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만드는 불자들-다문화가정 템플스테이 현장을 가다
“나와 남 분별하지 않는 불교 정말 좋아요”
결혼이주여성 등 30여명 템플스테이 참여
12일 약천사서 발우공양 등 불교문화 체험
서귀포시 대포동 약천사(주지 성원 스님)는 지난 12일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와 연계,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개최했다.
3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실시된 이날 템플스테이에서 참가자들은 범종 타종, 발우공양, 참선, 108배 등 불교문화와 오카리나 만들기, 탁본 등 문화체험을 통해 마음을 내려놓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 사진설명 : 약천사는 지난 12일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실시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불교와 전통문화를 체험을 통해 한국의 참다운 문화를 체험하는 계기가 됐다.
대지의 열기를 식혀주는 감로비가 내리던 지난 12일 오전 서귀포시 대포동 약천사는 이방인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이 입재식을 끝내고 대적광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다정한 모습으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템플스테이에는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베트남, 중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과 자녀를 포함해 30여명이 동참했다. 이국적인 용모의 외국 출신 이주여성들과 아이들까지 한데 어우러지면서 조용했던 산사는 시끌벅적한 모습이었다.
기념사진 촬영 후 발걸음을 범종각으로 옮겼다.
“우리 마음속의 번뇌와 망상을 다 지우기 위해 범종을 친다”는 주지 성원 스님의 설명을 들은 후 범종을 직접 쳐보며 그 웅장한 울림에 환호성이 터졌다.
스님이 당목에 아이들을 태우고 범종을 치자 입재식에서의 엄숙한 분위기는 어느 덧 사라지고 얼굴마다 화색이 감돈다. 자신이 친 범종에 손바닥을 대고 그 미세한 울림을 느껴본다.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우듯 은은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범종의 진동에 마음의 벽은 하나 둘 허물어져 내려갔다.
오백나한전을 둘러본 후 불교문화의 진수인 발우공양 시간이다. 두 줄로 나란히 앉은 채 발우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에는 ‘어떻게 밥을 먹는 걸까’라는 호기심이 역력했다.
스님은 “쌀 한 톨, 밥 한 알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아끼고 절약하여 나와 남에게 이익되고 복되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 바로 발우공양”이라며 발우공양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이어 “밥을 먹기 전 굶주리고 있는 우리 주변의 많은 이웃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을 새겨들은 참가자들은 한 마음으로 ‘옴 시리시리 사바하’ 공양 진언을 읊으며 공양을 시작했다.
공양이 처음이라 서툰 모습이지만 정성을 다하며 불교문화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세 자녀와 동참한 미즈구치요코씨(36)는 “소량으로 먹는 것은 일본 음식문화와 비슷하지만 절약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발우공양의 정신은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며 “식단이 채소 위주로 짜여 있어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요코씨는 “일본에서는 시간을 정해서 사찰에 가는데 언제든지 부처님을 참배할 수 있는 한국불자들이 부럽다”면서 “화려한 단청 등으로 사찰이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마음을 붙잡는 무엇인가를 느끼게 한다”고 덧붙였다.
▶ 사진설명 :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참선을 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발우공양을 마치자 참선과 108배 등 본격적인 불교문화 체험을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참선할 때의 자세와 마음가짐, 그리고 잠을 쫓기 위해 죽비를 내려친다는 설명이 끝나자 곧바로 10분 동안의 선정에 들었다.
반가부좌 자세에 대해 스님이 일일이 자세를 교정해주자 제법 모양새를 갖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법당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나와 남을 분별하지 않는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법당에 메아리치는 듯했다.
9개월 된 갓난아기 때문에 친정어머니와 함께 동참한 중국출신 이동금씨(33)는 “중국에서도 어머니가 절에 다닐 정도로 불교를 좋아하셔서 모시고 왔다”며 “사찰 분위기가 너무 좋아 기회가 있으면 다음에도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결혼 때문에 제주도에 온 지 6개월 밖에 안됐다”는 필리핀 출신 새색시 에즈라씨(21)는 모든 것이 신기한 듯 사찰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웃음을 머금었다.
에즈라씨는 “필리핀 친구는 물론 외국출신 여성들과 함께 산사에서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날 템플스테이를 공동 주관한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 템플스테이 담당자 고명희씨는 “매년 약천사와 연계해 템플스테이에 개최하고 있는데 참가자들의 호응이 매우 좋다”며 “사회 각 부문에서 결혼이주 여성 등의 제주사회 조기정착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고씨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전통문화와 불교문화를 알리기 위해 다문화가정을 시작으로 국제회의 참여자와 도내 원어민 교사들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출신 결혼 이주여성의 조기 정착을 돕기 위해 처음 마련된 다문화가정의 산사체험. 비록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불교를 통해 이들은 어느덧 제주를 구성하는 도민으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다.
성원 스님 약천사 주지
다문화가정 지원 위해
다양한 사업 적극 추진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은 “불교가 다문화가정에 따뜻한 포교의 손을 내미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며, 미래불교의 참모습”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약천사는 그동안 이웃과 함께 하는 템플스테이를 추진해 왔는데 한국관광공사와 연계해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개최하게 됐다. 다문화가정이 참가한 템플스테이는 이번이 처음이다.
성원 스님은 “지금까지 템플스테이 참가자나 준비자 입장에서 볼 때 미숙한 점이 없지 않지만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서는 노력을 펼친다면 서서히 그 문이 열릴 것”이라며 “이번 템플스테이는 그 벽을 좁히는 디딤돌이 됐다”고 평가했다.
스님은 “그동안 다문화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타 종교에서 다문화가정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등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이번 템플스테이를 계기로 철저한 준비와 함께 불교적 성향의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스님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 다문화가정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불교계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 길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0-06-16 오전 10:27:54
제주불교신문/이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