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와 자풀이
먹고살려고 돈을 버는 일을 벌이라고 하고,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길을 벌잇줄이나 밥줄이라고 하는데,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벌이와 벌잇줄로 삼는 것이 장사 또는 생화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 늙은이가 죽고 싶다는 말과 함께 삼대 거짓말로 꼽히는 것이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이다. 그러나 밑지는 장사를 뜻하는 오그랑장사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밑지고 판다는 말이 생판 거짓말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그랑장사의 반대말로는 곱으로 이익을 내는 곱장사가 있다.
되넘기장사는 물건을 사서 곧 되팔아 이익을 남기는 장사, 듣보기장사는 시세를 듣보아 가면서 요행수를 바라고 하는 장사, 안팎장사는 이곳의 물건을 사서 다른 곳에 팔고 그 돈으로 그곳의 싼 물건을 사서 이곳에 가져다 파는 장사를 말한다. 가장 질이 나쁜 장사는 관직(官職), 즉 벼슬을 팔아먹는 벼슬장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렁장사나 동무장사는 요즘의 동업(同業)이다. 직거래(直去來)는 맞다대기, 물건과 물건을 맞바꾸는 일은 바꿈질, 물건을 시세보다 싸게 사는 일은 싼거리라고 한다. 되풀이는 곡식을 말로 팔지 않고 되로 헤아려서 파는 일, 자풀이는 피륙을 자로 끊어서 파는 일, 잔풀이도 술을 낱잔으로 파는 일을 말한다.
첫번에 물건이 팔리는 것으로 미루어 말하는 그 날의 장사 운수를 마수라고 하는데, 장사를 시작해서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것을 '마수를 건다'고 하는 것이다. 마수걸이는 마수를 거는 일이라는 뜻이다. 마수걸이는 별 느낌이 없는데 마수를 건다고 하니까 무슨 마수(魔手)가 뻗쳐 오는 것처럼 공연히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이 세상에 에누리가 없는 장사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에누리는 흔히 물건 값을 깎는 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에누리는 장사하는 사람이 물건 값을 더 얹어서 부르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파는 사람이 에누리를 한 물건을 사는 사람도 에누리를 해서 샀다면 그것은 결국 제값을 주고 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에누리없다'는 말은 두 가지 에누리가 다 없는 상태, 다시 말해 깎거나 보탬이 없다는 뜻이 된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물건을 살 때 그 자리에서 치르는 돈이 맞돈인데, 그 반대로 외상을 할 때 전에는 엄대라고 하는 막대기에 외상값을 길고 짧은 금으로 새겨 표시를 했었다. 요즘의 외상 장부인 셈이다. 그래서 '엄대를 그었다'는 말은 외상으로 거래를 했다는 말이다. 담타기는 물건을 살 때 입은 손해를 되팔면서 사는 사람에게 씌우는 짓인데, 원래 담타기나 덤터기는 남에게 넘겨씌우거나 넘겨 맡는 걱정거리를 뜻하는 말이다. 손님은 단골손님과 뜨내기손님으로 나눌 수 있는데, 만만하고 어수룩하게 보이는 손님을 가리키는 내미손이라는 말도 있다. 상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미손이야말로 담타기를 씌우기에 딱 좋은 손님일 것이다.
'장사는 흥정이 반'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장사꾼을 흥정바지라고 불렀다. 흥정은 장사의 잘 되고 못 됨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술이었던 것이다.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상대에게 양보하는 척 생색을 내면서도 자기의 실속을 챙기는 데 흥정의 묘미가 있다. 따로따로 나누지 않고 한데 몰아서 하는 흥정은 도거리흥정이나 모개흥정이라고 하고, 낱개로 금을 정하는 흥정은 낱흥정이라고 한다.
드림흥정은 물건 값을 여러 번에 나누어 주고받기로 하고 하는 흥정, 푼내기흥정은 푼돈으로 셈하는 잔 흥정, 절박흥정은 융통성이 없는 빡빡한 흥정을 말한다. 물건을 사고 팔 때 흥정이 끝난 증거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술이나 담배를 대접하는 일을 성애라고 하는데, 그래서 먹게 되는 술이 성애술이다. 역시 흥정은 붙이고 볼 일이다.
첫댓글 와~ 정말 대단하십니다. 언니가 신경 쓰시는 바람에 다양한 우리말을 만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근데 언니~ 각양각색의 단어들이이 나래비로 서서 내 머리 아프게 할라꼬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 같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