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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삼국지』에 기록된 3세기경 동아시아 정치체들 위치(강단사학계 통설) |
그러면 강단사학계 통설에서 주장하는 중국의 위‧오‧촉 삼국시대 고구려 강역을 살펴보자. 위 <그림 2>에서 보듯이 요동군 동쪽 고구려 강역은 사방 2천리는 고사하고 사방 8백리도 나오기 어렵다. 강단사학계 통설은 중국 정사인 『삼국지』에 기록된 고구려 강역을 무려 1/5 이하로 왜곡‧축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사료 A-3)는 당시 고구려 수도가 ‘요동의 동쪽 천리 밖에 있다’고 하였는데, 통설과 같이 요동군을 현 중국 요령성에 비정하면 고구려 수도 평양성은 옥저지역을 넘어 동해 바닷가에 있어야 한다. 현 강단사학계 통설은 중국 정사인 『삼국지』(사료 A-3) 기록과도 전혀 맞지 않는 역사왜곡이다.
혹시 『삼국지』(사료 A-3)의 고구려 강역 사방 2천리가 잘못된 기록일까? (위 <그림 1> 참조) 그렇지 않다. 수많은 중국 정사 기록을 통하여 교차검증 된다. 『후한서』‧『삼국지』‧『양서』‧『남사』에는 고구려 강역이 사방 2천리, 『북위서』‧『주서』‧『북사』‧『수서』에는 동서 2천리와 남북 1천리, 『구당서』에는 동서 3,100리와 남북 2천리, 『통전』에는 고구려 강역이 동서 6천리로 나온다. 특히 『통전』은 아래와 같이 시대별 고구려 강역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땅은 후한 시 사방 2천리였다. 위나라 때 남북이 점점 좁아져서 겨우 1천여 리였으며, 수나라 때 점점 커져서 동서가 6천리가 되었다(基地後漢時方二千里 至魏南北漸狹, 纔千餘里 至隋漸大東西六千里).” 『통전』권 제185, 변방1, 동이 하, 고구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구려 강역은 신라, 백제와의 관계에 따라 남북은 2천여 리에서 1천여 리까지 좁아지기도 하였지만, 동서 길이는 2천여 리 보다 좁아진 적이 없었다. 즉 고구려 서쪽 국경선은 현 중국 하북성과 요령성 경계인 칠로도산 보다 줄어든 적은 없었다. 그리고 고구려 전성기에는 강역이 동서 6천리로 현 중국 산서성 지역을 넘어 섬서성 지역까지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 강단사학계가 주장하는 고구려 강역은 어떤가? 광개토태왕 이전 강역은 요령성 천산산맥을 넘지 못하였다고 한다. 고구려 강역이 사방 1천리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고구려 전성기 때도 현 중국 요령성 요하를 넘지 못하였다고 한다. 강단사학계는 중국의 수많은 정사 기록과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면 강단사학계가 고구려 강역을 『삼국지』(사료 A-3) 기록보다 1/5 이하로 좁게 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고대 요동 위치를 잘못 비정했기 때문이다. 『진서』(사료 A-1) 기록에서 보았듯이 고대 요동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며, 요동이라는 지명이 요령성으로 이동한 것은 중국 요나라(916 ~ 1125) 시대 이후이다.(필자의 저서 『고조선으로 가는 길』89~109쪽 참조)
◎ 역사해석은 사료 선택이 중요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일방적으로 발굴‧조사하여 발표한 점제현신사비, 효문묘동종, 와당, 봉니 등의 유물을 근거로 ‘낙랑군 평양설’을 통설로 확정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유물은 쉽게 이동‧교류‧왜곡이 가능하므로 역사지리를 확정짓는 핵심근거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식민통치를 쉽게 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한국사를 연구했음은 천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조선총독부가 일방적으로 발굴․조사하여 발표한 유물을 핵심근거로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사료선택과 역사해석이 아니다.
반면 중국 서진시대 정사인 『진서』는 648년 당나라 태종의 명으로 방현령房玄齡 · 이연수李延壽 등 20여명 학자가 편찬한 책이다. 이 시기는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하여 절치부심하고 있을 때였다. 강단사학계 주장처럼 서진 평주가 현 중국 요령성과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면, 이보다 더 고구려를 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도 서진 평주를 하북성 지역으로 축소하여 기록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따라서 중국 정사인『진서』(사료 A-1) 기록은 낙랑군 위치를 밝히는 핵심근거가 될 수 있으며, 한나라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서진시대에 이르기까지 420년 동안 중국 식민기관인 낙랑군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 있었다.
지금 중국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유물들을 조작하여 통설로 확정한 ‘낙랑군 평양설’을 핵심근거로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북한지역에 군사를 주둔할 수 있는 명분을 착실하게 쌓고 있다. 동아시아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은 주변국을 침략하기 전에 먼저 그 나라 역사를 왜곡‧축소하여 침략의 명분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현 강단사학계 통설인 ‘낙랑군 평양설’은 낙랑군이 존재하던 당시의 중국 정사 기록들과 전혀 맞지 않으며,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광범위한 토론을 통한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끝>
첫댓글 글을 쓴 후 인터넷에 올리려고 하니까 용량초과로 나와서 할 수 없이 그림 두 개를 뺐는데, 댓글로 올립니다.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 : 황하(동하, 서하, 남하)로 둘러싸인 '우공 기주'지역이 잘 나타나 있는 지도이다.
서진의 평주 위치 : 필자와 강단사학계 통설의 차이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강단사학계 통설이 비정한 저 곳이 황하로 둘러싸인 '우공의 기주'지역이 될 수 있으며, 또 '한나라 우북평군' 지역이 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