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토요일.
라디오에서는 오늘 새벽 최저 기온이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영하 5도라고 흥분한 목소리가 높았지만 ,
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장미광장은 따뜻한 봄날처럼 밝은 햇빛 아래 평온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습니다.
작년 6월에 개장했으니까 두번 째 겨울을 맞고 있는 이곳 장미들은 이미 마른 볏집으로 몸을 감싸고 덮고,
찬바람 막는 울타리까지 둘러쳐서 시베리아 한파 닥쳐도 끄떡 없이 버텨낼 수 있는 준비를 마쳤기 때문입니다.
가을 장미축제가 끝나고 일주일 후인 11월초부터 장미광장은 월동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사람은 추위가 닥치면 얼른 두꺼운 옷을 입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죽으면 그만인 나무는 언제 한파가 밀어 닥칠 지 몰라 미리미리 추위에 대비해야 합니다.
장미광장에 있는 장미나무는 모두 16,500그루,
한 그루 한 그루 사람의 손이 들어가야 하는 까다롭고 힘든 작업입니다.
먼저 가지치기, 한 자 정도 남기고 모든 가지를 잘라야 합니다.
나무 모양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방으로 골고루 가지가 뻗을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춰가며 잘라 냅니다.
사실이 아니지만 시인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그럴 듯한 것은,
그만큼 장미 가시가 위험하다는 뜻이니까 가시에 찔리지 않고 작업하기가 만만치 않아 애를 많이 먹습니다.
가지치기가 끝나면 가지를 비닐 끈으로 잡아 묶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옷을 입히듯, 겨울 한파를 이겨내려면 가지 위에 볏짚으로 만든 옷을 입혀야 하는데,
가지를 한데 모아야만 쉽게 볏짚을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춥고 찬 바람이 부는데 장갑을 벗을 수도 없으니 얇은 비닐 끈을 장갑 낀 채로 잡아 묶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다음 순서는 화단에 깔아 놀았던 우드칩(나무조각)을 거두는 작업입니다.
우드칩은 모종을 덮는 검정 비닐처럼 잡초가 나는 것을 막고, 습기가 쉽게 증발하지 못하게 하고, 지열을 보전하는
역할도 하지만, 장미화단에서는 물주기할 때 바닥의 흙이 튀어 잎 뒤에 붙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장미는 병충해에 가장 약한 나무입니다.
습기가 많으면 진딧물이나 응애가 덤벼 들고, 흙물이 붙으면 검은잎 반점이 생기고, 흰가루잎병이 금새 번집니다.
그리고 한번 쓴 우드칩을 거두지 않으면 해충들이 잠복하여 다음 해 개화에 막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우드칩을 거둔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볏짚옷을 입히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이번 월동준비에 소요된 볏짚의 양은 3만 Kg, 벼 농사로 유명한 평택에서 트럭 6대에 실어 날라왔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한 그루 한 그루 볏집을 골라 미리 묶어 놓은 가지 위에 씌우고, 허리띠 묶듯 비닐끈으로 세 군데를 묶어
센 바람이 불어도 바람 한 점 들어가지 않도록 두툼하고 꼼꼼하게 볏짚옷을 입혔습니다.
키가 큰 덩굴장미에도 볏짚옷을 입힙니다.
두 사람이 붙어도 덩굴장미 한 그루에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정성을 들여야 하는 힘든 작업입니다.
마지막 작업은 볏짚 깔기와 울타리치기.
땅이 얼지 않게 지열을 보전하려면 불 땐 온돌방에 이불 깔아 놓듯 화단 위에도 볏짚을 두툼하게 깔아 놓아야 합니다.
가지치기한 장미의 키가 한 자가 넘고,
덮는 짚의 키도 한 자가 훨씬 넘어야하니 트럭 6대로 3만 Kg의 볏짚을 가져왔다는 말이 사실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맞춤으로 제작한 볏짚 울타리로 화단을 둘러싸니까 이제 한 달 이상 걸린 모든 작업이 끝났습니다.
문득 요즘 유행하는 노래 중에서 "전쟁 같은 사랑" 이라는 가사가 떠오릅니다.
장미광장을 찾는 사람들 중에 " 왜 우리 집 정원에 있는 장미나무는 여기처럼 아름답게 피지 않느냐? "고 묻습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이 " 정원사가 있느냐? "고 반문합니다.
장미 재배는 어느 꽃 어떤 나무보다 지극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까다로운 나무입니다.
조금만 소홀하면 진딧물 응애가 달려들고 검은 반점 흰 가루가 나타납니다.
장미광장을 관리하는 담당자들은 장미와 "전쟁 같은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미의 꽃말은 "전쟁 같은 사랑"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