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녜스는 학창시절 라벨에게 알로이쥐 베르트랑(Aloysius Bertrand, 1807~41)의 시를 소개해주었고, 여기에 영감을 받은 라벨은 ‘옹딘(물의 요정)’, ‘교수대’, ‘스카르보’, 이렇게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밤의 가스파르]를 피아노를 위해 작곡했다.
이 위대한 피아노 음악은 시상의 분위기와 느낌을 고스란히 음악으로 반영한 작품으로서, 연주자로 하여금 초인적인 비르투오시티와 천재적인 상상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난곡 중의 난곡으로 손꼽힌다. 과시적인 비르투오소 작품이라기보다는 참된 비르투오소를 필요로 하는 이 작품은, 정신과 기술을 최고의 경지에서 결합한 리스트의 위대한 피아노 작품들의 빛나는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의 근원이 된 시를 지은 베르트랑은 원명인 루이보다 세례명인 알로이쥐로 더 잘 알려진 시인으로서 프랑스의 선구적인 낭만주의 예술운동가다. 피에몬테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로랑 지방 출신의 헌병대 대장이었고 어머니는 이탈리아인이었다. 루이 11세가 프랑스로 통합하기 이전의 부르고뉴 공국의 수도였던 디종에 정착해 살았는데, 베르트랑은 몹시 가난했고 저널리스트로서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병약하기까지 해서 짧은 생애밖에 누릴 수 없었다. 그 시기에 그는 ‘밤의 가스파르’라는 제목으로 몇 개의 시와 낭만적인 펜화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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