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et tv 성인가요 콘서트 하동편 이성우 - 진또배기
솟대
진또배기
진또배기의 진또는 ‘나루’란 뜻이기도 하고, 대나무를 뜻하는 ‘긴대’가 ‘진대’로 변하고, 다시 ‘진또’로 변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배기는 ‘박혀있다’,‘박이’란 뜻이다. 즉 ‘바다에 떠내려 온 솟대를 나루터에 박았다.“는 말과 ’하늘 높이 솟아있는 대‘라는 두 가지 뜻이 모두 진또배기의 어원이며, 간절한 소원을 기원하면 꼭 이루어진다고 전해오고 있고, 천지인의 삼원사상을 의미한다.
진또배기는 바로 솟대요 나루를 지켜주는 신대이다. 돌로 쌓건 나무로 세우건 솟대는 하늘나라로 통하는 신목이다. 그래서 솟대 위에 않은 새는 신조(神鳥)이다. 그러니 그 새가 오리이건, 학이건 원앙새이건 상관없다.
일본 신사의 대문을 ‘도리이’라고 하는데 실제 새는 없다. 그러면서 ”새가 있다“는 이름이 붙은 것은 원래 그 대문 위에 새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 신사의 대문은 한국에서 건너간 솟대이다.
신조의 심리적인 기원에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는 현세와 내세의 매개자로, 죽은 자의 영혼을 타계로 운반하는 중계자 또는 안내자로 여긴 결과 매장풍습이 나왔고, 여러 신화에는 수호자나 사자로 여겨 신성자의 출현을 알리는 영조 또는 영매의 역할을 다하였다.
또, 신조의 신앙적인 기원은 마을 어귀에 서서 액이나 살, 또는 잡귀의 침입을 막는 수호신적 존재이며, 풍수리지적인 비보물로서 지리적 형국에 따라 보허, 진압, 살막이, 화재박이 등의 기능을 하기도 하며 풍농과 풍어, 행운과 방재 등 축원의 대상이기도 하다.
강릉시 강문에는 한국의 솟대문화 중에서 가장 잘 보전되어있다.
강문 진또배기제는 매년 음력 4월15일 자정에 강문 여서낭당에서 강문어촌계의 주관으로 치르는 제례이다. 강문 어민들은 험한 바다에 나가서 파도와 싸워야 하는 처지라 특별히 신의 가호가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바다로 나갈 때에는 반드시 뱃머리에 서낭님을 모시고 떠났다. 그래야 삼재(물․불․바람의 재난)를 면하고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다. 아직도 이 강문 마을의 어민들은 서낭님의 각별한 가호가 필요하다.
김교헌은 『신단실기』에서 서낭당 제사의 유래는 단신제라 했다. 단신제를 지내던 터는 지금도 만주 땅 여러 곳에 남아 있는데 그 곳 사람들 전설에 따르면 태고 때 단신제를 지내던 터라고 한다. 대개 수풀 속에 단을 쌓았을 뿐 당집은 없어서 그 태고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단신제는 고구려와 발해, 요, 금을 거쳐 줄곧 그 전통을 이어온 것이다.
서낭제는 바로 단신제의 유풍이다.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단신제의 유풍이 서낭제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단군 민족의 고유문화인 것이다.
강문 진또배기에서 남서낭당 쪽을 바라보면, 동해안 특유의 소나무가 멋지게 늘어져 있다. 저 소나무 숲이야말로 성스러운 신림이요, 성림이다. 단군사화에 나오는 신단수인 것이다. 신라로 말하면 경주의 시림이요 계림인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환인의 아들 환웅이 신단수 아래 내려오시니 젊고 아리따운 웅녀가 단수에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웅녀의 소원을 들어 아기를 갖게 하니, 이가 곧 단군이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민족의 시조 이야기가 이 곳 강문 마을의 남녀 두 서낭당과 진또배기에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의 진또배기는 우리에게 이국적인 인상을 준다. 순수한 우리 것인데도 잊어버린 지 너무 오랜 옛 것이라 마치 그것이 남의 것인 양 느껴지고 있다. 진또배기는 역사적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것을 무시하고 버려 왔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불교나 유교와 같은 외래문화에 젖다 보니까 본래의 우리문화를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솟대를 민속박물관에만 세워 놓을 것이 아니라 국립박물관 현관에도 세워 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