지레 겁부터 먹은 아내는 안으로 도망간 지가 오래다. 우리 암캐가 나를 쳐다보며 낑낑거린다. 정말 개가 웃을 사건이건만 개도 사람도 심각하다.
‘존경하는 나의 두목님, 이 무슨 황당한 풍경화인가요?’
원망인지 하소연인지 아니면 민망함인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 같다. 이제 십오 개월짜리다. 이 녀석은 우리집에 분양되어 올 때도 황당하게 시작되었다.
작년이었다. 산골이라 아직은 봄빛이 까마득한 이월 하순. 이날 아침도 양지바른 현관 앞의 매화봉오리를 보면서 아내와 차를 마시고 앉았는데 밖에 인기척이 나서 현관을 여니 앞집 사모님께서 품에 이 녀석을 안고 오셨다.
“더 이상 어디 줄 데가 없어서요. 선생님이 알아서 키우세요.”
하면서 덜렁 내 품에다 안겨놓고는 휑하니 돌아선다. 내가 천하의 애견인(愛犬人)이라는 사실을 이분도 너무 잘 안다. 은퇴 후에 이 산골로 올 때에 이미 전에 기르던 강아지들을 데려와서 몇 년 키우면서 소문이 났던 탓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삼시세때 개밥을 챙겨 먹이면서 강아지를 기르지는 않는다. 제 무슨 상전도 아니기에 내 구속받기 싫어, 한 번에 며칠 분량을 부어 놓으면 녀석들이 알아서 먹도록 애시당초부터 교육을 시켜서 기른다. 그러나 먼 곳을 수시로 떠돌아다니다 보니 꽤 오래 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 장마철엔 사료에 곰팡이가 슬기도 했다. 아쉽긴 하지만 그 녀석들을 마지막으로 강아지를 안 키우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앞집에서 강아지 처분이 난감해 한 마리라도 가져가라고 몇 번이나 권하는 것을 마음 굳게 다잡고 사양했던 터다.
이놈은 한 배에서도 제일 작고 못 생긴 무녀리인 줄은 이미 아랫동네에 다 알려진 강아지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비루먹은 채 처진 놈이다. 쬐끄만 강아지를 보니 기가 찼지만 어쩌랴. 원래부터 개라면 죽고 못 사는 것을…….
이름을 억구라 지었다. 억지로 떠맡은 개라는 뜻이다. 동시에 억수로 재수 좋은 개라는 뜻도 담았다. 분명 귀여워하면서 잘 키울 테니까.
그런데 이 녀석이 발정을 했다. 젖먹이 때에 비루먹은 녀석이라 새끼도 못 낳는 둘치가 될 줄 알았는데 벌써 두 번째 발정이다. 첫번째도 견시탐탐(犬視耽耽) 기회를 노리며 밤낮 마당을 기웃거리던 수캐 두 녀석이 저놈들이었다. 마침 우리가 집에 있을 무렵이라 미리 사태 파악을 하고는 며칠 동안 큼직한 우리에 가둬둔 덕에 억구의 엉덩이는 무사히 지켜냈다. 그러나 그것도 안쓰러워 이번에는 열심히 감독만 하다가 수컷들이 우루루 몰려오기에 목을 묶어 현관 앞에 잠시 놓아두었던 것이 아차, 방심하는 순간에 사단이 나버린 것이다.
막대로 땅을 두들기니 창문 앞 자귀나무 밑둥에 목줄이 감긴다. 우리 부부 금실 좋으라고 심어 놓은 합환수(合歡樹)다. 이놈들이 언감생심(焉敢生心) 이 나무 밑으로! 잎이 매우 늦게 돋는 나무라 아직 서로 합쳐질 잎도 나지 않았다. 그러니 더 어림없지. 억구의 목줄을 끌어당기고는 막대로 수컷을 세게 쥐어박는다. 오로지 새끼를 가지면 골치 아프다는 일념으로 덩달아 흥분한 내가 그 와중에도 우스꽝스럽고 황망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가 훼방을 놓고 있다. 빼도 박도 못하는 난감한 녀석들의 상황에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입장을 바꾸어 상상도 해 본다. 벌겋게 달아오른 수컷 양물이 약간 보이건만 떨어지지는 않는다. 헛물만 켜고 구경을 하던 누렁이는 멀찌감치 빙빙 돌더니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막대로 세게 위협을 하니 수컷이 겁을 내면서도 으르렁거린다. 개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쫓아야 한다. 암컷도 수컷도 깽깽거린다. 아무래도 쉽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수캐는 교미할 때 귀두망울이 동그랗게 커져 암컷 속에서 단단하게 고정된다. 그래서 개는 20분가량 결합상태로 있게 된다. 개의 교미가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은 수정을 위한 암컷의 생물학적 이유 때문인데, 사람들은 정력이 세다고 여겨 개의 양물이 수난을 당한다.
이렇게 억지로 떼려다 어느 녀석이라도 잘못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생긴다. 어느 놈이든 무언가가 떨어지거나 빠질 것만 같다. 어린 시절에야 개가 죽든 살든 멋모르고 막대를 휘두르고 훼방을 놓았지만 세상 물정 다 겪은 지금은 짐승이든 사람이든 못할 짓이 아닌가 하는 일념도 든다.
그래도 억구가 새끼를 가지면 안 되지. 그 뒤치다꺼리를 어찌 감당할꼬?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큰맘 먹고 막대를 후렸다. 가족이란 참 묘하다. 바람 난 내 암컷은 두고 멀리 있는 남의 수컷만 때린다. 수컷이 깨갱하고 큰 소리를 내더니 두 놈이 뚝, 떨어진다. 수컷은 뒤도 안 돌아보고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달아난다. 다행히 거시기가 빠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숨 돌린 후 찾아보니 억구는 그새 별 생각 없는 듯이 내 옆에서 얼쩡거리고 있다. 암수의 차이인가? 우습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혹시 일이 이미 어긋나버려 새끼를 가지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은근히 기대도 된다. 어느새 문을 열고 나왔는지, 아니면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고 숨어서 다 보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내가 내 마음을 눈치 못 챌 리가 없다.
“은근히 기대하제?”
개는 60일 후에 새끼를 낳으니 이 녀석이 새끼를 낳는다면 한창 더운 계절이겠다. 누워 있는 억구를 내려다보면서 개와 사람의 차이가 참 야릇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당어귀 토종벌은 분봉을 한다고 윙윙거리고, 먼 산 뻐꾸기 울어쌓는 산골 마당에서 억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느긋하게 누웠다. 아직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오묘함을 모르는 어린 개라서 그런가. 야속한 주인에게 한번쯤은 투정을 부릴 법도 하건만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괜스레 먼 산을 향해 멋쩍게 짖는다. 억구의 드러내지 않는 속마음이야 알 수가 없다. 덩치가 작아 시골사람 인식으로는 쓸모없는 강아지이나 조물주는 공평해서 참 영리하고 살가워서 귀염 받는 개다. 조금 전의 상황을 반추하며 다시 말머리를 꺼내려니, 웃고 선 아내는 고개를 돌리며 눈을 흘기지만, 이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눈치다. 주인을 편안하게 쳐다보는 눈빛이 기특하다.
문득 몇날 며칠을 배회하며 다른 수컷 경계하랴, 순진한 암컷 어르랴, 무서운 주인 눈치 살피랴, 천재일우로 얻은 황홀경에 입맛만 다시다 말고 *이 빠지도록 도망간 수캐가 무사한지 궁금해진다. 오후에는 아랫마을로 슬슬 내려가서 그 집 주인 몰래 살펴봐야겠다. 가는 길에 바닥에 무엇 떨어진 것이 없는 지도 은근히 눈여겨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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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퇴직 후 너무 바쁘다 보니 깝빡 잊고 지냈넴!!
ㅎㅎ문득 좋은 글을(!!!) 나누고 싶어서 ㅋㅋ
졸업생 여러분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서태수
자주 오셔서 사는 애기 들러 주셔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