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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입은 국회의원. 청소노동자가 핍박받으면 꼭 청소복 입고 나와 따져주세요.(사진:뉴시스)
요새 가장 무서운 말이 뭔지 아십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내가 직접 챙긴다.”는 겁니다. 그냥 내버려둬도 될 것을, 직접 챙긴답시고 건드렸다가 뭔 사단이 또 벌어질까…. 괜히 걱정부터 앞섭니다.
임기 초반,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시골구석 전봇대 360여개가 뽑히는 게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 전반’이 아니라 나라 안 구석구석의 별 시시콜콜한 일에 다 개입을 하고 있습니다.
규제완화, 시장친화를 내세운 보수진영 대통령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좋게 말하면 ‘만기친람(萬機親覽 : 임금이 온갖 정사(政事)를 친히 보살핌)’이요, 솔직히 말하면 오지랖도 넓습니다.
대통령이 그러니, 관료들까지 따라합니다. 어제 하루 빵 터진 이명박 내각의 아류성 코미디를 한번 볼까요.
1. “현빈, 가만 안 둬!”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에 복무 중인 인기배우 현빈에 대해 “전방부대에서 다른 병사들처럼 평범하게 근무토록 하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곧바로 국방부 대변인은 “현빈은 일반병으로 근무하다가 필요할 때에만 모병 등 홍보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장관 말을 뒷받침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병대는, 현빈이 일반병이 아니라 모병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국방부가, 주무부대인 해병대 입장을 뒤집은 것입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은 이상, 병사의 배치와 근무는 군이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일반병이든 홍보병이든 모두 나라를 위한 일인데요.
문제는, 국방부 장관이 사병 한 사람의 보직문제에까지 끼어들어야 하느냐는 겁니다. 해병대 소속 사병의 인사는 해병대 사령부가 결정할 일입니다. 현빈을 포함해 대한민국엔 수십만명의 국군장병이 있습니다. 장관이 수십만명 배치문제를 일일이 관장한답니까. 국방부 장관이 그렇게 할 일이 없습니까. 그런 일에까지 끼어들 일이 아닙니다.
장관이 봤을 때 현빈 문제가 국민들 관심사항이고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 보일 순 있을 겁니다. 그러면 비공개 협의를 통해 해병대가 재배치하도록 하면 될 일입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병 한 사람의 재배치까지 끼어드는 장관, 참 오지랖 넓고 한가합니다.
2. “신라호텔, 가만 안 둬!”
신라호텔의 한복 손님 입장거부에 대해 정병국 문화부 장관이 국회에서 비판을 했습니다.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호텔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옳은 얘깁니다. 그런데 과도한 오버를 합니다.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해 엄중 처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신라호텔의 행위는 공분을 살 만합니다. 나중의 변명은 국민들을 더 짜증나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국의 장관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해 엄중 처리할 것”이란 말은 대체 가능한 얘기일까요.
문화부가 신라호텔을 상대로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처’가 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치가 있다면 근거는 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걸 찾아내려면 문화부 공무원들이 며칠 밤을 새야 할 겁니다. 풍속위반? 불법영업? 식품위생 위반? 과문한 저로선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조치라고 한다면, 영업정지? 매장폐쇄? 호텔 폐업? 과징금? 그것 역시 모르겠습니다.
행정부는 법에 근거해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입니다. 국민정서에 편승해 끗발 부리는 곳이 아닙니다. 되지도 않을 일, 나서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국민들의 공분에 업혀서 슬쩍 숟가락 하나 얹는 얌체 홍보에 불과합니다.
문화부 장관이 실행 가능성도 없는 일에 공권력의 위세를 과시할 게 아니라, 차라리 영부인을 설득하는 게 더 현실적입니다. 한식을 세계화 하기 이전에, 한국의 미를 먼저 국내화 하자고 말입니다.
더 얄미운 분은 장관 질의를 이끌어 낸 미래희망연대 김을동 의원입니다. 평소 안 입던 한복을 척하니 입고 나와 흥분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이벤트입니다. 게다가, 거기서 집안 경조사 얘기는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녀 결혼식 때 한식연회를 제공하는 호텔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호텔에서 찾으니까 없지요. 호텔 밖에 나오면 널린 게 한식 연회장입니다.
신라호텔이나 문화부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나 서로 욕할 처지가 못돼는 똑같은 수준입니다.
3. “초코파이, 가만 안 둬!”
정부가 한 제과업체에 “재보선이 끝난 후에 초코파이 등 과자 값을 올리라”는 압력을 넣었다고 합니다. 또 특정 기업의 설탕값 인상 시기 연기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민주당 한 의원이 국회에서 폭로했습니다.
이유는 선거입니다. 즉 정부는 제품값을 조기에 올리려는 기업들에게 “지금 언론 동향이 좋지 않다. 한꺼번에 올리면 담합 정황을 보이게 되니, 시차를 두고 올려라.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선거가 끝난 후 올렸으면 좋겠다”고 구두로 지시했다고 합니다.
특정 업체가 정부의 요청을 뿌리치고 초코파이 등의 가격을 7~8% 올리자 지경부에서 “언제 그렇게 올리라고 했느냐”고 질타했다고 합니다.
물가를 잡기 위한 노력은 가상합니다. 하지만 잡지도 못할 물가에 공권력을 과도하게 남용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서 반드시 잡겠다는 ‘MB물가’는 되레 폭등입니다. 상황은 그러한데, 서민들 걱정해서 물가를 잡으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선거 때는 피해서 올리라’는 얘깁니다.
‘물가 대란’으로 민심이 흉흉하고 그 때문에 4.27 재보선에서 표 깎일까봐 기업의 팔을 꺾은 겁니다. 초코파이 따위 잡으려고 뽑아든 칼이 효과도 못 봤으니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이거야말로 견문발검(見蚊拔劍 : 모기를 보고 칼을 빼어 든다. 조그만 일에 발끈 성을 내는 소견 좁은 사람을 지칭)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습니다. 그 용맹으로 뭘 해도 하려 들겠지요. 그러니 이제 건방 떨던 재벌에서부터 시커멓고 동그란 과자, 잘 생긴 연예인은 모두 각오해야 할 판입니다. 전봇대의 운명까지야 되겠습니까만 그래도 그들 앞에서 “이제 죽었다”는 복창 정도는 시늉으로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하지만 좁쌀영감처럼 아무 일에나 툭툭 끼어들고, 산천초목을 벌벌 떨게 해야 나라의 기강이 서는 게 아닙니다. 기강에도 품격이 있습니다. 먼저 품격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야 비웃음을 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