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알고 싶어요/이선희----소야월야 / 황진이
가수 이선희가 부른 "알고 싶어요"는황진이의 시를 번안해서 불렀다 소세양과 한달간 동숙(동거)하고 헤어진 뒤 황진이가 유일하게사랑했던 남자~ 소세양을 그리는 애타는 마음을 글로 적어서 동선이를 시켜 한양에 있는 소세양에게 보냈던 漢詩입니다.
2. 蕭寥月夜(소야월야) 소 세 양 蕭寥月夜思何事 소요월야사하사 달밝은 밤이면 그대는 무엇을 생각하나요? 問君有時錄忘言 문군유시녹망언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을 꾸시나요? 寢宵轉輾夢似樣 침소전전몽사양 붓을 들면 때로는 제 이름도 적어보나요? 此世緣分果信良 차세연분과신량 저를 만나 기쁘셨나요? 悠悠憶君疑未盡 유유억군의미진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게 궁금해요. 日日念我幾許量 일일염아기허량 하루에 제 생각 얼마만큼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 망중요고번혹희 바쁠 때 얘기해도 제 말이 재미있나요? 喧喧如雀情如常 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이에 소세양은 황진이의 시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다음과 같은 시로 보답을 하고친구들과 사나이 약조을 저버린 채
그녀 곁에 더 머물렀다고 하는데.......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 소세양판서를 보내며
----- 황진이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설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랭)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달빛 아래 소나무만이 푸르르고 눈에 덮인 한포기 꽃들은 고개를 떨구었구나
강물은 하늘과 맞닿아 슬픈 줄을 모르고 쌓여가는 술은 그저 강물에 흘러갈 뿐
흐르는 강물은 나의 마음을 실어보내주지 않고
저멀리 절벽에서 살아남은 한포기 꽃은 아름다운 낙화를 보여주는구나 내일아침 그녀를 보내고 나면 슬픔은 비가되어 나의 몸을 짓누르리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더 지속되었는지는 정확히 알길은 없지만
어쨌든 소세양과 헤어진 후에도 황진이는
그리움에 찬 나날을 보냈다고 전한다 그들은 헤어진뒤에도 인편을 통해서
오랫동안 서찰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아래는 황진이가 보낸 또하나의 한시입니다
4. 漢 詩 / 황진이
소솔한 달밤 무슨 생각하시온지 뒤채는 잠자리는 꿈인듯 생시인 듯 님이시여 제가 드린 말도 기억하시는지 이승에서 맺은 연분 믿어도 좋을지요
멀리계신 님생각, 끝없어도 모자란 듯 하루하루 이몸을 그리워하시나요 바쁜중에도 돌이켜 생각함이란 괴로움일까, 즐거움일까, 참새처럼 지저귀어도 제게 향하신 정은 여전하신지요
어쨋거나 황진이는 소세양을 무척 사랑한게 틀림 없다 그들이 처음 인연을 말장난 같은 시로 주고 받으며 인연을 맺고 한달만 동숙하기로 서로가 작정했지만 정에 이끌려 얼마 동안 관계가 더 지속이 되었고 소세양과 애절한 이별을 한 황진이는 매일밤 그를 그리워하면서 지은 시가 지금까지 전해 오는것을 보면 그들 사랑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듯 그렇게 느껴진다
어떠한 것이든 사랑은 참 아름다운 것이기에 찬사보내며 그당시 콧대높은 황진이가 유일하게 사랑한 남자
소세양은 황진이의 사랑에 무척 감흡했고 행복했으리라
소세양
본관은 진주.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퇴재(退齋)·퇴휴당(退休堂). 1509년(중종 4)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정자·주서·정언 등의 벼슬을 거쳐 수찬으로 있으면서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복위를 건의하여 현릉(顯陵)에 이장하고,
대묘(大廟)에 위패를 두도록 했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했으며,
이조정랑·교리·직제학 등을 거쳐 사성이 되었다. 그뒤 왕자의 사부(師傅)와 승지 등을 지내고, 전라도관찰사로 나갔으나 1530년 왜구에 대한 방비를 소홀히 했다 하여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형조판서에 올랐다. 1533년 지중추부사로 있으면서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1535년 형조판서·호조판서, 1537년 병조판서·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이
되었다. 1538년 성주사고(星州史庫)가 불에 타자 중종의 명으로 춘추관(春秋館)의 실록을
베껴 다시 봉안했다. 1545년(인종 1) 대윤(大尹) 일파의 탄핵으로 벼슬에서 물러났으나,
명종이 즉위한 뒤 을사사화로 윤임(尹任) 등이 몰락하자 다시 기용되어 좌찬성을 지냈다.
사직한 뒤에는 익산에 머물면서 여생을 마쳤다.
율시(律詩)에 뛰어났고 송설체(松雪體)의 글씨를 잘 써서 필명이 높았다.
익산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양곡집〉이 있으며,
글씨로는 임참찬권비(任參贊權碑)와 소세양부인묘갈(蘇世良夫人墓碣)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달밝은밤에 그대는 누굴생각하세요 잠이들면 그대는무슨꿈 꾸시나요 깊은밤에 홀로깨어 눈물흘린적 없나요 때로는일기장에 내얘기도쓰시나요 날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사랑믿나요 그대생각 하다보면 모든게 궁금해요
하루중에서 내생각 얼만큼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때 전화해도내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진정 날 사랑한가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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