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불교, 한국불교의 희망이 될 수 있나 | ||||
한국 불교 위기의 징후들 _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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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는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내고 다시 우뚝 일어선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그것도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승려들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국가의 부역에 징발당하는 수탈을 예사로 겪으면서도 살아남고, 오히려 그 시절을 민중들의 삶에 다가가는 기회로 삼았던 경험이 있다. 1945년 민족 해방 이후, 미군과 함께 힘의 우위를 차지한 기독교 세력에게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가고, 내부 투쟁과 분쟁으로 사찰 재산을 상실하고 신도를 잃고 또 불교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절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어려움을 잘 버텨내 이제는 국내 최대 신도숫자를 자랑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되었다. 이 정도까지 된 데에는 자신을 희생하며 불법을 지켜온 사부대중의 원력과 의지가 컸다. 어려운 사찰 재정을 도와준 재보시 단월에서부터 그야말로 역경을 무릅쓰고 경전 번역에 나서서 대중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온 역경사와 사판의 길에 나섰던 각 종단의 소임자에 이르기까지 숱한 인연들의 공이 컸다. 그런데도 불교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은 입만 열면 “종단이 뭐하고 있느냐?” 비판하고 특히 승려들에 대해서는 더 날카로운 말과 글의 칼날을 들이댔다. 이 비판들은 타당한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일정한 효과를 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쇠 귀에 경 읽기’이었다. 비판의 대상이 된 기득권 승려들은 이 모든 비판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며 큰소리를 쳐대며 호화 사치의 생활을 이어갔고 삼보정재를 마음대로 써대는 만용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일은 권력을 가진 일부 사판승려들만이 아니다. 겉으로 ‘깨달음’을 내세우며 신선 놀음에 빠져 있는 대다수 이판 승려들, 승단과 정치 권력 주변을 배회하며 ‘한 자리’ 차지해볼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일부 재가 활동가들, 불교 시민운동의 명분을 내세우면서 권력 승려들을 비판하고 가끔 성명서를 발표하거나 피켓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각급 신도회 임원을 맡아 사람들에게 자기 이름만을 드러내려고 하는 신도회 간부들,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일부 선승들의 행각을 그대로 좇아 “우리도 화두를 들고 참선 수행을 하며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데에 자족하고 있는 재가의 깨달음 지상주의자들 …… 이들이 바뀌지 않고서는 결코 사판 권력승들의 변화와 개혁을 유도해낼 수 없다. 그런데 이들이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어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어쨌든 재가 불교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고서는 한국 불교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재가의 뒷받침 없는 승가가 제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불을 보듯 분명’하다. 한편 제대로 된 재가 불자들이 있는 한, 설사 일부 권력 승려들이 극단적으로 부패하고 이판 승려들이 자신들만의 안일을 추구하는 웰빙족에 자족하며 신선놀음에 머문다고 하여도, 한국 불교에 희망이 있고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재가불교 상황은 그리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 어렵다. 이에 언뜻 떠오르는 재가 불교계의 문제를 짚어 나가보려 한다. 그러나 넓고 깊은 재가 불교계의 문제를 모두 짧은 지면에서 진단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터이니, 우선 대표적인 조직 몇 곳을 짚어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재가 불교계를 총망라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기회를 보아가며, 그리고 현실 상황에 맞추어 살펴나갈 것이다. 와해 위기에 놓인 ‘참여불교재가연대’ 1998넌 CNN을 타고 전 세계에 생생하게 중계되기까지 하여 한국 불교를 만방에 알리기도 했던 ‘정화개혁회의’와 관련된 ‘조계사 폭력 사태’를 겪고 난 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데에 마음을 모은 재가불자들이 ‘불교 바로 세우기 재가연대’를 결성하여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많은 성과를 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교단자정센터’는 불교계 권력 집단에 대하여 경고를 보내며 더 이상의 타락을 막는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권불십년’이라는 옛말이 재가 운동에게도 해당되었는가? 10년 세월을 잘 이겨내고 버젓한 회관까지 마련하며 성장해가던 재가연대가 최근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실상 벌써 오래 전부터 위기의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재가연대만은 보호해주자”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외호의 울타리를 치고 교계 언론에서도 마지막 보루로 여기며 비판 기사를 자제해왔다. 그런데 이제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대표단 등 상층부뿐 아니라 사무처 실무를 담당하던 사람들까지 떠나가고 조직 활동은 멈춰있다. 가끔 교단자정센터 명의의 성명서가 나오기는 하지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실제로 이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도 없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렀는데도 재가연대의 상부 지도층이나 역대 사무처관계자들은 자신들의 과오는 인정하지 않고 ‘남의 탓’을 거론하는 말과 글을 쏟아내고 있다. 중요한 소임을 맡았던 인사들이 모두 “내 잘못은 없고 다른 사람들의 죄가 막중하다”고 하면, 그러면 누가 책임이 있는가? 종단 권력이 그렇게 유도했는가? 아니, 디도스 공격을 했다는 어느 비서관처럼 외부 종교계가 침투하여 재가연대 조직을 무너뜨리기라도 했는가? 지금 재가연대의 상황은 처음 창립할 때보다 훨씬 어렵다. 부채를 안고 매입한 회관은 더욱 큰 짐이고, 각자의 지분을 주장하는 임원과 회원들의 존재도 아주 무거운 짐이다. 게다가 회관 매입 당시 일부 권력승들에게서 ‘받지 않아야 할 재정 지원’을 받은 것은 재가연대의 도덕성에 흠을 남겼을 뿐 아니라 자립과 자존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악재로 남아있기까지 하다. 옛날부터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재가연대의 상황은 수성 정도가 아니라, 요즈음 정치권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재 창립과 재건을 요구하고 있다. 재건이 창립보다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창립할 때보다 열 배, 백 배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열 배, 백 배 욕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다. “내가 한 번 해볼께!”하는 식의 낭만으로 시작할 일이 아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각급 임원을 포함한 회원들 모두가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다”라는 아만심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진단이 나오고, 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이런 분위기가 보이지 않지만, 빠른 시일 안에 좋은 소식이 전해지길 기대한다. 왜? 참여불교재가연대는 우리 재가 불자들, 나아가 한국 불교계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신도 조직을 포기한 조계종 중앙신도회 현재의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세속과 종단 권력에 기생해온 것으로 비쳐졌던 기존의 ‘조계종 전국신도회’를 부정하고 1994년의 이른바 개혁불사의 결과물로 창립되었다. 창립 이후 중신은 나름대로 교구신도회와 광역신도회 구성을 위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친 적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활동을 거의 모두 멈추었고 그래서 “중신이 과연 신도 단체인지?”하는 의구심을 곳곳에서 갖게 하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재력을 가진 회장과 종단에 기대지 않고서는 도저히 재정을 해결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고, 사찰 ․ 교구 ․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신도회 활성화를 원하지 않는 승려들도 넘기 어려운 장애이다. 하지만 어느 시절에 이런 장애가 없었던 적이 있던가? 이런 장애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과거 전국신도회도(전신)도 권력에 기생하다가 사라져간 것이지,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신’을 비판하고 세운 ‘중신’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중신마저 똑같은 길을 따라 걷는다면, 또 다시 새로운 신도 조직을 세워야 한단 말인가? 현재 중신은 신도들의 조직이라는 역할은 포기한 듯이 보인다. 물론 불교계의 주요한 행사에는 신도회장이 초대되어 축사를 하거나 발원문을 낭독하는 예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게 끝이다. 그리고 이렇게 포기한 신도 조직의 역할은 ‘사회적 기업 - 연우와 함께’ 사업을 확장하고 해외 반출(또는 약탈) 문화재 환수 운동을 전개하는 데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으며, 불자 인재 발굴과 육성을 목적으로 세운 인재개발원에서는 깨달음 지상주의에 빠진 일부 승려들을 좇아 간화선 우상화 작업에 치중하고 있다. 이런 사업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한다. 문제는, 중신의 활동력 배정이 이 두 가지 사업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사업을 확장하여 이익을 창출하고 그 이익으로 사무처를 유지하게 되면 짧은 시간 단위로 볼 때에 필요하고 이득이 될 것이다. 해외 약탈 문화재 환수 운동을 펼치고 그 일로 언론에 회장 등의 이름과 사진이 나오고 그래서 중신을 널리 알리는 일도 필요하다. 물론 ‘깨달음을 얻겠다’는 성취하기 어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해 간화선 강좌를 마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다. 이 사업이 조계종 신도들의 위상을 높이지도 못할 것이고 전국 신도들을 묶어내 승가를 외호하고 바른 신행 문화를 정착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사업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답은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순혈주의 유혹에 빠진 대한불교진흥원 고 대원 장경호거사가 한국 불교 중흥을 위해서 출연한 재원을 바탕으로 설립된 대한불교진흥원(진흥원)은 정말 큰일을 해왔다. 무엇보다도 불교방송 설립을 주도하고 그 운영을 지원해온 일은, 대원거사와 그의 뜻을 이은 진흥원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설립 초기부터 오랜 동안 재원 출연자인 대원거사의 유지를 버리지 않고 잘 유지해온 진흥원이 언제인가부터 고위급 관료나 전직 동국대 총장 등을 위한 원로원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장관이나 총장을 지낸 인사들이 이사장 자리를 주고받으며 자기들 입맛에 맞추어 보수적인 경영을 하고 실제 설립자의 뜻이었던 ‘대한 불교의 진흥’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다. 이렇게 지내온 진흥원에 최근 더욱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스스로는 “이사진이 젊어졌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새 이사장 취임과 함께 새로 이사회에 진입한 인사들이 특정 인맥 중심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양념 삼아 출신이 다른 사람을 일부 넣기는 했지만, 특정 대학 불교학생회 출신들이 이사장과 이사를 독점하게 되었으니, 이제 내부의 견제와 균형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같은 대학 불교학생회 선후배로 뭉친 이사들이 마음을 함께 모아 한국 불교 발전을 위해 애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고, 다양한 출신 이사들이 모여서 그야말로 백화제방의 의견을 쏟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진흥원 사업을 펼쳐나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순혈주의적 입장에서 심지어 형제자매를 결혼시켜가면서까지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려고 온 힘을 기울였던 동서고금의 왕족들이 그 시대 일반 대중들보다도 허약하여 단명하고 후손이 끊겨 왕조가 무너지곤 했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특정 인맥 중심의 조직이나 단체가 위기 대응 능력이 매우 취약하고 결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앞으로 진흥원에게 닥칠 첫 번째 위기는 조계종단의 권력승려들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고, 바깥세상의 비판과 비난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이웃 종교계의 공격 때문도 아니다. 그 위기는 순혈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사회 내부에서부터 시작할 것이고 이 위기는 결코 쉽게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진흥원 이사들이여, 제발 특정 대학 출신으로 순수 혈통을 유지하려는 어리석음을 빨리 버려라. 그래야 진흥원이 살고, 불교방송이 다시 일어설 것이며, 한국 불교가 살고 무엇보다도 이사 여러분들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