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하 (李敭河 1904∼1963)
1. 생애와 활동.
1904∼1963. 수필가· 영문학자. 평안남도 강서 출생. 1923년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일본 제삼고등학교(第三高等學校), 1930년 동경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1년 동 대학원을 수료, 귀국하여 1934년에 연희전문학교 강사를 지냈다. 1942년부터 동교 문학과 교수를 역임하면서 영문학 관계 논문과 수필을 발표하였다.
1945년에는 경성대학(京城大學) 문과 교수, 1950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1951년 도미하여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하였다. 1953년에는 다시 미국의 예일대학에서 언어학부의 마틴 교수와 함께 ≪한미사전 韓美辭典≫을 편찬하였다. 1958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 서리를 지냈다.
피천득(皮千得) 등과 함께 램(Lamb,C.)·베이컨(Bacon,F.) 등 정통적 유럽풍의 수필을 도입, 본격적 수필을 발표하였다. 그의 수필은 종래의 신변잡기적이고 주관적인 제재에서 벗어나 생활인의 철학과 사색이 담긴 본격 수필을 시도하였으며, 〈나무〉(1964) 등의 작품은 그의 수필문학사상 주요한 업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송전풍경 松田風景〉(1939)·〈내 차라리 한 마리의 부엉이가 되어〉(1949)·〈마음과 풍경〉(1956)·〈조지 호반에서〉(1956)·〈내가 어질다면〉(1957)·〈미국병정〉(1957)·〈삼면경 三面鏡〉(1958)·〈사람의 마음이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1958)·〈조춘삼제 早春三題〉(1958)·〈십년연정 十年戀情〉(1958)·〈미스터 모리슨 Mr. Morison〉(1959) 등의 시와 〈백조의 노래〉(1943) 등의 소설도 발표하였다.
특히, 수필집 ≪이양하수필집≫(1947)과 ≪나무≫(1964)는 한국 현대수필문학사의 주요 업적으로 꼽히며, ≪이양하수필집≫에 수록된 〈봄을 기다리는 마음〉·〈신록예찬〉·〈내가 만일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프루스트의 산문(散文)〉·〈페이터의 산문(散文)〉 등은 그의 대표적 수필로 널리 읽혀졌다.
2. 나 무.
나는 지난 주말에 초등학교 동창의 차를 타고 경기도 포천의 백운산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너와 같이 있는 것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라고 감격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그 긴 세월동안 떨어져 있었으면서도 우리의 대화가 조금도 낯설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같은 길을 걸어와서 어쩌면 매일 만나는 사람들보다도 더 서로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리라. 그는 성공한 중소기업의 노조 위원장이고 나는 실패한 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그러나 우리 둘은 대기업의 노동 운동가처럼 임금을 올리고자 투쟁과 협상을 전략과 전술로 이용할 줄도 모르며 또한 거대한 골리앗과 맞선 다윗과 같은 용기도 없는 순진한 노동 운동가다. 나는 그에게 정지용의 향수를 읊어 주는 것으로 그에 대한 나의 우애를 표시하였다.
제목 : 향 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하 중략-
“나는 이러한 시를 낭송할 때마다 시인으로서 무력감에 빠지곤 하지.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훌륭한 시는 인간이 아니라 신의 작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신이 강림하여 그들의 손을 움직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음률을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내게 물었다. “그러면 그대는 왜 시를 쓰는가?” 이미 수백 번 받은 질문이라 무뎌질 때도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숨겼던 중죄를 들킨 어린애같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용기란 역시 선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의학에서는 간과 담이 장군과 같은 용기와 결단력을 주관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굉장히 용기가 많거나 무모한 사람을 가리켜 '대담하다(간덩이가 부었다), 간이 배 밖에 나왔다.)'라는 표현을 쓴다. 한마디로 간담의 기능이 항진된 경우다. 서양에서는 사내대장부의 용기가 뱃속의 작은창자나 큰창자 같은 데서 오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용기를 “guts"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그녀는 용기가 없다.”를 영어로 표현하면 그녀는 창자가 없다(She hasn`t got the guts)라고 한다.
나는 대의와 명분에 따라서 행동할만한 용기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그러한 당위성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다가 눈물을 흘린다. 시인은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는 간과 창자가 작은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만든 작은 오솔길을 따라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건너편 산자락에 사는 소나무는 어김없이 그 기다란 팔로 영겁의 세월을 산 회색 바위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우리가 몇 번을 이곳에 더 와서 저 나무를 관찰해야 나무의 속내를 읽을 수 있을까?” 글 쓰는 사람의 필력(筆力)도 마찬가지다. 나는 죽을 때까지 저 나무의 세포 한 조각조차도 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는 말을 이었다. “감성이 풍부한 젊은이는 단번에 저 나무속으로 뛰어들어 기꺼이 그의 몸뚱이를 죽음보다도 깊은 고독 속에 내던진다네!”
나는 수필가 이양하(李 敭河)의 나무를 통하여 내가 백운산에서 미처 읽지 못한 나무의 마음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 : 나무.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得搏)과 불만족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내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옴쭉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날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 중략-
나무에 하나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명을 다한 뒤에 하늘 뜻대로 다시 흙과 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가다 장난삼아 칼로 제 이름을 새겨 보고, 흔히 자기 소용 닿는 대로 가지를 쳐가고 송두리째 베어 가곤 한다. 나무는 그래도 원망하지 않는다. 새긴 이름을 도로 그들의 원대로 키워지고, 베어 간 재목이 혹 자기를 해칠 도끼 자루가 되고 톱 손잡이가 된다 하더라도 이렇다 하는 법이 없다.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요, 고독의 철인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이다.
나무는 소위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으련다.
*견인-주의(堅忍主義): 온갖 욕정을 의지(意志)의 힘으로 억제하려는 도덕적·종교적 주의 주장. 금욕주의(禁慾主義).
* 안분-지족(安分知足):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
3. 페이터의 산문(散文).
“최형! 우리는 배경 좋고 돈 많은 저들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노조 창립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기업주의 첩자 노릇을 주저하지 않았던 동료가 회사를 사직하면서 내게 던진 충고와 경고는 결코 헛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불 같은 분노를 느끼면서 권위주의자들의 편견과 맞서왔지만, 그들의 털끝 하나도 바꿀 수가 없었다.
세월은 내게서 정의감과 발심을 빼앗아 갔고 세상은 정신적인 공황 때문에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할 만큼 고장 난 나의 몸뚱이를 철저하게 배척했다.
나는 세상이 삶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할 때마다 이양하(李 敭河)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손에 잡은 까닭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나의 글이 나를 감동시킬 때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것은 수없이 반복된 “왜 당신은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이양하(李 敭河)의 답변일 것이다.
제목 : 페이터의 산문
만일 나의 애독하는 서적을 제한하여 이삼 권 내지 사오 권만을 들라면, 나는 그 중의 하나로 옛날 로마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을 들기를 주저하지 아니하겠다. 혹은 설움으로 혹은 분노로, 혹은 욕정으로 마음이 뒤흔들리거나, 또는 모든 일이 뜻같이 안 하여, 세상이 귀찮고, 아름다운 동무의 이야기까지 번거롭게 들릴 때 나는 흔히 이 견인주의자 황제를 생각하고, 어떤 때는 직접 조용히 그의 명상록을 펴 본다. 그리하면, 그것은 대강의 경우에 있어,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회복해 주고, 당면한 고통과 침울을 많이 완화해 주고, 진무(鎭撫)해 준다. 이러한 위안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모르거니와, 그것은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내 마음에 달렸다." "행복한 생활이란 많은 물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모든 것을 사리하라. 그리고 물러가 네 자신 가운데 침잠하라." 이러한 현명한 교훈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도리어 그 가운데 읽을 수 있는 외로운 마음, 끊임없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생활의 필요조건이 되어 있는 마음, 행복을 단념하고 오로지 마음의 평정만을 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하 중략-
*진무(鎭撫):난리를 일으킨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어루만져 달램.
*침잠(沈潛) 1.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생각함. 2.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물속 깊숙
이 가라 앉거나 숨음. 3. 분위기 따위가 가라앉아 무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