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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후퇴, 이유 있는 선택- 꽃신을 거부하고 설국열차에서 내린 사람들
장수군귀농귀촌인협의회 회원을 중심으로 결성된 ‘농민생활인문학 소모임’이 지난 가을(10월18일) 장계면사무소에서 개최한 첫 강좌로 채택한 주제가 ‘지역에너지 자립과 적정기술(適正技術)’이다.
흔히 문· 사· 철로 요약되는 학문을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기술, 그것도 아직까지는 다소 생소한 분야인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을 하필 인문학 첫 강좌의 주제로 삼았을까, 의문하게 된다. 이 의문에 더하여 적정기술이란 또 무엇인가는 새삼스런 의문을 품고 ‘적정정의’를 찾아본 즉, 개념의 정의에 따라붙는 수식이 많기도 많다.
적정기술을 창안한 경제학자 슈마허(E. F. Schumacher, 1911~1977)는 ‘자본과 산업에 의한 거대기술과 기술의 부재 사이에 점을 찍은 중간기술’로 정의했다고 하는데, 그 외에도 ‘생활하면서 필요한 도구를 비용과 기술을 과하지 않게 사용하여 얻는 것’, ‘지속가능한 삶의 기술’, ‘그 기술이 사용되는 사회 공동체의 정치적, 문화적, 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술로, 인간의 삶의 질을 궁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로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농민인문학 첫 강좌에 강사로 모신 김성원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적당연구소장은 그가 만들어 제공한 자료집에서 적정기술이란 마지막 남은 ‘희망의 기술’이요, ‘손으로 구현되는 기술’이라 이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기술’이 바로 적정기술이려니 하는 생각에 미치자 적정기술이 인문학과 동떨어진 분야가 아니라는 짐작을 하게 되었다.
자료집의 중간에 강사가 밑줄 쳐가며 즐겨 읽는다는 랭던 위너의 ‘길을 묻는 테크놀로지’라는 책에서 인용, 소개한 ‘기술에 대한 몇 가지 아포리즘(격언)’ 중에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내용이 눈에 띈다.
-인간의 손뿐만 아니라 머리와 가슴까지도 기계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개인의 노력에 대한 믿음과 자연의 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다. 그들은 내적인 완성이 아닌 외적인 조합과 배치, 제도, 체계와 같은 기계적인 종류의 매커니즘들에 대하여 희망을 느끼고 그것을 위해 투쟁한다. 사람들의 모든 노력, 애착, 의견이 매커니즘에 좌우되고, 성정마저 기계적이 되어간다.
정말 그럴까? 영화 ‘설국열차’처럼 시스템 밖으로 나가면 모두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걸까, 앞만 보고 달리는 열차와 같은 현대산업기술 문명사회에 대한 이 비정한 아포리즘을 깨고 시스템 밖의 희망에 대해 말하는 것이란 어리석은 저항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열차 밖으로부터 떠오르는 희망, 적정기술의 가치를 나누고 행하기 위해 장수군귀농귀촌인협의회가 지난 10월28일 장수군농업기술센터 마당에서 주최한 ‘적정기술과 고재난로 만들기’ 실습 워크샵을 성황리에 마친 날 저녁, 뜬봉샘 취재진은 장수군 산서면 학산리 동고마을을 찾았다.
석유 정점에 의한 에너지 위기의 시대에 다가올 겨울을 앞두고 난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켓화덕을 만든다, 전통구들을 개량한다, 태양열 온풍기를 만든다며 새로운 유행처럼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시점에 시스템 없는 시스템, 에너지에 대한 다른 차원의 접근, 즉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고 난방을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여 겨울을 날 수 있는 ‘적정신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세워보면 어떨까, 다소 황당하겠지만 농촌의 늦가을 저녁 한기를 달래줄 ‘적정음료’로 막걸리나 몇 병 앞에 두고 잡담 수준의 가벼운 이야기판을 벌려보자는 취지에서이다.
그 성과는 알 길 없지만 이 분이야말로 온갖 적정기술 실험의 선구자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귀농인 모임에 가면 꼭 보게 되는 번암면의 홍학기님과 장수군으로 이도향촌(離都向村)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지성파 청년으로 산서면에 둥지를 튼 지 얼마 안 된 송광철님, 그리고 ‘꽃신을 거부한 원숭이’(정휘창의 우화 ‘원숭이 꽃신’에서 인용)처럼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대로 살며 ‘나는 자연인이다’ 등 유명 방송프로그램에도 소개된 적 있는 백운리의 신종영님과 언뜻 보트피플을 연상케 하며 동고마을 저수지 너머 공터에 천막을 들여 전국에서 가장 쉽고 가뿐한 귀촌을 감행한 김준규님의 다섯 가족, 그리고 취재진, 모두 열 명이 마침 김준규님가족이 낮에 실습강좌에 참가해 만들어 온 20리터짜리 깡통화덕에 불을 피우고 도란도란 둘러앉았다.
천막가족의 가장이며 고급기술자 출신인 김준규님이 고안해 만든 깡통을 이용한 소형 조리기구에그의 부인과 열 살짜리 아들 운겸이 정성껏 구워낸 감자와 신김치와 밥으로 소박하게(적정하게) 요기를 하고서도 잔뜩 열 받으며 화력을 뽐내는 적정기구 로켓화덕 위에서 구워낸 땅콩과 은행을 안주삼아 연거푸 막걸리 사발을 비우며 풀어낸 이야기는 결코 잡담일 수 없었다.
에너지 뿐 아니라,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 자급자족의 삶의 방식에 대해 뜬봉샘에 담기 아까운, 최소한 전북방송, 아니 한국방송과 같은 공중파 다큐 프로에 소개된다 해도 아깝긴 매 한가지일 토론자들의 깊은 철학과 생생한 경험담이 쉴 새 없이 이어지며 아포리즘의 향연을 이루었는데, 지면 관계 상 다 소개할 수 없기에 ‘꽃신을 거부하고 열차를 이탈한’ 신인류, 홍학기, 김준규, 신종영, 송광철 4인의 ‘적정신체족’이 쏟아낸 경험과 지혜를 집약·정리하여 에너지 위기, 기술문명의 미래에 관한 실낱같은 희망을 엿보도록 한다.
홍학기님: 장수에서 여덟 번 겨울을 났다. 단열이 안 되는 구옥인 한옥에서도 살아봤고 나무난로로 실내난방을 한 게르(몽골식 천막)에서도 2년 살아봤다. 기름보일러? 기름값이 겁나게 치솟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태양열 온수보일러 등도 시도해 봤지만 일조량이 부족한 지역 특성 상 실패한 경험이 있다. 작년에 직접 지은 조립식 건물에 가스보일러를 설치, 열전도율이 낮은 석고보드로 단열을 시도했다. 단열재와 보온재는 다르다. 무엇으로 난방을 할까 하는 문제보다는 에너지사용을 최소화하고 자연과 가까이 동화하는 삶, 먹고사는 모든 문제를 최대한 자연 속에서 해결하는데 관심을 갖고 살려한다.
김준규님: 작년 겨울을 가족들과 금산에서 텐트를 치고 낮에는 로켓스토브로 추위를 달래고 밤에는 텐트 안에서 잔뜩 옷을 껴입은 채로 침낭을 이용해 잠을 잤다. 올해는 좀 더 나은(?) 월동을 위해 건축방식을 응용해 짚단으로 단열 처리한 천막을 가족 수대로 각자 만들어 침실로 쓸 구상을 하고 있다. 한기에 노출되는 안면 온도는 ‘버프’를 이용해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는 20W 용량의 태양광 발전기를 손수 만들어 휴대폰과 조리기구용 팬을 돌리는 정도에만 쓸 뿐인데 남아도는 지경이다. 거창한 생태철학이나 특별한 에너지관에 따른 삶의 방식은 아니다. ‘안 벌고 안 쓰는’ 삶, 자력으로 자급하는 삶을 인간행복의 조건으로 삼은 선택일 뿐이다. 그나저나 추위를 심하게 타는 편이라 ‘적정신체’에 대해 좌담을 한다기에 추위를 이겨내는 고수의 비법이라도 전수받을 수 있을까, 내심 기대했다.(웃음)
신종영님: 난방을 위한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겨울을 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게 되었다. 추위를 이겨내고 겨울을 나는 방법이란, 적정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언제나 일상에서 ‘만족의 기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인데, 긴장해소를 통해 혈액순환을 돕고 외부(설국열차? 원숭이꽃신?)로부터 오는 것을 차단하고 되도록 자기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시계가 없는 생활’을 한다. 공공재와 유통물(상품)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무리하지 않고 체력을 적정사용하며 늘 편안한 마음을 유지한다.
취재기자: 듣고 보니 오랜 수련의 결과인 듯싶다. 기자도 호흡, 명상, 동학주문수련을 하며 마음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늘 평정을 유지하려고 하며 인내와 극기의 심신 단련을 위한 방편으로 삼고 있다. 어떤 수련을 하는지?
신종영님: 호흡수련, 좌선, 명상 등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부터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게 하는 강한 교육방식을 경험해 추위에 잘 단련되었다.
취재기자: 2011년 지리산 정령치 아래 고기리라는 마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할 때, 난방이 안 되는 낡은 건물에 살며 혹독한 겨울한파를 1인용 온수매트 하나로 견딘 경험이 있다. 방안에서 외투까지 옷을 잔뜩 껴입은 것도 부족해 머리와 손이 시려 털모자와 장갑을 끼고 생활했는데, 잘 때도 이불을 두 개 겹쳐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양말을 벗지 않은 채 자곤 했다. 숨 쉴 때마다 입에서 허연 입김이 나왔지만 견딜 만 했다. 그때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는 지구의 대전환, 기후변화, 생태위기 등에 대한 성찰과 고민 속에 대안으로 적정기술 등 대중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인식 아래 적정기술과 함께 적정신체로 단련하는 것에 대해 처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고온도를 뭣하게 70도까지 올리도록 설계했을까, 엉덩이 밑에 깔고 앉은 온수매트의 온도조절기를 볼 때마다 늘 의문할 정도로 겨우내 온수매트 물의 온도는 30도 밑 예열단계를 넘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견딜 만했기 때문이다. 이조차 사라지고 없는 미래를 떠올리면 ‘이만하면 천국’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송광철님: 대중들은 자신이 향유하고 있는 물자(석유, 전기에너지 등)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시원과 종말에 대한 고민 없이 편리만을 쫓아 당연한 혜택이라 여기고 소비를 일삼는 우매함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있다. 거주하는 마을의 주변 어르신들을 보면 에너지 공급과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주된 인식이다. 값싸고 편리한 전기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식이다. 전통적, 재래적 삶의 방식을 농촌에서도 이미 버렸다. 더우면 불쾌하고 추우면 고통스러운 것이야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냉난방을 안 하고 공짜로 가져다 줘도 밥통과 같은 가전제품을 안 쓰는 나의 생활방식을 동네어르신들은 이해 못 한다. 현재 편리한 삶은 누군가에 대한 착취의 결과이다. 석유는 고갈될 것인가, 잔치가 끝나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기술문명의 미래는 우리가 무조건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도 없는 희망, 즉 기적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에 달려있는 듯하다- 농민생활인문학 자료집1 ‘기술에 대한 몇 가지 아포리즘’ 중에서
취재·정리: 김혜정 편집위원
첫댓글 부끄러워 드릴 말씀 별로 없네예....
한 겨울에도 얼음깨고 도랑가서 목욕하던 그 시절이 엊 그제였건만....
요즈음은 전기장판 최저온도에....
가스렌지 위 물 데워서 씁니다.
따로이 자연재생에너지 관련 실천운동과는 거리가 쫌 멉니다.
부끄럽습니다.
요즘 귀촌 귀농 공부하고 있는 데 머리에 하나도 않들어와요~~~국제디지탈에서 하는 강의를 듣고 있어요~~
아, 귀농귀촌을 꿈꾸시는가 보네요?
천도교에서도 다른 종단들처럼 농촌, 농업, 농사와 관련한 사업을 관심갖고 시작하게 되길 심고드립니다.
특히 한울연대가 그 전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꿈꾸고 있기도 합니다.
시천주귀농학교, 농심이 천심이다!
적정신체? 재미있네요. 스무살 무렵, 설악산에서 보름정도 한겨울을 텐트에서 지낸적이 있는데, 그때 상황과 비슷해서 옛날생각이 절로. 대청봉에서 마등령까지 능선길은 평시에는 한나절 걸리지만, 겨울에는 눈은 사람키보다 더 높게 쌓여도 잇고, 설피신고 걸어야 하니 거의 일주일을 헤매야 능선을 완주할 수 있는 상황. 기온은 평균 영하 20도, 바람불면 체감온도가 영하30도정도. 텐트에서 침낭뒤집어쓰도 고드름이 얼고, 방수를 한다고 해도 텐트로 물은 새어들고...이렇게 능선에서 보름을 지내다 마치고, 백담사 계곡에 내려오니 영하10정도, 얼음물 깨고 목욕을 했는데 김이 모락모락나던 그때는, 적정신체였을 건데, 요즘은?
부적정신체시라고요? 그건 아니겠죠? ㅎㅎ
탁암님의 과거사 고백,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참 멋진 도담이네요. 부럽습니다.
어릴때 살던집을 아버지께서 직접 지우셨죠.
아궁이 놓는법, 단열, 목조, 미장...그런탓인지 웬만한 일들은 손수 만듭니다.
도시생활하면서 겨울철 들어가는 가스비 내는것 생각하면, 아깝죠.
한국인은 온돌이 최고다 외치지만, 도시생활 온돌방처럼 따뜻함 찾다간 가스비 폭탄일겁니다.
어쩔수 없는 침대생활 어떻게든 난방비를 줄어볼까 안간힘을 쓰면서, 이따금 노트에 긁적긁적 제가 살 집을 설계해 봅니다.
아, 그러셨어요? 어릴때 아버님께서...맞아요, 옛날엔 다 그렇게 살았지요.
식의주를 자급자족하며 자기 삶을 주도권을 가지고 스스로 운용하며 ...
이젠 모두 자본에 종속되어, 시스템의 노예가 되어 수동적으로 살아가지요...
무비판, 무반성적으로...
후퇴, 더 이상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닌 듯합니다. 아.름.다.운.후.퇴.
후리지아님의 노트에 그려진 미래의 집, 어떤 모습일지...ㅎㅎㅎ
전라북도로 내려오시우....집 지을 땅 소개해 드릴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