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인님의 글 보니 이것저것 많은 게 떠오르고 스쳐지나가네요. 조금이나마 뭔가를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쓰요. 공감되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세요.^^ 언어 자체가 불충분하니까요.
언어란 불충분하다. 요즘 도라지꽃이 피는 데, 이 꽃을 온전하게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그 빛깔이며 모양이며 향기를..표현하려고 하면 할수록 도라지에서 멀어지는 역설이 생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기분 역시 말이나 글로써 풀어내자면 얼마나 언어가 불충분한가를 자주 느끼게 된다. 언어 자체가 추상화의 산물이기에 더 그런 지도 모르겠다.
사실 언어 이전에 몸짓이나 표정이라는 강력한 소통의 무기가 있음에도 오늘날에는 이들을 많이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현대사회는 많은 언어가 인간을 지배할 정도로 지나치게 복잡하게 바뀌고 있다. 듣고 싶지 않는 말도 들어야 하고,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끔 강요하는 지배와 폭력의 문화야말로 우리들을 우울과 방황의 늪에 빠뜨리는 주범일지도 모른다.
나이 50이 넘는 나 역시 도망치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일부러 밭두렁 풀을 벤다거나, 겨울에는 조금만 우울하면 산으로 가, 땔감을 업어오고 도끼질을 하며 자신 안에 쌓인 감정을 녹여내곤 한다.
그럼 나는 어떨 때, 왜 도망치고 싶은가. 기대치가 아닐까 싶다. 남이 내게 바라는 기대치나 나 자신이 자신에게 바라는 기대치에 이르지 못했을 때, 우울이나 방황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전자는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는 늪. 나 같은 경우는 되도록 무시한다. 이리저리 얽혀 살다보니 이게 쉽지만은 않다. 잠정적인 대안이라면 피하고 싶은 관계보다 만나고 싶은 관계를 더 자주 갖는다. 되도록 서로 성장하고 북돋우는 관계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 첫 고리는 가족이고, 좀더 여유가 생기면 더 친하게 사귀고 싶은 이웃들이다. 그러자면 되도록 자급자족하는 힘을 키워야한다. 먹을거리에서 자기교육, 문화, 예술, 철학 더 나아가 언어나 감정 자체까지도...
후자인 자신에 대한 기대치는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뿌리를 더듬어 가면 내가 받은 교육(학교 선생이나 어른들에 의해 길들여진 사상이나 처세술)의 껍데기가 아닐까. 내가 소중히 여기고 나답게 성장하고자 하는 삶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왜곡시키면서 생긴 우울과 방황이라고 본다. 이렇게 쉽게 결론을 내리는 건 나 자신을 이해하고 또 사랑하기 위한 자기 치유의 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스님 이야기, 맞는 말이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근데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는 것도 얼마나 애매하고 불충분한가. 말할 때 말만 해야 하는 데 숨까지 쉰다. 숨 안 쉬면서 말하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말에 어떤 숨으로 말을 할까. 숨 가쁘게 쏟아내는 이야기는 숨이 가쁜 사람이다. 호흡이 깊고 따뜻한 사람의 말은 역시나 말이 깊고 따뜻하다. 언어는 불충분하지만 관심과 사랑은 충분하지 않는가.
첫댓글 참 좋네요.
아이들이 어떤 글을 쓰거나 함께 이야기나눌 때 그 대상이 대부분 엄마,아빠에 국한되는게 아쉬웠는데
이렇게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게 정말 좋네요.
우울함이 찾아올 때 밭이나 산으로 가는 것. 정말 공감이 갑니다.
그냥 조금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대부분은 금방 가분이 달라지니까요.
아이른님,
참~~ 고맙습니다.
또 참~~ 보드랍고 따뜻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