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독서의 창>
소나무를 닮아가는 행복
<소나무>, 정동주
가을도 저물고 월동준비가 한창인 때,온통 소나무로 가득한 뜰을
산책하노라니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 전나무가 더디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는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한참 잊고 있다가도 생각
나서 돌아보면 늘 빙그레 웃으며 손 내미는 좋은 친구처럼 사계절
내내 한결같은푸르름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소나무가 나는 갈수록
좋다.
느티나무, 막사발 등 '한국의 마음' 시리즈를 내고 있는 정동주님
의 책 <소나무>를 구했다. 뒤표지에도 '한국인은 소나무 사람입니
다'라고 적혀 있듯이 이 책은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 전설, 시, 노래
등을 주제와 관련된 사진과 그림을 곁들여가며 읽기 쉽게 풀어쓴 글
모음이다.
"한국인의 문화는 소나무 문화입니다. 한국인 정서의 밑바탕엔 솔
의 빛깔, 솔바람 소리, 솔맛, 솔향기, 은은한 솔 그늘이 있습니다. 그
솔그늘 아래서 시간이 피었다 스러지는 공간이 열립니다. 소나무가
서 있는 마을마다 삶의 나이테로 스며 있는 애환들, 소나무 한 그루
에 깃들여 있는 세상 이야기들, 점잖은 식물학으로서의 소나무 이론
들, 한국인의 기상을 이뤄온 솔그늘과 솔바람의 멋과 풍류, 우리 겨
레가 숨쉬는 소나무의 늘 푸른 자태와 꿋꿋한 정신의 날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포기해서는 안될 것까지 다 버리면서 이익만을
좇아 앞으로만 질주하는 우리의 천박하고 초라한 삶을 꾸짖는 저 솔
의 이름 앞에서 우리는 누구인지요?"라는 저자의 말은 오늘의 우리
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소나무는 우리의 삶과 죽음을 잇는 영원의 나무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먹이가 되고, 집이 되고, 연료와 약이었다가 죽
게 되면 우리의 시신을 담는 관이 되어서 함께 묻힙니다"라는
구절
을 읽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솔바람 소리에 마음을 씨고 40년
가까이 기도해온 나의 세월도 이제 조금은 소나무를 닮은 것 같아
행복하다.
<186쪽 ~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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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금관
<가을 금관>, 정목일
가끔은 수도원 밖으로 나가 골목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집들
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길에서 '이 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
을까' 궁금해하며 문패를 바라보기도 하고, 어느 집 마당에 널린 빨
래나 꽃의 향기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골목길의 정겨움을 나는 사랑
한다.
"나는 혼자서 골목길을 걸어본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추억의 동굴
안으로 기억의 작은 횃불을 들고 더듬거리며 가는 듯 느껴진다.
(...) 큰 길에서 보는 번화와 번다스러움이 없으나 추억의 온기와 이
끼가 묻어 있는 곳은 골목길밖에 없다. 한두 번 도시를 찾는 사람이
거나 드내기에게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걸어서 시장을 오가
는 주부들이거나 학교에 가는 학생들, 직장에 나가기 위해 버스정류
장으로 향하는 직장인들이 애용하는 서민의 길이다. (...)골목길에
는 대로에서 느끼는 체면과 당당함보다는 휴시과 겸허, 진실과 온유
가 있다. (...) 군자는 큰길로 걷는 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소인이어
서인지 호도알 속 같은 골목길로 추억의 미로를 찾아 걷길 좋아한
다. 그 속에 어릴 적 벗들의 얼굴이 있고 사춘기의 방황과 고독이 있
다. 나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따뜻한 마중이 있다"(<골목길>).
정목일의 수필선집 <가을 금관> 안에 들어 있는 31편의 글들 중에
<골목길>은 <호박꽃> <심금><능선의 미><풍경소리>와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 중의 하나다. 아주 평범한 사물과 주제도 그의 글
에선 비범한 발견과 명상의 빛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붙든다. 표현
보다도 먼저 발견과 명상을 소중히 여긴다는 작가의 문장론에 잠시
귀기울여보자.
"나는 되도록 형용사와 부사, 비유법을 쓰지 않아야겠다고 다짐
한다. 진실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형용사와 부사는 얼마나 차이가
많으며 과장되기 쉬운가, 주어와 술어로써 든든한 뿌리를 박고 과장
법과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실체를 진실되게 나타낼 수 없
을까. (...) 뿌리가 든든해야 한다.
미문美文이란 사치스런 옷에 불과
하다."
<188쪽 ~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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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는 즐거움
<아름다운 사람>, 김은자 엮음
나는 잠시 외출을 하더라도 가방 속에 꼭 시집 한 두권을 넣고 다
닌다. 시를 읽는 기쁨은 언제나 새롭고 잘 골라서 의미를 붙이면 어
떤 보석보다도 소중한 마음의 선물이 되어준다.
슬퍼하는 이에겐 위
로의 시를, 기뻐하는 이에겐 축하의 시를 적어서 내가 하고 싶은 말
을 대신 표현하는 즐거움! 여러 시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도록 요즘
은 다양한 모습의 시선집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김은자 시인이 엮은 <아름다운 사람>에는 짧지만 감칠맛나는 해
설도 담겨 있다. 좋은 시를 읽으면 새삼 우리말이 아름답게 느껴지
고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를 지닌 시인들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매일을 시처럼 살고 싶은 고운 갈망이 새롭게 싹튼다.
오랜 세월 헤매 다녔지요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대 찾아
부르튼 생애가 그믐인 듯 저물었지요
누가 그대 가려놓았는지 야속해서
허구한 날 투정만 늘었답니다
상처는 늘 혼자 처매어야 했기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흐느낌
내가 우는 울음인 줄 알았구요
어찌 짐작이나 했겠어요
그대 가린 건 바로 내 그림자였다니요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울고 있었다니요.
---강연호. <월식>
지금 한창 사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겐 <윌식>이란 시를, 국수를
좋아하는 벗에겐 <국수가 먹고 싶다>을 읊어주고 싶다.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 가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190쪽 192쪽 ~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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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늘 향해 타오르는 이 뜨거운 불꽃의 기도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도록
- 시 <촛불의 기도>에서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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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11월
토요일
밤이다
2010년 11월27일
윤
주
첫댓글 오늘은 왠지... 눈물이 또르르 구르는 그런 글....
국수가 먹고 싶은 사람은 작은 언니네 국수 가게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