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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도 2016 병신년 9월 월례치성 도훈
“증산신앙의 정수”
양력 9월 25일 (음력 8월 25일)
종장님 :
오늘 2016년 9월 25일 월례치성을 맞이해서 태을도인들이 이렇게 모여주어 반갑고 고맙습니다. 특히 태을도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홍보방법으로 녹취와 유튜브를 제시한 충경도인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상제님 신앙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어떻게 진리를 생활화할 것인지, 진리를 어떻게 세상사람들에게 이해 받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각자가 자기가 살아온 생활환경, 가치관에 따라서 상제님 고수부님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 다르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밖에 없고 세상 사람들에게 상제님 고수부님을 설명할 수 밖에 없는데, 그동안 여러 증산종단에서 펼쳐낸 가정생활 방법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신앙을 알리는 방법을 종합해서, 이제는 태을도인들이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모범을 보여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드린 대로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증산신앙관을 5분정도 말씀해주세요. 먼저 충일도인.
충일도인 :
나의 증산신앙관은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저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나의 증산신앙관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내 마음의 태을을 깨달아가는 여행이라 생각합니다. 나 자신의 마음을 찾고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시천을 통해 천심을 회복하여 태을을 깨치는 여정이며 신앙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깨닫고 아는 만큼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주고 한 사람이라도 더 진리의 대자유인으로 재생신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이 쉽지 않아서, 가기도 힘들고 깨달음을 얻기도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깨달아 그 길을 가신 천지부모님이 계시고 그 마음을 전해주시는 태을도 대종장님이 계시니, 한발 한발 모방하고 따라가다 보면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찾지 못하면, 내가 중심이 되지 못하면, 언제든지 신명에 끌려가고 개벽과 도통병에서 헤어나오질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상제님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상제님의 종이고 로봇이며 내 자신은 없는 빈껍데기일 것입니다. 내가 진리를 깨달아가고 내가 진리의 중심에 서서 상제님과 같은 마음과 뜻을 가진 태을을 깨친 태을도인이 될 때 진정한 이심전심이며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실천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모든 것이 자기 마음과 행동에 따라 자기가 책임지고 자기가 지은 만큼 복도 받고 죄도 받는 것입니다.
나를 찾아 태을을 찾아 진리를 깨우치면, 생명의 소중함도 가을의 개벽도 도통도 모두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마음과 뜻을 알게 되고 천지부모님의 자식이며 형제자매들인 세상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 후천이라는 선경세상으로 같이 가려고 할 것입니다. 현실과 현상 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근본을 보고 그 속에 숨은 진리를 깨우쳐가는 생활이 신앙이라 생각하며, 깨닫는 만큼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와 세상 속에서 행동으로 옮겨 모범이 되는 것이 태을도를 하는 저의 증산신앙관입니다. 이상입니다.
종장님:
충일도인님께서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짚어주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충일도인님은 아까 서두에서 말씀해주신 대로, 상제님 고수부님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서 가족관계에서 참 잘 실천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충희도인 말씀해주세요.
충희도인 :
제가 초등학교 시절 대순○○회를 통해서 접한 강증산 상제님에 대한 기록을 읽었을 때,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다만 상제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시고, 번개를 치게 하시고, 하늘에 구름의 형상이 펼치시는 그런 권능이 참 신비로웠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도통을 받으면 이런 것을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대순○○회에서 상제님을 신앙할 때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는 그런 것이 신비로웠고 상제님에 대한 인식은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증○도에서 강증산 상제님과 고판례 수부님을 신앙할 때입니다만, 증○도는 개벽 담론을 아주 거창하게 우주론과 신관 인간관 등 여러 진리 주제를 체계적으로 묶어서 정리해주고, 강증산 상제님을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재자 즉 옥황상제로 인식하도록 인도하며, 여자하나님의 존재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어요. 그런데 돌이켜 반성해보니까, 즉 도통과 개벽에 매달려서 신앙을 했을 때, 상제님과 수부님께서 안내하시는 바로 그 길로 갈 수 있는가? 에 대하여 반성해보니까, 그 길이 그럴 듯 했지만 그 길이 아닌 거예요. 심각한 신앙 후유증을 남기더라고요.
저는 이제 증산신앙의 바른 길은 결국 일상생활에서 성인의 길을 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루 세끼 밥 먹고, 직장에 나가서 동료들과 일하고, 가정생활을 하고, 자식을 키우고, 부모님을 모시고, 이웃들과 어울려서, 여러 가지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성인의 길을 가는 것이, 의통을 획득하고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이제야 느끼고 있습니다. 성인의 길을 가려고 하면, 결국 내 마음을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성인의 길을 가는 것은 결국 내가 스스로 길을 찾아서 판단하고 결정해서 성인의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 상제님과 수부님의 성언행적의 기록을 참고하고 대종장님과 종부님, 그리고 태을도인님들의 말씀과 행동을 참고해서 그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길은 좋은 길이고, 쉬울 것 같지만 그렇게 실천하려고 해보면 결코 쉽지만도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기를 키운다든지, 직장동료와 일을 할 때라든지 여러 가지 갈등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원만하게 수습하고 따뜻한 기운이 돌도록 해결하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하려면 내 마음이 깊고 넓어야 되고,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해야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성인의 길을 가는 것이더라고요. 어렵지만 그 길을 스스로 가서 성인의 말씀과 행실을 지속하고 영원히 성인의 길을 걸어갔을 때, 결국 상제님과 수부님께서 바라시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 증산신앙이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성인의 길을 가는 중에 상극의 힘이 끼어들고 그동안 쌓은 척과 살이 끼어들어서 방해를 하더라도, 그것을 상제님과 수부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것을 본받아 실천해서 끝까지 그 길을 가서 결국에는 성인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결국 태을도인의 길을 가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내가 다른 무엇을 하지 않아도 주위사람들이 인정해주거든요. 그것이 바로 증산신앙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장님 :
좋은 말씀 해주셨습니다. 성인(聖人)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사람이 성인(聖人)이거든요. 일반사람들은 부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생활을 하다보니까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척과 살을 쌓고, 그리고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까 싸움이 나기도 하는데, 부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으로, 일상 속에서 모범적으로 편안함을 유지시켜주는 사람, 증산신앙인들이 그런 쪽으로 가야 상생(相生) 세상이 열리지 않겠어요? 진리의 일상생활화를 통해서 안심안신이 되는 거지요. 충덕도인.
충덕도인 :
이 시점에서 제가 증산신앙을 하는 이유가 뭐냐, 신앙관을 정리해 보려고 하니까 새삼스러운 면이 있지만 그래도 한번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5분 도훈 주제로 선정되어 정리해보았습니다. 보통 신앙관이라고 하면 신앙을 보는 관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앙하는 이유, 목적이라든가 어떤 자세로 신앙을 할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죠. 증산신앙관은 증산신앙, 증산상제님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견해거든요. 또 무엇 때문에 증산상제님을 신앙하는가의 문제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결국은 증산상제님과 나를 어떤 관계로 규정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볼 수 있어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증산상제님은 저에게 있어서 진리의 대선생님이시고, 우리 생명을 탄생시켜서 길러주는 천지부모님이시고, 우주가 올바르게 돌아갈 수 있도록 주재하시는 옥황상제님이 되시는 거죠.
항목별로 살펴보면, 제가 증산신앙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증산신앙을 시작하기 전에는 현실 자체가 우리가 배운 대로, 내 양심대로 돌아가지 않는 거예요. 서로 상충하는 거예요, 현실하고 제가 보는 관점하고. 그러나 증산신앙 단체를 통해서 그 이유에 대한 명쾌한 해답과 설명을 들었고, 증산상제님의 가르침이 그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어요. 그래서 신앙하게 되었고, 또 증산상제님의 가르침대로 하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개인적으로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고, 또한 내 생명을 영원히 유지시킬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을 보게 된 거죠.
그리고 제가 증산신앙을 하는 목적은, 사회적으로 보면 다같이 잘 사는 상생세상, 대동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그 상생세상 속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제가 증산신앙을 하는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저의 신앙목표를 보면, 선천의 유불선 서도에서도 그런 주장을 했지만 우리의 본래 마음을 회복해서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깨달아서 그 진리에 입각해서 도와 덕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신앙목표라 볼 수 있죠. 증산신앙에서 제일 유의할 점은,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든 간에 척과 원한이 안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척과 원한이 없는 언행을 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또한 저의 증산신앙의 목표라 할 수 있고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자신에 내재되어 있는 천주성, 태을성을 회복해서 참인간이 되는 것이고, 천주성과 태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천주 봉태을을 실천해야 하고, 시천주 봉태을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마음 닦고 태을주 수행하는 것이죠. 시천주를 잘 시행하면 즉 천주님을 잘 모시면 내 마음에 있는 독기, 살기가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내 자신이 봉태을로 인도되고, 여기에 태을주 수행을 하게 되면 결국 내 자신에 내재되어 있던 생명의 근원인 나의 태을성이 회복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제 자신의 태을성과 시천성을 회복하는 것이 저의 신앙목표가 될 수 있고요.
일상생활에서의 실천항목은 마음 닦고 태을주 수행하는 것인데, 아까 말씀드렸지만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남에게 척과 원한이 맺히지 않도록, 제 자신이 척과 원한의 말과 행동이 나오지 않도록 내 마음을 잘 조절하는 것 입니다. 마음에 집중해서 저의 마음이 올바른지 덕을 실행했는지를 관찰하여 반성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았는지 이런 걸 항상 살핍니다. 결국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깊고 넓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얼마나 사랑과 용서를 실천했는지, 얼마나 남을 포용했는지 그런 것으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태을주 수행은 태을주 주송을 통하여 태을의 영기를 받아들여서 내 생명력을 굳건히 하고 태을신성을 회복해서 상생인간으로 재생신되는 것입니다. 어떤 판단을 하거나 어떤 계획을 세울 때는 정보가 필요한데, 태을신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우주가 가지고 있는, 우주가 축적해 놓은 모든 이치적인 정보를 아는 것이고, 그것을 천주의 품성대로 어질게 내어쓰면 결국은 상제님과 같은 천주성과 태을성을 회복한 인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그런 쪽으로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종장님 :
충덕도인께서 ‘생명’이란 화두를 가지고 이렇게 진리를 찾아 헤매시다가 상제님을 만났고, 또 상제님을 만나서 태을을 찾았다, 그래서 ‘생명의 실체, 진실이 태을이다’ 말씀하시는데, 사실 증산신앙의 정수는 태을이거든요. 상제님을 만나서 껍질을 깨야 하는데, 오히려 상제님을 통해서 껍질을 만들어나가니까 더 폐쇄적이 되는 거예요. 상제님 진리 자체가 무극진리인데, 오히려 상제님을 내세워서 유극화(有極化)시키니까 세상 사람들하고 소통도 안 되고 분란이 더 커지고. 더 선한 마음을 드러내야 하는데, 오히려 상제님을 통해서 자기의 탐음진치를 확보하려고 하니까 악에 더 가까워지는 거예요.
상제님을 만나서 신앙을 제대로 하면 한없이 자유스러워지고 편안해지고 안심안신(安心安身)하고 중심이 낮아지는데, 잘못하게 되면 오히려 더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중심이 낮아지는 게 아니라 높아지고, 그래서 결국은 상제님을 욕되게 하고 가족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욕되게 하다 보니까, 결국은 상제님을 안 만나는 것만 못한 상황으로 가게 돼요. 이런 부분은 우리가 반성해야 됩니다. 그래서 상제님을 보는 시각, 고수부님을 보는 시각, 이게 참 중요한 거예요. 다음은 충정도인.
충정도인 :
인생관과 진리관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용어로도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천지간에 태어나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상제님께서도 하늘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치가 곧 하늘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만, 결국 어떤 법칙, 즉 이치와 지기, 물질적 기운이 만나서 생명이 되지 않습니까? 생명이라는 것은 원래 존재했던 이치대로 돌아가는 것이거든요. 생명이라는 것도 원래의 하늘의 이치대로 돌아가며 먹고 마시고 자고 행동을 하면서 천리가 구현되는 것이 생명의 마음이라는 거죠.
주어진 대로 천리를 활용해서 살아가는 것이 생명인데, 사람이라는 것이 우주의 열매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지만, 이 지구에 온통 공룡들만 버글버글 하다면, 공룡이라는 생명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먹고 자고 번식하고 먹고 자고 번식하고 하는 것에 그치지 않겠어요? 하지만 사람이라는 생명에 이르러서는, 그것은 결국 말과 글의 힘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런 탁자도 만들고 노래도 만들고 춤도 만들고 하면서 예술도 문학도 하면서 우리가 받아나온 천리를 활용해서 마음을 써서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거죠. 이런 것 자체가 창조이고 기적인 것이죠. 천리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마음껏 가능한 발현을 하게 되는 것이죠. 어쩌면 이것이 생명의 목적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비유를 하자면, 법칙인 천리와 물질적인 기운인 지기가 만나서 생명이 되는 것인데, 컴퓨터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라는 것은 결국 개념이고 규칙이고 명령으로, 법칙인 천리에 해당이 되고, 하드웨어라는 것은 지기에 대응이 되겠습니다.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잠재력이 무한해도 하드웨어가 못 받쳐주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마찬가지로 공룡에 비해서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상당히 진화가 되어서 천리를 마음껏 발현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지요.
컴퓨터도 보면 운영체제라는 것이 있고 그 위에서 어플리케이션이라는 프로그램들, 아래아한글이나 게임 같은 프로그램들을 만들게 됩니다. 컴퓨터라는 하드웨어에서 운영체제라는 바탕 소프트웨어 위에서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들이 여러 개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어플리케이션이 운영체제의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고 만들어 컴퓨터의 리소스를 점령하게 되면, 컴퓨터가 버벅대거나 다운되거나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거든요.
결국은 우리가 막강한 하드웨어를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서 천리를 담은 내 마음을 써서 하고 싶은 것들을 뭐든지 할 수가 있지만, 천리에 어긋나게 마음을 쓰게 되면 결국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술도 먹고 재미있게 놀고 하는 것은 할 수 있고 자연스러운 것이 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진멸지경에 처하게 된 것은 천리에 벗어나게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이 거든요. 한 마디로 천리를 따르지 않고 있다는 거죠. 상제님의 말씀은 결국 그 천심을 회복하라는 것이거든요. 천심을 회복해서 천리에 맞게만 마음을 쓰면 된다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천심을 잊어버리고 내 위주로 내가 다 가지려고 지배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거든요.
상제님께서 가르쳐주신 신앙의 방향이라는 것도 천심을 회복해서 천심대로 살아가라는 것이거든요. 그 천심은 어떻게 회복하냐 하면 그 방법은 마음을 닦고 태을주를 읽어서 원마음 자리를 찾아가라는 것이거든요. 그 마음에서 나오는 행실을 하면 되는 것이거든요. 마음을 잘 닦고 천심을 회복해서 천리에 따르는 순천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종장님 :
다음은 충원도인.
충원도인 :
천지가 돌아가는 이치를 밝혀주신 증산 상제님 진리를 믿고 도문에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태을도를 만나서, 증산상제님께서 평화를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원수를 용서하라는 진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증산상제님처럼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지 가끔 생각합니다. 나에게 그러한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면 나의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도 자주 해보았습니다. 지금 말로는 원수를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막상 그 일이 나에게 닥쳐오면 진짜로 용서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원수를 용서한다는 것은 아무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 용서할 수 있어도 진정 속마음까지 용서할 자신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마음이 성인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카페 글에서도 안창호 선생님 얘기를 썼지만, (안창호 선생은)제 롤모델이기도 합니다.
안창호 선생이 젊은 청년시절에 미국에서 행한 일들이 한인교포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도 않으며 오직 선의로만 묵묵히 행한 그의 행동이 한인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안창호 한 사람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그 글을 읽고서, 안창호 선생을 저의 인생의 롤모델로 잡았지요. 지금도 그러하고요. 저는 그 행위를 그대로 따라 하기 어렵지만, 최대한 배우려고 합니다.
종장님 :
다음은 충양도인. 목소리를 좀 크게 해서 말씀해주세요.
충양도인 :
내용이 신통치가 않으니까 (목소리가) 작아지네요.(일동 웃음) 내용이 좀 실속이 있어야 목소리를 크게 하는데, 워낙에 준비를 안해가지고. 그냥 간단하게 말씀드리려고요, 별로 아는 것이 없어가지고.
종장님 :
그 얘기가 더 감동적이에요.(웃음) 항상 그러시더라고.
충양도인 :
먼저 증산신앙관에 대해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고 내 마음을 찾는 거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내 마음의 눈을 떠가지고 대자유, 대광명의 길을 가는 거라고 봅니다. 내 정신이 맑아야 천지부모님의 참모습을 볼 수가 있고 내 마음이 밝아야 천지부모님의 참뜻을 알 수 있습니다.
저의 인생관 진리관은,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참된 신앙을 하기 위해서 좀더 성숙된 신앙, 성숙된 언행을 통해 겸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공근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신을 다해 마음속 태을을 일깨워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자세는, ‘열풍뇌우불미’하는 마음가짐으로 몸과 마음과 정신을 단련해서 보은 등 태을도인으로서의 의무인 4대 신앙수칙, 이것을 지키고 실천해야 되겠고요. 증산신앙인들의 최종목적이 개벽과 도통인데, 항상 하는 얘기지만 마음 닦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고 분발해서 정말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일동 박수)
종장님 :
울산에서 고래고기를 많이 잡수셔서 그런지 말씀 하나 하나가 고래처럼 아주 큰 의미를 가진 것 같은데요. 그동안 내공을 쌓아서 오신 충경도인님, 한 말씀 하시죠.
충경도인 :
오늘은 제가 준비가 안돼서, 다음번에 하지요.
종장님 :
아, 그러면 다음에 더 좋은 말씀을 해주세요. 종부님.
종부님 :
우리가 증산 신앙을 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삶에서 만족을 하지 못하고 내가 가진 근본적인 의문을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서 일단 증산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 내가 이미 태어나있는데 태어나기 이전에 나는 어디에 있었고 또 내가 살다가 죽으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게 굉장히 궁금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증산상제님을 만나면서 신도 세계를 알게 되고는 그 부분이 이해가 되었고요.
또 제가 어릴 때 집이 가난하다보니까 불편한 부분도 많았고 또 부당한 대우도 많이 받았고, 또 제 주변에 억울한 사람이 많이 보였고, 그래서 제가 커서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픈 사람 없고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사람 없는, 모두가 다 행복한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었더랬고, 그래서 그런 세상을 만들자면 결국은 정신문화운동, 달가스나 그룬트비 같은 사람들이 벌였던 것처럼 문화운동을 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했었는데, 그 부분도 상제님을 만나보니까 다가오는 후천세상이 그런 세상이더라고요. 남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여기고 또 남의 자식을 내 자식처럼 여기고, 그렇게 화기가 무르녹는 세상이라는 걸 상제님이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또 제가 어릴 때부터 성경이야기를 읽으면서 예수님을 되게 좋아했는데, 정작 커서 교회에 가보니까 사랑의 예수님보다는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가 너무 커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어요. 저는 이 세상 전체를 관통하는, 제가 아직 모르는 섭리 속에 저도 살고 있어서 제 속에도 그 섭리가 존재할 것이고, 다른 존재들에도 내재해있을 섭리를 퍼즐 맞추듯이 계속 찾아나가다 보면 저도 소위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해질 수 있을 거라고 당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살아서 못 이룰 수도 있지만. 근데 그 부분도 상제님을 만나보니까 후천에 가면 도통해서 저희들이 소위 하느님처럼 용사(用事)하며 살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상제님 만나서는, 제가 어릴 때부터 품어왔던 의문들과 내가 꿈꾸어왔던 세상, 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게 보여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처음 만났던 곳에서 개벽과 도통을 얘기하는 데 거기에 대두목까지 있으니까 저의 자유의지가 발현될 수 있는 부분이 사실은 적더라고요. 그리고 또 해결되지 않는 뭔가가 있었어요, 신앙적으로. 그것이 이제 태을도에 와서 ‘태을’을 만나면서, 또 ‘종지기 신앙을 버리고 상제님의 진리의 어진 벗이 되라’고 하는 상제님의 말씀 속에서, 제게 남아있던 마지막 의문들도 다 풀렸습니다.
일단 제가 과거에 가졌던 의문, 꿈, 그런 것들은 태을도를 만나서 다 해결이 되었는데, 이제 남은 문제는 앞으로 제가 증산신앙을 붙들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태을도에서는 일상에서의 실천을 통해서 상제님이 말씀하신 후천세상을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제가 아직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태을도에 와서 근본인 ‘태을’을 붙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흔들림은 없겠지만, 태을이 갖고 있는 속성, 즉 생명성, 그리고 그 생명을 계속 살려나가기 위해서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서 가는 사랑, 그런 부분을 제가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얼마 전에 종장님이 도훈에서 ‘생명력 있는 명실상부한 태을도인이 되자’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명실상부하다는 면에서 제가 아직 태을을 덜 깨치지 않았나. 깨치면 그것이 행동으로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데, 아직은 제 머릿속에 머물러있으면서 이것이 아직 가슴으로 완전히 덜 내려온 것 같다는 생각. 그래서 더 공부해야 되고, 이치적으로. 내 마음도 더 부단히 닦아야 되고.
태을주 수행을 하면서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들 속에서 어쨌든 내가 모범 보여서, 후천이라는 것은 결국 도성덕립의 세상인데, 그 도와 덕을 누가 세우는가 하니 급살병이 돌고 그냥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급살병 이전에 우리가 일상에서부터 도와 덕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거죠. 그것이 성사재인이고, 그래서 지금이 인존시대라고 하는, 그 부분을 저를 포함한 우리 태을도인들이 실제로 살아내야 되고, 그 살아내는 모습으로 주변을 감화시켜서 이 사회를 개조해나가야 된다고 하는 책임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크게 느껴져서, 앞으로 이 부분을 제가 붙들고 계속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종장님 :
나의 증산신앙관은 무엇인가? 어떻게 보면 관념적으로 다가갔던 증산신앙의 모습이 현실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증산상제님을 이 사회 속에서 생명력을 갖게 하고, 증산상제님의 가르침이 유용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할 것인가? 이것은 결국 상제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달렸다고 봐요.
상제님께서 1909년 어천하신 이후 1911년 고수부님께서 증산종단을 결성하시고, 태을도(太乙道)의 씨를 뿌리셨는데, 고수부님께서 누차 말씀하셨다시피, “너희 아버지하고 내가 합성하여 심리한 일이니, 땅 짚고 헤엄치기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현실에서 상제님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실천하면 되는데, 그간 실천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현실에서 잘 살다가도, 상제님을 만나면 자꾸 현실을 떠나려고 해요. 상제님을 만나서 가정이 더 차원변화를 해야 하는데, 가정과 직장과 사회를 상제님 만나기 전보다 더 망가뜨린다니까. 강증산을 만나면 (인간)관계망이 망가지고 모든 것이 황폐화되니까, 상제님께서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이게 상제님을 보는 시각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신앙을 하니까, 상제님의 가르침이 왜곡되고 변형되고 타락하게 된 거죠. 고수부님께서 태을도를 씨 뿌리셨는데, 그 진수를 드러내 현실을 개혁해서, 모든 사람들이 ‘아, 강증산의 가르침을 만나게 되면 가정이 변화되고, 직장이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되고, 나라가 변화되는구나!’ 이런 것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태을도인에 의해 이제 시작하는 것입니다.
소위 급살병이 언제 올지 모른다고요. 개벽이 언제 터질 지도 모른다고요. 도통이 어떤 식으로 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고요. 중요한 건,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말씀을 잘 해석해보면 ‘일상생활에 충실하라’는 거거든요. 일상생활에 충실해서, 지금까지의 일상생활과는 다르게 영성을, 신성을, 높이라는 거예요. 동물의 성정을 바탕으로 사회생활을 했던 것을, 인간의 신성을 깨쳐서 너희들이 신이 되어서 이 사회를 바꾸라는 거거든요. 바꾸어 말하면, 언젠가는 급살병이 터지고 개벽이 오고 도통이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사업이라는 거예요.
상제님과 고수부님께서 그렇게 외쳤던 것은 인간사업을 하라는 거예요. 상극의 인간을 상생의 인간으로 바꾸는 인간사업을 하라는 거예요. 상극의 가정, 상극의 직장, 상극의 국가를 상생으로 바꾸어나가는 인간사업이에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출발이 ‘나’라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세상도 변화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선천세상에서는 전부 남 탓만 했어요. 부모가 어때서, 부인이 어때서, 자식이 어때서, 상사가 어때서, 사장이 어때서, 대통령이 어때서. 전부 남 탓하고, 의존하고, 기대고, 이렇게 살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버리고, 너 스스로 생명의 본질로 들어가서, 다시 태을로 돌아가서 다시 태어나라는 것입니다. 태을도인으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중심을 잡고 가정, 직장, 나라, 민족을 바꾸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통의 길이고, 개벽의 길이고, 급살병에 대비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증산신앙관은 나를 바꾸고, 가정을 바꾸고, 직장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나라와 민족을 바꾸는 것인데, 왜 상제님의 가르침을 가지고 이 세상을 선경세상으로 못 만들었는가? 바로 증산신앙관이 잘 못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제님과 수부님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1년을 신앙하든, 10년을 신앙하든, 30년을 신앙하든, 이 사회가 상제님과 고수부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안 되었던 거예요.
남 탓 하지 말고, 자기 마음에 집중해서 행실을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개벽세상도 열어나가고 후천세상도 열어가고, 급살병도 대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모두 돌아가면서 나의 증산신앙관을 말씀하셨는데, 나의 증산신앙관이 제대로 전해지려면, 내 가족, 내 이웃, 내 직장에서 주위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각을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바뀌어져 나가게 되어 있어요. 포교하지 말라고 해도 포교가 되게 되어있어요. 남편이 좋고, 부모가 좋고, 부인이 좋고, 직장동료가 좋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선전을 하게 되어있어요.
태을도인들께서 상제님과 고수부님과 이심전심이 되어서, 올바른 증산신앙관을 가지고 세상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서 세상사람들이 닮아가도록 노력을 해야겠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9월 월례치성 도훈을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디욱더 태을도인들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귀중한 말씀들 감사합니다. 녹취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태을도인들의 성숙한 신앙과 진지한 고민을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참석하신 다른 태을도인들도 다들 그렇게 느끼셨을 것입니다. 먼 길 오셔서 짧지 않은 시간 태을주 수꾸지 수련과 도훈을 같이 하고 또다시 서둘러 되밟아 가시느라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항상 우리의 정신을 깨우쳐 진리의 길을 올바로 가도록 해주시는 귀한 도훈 말씀에 감사드리고, 고된 업무로 연일 바쁜 데도 녹취작업을 정성껏 해주신 충희도인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올바른 증산신앙관은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사욕에 물들고 허황된 신앙관은 현실을 피폐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올바른 신앙관을 점검하고 공유하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