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출신의 노동자였던 전태일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거하여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항의하며 분신자살하였다.
그의 죽음은 [민주화세력]의 집권이후 책자, 영화등으로 미화되고, 전태일이 자살했던 청계천 일대를 [전태일가]로 명명하고 각종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민주화열사]로 추앙하고 전태일재단이란것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그의 죽음이 모든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살신성인한 것이었다면 이런 반응과 대우가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의 죽음의 진실이 살신성인을 위한 분신자살 이었을까?
남대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7세의 나이로 피복공장 미싱보조사로 취직하여 힘들게 살아온 전태일이 22세의 젊은 나이에 이런 살신성인의 희생이 가능 했을까?
자신의 처지를 지극히 비관하여 자살한 것이라면 납득이 가지만 근로조건을 개선하라며 분신자살 했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보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1963년에 고딘디엠 정권의 학정에 항거하여 분신자살한 베트남의 틱광톡스님, 4대강 사업 반대와 양극화를 개선하라며 분신자살한 문수스님등 나라를 위해, 혹은 타인을 위해 분신한 사람들은 간혹 있어왔다.
또한 네델란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담에서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주장하고자 할복한 이준열사의 예에서 봐도 나라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람들도 존재 한다.
하지만 이런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많은 수행을 했던 스님이나 우리나라의 초대검사였던 이준열사처럼 고도의 지식과 수양을 쌓아왔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전태일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이들의 죽음은 자아실현(自我實現)을 위한 극단적인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슬로우는 그의 연구에서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었다.
그 단계는
1단계 : 생리적 욕구
2단계 : 안정의 욕구
3단계 : 소속 및 애정욕구(사회적욕구)
4단계 : 자존감의 욕구
5단계 : 자아실현의 욕구로 구분하고
그는 낮은 단계의 욕구가 “어느 정도”충족이 되면 그 상위단계의 욕구를 추구하기 위한 행동이 유발된다.고 하였다.
하부단계의 욕구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이 몇단계를 건너뛰어 상위단계의 욕구충족을 위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가장 하부의 생리적 욕구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몇단계를 뛰어넘어 4단계나 5단계의 욕구충족을 위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전태일의 죽음을 미화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라면 가장 하위단계인 생리적 욕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그가 최상위 단계의 욕구인 자아실현(自我實現), 그 중에서도 보통 사람이 도저히 상상도 못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행동의 하였다는 결론이다.
마슬로우가 무덤에서 뛰쳐나와 통곡할 일이고, 그의 죽음을 연구한다면 노벨상을 받을만한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분신이 있었다.
왜 하필 焚身이었을까?
우선 불은 죽음, 피와 함께 사람들을 쉽게 흥분시킨다.
전쟁에 처음 참가한 병사들이 겁에 질려 있다가도 전우의 죽음에 흥분하여 광적인 용감성을 보인다는 사실은 거의 상식적인 이야기다.
이런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이 주동하거나 배후조종 하는 시위에는 거의 대부분 시체가 등장한다.
시위군중이 동료의 죽음을 접했을때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흥분의 도가니속에 빠져 시위는 순식간에 격화된다.
불에 타죽는 동료의 모습! 과연 이보다 더 시위를 격화시키는 수단이 있을까?
둘째는 자살을 가장한 타살이 용이하고, 중도포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타살의 증거조차 전혀 남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경우에 온몸에 휘발유나 신너등을 끼어 얹고 분신을 하겠다며 협박해 왔던 사례가 많이 있었다.
이때 누군가가 조그마한 불씨를 붙여 버리면 꼼짝 못하고 타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순진한 청년 전태일을 극단적인 투사로 변모시킨 누군가가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옥상에 올라가서 분신자살의 흉내만 내도록 부추기고 이것을 맹신한 전태일의 몸에 슬쩍 불을 붙여 시위를 격화시켰다는 가정은 불가능한 일일까?
실제로 운동권들의 수기인 [진터골 이야기]에 보면 시위를 격화시키기 위해 분신자살을 가장한 분신타살인 [인간불화살]에 관한 사례가 적지 않게 나와 있다.
수십년전에 있었던 전태일의 분신의 의한 죽음.
지금처럼 곳곳에 감시카메라도 없었고,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은 상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단지 누군가 목격자에 의해 [분신자살]하였다고 하면 분신자살이 사실로 굳어지던 시대였다.
아름다운 청년, 시대의 불쌍한 희생자 전태일의 죽음.
과연 경제학도라면 어느 누구라도 불변의 진리라 생각하는 인간행동의 기본적인 원칙마저 뛰어넘는 살신성인 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추악한 욕망에 희생당한 [인간불화살]이었을까?
첫댓글 당연히 [인간불화살] 이엇겠지요-시위세력에 속아넘어간 순진한 청년-이것이 전태일의본 모습이 맞을것입 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부패 정치인(중학동창) 한 놈의 사기 때문에 가정도 파괴되고 지금껏 죽지 못하고
이젠 그 정치인을 죽일 힘도 없는 사내로 전락한 사람입니다.
이젠 나이가 많아 짐에 따라,
군 훈련중 낙상 사고로 허리와 무릅 통증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으로
수 없이 욕구를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아마 제가 전 태일씨 처럼 젊었다면...저도 자살했겠죠.
그런데 아내까지 배신하는 통에 그 괴로움으로
미쳐, 놈을 죽이지 못한것이 지금도 후회막급입니다.
그 동창놈은 국회의원 뺏지 딱 한번 달고.120만원 받는신세..
저는 수급자 신세.
유공자는 물 건너간 듯하고.챙피해서 말도 안나옵니다.
그려..
임 영호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