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가 세계 최강 미국을 무너뜨리고 「야구
100년史」를 새로 썼다. 지난 3월14일 미국 캘리포니아州 애너하임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2라운드 1조 리그 2차전에서 한국은 131년 역사를 자랑하는 야구 종주국 미국을 7대 3으로 대파했다. 앞서 A조 아시아 예선에서는 일본에
극적인 3대 2 역전승을 거뒀다.
金寅植(김인식·59) 감독은
축구의 히딩크 감독에 비견될 만큼 영웅이 됐고, 미국의 벅 마르티네스 감독과 일본의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은 리더십 부족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 언론과 팬들은 金寅植 감독에 대해 「德將(덕장)」·「智將(지장)」·「福將(복장)」, 「믿음의 야구」 등 화려한
수식어로 극찬을 하며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집중 조명했다.
그에 비해 일본 언론은 『이 굴욕을 잊을 수 없다』, 『일본 야구
멸망 기념일』 등의 극단적인 표현으로 충격을 전했다. 미국 언론 역시 『한국이 인상적인 투구와 시의적절한 타격으로 미국을 이겼다』, 『한국이
잘해서 미국이 졌다』며 패배를 시인했다.
경기 전 「일본의 우상」 이치로(시애틀) 선수는 『30년 동안 한국이 일본을 이긴다는
생각을 못 하도록 하겠다』고 했었고, 미국 대표팀 역시 한국을 「잘해야 트리플A 수준」이라고 폄하했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 일본을 차례로
꺾어 한국 야구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이같은 결과는 金寅植 감독의 「믿음의 리더십」이 바탕이 됐다. 그는 코치와 선수를 절대
신뢰한다. 그에게는 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 그의 선수에 대한 믿음은 일본戰에서도
분명했다. 선발투수에 대한 믿음은 미국戰에서도 분명했다. 4회 2사 1·2루에서 김태균(한화) 대신 전날까지만 해도 극심한 타격부진에 허덕이던
최희섭(LA다저스)를 대타로 내보냈다. 결과는 극적인 3점 아치. 최희섭은 金寅植 감독에게 보은이라도 하듯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를 맡기기에는 불안하다던 박찬호를 9회 소방수로 기용하는 신뢰를 보였다.
그의
「신뢰 야구」는 프로 첫 지휘봉을 잡았던 시절에도 두드러졌다. 1991년 리그에 참여한 신생팀 「쌍방울」을 이끌던 金寅植 감독은 신인타자
김기태를 줄곧 4번 타자에 중용했다. 그러나 김기태는 프로의 높은 벽에 막혀 4월 한 달간 타율이 겨우 1할에 턱걸이했다. 성적이 곧 감독의
수명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金감독은 5월에도 김기태를 중심타자로 내세웠다. 결국 김기태는 그해 27개의 아치를 그려 왼손타자 최다 홈런을
기록하며 스타의 길을 걷게 됐다.
「믿음의 야구」를 구사하는 金감독이 맡은 팀은 戰力 이상의 성적을 내곤 했다. 그가 감독을 맡던
시절, 우승 戰力이 아니라던 「두산」은 두 차례나 우승했다. 국가대표를 처음 맡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6連勝(연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번 WBC 아시아 예선에서도 3連勝을 내달렸다.
金감독의 「믿음의 리더십」은 못다한 선수생활과도 연관이 있다.
1947년 서울 출생인 그는 해병대와 한일은행 시절 국가대표 투수로 활약했지만, 25세이던 1972년 어깨부상으로 은퇴한 비운의 선수였다.
그는 은퇴 후 배문高·상문高·동국大 감독을 거쳐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코치, 「쌍방울 레이더스」·「두산 베어스」 감독을
역임한 뒤 현재는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있다.
2004년 가을 한화 감독 취임과 함께 뇌졸중이 왔지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인간관계의 승리였다. 그가 선수들을 신뢰했던 것처럼 구단 관계자와 언론도 섣부른 판단을 삼가고 그를 신뢰했던 것이다. 그 믿음대로 金감독은
그라운드에 복귀해 지난해 한화를 4位로 끌어올리고, 이번에는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승전고를 울렸다.
그는 눈빛으로 말한다. 프로야구단
감독인 그의 방에는 항상 손님이 많다. 기자들은 물론 知人들도 가끔 찾는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피곤해도 일일이 친절하게 맞는다.
그를 돋보이게 하는 또 하나의 장점은 傾聽(경청)의 기술이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친다는 「원·투·스리
화법」의 모범을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