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여성 1위. 흑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중 핸디캡을 이겨내고 미 국무장관의 자리에 오른 신화적인 인물, 콘돌리자 라이스. 그녀에겐 과연 어떤 힘이 숨어 있는 걸까? 콘디(콘돌리자 라이스의 애칭)는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서 태어났다. 바밍햄(Bombingham: Bomb는 폭탄이라는 의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했던 곳에서 총명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남다른 교육관을 지닌 그녀의 조상들이 있었다. 콘디의 현재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대게 그녀가 명문가에서 유복하게 자랐으리라 추측하는데 사실 그녀는 노예의 후손이다. 대대로 남의 집에서 하인 노릇을 했던 라이스가(家) 사람들은 어느 날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자손들에게만은 구차한 삶을 물려주지 말자’. 글을 배우기 시작한 그들은 백인들로 인해 장애물이 생길 때마다 힘겹게 싸워나갔다. 유색인종이 진학 할 수 있는 대학을 찾아 수 없어 이사를 다녔으며, 공부시킬 돈이 다 떨어지면 고된 노동을 해서라도 기어이 학자금을 마련했다. 그렇게 사막 한복판에서 기회의 샘을 파고 다니던 끝에 마침내 라이스 가의 자손 중 한 명이 장로교 목사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콘디의 할아버지 존Jr이다. 할아버지는 물론 사촌과 이모 삼촌까지 가족들 대다수가 대학을 졸업한 흑인 가문은 극히 드물었다. 바로 이런 배경이 오늘날의 콘디를 있게 한 것이다.
콘디의 구두와 이멜다의 구두는 다르다
특히 콘디의 엄마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인종차별을 꿋꿋이 이겨내며 부와 명성을 쌓은 대단한 여자였다. 딸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그녀는 콘디의 음악공부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최고의 멘토였다. 글자보다 악보를 먼저 익힌 콘디의 음악성은 대단했고 그녀의 부모는 자신들의 딸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콘디의 엄마는 시간이 날 때마다 딸을 데리고 워싱턴으로 여행을 가곤 했다. 백악관은 물론 유명 대학들을 투어하며 딸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주었고, 워싱턴의 전략적인 옷차림에 관한 교육도 빠뜨리지 않았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워싱턴의 생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리드하며 약육강식의 상류사회에서 드레스 코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가르쳤던 것이다.
워싱턴의 기질을 이해하게 된 콘디는 왕실가의 자녀들처럼 자세교정과 워킹 수업을 받아 자신감 넘치게 걷는 법을 습득했다. 그 어떤 영역 못지않게 자세교정과 워킹효과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콘디의 부모. 그래서인지 콘디는 지금도 구두마니아로 유명하다. 뉴욕 출장길에서 명품구두를 한참 쇼핑하고 있을 때 하필 허리케인이 남부 지역을 강타해 언론의 빈축을 산적도 있었다. 콘디의 신발 시리즈가 공중파를 탔을 정도지만 국민들은 ‘콘디의 구두와 이멜다의 구두(필리핀 독재자의 부인으로 사치와 허영의 상징)는 다르다’며 오히려 그녀를 두둔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신임하게 만드는 것일까? 콘디가 갑자기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그녀의 부모는 추호의 의심 없이 딸의 변경된 노선을 축하해주며 격려했다고 한다. 그간에 쏟아 부은 돈과 시간, 열정을 감안한다면 보통 부모로서는 내리기 힘든 결정이다.
여성, 그리고 글로벌 리더로서의 발걸음
콘디가 진로를 변경해 국제무대 위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모두 “소녀 하나가 끼어들어 성가시게 됐군” 이라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콘디의 연설을 들은 후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곧바로 깨달았고 그녀의 재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냉철한 철학과 따뜻한 시각으로 그 누구보다 식견이 뚜렷했던 콘디. 그녀의 자질은 곧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결국 백악관에 입성해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게 된다. 그런 그녀가 2002년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의 제안으로 협연을 펼쳤을 때는 당당함 대신 수줍고 부드러운 자세를 취해 음악 앞에서 겸손함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평을 받았다. 콘디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워싱톤의 드레스 코드와 워킹 코드를 표면 그대로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했기에, 언제든 자유자재로 상황에 맞는 교양을 발휘하며 그에 어울리는 워킹법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면 무엇보다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상대방의 걸음 속도와 맞춰서 걷는 게 예의고, 악수를 할 때 목을 세우는 것보다는 부드럽게 약간 숙이는 것이 기본이라는 사실을 미리 공부해뒀다고 한다. 미국 내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아버지이자 콘디의 정치학 스승이었던 조세프 코벨 교수는 콘디에게 늘 ‘목을 곧추세우고 상대방을 응시하라’고 가르쳤지만 콘디는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할 줄 아는 유동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배운 것 이상의 것을 실천할 줄 아는 지혜로운 여자 콘돌리자 라이스. 그녀의 발걸음이야 말로 이 시대 진정한 리더의 워킹이 아닐까.
설은영 객원기자 skrn77@joins.com 참고문헌 : <콘돌리자 라이스> 안토니아 펠릭스, <콘디의 글로벌 리더십> 김종현,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 강인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