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후에 본 천국
김영옥 집사 (여, 48세, 화평교회,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어느 날 길가에 굴러다니는 찢어진 성경 한 장을 주웠는데…
우리 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큰집에 들어가 얹혀서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큰집은 어찌나 미신을 지극 정성으로 열심히 섬겼던지 한 달이 멀다 하고 고사를 지내고 무당을 불러다 푸닥거리를 하였다.
그때 이미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으나 교회를 가 본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가에 굴러다니는 찢어진 성경 한 장을 주웠는데 거기에는 한문과 한글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라고 쓰여 있었다. 성경 한 장을 손에 주워들은 나는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제일 높은 분이구나.”라고 깨달아졌다. 그 후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믿는 것은 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큰집에서 굿판을 준비할 때와 굿판이 끝난 후에 어린 나에게 고사떡을 나르도록 시킬 때마다 가슴은 답답함에 짓눌렸다. 나는 큰어머니께 “무당을 부르고 고사지내는 것은 바보짓이에요. 하나님을 믿어야 돼요!”라고 하며 “제발 다음부터는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럴 때면 어른들은 “어린애가 뭘 안다고 쫓아다니며 성가시게 구느냐”며 면박을 주었다.
어느 날은 잠결에 들으니, 얼마 전에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와서 언덕 위에 조그맣게 집을 짓고 신당(神堂)을 차린 사람이 어머니에게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 깨끗이 목욕하고 신령님께 복을 비는 기도를 하러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에 잠이 깨어 ‘우리 어머니까지 큰어머니처럼 되면 안된다’는 생각에 그 점쟁이가 돌아간 후 어머니가 잠드시기를 기다렸다가 밤 12시쯤 그 신당에 가보니 사면 벽에는 이상한 그림이 붙어 있었고, 신당(神堂) 안쪽의 상위에는 쌀과 촛불이 켜 있었다. 그것들을 보고 화가 나고 분해서 손으로 그림을 떼다가 안되어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을 모두 긁어서 떼어버리고 점치는 상을 다 엎어 버렸다. 그 후로 자주 그 신당에 가서 점치는 곳을 부숴 버렸다.
동구 밖 어귀의 성황당을 부수던 내 어린시절
그 동네 동구(洞口)밖 어귀에 성황당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나무에다 울긋불긋한 천 쪼가리를 치렁치렁 걸어 놓고 있었다. 때로는 밥을 떠다가 놓고 절을 하기도 하며 지나다니며 돌을 하나씩 쌓아 놓고 마음의 소원을 빌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아이들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하고 혼자 남아서 ‘이곳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고 고민하며 성황당 근처에 앉아 있었다. 그때 오빠가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는 “이제 곧 해가 질 텐데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호랑이가 나온다.”며 재촉했지만, “저 돌 무더기를 무너뜨리고 나무에 걸린 천 조각을 모두 떼고, 나무도 베어버려야 돌아가겠다.”고 떼를 쓰는 나에게 “우선 집에 가면 내일 오빠가 다 없애 주겠다.”고 하는 약속을 몇 번이나 확고하게 받고야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는 다음날 친구들과 함께 삽이며 곡괭이를 가져다가 “다 헐어버리고 학교에 왔다.”고 했다. 방과 후에 그곳에 가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허물어뜨린 돌무더기를 다시 쌓고 있었다.
그날 밤 오빠는 집에 늦게 들어왔는데 그 친구들과 다시 그곳에 가서 돌무더기를 허물고 왔다고 했다. 나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오빠들에게 “꼭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전도했다.
초등학교 4학년쯤으로 기억되는데 동네 어귀에 절이 하나 지어졌다. 그 절이 생긴 이유는 높고 먼 곳에 암자가 있기에 사람들이 불편하니까 가까운 곳에 세우고 돌부처를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하루는 교문 앞에서 같은 반 친구가 바들바들 떨면서 “혼자서는 귀신 나오는 절간 앞을 무서워서 못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다른 아이들과 그 앞을 지나가다가 호기심에 들어가 봤는데 시커먼 것이 부처에게서 나와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며 나는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그 캄캄한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한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공포에 질려 기절하는 바람에 잠시 소동이 일어났었다. 아이가 깨어났을 때 물어보니 “시커먼 물체가 부처로부터 나와서 나를 밟고 지나갔다.”고 하며 우는 것이었다.
나는 돌부처를 매만지며 “얘들아! 이 돌부처 손을 만져봐라. 뺨도 만져봐라. 이건 그냥 돌일 뿐이야. 움직일 수도 없고 내가 뺨을 때려도 나를 때릴 수도 없어. 이렇게 죽은 것 말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믿어라. 너희들도 때려봐.”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며 달려들어 돌부처를 마구 때려주고 돌아갔다.
그 후로는 아이들이 그곳을 오고 갈 때마다 돌부처를 얼마나 두들겨 팼는지 부처의 귀와 코와 손목이 떨어져 나가고 군데군데 흠집이 많이 생겼다. 얼마 후 절에서 내려와 그 절을 철거하고 부서진 돌부처를 다시 가져갔다.
동네와 우리 집에서는 내가 애물단지였다. 우상만 있으면 밤에 잠을 안 자고 기어이 부숴 놓아야 잠을 잘 수 있었으니 동네도 시끄러웠고 나도 괴로웠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어머니를 찾아와 “애 단속 좀 제발 잘하라.”고 윽박질렀다.
천국에서의 예수님과의 대화
어느 날인가는 몸이 아파서 나가지 않고 마루에 혼자 누워 있었다. 기운이 없고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그대로 잠이든 채 죽었다. 내 혼이 몸을 떠나면서 들으니 마귀의 앵앵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렸고 “빨리 끌고 오라.”고 하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가 사라졌다. 그 후에 또 가만히 들으니 한쪽에서는 천사의 찬송 소리가 들렸다. 그 찬송 소리는 너무나 아름답고 좋았는데 그곳은 천국이었다.
내가 내려다보니 식구들이 슬퍼하고 있었고, 나를 씻기시는 큰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이 죽었을 때 ‘하루만 늦게 묻었어도 살아났을 거야. 이 아이도 바로 묻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투명한 유리로 보는 것처럼 다 보이고 들렸다. 그곳에서는 어떤 것도 숨길 수도 없이 다 드러났다. 그리고 집의 담장 주위를 수많은 천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이라고 생각되는 분의 목소리가 들리며 “네가 가장 큰 계명을 지켰다.”라고 하시며 내 얼굴이 빛날 정도로 광채 나는 아름다운 세마포를 입혀 주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죽은 나는 아이인데 세마포 옷을 입은 나는 어른이었다. 너무나 좋아 어쩔 줄 몰라할 때 “예수님을 보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 눈에 안 보여도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고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죽어서 꽁꽁 묶여 있는 나를 가리키시면서 “너는 저 세상으로 다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갈 수 없다.”고 하였더니 “네가 아직 할 일이 많다. 그 일들을 하고 다시올 때 너를 반갑게 맞아 줄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래도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니까 그러면 “저 아래 세상에서 네가 가장 싫은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해결해 주겠다.”고 하셔서 “엄마의 매가 싫다.”고 했더니 주님은 “내가 그것을 막아주겠다.”라고 하셨다.
그래도 “끝가지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더니 그때 누군가 가슴을 탕하고 내리쳤다. 그 바람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몸이 묶여 있는 채 서 있었다. 방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문 밖에서는 웅성웅성 사람들의 소리가 났다. 간신히 묶여 있던 손과 다리를 풀고 보니 이미 부패해서 온통 진물었고 냄새가 났다. 밖으로 나가보니 어머니는 “마지막 가는 길에 밥이나 떠놓는다.”고 푸념하시며 밥을 푸고 계셨다. 나를 묻으려고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왔던 사람들이 굉장히 놀랐다. 내가 본 것을 얘기했더니 듣기는 했으나 믿지를 않았다.
그 이후에 정말로 어머니가 나를 때리고 나면 며칠 동안 밥숟가락을 입으로 못 가져가도록 아프셨기에 다시는 안 때리셨다.
얼마 후 우리 집은 대구로 이사를 갔다. 그 후로 지금까지 예수님 살아 계심을 증거했다. 오늘도 나는 천국에서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는 간증을 통하여 한 영혼이라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agaser/6KCg/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