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11월 히말라야 고교피크(5360m)를 다녀온 후 2년간 준비한 끝에 떠나는 티베트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초모랑마, 5200m)를 트레킹 하러 고봉에 쌓인 신비의 땅, 미지의 나라를 떠난다고 하니 가슴이 설레 이고, 고산증에 대한 두려움도 앞선다.
강렬한 태양빛에 검게 탄 얼굴은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밝은 영혼을 간직한 티벳탄의 천진난만한 미소, 천성적으로 타고난 자유스러움, 행복한 웃음을 갖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기분을 들뜨게 한다.
그들의 삶의 터전은 높고 높은 산, 넓고 넓은 초원, 끝이 보이지 않는 4000m고지의 호수 등 모든 것이 새로운 세계이다.
2년간 티베트에 대한 자료수집, 책자, 인터넷, 잡지 등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정보를 입수하고 먼저 다녀오신 선배님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산사사모 회원들과 여러번 모임을 통하여 의견 수렴, 여행 계획을 수립하였다.
당초 계획은 홍성훈원장님과 안나프르나 라운딩을 하기로 하였으나 2003년 고교피크를 트레킹후 계획을 변경 이번에는 티베트으로 들어가 히말라야 초모랑마 B.C를 트레킹 하기로 결정, 티베트 라싸로 들어가 초모랑마를 트레킹한 후 장무를 거쳐 카투만두-포카라-안나프르나B.C 도 트레킹한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황산도 가기로 했다.
이번 자료 수집 중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가 티벳 입경허가서 받기가 어렵다는 정보가 있어 계획 수립에 어려움이 많았다. 티베트 입국할 때는 반드시 중국의 비자와 별도로 티베트 여행허가를 다시 받아야한다. 티베트 여행허가증이 있어야만 비행기를 비롯한 차량을 탑승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혜초여행사를 통하여 랜드 크루저로 가기로 예약하고 나니 비용은 다소 들더라도 티베트에서 이동은. 여유롭게 되어 식량, 운행구도 가져가도 큰 무리가 없기에 햇반, 라면, 스프종류, 예비식량과 동계용 침낭, 카메라등도 준비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아시아나 조종사 파업으로 항공기가 무더기로 결항을 하여 걱정을 많이 하였으나 다행히 인천-성도 구간은 정상운행 되어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고소적응을 위해 이뇨제(다이아막스)를 복용하였다.
여름 장마도 끝나고 바캉스 계절이라 시내는 텅 비었다. 우리는 항상 즐겁고 건강하게 행복한 여행을 꿈꾼다.
이번 코스는 히말라야를 관통하는 우정공로 코스로 에베레스트와 같은8000m급 고봉들을 가까이 볼 수 있는 루트로 E.B.C로 가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일반화된 코스이다.
우정공로 길이는 라싸에서 네팔국경 장무 까지 721Km로 라싸에서 롱북사원 까지 3박4일 이면 되지만 우리는 티베트을 좀더 자세히 보고 고소적응도 하면서 8/9-8/15일(6박7일)동안
랜드크루저, 마차, 오토바이 등을 이용 초모랑마 B.C를 다녀왔다.
티베트의 소개
티베트은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중국 西蔣自治區로 면적 122만 평방킬로미터로 남한의12배, 남북한의 5.5배의 방대한 지역에 250-300만명이 살고 있다. 티벳은 지구상의 최고의 고원인 티베트 고원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부분 지역이 표고 4000m가 넘어 “세계의 지붕” 이라고 불린다.
성도에서 중국민항기로 태산준령을 넘어 만년설이 하얀 설산을 날아가는 비행기 창밖으로 바라보니 구름위에 삐쭉 솟아오른 은빛의 설산들, 세계 지붕의 첫인상은 이처럼 비행기에서부터 시작됐다. 티베트 땅을 밟기 전에 하늘에서부터 8000m급 설봉들이 눈부신 파노라마가 환상적이다.
높고 험한 준령, 깊은 협곡, 드넓은 티벳고원의 광활함, 티베트은 고산지대 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힘은 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은 것을 깨닫게하는 신비한 곳이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순수한 보석 티베트만큼 깨끗하고 태곳적인 모습을 간직한 곳이 드믈다. 삶의 어깨가 무거운 사람이나 태곳적 자연과 순수한 영혼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 고장이다.
티베트은 7세기 초 중앙 티베트을 중심으로 吐蕃國 송체감포왕은 모든 티베트족을 통합 통일국가를 형성하였다. 당시 당 태종은 문성공주를 송체감포 왕에게 시집보냈으며 그 때 데리고 온 주조, 제지기술자들에 의해 중국문화가 전해졌다. 또한 티벳 불교가 전파되어 티베트 문자가 제정된 것도 이 시대라고 한다.
그 후 내정이 혼란해지고 1253년에는 원나라 헌종에게 함락되기도 하였다. 1950년에는 중국이 대규모 군대로 티벳을 무력으로 침공 의도적으로 한족을 이주시켜 이로 인하여 티벳은 나라를 앓고 중국은 넓은 땅을 중국의 다른 성에 편입시키고 일부만 서장자치구로 넘겼다.
티벳인은 여러 가지 저항운동을 펼쳤고 달라이라마 14세는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티벳은 민중봉기도 일으켰음에 불구하고 현재는 중국 56개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중국은 티베트 문화를 존중한다는 유화정책을 쓰면서, 중국은 자국민에게 특혜를 주어가며 상해시, 흑룡강시, 청두시등 많은 도시에서 중국인들을 이주 시켜 중국화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지금 라싸, 체탕, 시가체등 주요도시의 경제는 거의 한족이 장악하고 있는 실태이다.
중국의 무력 앞에 무참히 짖밟힌 티벳탄의 슬픔이 영원히 마르지 않은 눈물이 되어 지켜내고 있다. 그리고 현재 라싸는 신시가 건설로 대대적으로 도로를 신설하고 가로등설치, 관공서신축, 상가 등 대형 건축물들이 중국 대도시들이 투자로 건설 붐을 이루고 현대화 시키고 있다.
꺼얼무에서 라싸로 오는 철도 공사가 한창이며 매일 같이 꺼얼무에서 들어오는 군용보급차량이 줄을 잊고 있다.
라싸-캄바라(4794m)-간체(3950m) :260km
체탕과 라싸의 주변 불교 성지를 8/3-8/8일 까지 순례한 후 초모랑마B.C로 가기위해 아침 일찍부터 준비 랜드 크루저로 라싸를 출발 하였다. 라싸 공가공항 방향으로 가다가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가니 비포장도로 나왔다. 이 곳에 작은 마을을 지나 오른편 계곡을 끼고 올라간다. 시내를 벗어나 알롱창포강을 건너 우회전 구불구불한 급경사의 고갯길을 한참 돌아가니 야크를 방목하는 모습을 보면서 칸바라패스(4794m)오르니 푸르른 암드록쵸는 너무 아름다워 환상적이다. 갑자기 높아진 고도로 이 곳은 상당히 추웠다. 돌탑들이 쌓여 있고 룽다와 타르쵸가 바람에 휘날리며 많은 여행객이 차에서 내려 기념촬영을 하고 또 여행객을 상대로 치장한 야크가 모델로 사진 찍기도 한다.
비취색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암드록쵸 호수 뒤에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의 히말라야 설봉들 과 어우러진 암드록쵸(4488m)는 티베트의 4대 신성 호수중에 하나이다.
캄바라를 뒤로하고 내려오다가 햇볕이 반짝이는 호숫가에서 양떼들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보면서 여유롭게 잔디밭에서 북어국에 햇반으로 점심식사를 하는데 너무 맛이 있었다. 식사후 호숫가를 따라 달려 가는데 앞서 가는 찝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를 내면서 달려간다,
한 30분 달리다보니 호숫가 주변의 작은 티베트 농촌마을은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인데 그 곳에서는 많은 동네사람이 모여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말달리기가 한창이라 차에서 내려 가니 경기가 끝나고 있었다. 티베트 전통 복장의 원색옷을 차례입고 머리에는 울긋불긋 치장을 하고 나온 아낙네들, 말달리기 응원, 행사장에는 상인들이 좌판을 벌려 땅콩을 1元어치를 샀는데 양이 무척 많았다.
4000m 고원지대 파아란 하늘 아래서 펼쳐지는 이 지방의 축제는 노란 유채꽃이 만발한 평원에서 저멀리 보이는 호수와 8000m급 히말라야 하얀 능선이 자아내는 모습은 너무나 황홀하다. 마을 주민, 아이들 신바람 나는 마을 잔치이다. 가족과 같이 있는 아낙네에게 카메라를 데고 사진을 찍으려 하면 손을 내 저으며 못 찍게 한다. 필자와 박길범사장은 유채꽃이 만발한 호숫가를 배경으로 좋은 작품사진 하나를 만들려고 열심히 포카스를 맞추기도 했다.
마을 축제를 본후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암드록쵸를 끼고 계속 달리다보니 어느덧 호숫가가 멀어지고 늪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늪지에는 야크, 양,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차안에 있는데도 고산증세로 숨이 차고 어지럽고 손과 발가락이 짜릿하다. 곤륜산맥과 탕그라 산맥의 지그재그의 험한 고갯길 카로라패스(5045m). 넘어가니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 폭포수가 되고 강으로 흘러내린다. 깊은 협곡에 들어 왔는데 산은 황폐하고 흙 색깔은 갈색과 붉은색을 이룬다. 이곳 7000m급(노진 캉스탄) 고봉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장엄한 빙하의 폭포수를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 화석을 파는 아이들이 몰려와 자기가 가지고 온 물건을 보여 주며 사라고 졸라댄다. 고개를 넘으니 다시 평지처럼 쭉 뻗은 길이 나오고 산 밑으로 흐르는 강물은 황토 빛의 흙탕물로 거센 소용 도리를 치면서 흐른다. 아름다운 들판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고 구불구불 예쁜 길을 따라가니 드디어 오늘 쉬고 갈 간체(장체)에 도착 했다.
중앙 티베트에 있는 장체는 라싸에서 서남쪽으로 210km 떨어진 곳에 있다. 15세기 이전 까지는 부탄, 네팔, 인도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대상 무역 로의 관문이었다고 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이곳에 유명한 불교사원을 가려고 나오니 숙소에서 사원까지 한10분 걸으면 된다고 하여 펠코르 체대(白居寺)로 가는데 더운 오후라 무척 더웠고 가는 길도 멀었다.
시내거리에는 극장, 상점이 있고 거리를 지나는 마차에는 짐과 사람을 잔뜩 싣고 가는 모습은 50년대 우리 어린시절의 농촌모습과 같아 친근감이 간다.
간체시내를 지나가니 유난히 파아란 하늘에는 뭉게 구름이 한가로히 노니는 높은 언덕 능선위에 아름다운 고성이 보인다.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이곳이 그 유명한 간체종 이다. 이 고성은 14세기 이 일대를 다스렸던 알롱왕조의 마지막 왕이 거처 했던 성이라 견고한 요새였으나 1904년 영국군에 침략을 받았을 때 이곳 주민이 영국군에게 격렬히 저항 했던 곳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는 아주 아름다웠다.
힘들게 펠코르체대를 찾아가니 거대한 쿰붐 스투파가 우리를 반겼다. 이사원은 1418년 동부 티베트에서온 얄룽왕조에 의해 세워졌다. 창건 당기는 시카파에 속했으나 이후 불교의 세 개 종파가 한데 모여 같이 발전했다고 전한다. 현재는 게룩파 승려들이 관리하고 있다.
사찰내에 들어가니 순례자들이 경건한 자세로 천천히 거닐면서 마니차를 돌리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대법당의 왼쪽에는 백색의 거대한 수투파가 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간체 쿰붐으로 티벳에서 가장 큰 초르텐 이다. 전형적인 네팔 양식으로 건축 되었는데 쿰붐은 만다라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티벳어로 “십만 불상”를 뜻 한다고 한다.
높이 37m, 9층 건물로 108개의 문이 있으며 내부는 77개의 불당이 있고 불당마다 불상과 벽화가 가득한데 부처상이 10만개나 된다고 한다. 건물 꼭대기에는 금색 원추형 첨탑이 있고 그 아래에 거대한 부처의 눈이 그려져 있다.
탑 내부에는 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 입구에서 스님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올라갔다. 오른쪽으로 탑을 돌면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있고, 2층 삼바라라캉 법당에는 흥미로운 만다라가 있고 또 한바퀴 돌면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사원 안은 어둠침침해서 벽화나 탕가를 보기 위해 이영준사장은 손전등을 가지고 불상이나 만다라를 자세히 음미하며 심취되어 참배하고 있어 ,보기가 좋았다. 불당 밖에 양지바른 마루 앞에서는 일본, 중국에서온 전문 카메라맨들이 두 고승을 모델로 좋은 작품을 찍으려고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도록 하는 모습도 보았다. 필자도 붉은 승복을 입은 천진스런 동자승의 순수한 웃음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였다.
숙소: 간체 .H
장체(江牧, 1950m)-시가체(日喀則, 3900m)
시가체는 티베트의 제2의 도시로 라싸에서 남서쪽으로 280km 떨어져 있으며 과거 창지방의 수도 였으며 얄룽창포강과 낭추가 만나는 충적평야에 위치하고 잇어 오랬동안 남부 농축산품의 집산지로 중요한 교역 도시였으며 행정의 중심지이다. 현재 도심지는 급속히 중국화 되어 가고 있다. 이곳은 에베레스트B.C나 네팔 카투만두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경유지로 많은 여행객이 모이는 교통의 요지 이기도하다.
오늘은 조금 늦게 일어나 어제 시장을 보아온 계란과 빵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간체를 출발 남쪽방향의 우정공로를 따라 가는데 도로변에는 티벳의 민속 의상을 차례입고 외출하는 마을 사람을 자주 볼 수 있고 마을도 드문드문 보이는데 농촌의 집들은 대부분 흙벽돌로 지어진 평평한 2층짜리 집으로 아래층은 가축을 위한 장소로 2층은 거주지로 대부분 쓰고 있다. 또 야크똥을 벽에 붙여 말려서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늘에는 멋진 구름들이 황량한산들과 어우러져 티벳 대자연의 무쌍함을 느끼게한다. 계단식으로 된 파아란 밭들을 보면서 내려가니 어느 사이 시가체에 도착, 타쉬룬포 사원을 보려고
갔다. 시가체 시내 서쪽에 위치한 타쉬룬포사원은 1447년 달라이라마1세에 의해 창건되었다.
이 곳은 겔룩파 종파의 6대 대규모 사원중 하나로 달라이라마 정권과 대립해온 판첸라마의 근거지로 1989년 서거한 판첸라마 10세의 미라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지난 1989년 입적한 판첸라마 7세는 현실에 안주하면서 중국 정부와 우호적인 치세로 높은 요직에 까지 안배 받으며 시가체에서 본찰인 타쉬룬포의 주인 노릇을 하며 편히 일생을 마쳤다. 달라이라마는 진짜이고 판첸라마는 가짜라는 식의 이야기는 옳지 않다. 이 두 분은 형제지간에 비유 할 수 있으며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탄생한 달라이라마를 받들고 있는 지방이 있는가 하면 아미타불의 화신이라고 믿는 판첸라마를 숭배하는 지역이 다를 뿐 이 두 분 모두가 티베트의 法王이다. 사원 안으로 들어서면 우선 금빛 찬란한 지붕을 한 높은 건물을 보게 되는데 판체라마4세의 영탑전으로 높이 11m이고 은색의 탑체는 옥과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동쪽으로는 판첸라마 1-3세, 5-10세의 영탑이 모여 있다. 장엄한 미륵불전은 사원의 서쪽 끝에 있으며 높이 26m의 세계 최대 금동 미륵좌상이 모셔져 있다. 타쉬룬포사원을 관람하고 이 도시에 유명한 대형 로천시장에 가니 야채, 각종 고기류, 농기구, 옷, 전자제품 등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시내를 돌아본 후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
숙소:神湖 H(T;86-892883999, MANASAROVAR)
시가체(日喀則, 3900m)-뉴딩그리(쉐가르, 4050m)
티베트 여행은 도로 사정이 안 좋아 중간에 어떤 장해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숙소를 출발 했다. 우정공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니 찻길인지 아닌지 잘 구분이 안되는 벌판과 계곡의 물이 넘쳐 움푹 파진 웅덩이를 헤치고 달리고, 자갈길을 헤치고 나가니 작은 마을 라체가 나왔다. 이곳부터는 유목민을 많이 보게 되고 계곡을 끼고 꼬부랑길 이리저리 돌아,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티베트 고원에서 야크와 양떼들이 떼지어 다니고 일부는 풀을 한가로히 뜯는 모습을 보면서 14:40의 가쵸라패스( 加措拉山, 5220m)에 도착했다.
타르쵸가 휘날리는 이곳에 에베레스트 전망대라고 적힌 기념비가 있고 좌로부터 광활한 공간에 길고긴 히말라야의 산군들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는, 마카루(8463m), 로체(8516m), 에베레스트(8848m), 초유(8201m) 설봉을 감상 할 수 있는 시야가 탁 트인 전망대인데 이곳에 오니 약간에 비가 내리고 설산은 구름에 가려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설봉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쉽다. 잠시 휴식한 후 서둘러 가니 달리는 도로 주변에는 도로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인부들의 천막과 중장비도 보인다.
티벳의 농촌은 고도가 높아 농사 지을 땅이 충분치 않아 보통 유목을 겸하고 있으나 자급자족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광활한 땅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부유한 생활을 할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숙소에 도착후 시장하여 일찍 저녁식사를 하는데 가이드 랍상이 E.B.C를 가기 위해서는 교통비 및 입장료 등 추가요금 500여 위안을 요구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당초에 모든 비용을 지불하였으니 서울 에 통화후 결정하겠다고 하니 가이드도 다시 본사에 확인 하겠다고 한다. 정말 황당한 일이다. 다행인 것은 가이드가 회사에 나의 이야기를 전하여, 나중에 는 우리의견에 따라 추가 지불 문제는 없던 일로 되었다
쉐가르(뉴 딩그리)-롱북사원(5030m)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의 티베트이름은 초모랑마이다. 초모랑마 B.C를 가기 위해 서는 쉐가르(뉴 딩그리)에서 3-4일간 걸어서 트레킹 하거나 랜드 크루저를 이용하여 갈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랜드 크루저로 가기로 계획하고, 오늘은 대망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트레킹 하기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 하는 것이다. 햇반과 라면으로 조식후 08:00시 쉐가르를 출발 체크포인트(검문소)에는 08:10분에 오니 화물트럭, 랜드 크루저, 승용차등 검문소 앞에는 정차하고 대기한 차량이 여러 대 있었다.
티벳에는 검문소가 많다. 강을 건는다든지 산을 넘거나 어느 행정구역상의 경계를 지날 때 어김없이 검문소가 있어 불편하다. 운전기사와 가이드가 검문소에 들어가 무엇을 하는지 적어도 10-20분 정도나 되어서 나오니 여행객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다.
가이드가 입경서류와 여권을 가지고 검문소에 가서 군인을 데리고 와 일일이 여권과 대조 신원을 확인 후 통과했다. 티베트 관련 책자나 자료를 보면 C.P 통과시간이 09:30분 이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일찍 갈 수 있는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책자가 틀렸다고 한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고 주변의 기기묘묘한 바위와 바위의 지층, 민둥산, 노란 유채꽃이 만발한 주변 농촌의 모습이 아주 보기가 좋았다. 한 30분 지나니 작은 마을 체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초모랑마의 시가 국립공원 매표소로 입장료를 내고 체크 한 후 국도를 따라 가다가 우리는 좌측 롱북사원 방향으로 달렸다. 구불구불 황량한 삼각주의 산등성이를 힘겹게 달려 듈라패스(5100m)를 넘었다. 쟈시죰을 거쳐 파숑(巴松)에는 11:30분에 도착했다.
파숑에 도착하니 책자나 관련자료에는 랜드 크루저가 롱북사원까지 들어간다고 여행사에서도 설명을 들었는데 언제부터인지 파숑에서 전원하차 다시 롱북사원으로 가는 12인승 셔틀버스를 60元씩 다시 지불하고 가야하는 불편한일이 생겼다.
셔틀버스는 대만원으로 가득 찾지만 뒷자리에 앉은 티베트 노인들은 노래를 신나게 부르면서 가는데 앞에 간 차량이 고장 나서 그곳에 승차 했던 외국 등산객을 태우기 위해 타고 있던 티베트 어린이와 노인들을 내리게 하니 우리는 티베트 노래 소리에 취해서 티벳풍에 젖어 있었는데 섭섭했다. 롱북 G.H에는 12:40분에 도착 레스토랑에서 중국컵 우동을 시켜 먹었는데 우리 입맛에 안 마졌으나 체력 유지를 위해 억지로 먹었다.
5000m이상 되는 고지에 오니 고소증세가 또 나타난다. 이뇨제(다이아막스)를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니 손, 발가락이 짜릿짜릿하고 저리고, 뒷목이 땡기고 띵하다. 필자도 조금 숨이차서 고소 예방을 위해 더운물을 자주마시며 천천히 걸으며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중식을 마치고 13:30분 우리의 목표인 초모랑마 B.C를 가기 위해 롱북사원을 출발하여 초모랑마로 가는 마차를 60元 주고 이영준사장과 같은 마차에 둘이 타고 가는데 조랑말이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마부가 채찍질을 심하게 하니 좀 보기가 안 좋았다.
도로변 왼쪽에는 기암괴석 오른쪽은 민둥산이 조화를 이루고 계곡을 따라 1시간쯤 가니 초모랑마 B.C에 도착하여 초모랑마 B,C셀파 천막(숙소)주인의 안내로 탠트 뒤쪽 타르쵸가 휘날리고 있는 작은 언덕으로 올라가니 초모랑마 B.C 5200m라 돌비석이 있는데 초라하여 실망스러웠고, 에베레스트 설경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으니 더욱 아쉬웠다.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내려와 천막 막사 안 으로 들어가니 뉴딩그리에서 만난 중국 중의대에 유학중인 학생과 한국 여대생 두 명을 만나니 반가웠다. 우리는 이곳의 정보에 대하여 몰랐으나 중국어를 잘 하는 남자 대학생에게서 초모랑마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게 되어 초모랑마 트레킹에 많은 도움을 얻었다. 이 학생들은 이 천막숙소에서 숙박하므로 내일 더 가까이 초모랑마 베이스캠프를 다시 갈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는 에베레스트를 2일간 볼 수 있는 영광을 얻었고 다음날 E.B.C를 또 갈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롱북사원에서 초모랑마 B.C까지 마차로 왕복 60元을 주고 타고 가면서 굉장히 싸게 간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오토바이로 등산객을 싣고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고 이들은 초모랑마 B.C천막숙소에서 불법으로 운행하는 오토바이로 가격도 편도 20元으로 싸다. 천막사장과 다음날 아침 6시30분 까지 롱북사원으로 우리를 데리러 굳게 약속을 하고 롱북사원으로 기다리던 마차를 다시 타고 내려오니 저녁노을 지는 무렵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니 중국에서 온 전문 사진가들이 무거운 삼각대, 망원렌즈를 장착하고 작품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눈앞에서 보는 에베레스트의 설봉은 장관이다. 정말 가슴 벅찬 순간이다. 이렇게 여러날 고생을 하며 여기에 온 보람을 느끼고 나의 집념의 승리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러나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이 오슬오슬 추워서 숙소로 들어가 저녁식사도 안하고 추워서 동계용 침낭을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내일 E.B.C에 가기로 약속한 관계로 흥분이 되어 잠이 잘 안 온다. 밖에는 북두칠성이 유난히 반짝였으나 조금 후에 흐리더니 약간 비가 내려 걱정도 되었다. 새벽 3시에 박길범사장이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깨어서 잠을 설쳤다.
롱북사원은 초모랑마 북면 롱북 빙하가 보이는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1902년 낭마파 라마에 의하여 세워진 사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5030m)에 있다.
한때 500여 승녀와 비구니가 생활 하였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많지 않은 승려만 계시고 이 곳에는 민가 몇 채와 롱북 G.H가 있을 뿐이다.
숙소: 롱북사원 G.H
초모랑마B.C-롱북사원-올드딩그리(老定日, 4390m)
06:00시에 일어나 라면과 해반을 넣고 끓인 죽을 맛있게 먹은 후 어제 약속한 장소에 갔으나 한 시간이나 지나서 왔다. 왜 늦었냐고 하니 씩 웃고 늦게 일어낫다고 한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도 오늘은 웅대한 에베레스트의 장관을 보기 위해서는 기분 상하는 일은 없어야한다. 롱북사원 앞에서 07:40분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오토바이를 타고 초모랑마B.C 천막숙소에 도착 버터티를 마시고 한국에서 온 여학생과 여행담을 나누며 잠시 휴식한 후 천막을 나와 09:00시 오토바이로 자갈밭과 계곡 길을 건너가 한참 달리더니 언덕아래서 내리라고 하며 더 이상 갈수 없다고 해서 내려서 언덕 위로 올라가는데도 고산증으로 숨이 차고 힘이 든다. 그러나 마지막 힘을 다하여 올라가니 구름에 가린 히말라야의 설산, 초모랑마봉, 마카루, 로체의 웅대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며 희열에 탄성을 자아내며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이 행운 이었다. 그중 주봉 초모랑마 만 보아도 영광인데 아니 구름에 가린 설산만 보아도 환희요 기쁨이 아닌가? 카메라의 앵글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파나라마는 신비스러움을 더해주며 가슴이 벅차오른다.
사진 촬영에 열중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숙소사장이 독촉하는데 양해를 얻어 30분이상 더 보면서 내려가기가 싫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가는데도 흥분이 가라않지 않고 기쁨에 넘쳐 깊은 계곡을 건느다가 오토바이가 넘어져 물에 빠져 등산화가 다 젖었어도 즐거웠다. 11:20분에 롱북사원에 내려와서 다시 에베레스트를 보아도 햇볕아래 비친 모습은 너무나 환상적이고 기분이 좋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지 않았는데도 배고픈 줄 모르고 E.B.C를 정복 했다는 자신감에 넘쳐 행복감에 쌓여있게 한다.
롱북사원을 출발 팝송에 와서 다시 랜드 크루저로 올드딩그리로 가는 도로는 질퍽거리고 너무나 엉망 이었다. 강줄기를 따라 비탈길을 오르면 신작로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군데 군데 도로가 파이고 끊어진 곳이 많아 아슬아슬하다. 도로가 계곡 안으로 들어가 있어 웅덩이가 되어 힘이 좋은 랜드 크루저가 아니면 갈수가 없다. 이 험하고 깊고 깊은 산중에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이런 곳에 멀리서 양떼들이 고물고물 움직이고 움막집에 탠트를 쳐 놓고 양치기 소녀가 쉬고 있다. 타고 가는 것이 고통의 연속 이지만 초모랑마 베이스캠프를 다녀왔다는 자신감 때문에 참고 견디며 올드딩그리로 가고 있는 중이다.
珠峰家庭G.H(MT, EVEREST HOME INN)
올드 딩그리(老定日, 4390m)-니얄람(3750m)
오늘은 운행시간이 짧아 늦은 09:50분에 올드 딩그리를 출발하는데 랜드 크루저 기사와 가이드가 대기하여 배낭을 싣고 여행은 시작된다. 태양빌라가 있는 마을을 지나 약간 서쪽으로 가다보면 폐허가 된 사원들의 잔해가 드넓은 평원에 군데군데 보인다. 여기서 네팔국경을 향해 남쪽으로 꺽어지면 초유의 멋진 전경이 보이고 마을을 지나 지그재그로 오르막길로 오르면 오른쪽으로 히말라야의 8000m급 사샤팡마(8012m)기 보이고 조금 더 올라가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개 라룽라(5200m)에 12:40분에 도착 했다.. 라룽라는 5200m의 높이의 고개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평평하고 그 곳에는 양, 염소, 야크들이 모여 한가롭게 풀을 뜯고 목동들도 쉬고 있다. 초원 한가운데 도로 옆에는 전복된 차량 1대가 그대로 넘어져 있었다. 차량 안에는 짐들도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은 없다. 전복된 차량을 바라보면서 재삼 안전에 대하여 기사에 천천히 안전 운행하도록 주의를 환기 시켰다. 고개 정상에는 룽다와 타르쵸가 이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의 안전과 평화를 기원하듯 세찬바람을 받으며 휘날리고 있다.
라룽라에서 니얄람으로 내려가는 길은 울퉁불퉁 도로 사정이 안 좋고 곳곳에서 도로공사로 파헤쳐 놓아 천천히 내려갔다. 14:30분에 니얄람에 오니 네팔쪽에서 넘어온 트레킹팀으로 대만원이라 당초에 가려던 숙소는 만원이라 다른 곳 2층에 숙소를 잡았다. 점심시간이 훨씬지나니 배가 고파서 이곳에서 유명한 식당으로 올라가 어제 먹었던 야크무탕, 계란탕 등을 시켰으나 맛도 없는데 어제 보다 가격은 두 배가 비싸다.
이 식당은 유명한 트레카들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많이 찾아와서 그런지? 각종 에베레스트의 산의 사진과 각 등산 단체의 명함, 스티카 등이 벽에 다닥다닥 붙여 있었다. 우리나라의 몇 산악회의 스티카를 보니 반가웠다. 티벳 같음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인 니얄람도 중국화 되어가고 있으며 식당, 슈퍼마켓, 철물점, 우체국, 이동통신 등이 있으나 병원은 없고 작은 진료소 밖에 없었다. 점심식사 후 내일 아침을 준비를 위해 부탄가스를 사려고 시내 상점을 모두 다녔으나 구하지 못하였다. 미리 준비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내일 아침 준비를 위해 계란과 과자를 준비하고 숙소로 가는데 숙소 건너편에 중국집에 들어가니 고기 만두집으로 주인인 젊은 청년이 약간 영어를 하기에 만두 1접시에 쟈스민차를 마시며 내일 아침용으로 고기만두 2접시를 시키고 숙소로 들어오니 한가했던 숙소에는 프랑스, 독일, 미국, 중국 등에서 수십 명의 트레카들이 몰려와 숙소가 꽉 차고 활기를 띠고 있었다.
피곤하여 침낭에 들어가 티베트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니얄람(3750m)-장무(2300m)-카투만두
니얄람에서 네팔 입국을 오전에 하려고 새벽부터 서둘러 어제 숙소 건너편 식당에 주문한 만두를 06:40분에 배달이 되어 맛있게 들고 07:10분 니얄람을 출발 장무로 향했다. 새벽공기를 헤치고 깊고 이름다운 천야만야한 협곡을 지나며 주변을 바라보면 높고 험준한 준령, 깊은 계곡, 큰 수목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계곡의 힘찬 물소리를 들으며 굽이굽이 돌아서 벼랑 등 아슬아슬한 도로를 따라 내려가야 하는데 장무로 가는 길은 너무나 아름다운 대자연의 또 다른 신록의 아름다움을 맛보는 순간이며 생기가 도는 일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폭포와 설산을 사진촬영 하는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사진 촬영을 했다.
밀림 속 사이에 수십 수백 미터씩 떨어지는 크고 작은 폭포들의 모습은 장관이다. 어제 비가 많이 와서 차량이 지날 때 지붕위로 세차게 쏘다지는 물줄기는 인공세차장처럼 아주 깨끗하게 세차를 하고 있다. 이곳 수목도 울창하고 바위에 이끼도 끼고 이곳 전체가 웅장하고 비경이다. 니얄람(3750m)을 출발 장무(2100m)까지는 고도차가 무려 1600m까지 고도를 낮추며 내려가므로 이 곳부터는 고소증에서 해방이 된다.
장무는 한족, 유목민, 세르파족 들이 어우러져 사는 중국과 네팔의 유일한 무역 국경도시로 히말라야 고봉을 넘어 중국 최 변방 국경수비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며 인구는 약 1000명이 살고 있고 출입국관리소 , 호텔, 은행, 롯지, 세관, 상점 등이 많다.
라싸에서 우정공로를 따라 네팔 카투만두를 가려면 통과해야하는 주요한 도시이다. 무역이 이루워지는 도시라 도로변에는 네팔 TATA회사 대형 트럭이 일렬로 정차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 9시에 장무에 도착 네팔과 티베트의 우정을 지키는 우정의 다리에서 가이드와 기사와 작별 인사를 한후 네팔 코다리에서 비자를 30불 주고 받은후 네팔로 입국 카투만두로 향했다.