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 도청장치 4집 <Observation>
'바람직한 성장'은 이런 것! 훌륭한 4집이다 ★★★★☆ 심미섭
더욱 짙어진 몽환적인 색깔, 그들의 세상 속 판타지 ★★★★ 안지연
음악으로 잔상(殘像)을 남긴다 ★★★★ 심솔
이유있는 '4'년간의 기다림 끝에 나온 정규 '4'집, 별도 '4'개 ★★★★ 박재윤
음울하면서도 화려한, 그들의 기(氣)를 맛보다 _ 내 귀에 도청장치
2010.08.24 / WIRETAP Entertainment
밴드에서 다른 멤버에 비해 보컬을 과도하게 주목하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그러나 내 귀에 도청장치를 말할 때는 보컬 이혁을 우선 언급할 수밖에 없다. 이들 라이브 무대를 보았다면, 이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꽤 될 것이다. 검은 아이라인으로 화려하게 화장한 이혁이 등장하면 독특한 패션과 메이크업에 우선 주목하게 되지만, 사실 무대에서 그가 보여주는 진짜 매력은 관능적인 목소리와 어울리는 몸짓과 눈빛에 있다. 대형 페스티벌들에서 내 귀에 도청장치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생소하고 파격적이지만 당황보다는 환호를 불러일으킨다. 당신이 내 귀에 도청장치의 무대를 본 적이 없다면, (사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피해야 할 말이지만) 이 밴드만큼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내 귀에 도청장치 4집 타이틀곡 <실험> 뮤직비디오 (출처: BestofAsianTV)
1996년 이혁(보컬)과 정유화(기타)를 주축으로 결성된 내 귀에 도청장치는 클럽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2001년 1집 <내 귀에 도청장치>를 발매했다. 역사가 오래된 밴드인 만큼, 몇 번의 멤버 교체와 ‘프라나’로의 밴드명 교체를 거쳤다. 현재는 ‘내 귀에 도청장치’라는 본래 이름으로 돌아와 이혁(보컬), 김태진(기타), 황의준(베이스), 정재훈(드럼)의 라인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화려하고 그로테스크한 그들 음악의 장르를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메탈 영향이 느껴지는 거친 기타 리프, 싸이키델릭한 멜로디가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이런 설명보다는 오랜 활동을 통해 그들 스스로 '내 귀에 도청장치'라는 하나의 장르를 쌓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8월 발매한 4집 앨범 《Observation》은 이러한 이들만의 색깔을 충분히 드러낸 앨범이다.
이번 늦여름 불어닥친 태풍이 유난히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일까, 앨범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태풍'이다. 강한 리프와 샤우팅이 돋보이는 하드 락 밴드여야만이 ‘태풍’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앨범은 보여준다. 물론 앨범 전체적으로 등장하는 기타 리프는 상당히 거칠지만 이들의 음악은 거칠기보다는 ‘휘몰아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앨범이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에는 관악기가 효과적으로 사용된 <실험(Original)>과 <실험>이 각각 앨범 앞과 뒷부분에 위치하며 앨범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앨범 수록곡들은 각각 약간씩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조용하고 몽환적이거나 (<포르기네이>) 리드미컬하고 화려하지만 문뜩 섬뜩한 느낌을 주고 (<축제>) 나른한 기타와 감정이 풍부한 보컬이 대조되기도 (<중독>) 한다. 특히 그로테스크(<골방>)하고 싸이키델릭한 느낌은 앨범 전체를 주도한다. 그러나 이번 앨범 전체적인 이미지를 말하자면, 셰익스피어가 《맥베스》에서 그려냈던 천둥 번개 치는 황야의 세 마녀들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름다운 것은 더러운 것, 더러운 것은 아름다운 것. 안개 속을, 더러운 공기 속을 날아가자.”
천둥 번개 치는 스코틀랜드의 황야에서 수염이 난 마녀들은 서로 손을 잡고 빙빙 돌며 마법을 건다. 예언하고, 저주 내리고, 인간을 현혹시키는 듯하지만 결국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실이다. 밤, 비바람, 마녀, 꿈 등 음울하면서도 환상적인 요소들이 이 고전과 <Observation> 앨범에는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자면, 이 음반을 들으며 <멕베스>를 읽으면 시각과 청각이 모두 채워지며 이내 촉각적으로 다가오는 흔치않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앨범을 내고 데뷔한지 십여 년, 내 귀에 도청장치가 비로소 그들만의 완전한 색깔을 찾아냈다고 표현하면 한 리스너로서 너무 건방진 표현일까. 그들이 그동안 발매했던 앨범들도 물론 좋았지만, 라이브 공연에서 보여주는 그 강력한 카리스마를 한 장의 앨범에 담기에는 조금 부족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단순히 ‘라이브만큼 좋은 앨범’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플레이어에서 첫 번째 트랙이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폭풍처럼 몰아치는 사운드에 눈앞에는 내 귀에 도청장치의 공연 실황이 펼쳐진다. 음반만으로도 시각 자극을 줄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 뮤지션들이 라이브무대에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하려고 노력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번 앨범은 꽉 찬 사운드, 화려한 멜로디와 보컬 뿐 아니라 그들의 에너지까지 담긴 음반이라 할 수 있다. 공연 중간중간에 두 손을 관객으로 뻗어 '장풍'을 쏘는 보컬 이혁을 떠올린다면, 에너지보다는 '기'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세월만큼 성숙한 음반, 누군가 내 귀에 도청장치에 대해 묻는다면 이 한 장의 앨범이 그들을 대표할 수 있으리라.
글/ 심미섭
첫댓글 내귀카페로담아갈께요. 감사합니다. :-)
우와 죽이네 +_+
뿅감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