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번의 구타>는 6월 3일에 파리 샹젤리제의 두 개 관에서 개봉되었다. 이 작품은 45만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파리에서도 단관 개봉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단, 흥행작에 한해서는 장기간 상영이 되었다.) 영화는 사회적 이슈를 낳았다. 오늘날 프랑스 영화의 신화처럼 전해지는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영어로 ‘New Wave', 즉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이다. 신속한 촬영, 새로운 젊은 배우를 통한 동시대의 이야기, 스튜디오가 아니라 자연광을 이용한 야외 촬영, 적은 예산과 소규모 인원의 제작 방식은 <400번의 구타>를 통해 절정에 달했다. 이후 3년간 170명에 달하는 감독이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으며 누벨바그는 문화 운동이자 신화가 되었다.
앙투안 드 베크와 세르주 투비아나가 쓴 전기인 <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에 따르면, 누벨바그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쓴 것은 1957년 10월 3일자 ‘렉스프레스’지였다. 프랑수아즈 지루는 ‘젊은이들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누벨바그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1958년 6월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누벨바그, 젊음의 초상>을 펴내면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영화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저작이었지만 프랑스 사회의 내부 변화를 주장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역할을 펼쳐 보였다. 1959년의 칸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통해 각광 받은 <누벨바그>를 통해 다시 한번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제 누벨바그에 대한 토론은 하나의 현상이자 이슈가 되었으며, 칸 영화제가 끝난 후 몇 개월 만에 누벨바그에 관한 책이 프랑스에서 간행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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