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곡 폭포에 가면서
사실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여행이었습니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었던지라 멀리 가는 산행은 버스를 빌려가고 싶었습니다. 좋은 산 보러가는데 그깟 고생이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요일 너무 피곤하면 한주일 내내 고생합니다. 특히 아내가 몸이 약해 저번에도 무리한 산행 후 일주일 내내 끙끙 앓았습니다. 우리는 매주일 산행을 하는데 건강을 위해서라면 자기 능력에 맞게 산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검봉산, 봉화산 코스로 올라왔을 때에는 수사사 산행은 포기하고 가까운 곳으로 갈려고 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이 더운 날 맞지 않는 산행이었습니다. 코스가 단축되었습니다. 봉화산은 빠지고 검봉산과 구곡폭포로 바뀌었습니다. 아내가 가고 싶다고 합니다. 코스가 줄긴 했어도 대중교통으로는 무리니까 버스를 빌리면 가자고 하였습니다.
7월 8일 화요일 운영회의가 있었습니다. 말들이 많았습니다. 회장님도 화가 나셨고, 운영진이 들썩이다 결국 그냥저냥 넘어갔습니다. 저의 생각은 보다 많은 수사사의 회원들이 함께 할 수 있고 등산도 겸해 운동도 하면서 재미있고 즐거운 산행 코스를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다른 회원들은 좋은 산을 많이 가는 쪽으로 생각하는 회원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9일까지 25명이 신청하면 버스로 가고 그렇지 않으면 대중교통으로 간다고 이야기 되었습니다.
아내가 9일 새벽 산에 간다고 신청서를 올렸습니다. 저녁이 되도록 채 10명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산에 간다고 공지가 나왔고,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는 것은 무리라고 신청을 내리라고 하여 아내가 내렸습니다. 아내는 그래도 가고 싶다고 졸랐고 좀 지켜보자며 랜트라도 할 수 있으면 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목요일 아내가 가고 싶다고 살며시 꼬리글을 다시 올렸고, 저는 모른 척 했습니다.
12일 토요일 분당에서 아버지학교가 밤 10시 30분에 끝났습니다. 비가 내리고 예보는 내일까지 계속된다고 하였습니다. 비가 오면 못 간다 생각하고 새벽 1시까지 성당 위 흑산도 홍어집에서 안양지역 봉사자 3명이 막걸리에 홍어 삼합을 실컷 먹으며 흠뻑 취했습니다. 일요일 새벽 5시 30분 아내가 새벽 6시 미사를 보자고 깨웁니다. 외할아버지 기일 미사라 미사 신청이 되어있어서 피곤해도 미사는 드려야 했습니다. 밖을 보니 당연히 계속 와야 할 비가 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으로 일기예보를 보니 어느새 예보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 우리나라 기상청 해도 너무한다. 차라리 내가 점을 보아서 예보를 하는 것이 더 잘 맞겠다) 미사를 마치고 7시 아내에게 최종적으로 검봉산에 가고 싶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가자! 하고 김밥에 부침을 준비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전날 아내가 물과 맥주를 얼려놓고 과일도 준비하였다고 했습니다. 집에 와서 아이들 아침 주고 준비해서 나오니 7시 39분, 모임장소에 도착하니 7시 45분, 회장님 부회장님 두 분을 비롯하여 11분이 미리 나와 계셨습니다. 반갑게 악수하고 강촌행 표를 끊고 버스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총무님이 안보여 어찌된 것이냐 물었더니 축구하다 다리를 다쳤다나 뭐라나...... 우쉬! 수박 하나 날라갔네. 총무님 이름으로 수박을 살테니 돈을 달라고 전화하라고 하기에 수박 문제보다 그걸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 더 마음에 걸려 전화는 하지 않았습니다.
8시. 5분 늦게 버스가 도착하였고 다행히 자리가 많이 남아 모두 편히 앉아 갈 수 있었습니다. 잠도 못자고 많이 피곤했던 터다 자다 졸다보니 버스 기사가 쉬어간다면 마이크로 떠드는 바람에 깨었습니다. 내려서 보니 새터 휴게소 어라! 벌써 다 왔네. 백두산님이 우동을 시키고(4000원 우동이 정말 형편 없었음. 음식에서 쉰내가 나서 결국은 한 젓가락 먹고 못먹었음. 쇠고기 때문에 다들 난리인데 우동까지 이러면 안 되지)나는 1000원짜리 컵라면을 1300원 주고 사서 아내와 급하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우리가 버스에 오르자 버스는 출발하여 청평, 가평을 지나 강촌역에 내렸습니다. 다리를 건너니 도깨비 부대장과 복주머니 부부가 미리 기다리고 있어 오늘 산행을 15명이 하게 되었습니다. 유원지 마을을 지나니 온통 자전거, 오토바이, 사륜 오토바이 빌려주는 곳이 많았습니다. 아내가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하여 약국을 찾았으니 못 찾고 회장님에게 아스피린을 얻어서 먹였습니다. 10시가 조금 지나 드디어 마을 중간에서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미리 알아본 정보로는 8Km - 4시간 코스이건만 대장님은 3시간~ 이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다 알고 왔다니까요. 5시간은 걸리겠구먼)
산행이 시작되고 오르막이 계속되었습니다. 산 입구에는 산딸기들이 많아서 열심히 따 먹으면서 올랐습니다. 길 가에 산딸기가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등산객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오르는 동안 다른 팀은 2팀 정도 만났습니다. 산마루 부회장님이 어제 먹은 음식에 탈이 났는지 영 힘이 없어 하십니다. 대장님이 주신 정로환을 먹고 간신히 간신히 버티며 힘겹게 오르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오르는 길 내려다보이는 S자 북한강 줄기와, 마주보이는 삼악산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지만 30도 폭염에 등산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안경 사이로 흘러 눈으로 들어가 연신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상의는 이미 땀에 꼴딱 젖어, 쥐어짜면 땀이 한 주전자는 나올 것 같습니다. 10분 등산에 20분 휴식을 외치며 오르고 올라 마침내 강선봉(414m, 등산로 참조)에 올랐습니다. 일단 봉오리를 하나 접수하고 나니 상쾌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침 파랑새 감사님이 맛있는 김치와 시골 두부를 걸쭉한 곡차를 내 놓아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강선봉을 뒤로 하고 검봉산 정상으로 향하는 중간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나나님 옆에 앉는 것이 가장 실속이 있을 것 같아 자연스럽게(?) 나나님 옆에 앉았습니다. 윽, 이외로 나나님은 저의 기대를 완전히 무시하고 음식 준비를 전혀 안하시고 제과점에서 사라다빵을 사가지고 오셨습니다.(나나님 미워. 산마루 부회장님이 다음에는 저를 위하여 꼭 맛있는 것 싸가지고 오시겠다고 하였고, 나나님은 OK하셨습니다. 나나님! 다음 산행 기대할께요.) 그나저나 산마루 부회장님은 아직 속지 좋지 않다면 음료만 조금 마실 뿐 식사를 못하셨습니다.
너무나 힘든 산행을 하고 있는데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내려가면 닭갈비에 막국수를 먹을 거라 했더니 막국수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참아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나님은 저를 실망시켰지만 산에서 먹는 식사는 여전히 즐겁습니다. 특히 아내가 준비한 호박 영양밥과 계란말이와 더덕무침이 기억에 남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오르막 내리막을 거듭하며 검봉산 봉오리를 향하여 전진합니다. 길은 험하지는 않았지만 날씨가 변덕입니다. 조금 흐려지는 듯 하다가 바람이 불더니 비가 조금 뿌립니다. 더운 것보다는 비가 조금 내리는 것도 좋겠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다시 구름이 걷히고 해가 쨍쨍해집니다. 1시 50분 드디어 검봉산 정상에 섰습니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조금 내려 헬기장에서 준비해온 카스 맥주 캔에 담아온 정상 커피(?)를 나누어 마십니다. 나누어 마시다 보니 조금 부족한 것 같아 초우님이 소주병에 가지고 오신 맑은 투명 커피도 좀 나누어 마셨습니다.
검봉산 정상을 내려서자 조금은 지루한 산행길이 열려있습니다. 나름 꼿꼿한 잣나무와 꼬불꼬불한 소나무, 만지지마세요 라고 써 있는 듯한 옻나무, 흰색 분을 바른 듯한 자작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하지만 더운 날씨에 많이 지치고 힘이 들었습니다. 한참 산행을 하다 보니 문배마을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고 드디어 구곡폭포 푯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미 준비해온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삼거리에서 물 하나를 살까 하다가 거의 다 온 것 같아 그냥 참기로 했습니다. 조금 내려오니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나뭇잎 사이로 폭포가 간신히 보여 나나님과 함께 구경하고 발걸음을 빨리하였습니다.
등산화에 돌이 들어가 등산화를 정리하는 동안 일행이 먼저 가고 폭포 입구에서 몇 명 기다리고 있습니다. 산마루 부회장님이 이번에는 돌에 미끄러져 바위에 무릎이 부딪쳤다 봅니다. 오늘 부회장님 힘들게 하루가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물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폭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관광객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우와! 이렇게 제대로 된 폭포는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일본이 있을 때 닛꼬(日光)) 관광을 하면서 100M 짜리 폭포를 본적이 있는데 폭포 밑으로 지나가거나, 그냥 멀리서 볼 수 있었는데, 50M 짜리 폭포지만 바로 아래에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보니 달려들고 싶었습니다. 초우님이 개울을 통해 앞으로 전진하였습니다. 저도 초우님을 따라서 개울 쪽으로 접근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폭포 아래로 접근하였습니다. 폭포 바로 아래에서 폭포를 올려다보니 정말 너무나 시원하였습니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물의 양도 많았고, 폭포 물이 떨어지면서 일으키는 바람과 흩뿌리는 물방울들이 온 몸을 적시며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적셔주었습니다. 온갖 스트레스와 여기까지 온 피곤이 한 순간에 날라 갔습니다. 폭포를 향해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두 팔을 벌려 폭포에 맞서 보았습니다. 빨려 들어갈 듯 폭포는 웅장한 물줄기와 큰 소리를 내며 한없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황홀경에 빠져 한참을 폭포와 대화하고 소통하였습니다.
아내가 저를 보고 이리로 건너오려 합니다. 걱정이 되었지만 그리 위험하지는 않아서 나가서 디딜 바위를 알려주고 손을 잡아 폭포 아래로 건너왔습니다. 사진을 보니 마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폭포 아래로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저는 보지 못하였으므로 고의는 아니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제가 폭포 아래에 있자 금지 밧줄로 막혀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밧줄을 넘어 폭포 아래로 넘어와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내와 저는 밧줄을 넘어 등산길로 나와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조금 내려오니 우리 회원들이 개울에서 신발을 벗고 족욕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빗물이어서인지 물이 그리 깨끗하지는 않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이내 족욕을 같이 하기로 하고 신발을 벗었습니다. 폭포 아래 물줄기라 물이 제법 세고 급했습니다. 발을 담그고 있으니 아내가 물장난을 칩니다. 초우님과 같이 물장난을 하며 즐겁게 보내고 마지막 남은 자두를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족욕을 마치고 매표소 앞으로 나오니 4시가 조금 못되었습니다. 시간표를 보니 시내버스가 막 지나갔습니다. 다음 버스는 1시간을 기다려야 옵니다. 회장님과 대장님에게 지난번 삼악산 산행 후 뒷풀이 하였던 의암 닭갈비집에 전화하면 미니버스가 올 수 있다고 하자 전화하라고 하여 조금 기다리니 버스가 왔습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매표소 주차장에서 강촌역까지는 한참입니다. 12인승에 우리 15명과 기사 아저씨 이렇게 16명이 우겨타고 등선폭포와 삼악산장 등산로 사이에 있는 닭갈비집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경치가 좋은 이 집은 지난번에는 커다란 장미가 일품이었습니다. 야외에 자리를 잡고 닭갈비와 쟁반 막국수에 소주, 맥주, 강원도 특선 동동주를 실컷 먹고 마셨습니다. 강촌에서 버스를 타면 혹시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 아저씨에게 부탁을 하여 춘천 터미널로 이동하였습니다. 뒷풀이 거출하고 남은 돈으로 아이스크림도 먹고 표를 끊으니 36인승 인천 가는 버스가 왔습니다. 36인승은 정말 넓고 좋습니다. 강촌까지는 자리가 있었는데 가평에서 자리가 꽉 찼습니다. 젊은 아이 두 명이 우리 옆에 서 있는 것이 안스러웠는지 아내가 등산 의자를 풀어 내주었습니다. 연신 고맙다고 하며 휴게소에서 뻥 과자를 주길래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버스가 많이 막히는 바람에 10시가 다되어 안양에 도착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지만 구곡폭포가 압권으로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런 좋은 곳은 보다 많은 우리 수사사 회원과 함께 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중교통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더 많이 들고, 불편하고, 오고 갈 때 떠들거나 술도 한잔 더 못하고 얌전히 졸면서 와야 합니다. 우리는 매주 산행을 합니다. 이런 좋은 곳일수록 많은 회원이 참석할 수 있도록 정식 외부산행으로 날자와 시간을 배려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